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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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심재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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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의 시인] 심재휘

  신작시: 하여간 롱 스토리 / 입과 귀와 다리의 열심 / 저 너머의 방 한 칸

  자선시: 안녕히 / 진눈깨비

  [시인론] 최선교 “시가 하는 일”

 

 

 

 

 

 


 신작시 


 

 

 

 하여간 롱 스토리

 

 

 

 

 

식탁에는 아내가 읽다가 엎어 둔 책

까만 글자들은 식탁에 쏟아지지 못한 채

흰 종이에 매달려 한여름

소나기구름처럼 한껏 글썽거린다

 

창밖에는 저녁 비가 오기도 하고

그녀의 책갈피는 이야기의 뒷부분에 꽂혀 있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그 책을 읽고 그녀처럼

하루 치 읽은 책을 식탁에 엎어 둔다

흐리거나 맑거나 식탁에는 책갈피가 두 개

 

문장 밑에 그어 두었던 각자의 밑줄들은

식탁 위에 쏟아져 밥이 되고 반찬도 되지만

함께 읽는 책은 하여간 롱 스토리

 

어느덧 나의 책갈피는 어느새

그녀의 책갈피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데

이야기의 끝에서 만날 두 책갈피는

몇 페이지 사이를 마주 보며 다정하기만 한데

어느덧 아니 어느새

책을 다 읽은 그녀는 책갈피를 뽑아 들고

책에서 나가 버렸네 어디로 간 것일까

텅 빈 식탁은 길고 남은 글자들은 글썽거리고

하여간 롱 스토리의 결말은 비밀

 

 

 

 

 

 

 

 

 

 

 



 

 

 입과 귀와 다리의 열심

     

 

 

   

 

그래서 나는

말라가는 고구마 귀퉁이를 잘라

주둥이가 깨진 컵에 넣고 물을 부어주었다

금세 순이 나고 또 급히 내미는 걸음

아무래도 아주 멀리 간다는

4월의 표정

 

오전의 물과

오후의 물은 달라서

창밖 어느 먼 여름 쪽으로

금세 또 새 가지를 낸다

귀를 기울이듯

 

창가의 물끄러미인 듯하여도

한 컵의 물 꾸러미에서

제 길을 뽑아올리는 저 지독한 열심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저만의 열심

 

그에게도 구름은 흩어지는 듯 모여들고

창밖의 사람들이 후다닥 뛰는 소리 들리겠지

비는 퍼붓다가도 개고 날은 또 어두워질 테지

입은 깨어지고 귀는 자라고

나는 지금 5월을 걸어가고 있고

그러니까 저 열심은 어디에 가 닿으려고

 

 

 

 

 

 

 

 

 

   

 



 

 

 저 너머의 방 한 칸

 

 

 

 

 

 

고속도로를 갓 나온 작은 트럭은

폐기물 전문 처리라고 몸에 쓰고

가을 국도를 기웃거리며 간다

귀담아들어야 할 더운 말들도 없이

짐칸에 높게 쌓인 침대 매트리스들

낡아온 세월은 달라도 함께 일렁인다

 

국도를 벗어나 길이 조금 구불거리면

조금 더 힘껏 출렁거리고 싶은 지방도로

숲과 숲 사이를 지나

낮과 밤 사이를 지나

아득히도 간다

 

가을 갈림길에 서면

트럭은 서쪽 나는 오른쪽의 갓길

그리고 백미러에는 지울 수 없는 소실점

돌아본다 한들 길 끝 너머로

오늘은 나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가물거리는 소실점 너머에도

자리 깔 방 한 칸은 있겠지

길이 아주 좁아지기로 하면

남은 풍경이 대신 커진다

 

  

 

 

 

 

 

 

 

 

 


 자선시 


 

 

 

 안녕히

 

 

 

 

 

구불거리는 오르막이 제법 길다

도시 변두리의 어느 저녁

한적해서 차로 속도껏 넘다가

‘안녕히 가세요’ 하는 고개 위에

불 밝힌

아! 이렇게나

작은 편의점에

저녁은 불현듯 머문다

자작나무 몇 그루의 고개 위는

뒤돌아 멀리를 보는 곳

그리고 다시 뒤돌아 더 멀리를 보는 곳

편의점은 내리막을 편지지처럼 깔아놓고

불빛 서너 개 흘려보낸다

하늘에 데워 놓았던 노을은 식어

뒷문 쪽 매대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 《유심》, 2025년 가을호

 

 

 

 

 

 

 

 

 

 

 


 

 

 

 진눈깨비

  

     

      

 

카페에 앉아 미지근한 물을 주문한다 이 겨울의 모든 것을 모두 아는 듯한 점원의 미소, 창밖에는 햇빛이 모자라는 사람들의 거리, 나는 자리에 앉아, 미온의 유리컵에, 설탕 한 스푼 넣는다 투명한 깊이 아래로 폭설같이 쏟아진다 일부는 녹아 아지랑이 물이 되고 일부 알갱이는 남아 바닥에서 일렁인다

 

카페 문을 열고 오후의 거리로 나서면 도시 위로 눈이 마저 내리고 있다 글썽거리기만 하는 진눈깨비, 조금은 더 따뜻한 물이었어야 되었나? 길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높은 곳에는 벌써 녹는 눈송이와 찬 길바닥에는 엎어져 쌓이는 덜 여문 몸들과

 

시시하게도

애매하게 젖은

거리와

 

흘러나오는 흘러간 노래, 조금은 더 따뜻한 물이었어야 되었나? 신호등 아래의 젖은 보도는 붉었다가 푸르렀다가 하고, 노래는 흩어지고, 아직도 일렁이는 설탕 알갱이처럼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마다 걸음은 남았다가 녹고 어느덧 텅 빈 카페에는 창밖을 바라보는 점원의 따뜻한, 혹은 차가운 미소, 그리고 진눈깨비는 계속 내린다

 

 

— 《내일을여는작가》, 2025년 가을호

 

 

 

 

 

 

 

 

 

 

심재휘  l

1997년 《작가세계》등단. 시집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 등이 있음. 〈현대시동인상〉〈발견문학상〉〈김종철문학상〉 등 수상.

 

 

 

 

 

 

   


 시인론 / 최선교 


  

 

 

 

 

 

시가 하는 일

 

        

 

 

올봄에 발표된 심재휘의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문학동네, 2025)를 여는 ‘작가의 말’을 본 순간, 이것이 그의 시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일종의 고백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활’을 좋아한다. 살아 있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생활은 언제 어디에나 있다. 혼자 오기도 하고 여럿이 오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오전에 장을 보고 오후에는 수리점에 가서 수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좁고 긴 지하도였다. 사람들을 헤치고 다가와 내 곁을 그저 스치고 지나간 사람이 있었다. 지금 그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저녁 내내 그의 붉게 운 눈이 사라지지 않는다. 고장 난 것을 다 고칠 수는 없지만 생활은 이어진다. 생활은 무엇일까.1)

 

마음을 오래 머물게 하는 고백이다. “오전에 장을 보고 오후에는 수리점에 가서 수리”를 하는 생활은 특별한 구석이 하나도 없으므로, 글의 끄트머리에 놓인 “생활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까닭이 문득 궁금해진다. 생활의 외연이라고 할 만한 것은 좀처럼 확장되는 일이 없다. 거듭되고, 반복되고, 되풀이되는 것이 생활의 습성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활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심재휘의 시를 많이 닮았다. 심재휘의 시를 읽다 보면 그가 즐겨 사용하는 소재라든가, 빈번하게 빠져드는 사유의 경로를 거듭 발견하게 된다. 생활의 리듬과 심재휘 시가 보여주는 리듬 사이에는 일종의 유사성이 있다. 생활을 근간으로 하여 짜인 그의 시는, 삶을 이어간다는 일이 드물게 찾아오는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조용히 반복되는 생활 그 자체임을 잘 알고 있는 것일까. 더 나아가 그런 순간에서야 비로소 발견하는 것이 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일까. 그가 생활의 신비를 터득한 듯 ‘생활이란 ~ 무엇이다’라고 쓰는 시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좋다. 다만 그는 의미 없는 것에서 의미를 추출하려는 분투나 과장되게 부풀려진 경외심 없이 아주 정직한 질문을 던진다. “생활은 무엇일까.”

그는 시인으로서 생활을 쓴다. 그러므로 반복되는 생활의 특정한 순간이 남긴 자국들을 내내 떨치지 못한다. 잠시 곁을 스치고 지나간 것만으로도 저녁 내내 자국을 남기는 “그의 붉게 운 눈” 같은 것들. “고장 난 것을 다 고칠 수는 없”으나 이어지는 것이 생활이라면, 이미 내 곁을 스치고 지나갔으나 사라지지 않는 생활의 일면은 시를 만든다. 사라졌으나 잔존하는 것으로 쓰인 시는 끝내 생활의 외연을 확장한다. 반복되고 거듭되며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없던 생활의 일시적인 확장은 심재휘가 만들어내는 시적인 순간이다. ‘두부’와 ‘간장’에서 ‘보이저’로 도약하는 움직임처럼 심재휘의 시선을 통해 생활은 시적인 것으로 훌쩍 도약한다. 자연스럽고 가볍지만, 순식간에 멀리 뛰어오르는 움직임은 시적이라는 호명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래서 나는

말라가는 고구마 귀퉁이를 잘라

주둥이가 깨진 컵에 넣고 물을 부어주었다

금세 순이 나고 또 급히 내미는 걸음

아무래도 아주 멀리 간다는

4월의 표정

 

오전의 물과

오후의 물은 달라서

창밖 어느 먼 여름 쪽으로

금세 또 새 가지를 낸다

귀를 기울이듯

 

창가의 물끄러미인 듯하여도

한 컵의 물 꾸러미에서

제 길을 뽑아올리는 저 지독한 열심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저만의 열심

 

그에게도 구름은 흩어지는 듯 모여들고

창밖의 사람들이 후다닥 뛰는 소리 들리겠지

비는 퍼붓다가도 개고 날은 또 어두워질 테지

입은 깨어지고 귀는 자라고

나는 지금 5월을 걸어가고 있고

그러니까 저 열심은 어디에 가 닿으려고

─ 「입과 귀와 다리의 열심」 전문

 

어느 날 ‘나’는 “말라가는 고구마 귀퉁이를 잘라” 싹이 나도록 돕는다. ‘나’가 어떤 이유로 그런 일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시의 첫 문장은 이유에 해당하는 앞 문장을 생략한 채 덩그러니 ‘그래서’라는 접속사를 사용하며 행동의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누군가의 아주 평범한 일상을 슬쩍 훔쳐본 듯, 고구마의 귀퉁이를 잘라서 물이 담긴 컵에 담그는 사람의 행위 자체가 도입부를 열고 있다. 이유가 궁금하기는 하지만, 말라가는 고구마에서 싹을 보려는 일에 반드시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유 없음 자체가 하나의 이유일 수도. 이유야 어쨌든 간에 “말라버린” 제 모습을 닮아 누추한 “주둥이가 깨진 컵”에 담긴 고구마 귀퉁이는 자라는 일에 열심이다. 늘 그것을 바라왔던 것처럼 “금세 순이 나고” “금세 또 새 가지를 낸다”. 작은 컵에 고인 물일 뿐인데, 고구마에게 “오전의 물과 / 오후의 물은 달라서” 지칠 줄 모르고 자라는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화자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것의 움직임을 본다. 창가에 놓인 고구마의 성장은 “지독”할 정도로 열심이면서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소하다. “어디에 가 닿”을지 알 수 없으나 “급히 내미는 걸음”은 화자가 고구마 귀퉁이를 심었던 일과, 더 나아가 ‘나’와 ‘그(고구마)’가 생활을 계속하며 걸어가는 일의 닮은 점이기도 하다. 다만 내딛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유 없는 이유’로 인해 심재휘의 소박한 시 역시 조금씩 조금씩 걸음을 내디딘다.

 

고속도로를 갓 나온 작은 트럭은

폐기물 전문 처리라고 몸에 쓰고

가을 국도를 기웃거리며 간다

귀담아들어야 할 더운 말들도 없이

짐칸에 높게 쌓인 침대 매트리스들

낡아온 세월은 달라도 함께 일렁인다

 

국도를 벗어나 길이 조금 구불거리면

조금 더 힘껏 출렁거리고 싶은 지방도로

숲과 숲 사이를 지나

낮과 밤 사이를 지나

아득히도 간다

 

가을 갈림길에 서면

트럭은 서쪽 나는 오른쪽의 갓길

그리고 백미러에는 지울 수 없는 소실점

돌아본다 한들 길 끝 너머로

오늘은 나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가물거리는 소실점 너머에도

자리 깔 방 한 칸은 있겠지

길이 아주 좁아지기로 하면

남은 풍경이 대신 커진다

─ 「저 너머의 방 한 칸」 전문

 

또 어느 날에 ‘나’는 가을 국도에서 세월처럼 쌓인 짐을 싣고 달리는 “작은 트럭”을 본다. “함께 일렁”이고, 갈수록 “구불거리”는 길을 달리는 트럭을 보는 ‘나’의 시선에서 트럭은 한순간 시야에 들어온 물체를 넘어, “숲과 숲 사이를 지나 / 낮과 밤 사이를 지나 / 아득히도” 멀리 가는 존재로 상상된다. 이때 ‘나’와 트럭이 형성하는 구도가 흥미롭다. ‘나’와 트럭은 어느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지만 “백미러에는 지울 수 없는 소실점”이 맺힌다. 실제로는 평행한 두 직선을 무한히 멀리 연장하였을 때 하나로 만나는 점처럼, ‘나’와 트럭의 무관함은 시인의 시선을 통해 멀리 확장되는 생활의 외연 속에서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멀어져 소실점마저 희미해질 때, 보이지 않는 그 너머로 “자리 깔 방 한 칸”이 그려진다. 앞으로 달려 나가는 동안 뒤에 남겨진 길은 보이지 않을 만큼 좁아지지만, 시에 “남은 풍경이 대신 커”지는 것이다. 이 시는 구태여 ‘나’와 ‘트럭’이 공유하고 있는 내용을 공들여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정도 엇갈려 달리는 ‘나’와 ‘트럭’의 구도를 제시하고, 갈림길에서 멀어진 후에 남는 소실점을 찍어 넣음으로써 그 안을 채워 넣는 상상력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시를 읽고 난 뒤에는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잠깐 스쳐 간 시 속의 어느 풍경이 저녁 내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와 ‘트럭’이 형성하는 구도는 앞선 시에서 ‘나’와 ‘고구마’가 맺는 관계와 사뭇 유사하다. 「입과 귀와 다리의 열심」의 마지막 연에서 4월이 지나 5월로 흐르는 동안 ‘고구마’의 생장을 빗댄 표현이던 ‘걸음’은 이제 ‘나’가 걷는 것이 된다(“나는 지금 5월을 걸어가고 있고”). 그 결과, “그러니까 저 열심은 어디에 가 닿으려고” 라는 시의 마지막 문장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시간의 흐름에 발을 맞추어 가 닿는 곳을 정해두지 않고 생활을 이어 나가는 ‘걸음’의 주체는 ‘나’이면서 ‘고구마’이기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고구마’를 끌어들이는 행위라고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 심재휘의 시를 읽어본 누구라면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연결되며 둘 사이의 경계가 무화된다. 어떠한 위계질서 없이 순식간에 조응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재휘의 시는 대상과 ‘나’ 사이의 섣부른 동일시나 교조적인 뉘앙스를 조금도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입과 귀와 다리의 열심」을 통해 배운 바 있다. 말라가는 고구마가 뿌리를 내리도록 ‘나’를 추동한 것은 ‘사심 없는 마음’이며, 이 마음은 ‘그래서’ 앞에 놓여야 할 문장을 과감히 생략했기 때문이다.

심재휘 시에 등장하는 ‘나’는 시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수행함으로써 한 편의 시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시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뒤돌아 멀리를 보는 곳 / 그리고 다시 뒤돌아 더 멀리를 보는 곳” (「안녕히」)일 것이다. 생활에서 출발하여 한없이 멀어지지만, 끝내 자기가 출발한 생활과 무관해지지 않는 방식을 취하는 독특한 시적 이행의 순간이 심재휘의 시에는 있다. 신작시 「하여간 롱 스토리」에서 ‘나’는 앞서간 ‘그녀’가 책갈피를 꽂아둔 이야기를 향해 따라간다. 하지만 ‘나’가 이야기를 채 쫓아가기도 전에 ‘그녀’는 “책갈피를 뽑아 들고 / 책에서 나가 버”린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한껏 글썽거”리는 남은 글자들 뿐이며 그렇게 “하여간 롱 스토리의 결말은 비밀”로 남는다. 심재휘 시의 화자는 대개 떠나는 자보다 남겨진 자에 가깝지만, 그러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몫 이상을 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다만 “하루 치 읽은 책을” 읽은 뒤에는 그것을 “식탁에 엎어”둔다.

반드시 결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하여간 롱 스토리”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앞서 지나간 트럭의 사정을 구태여 상상하지 않았듯, 이번에도 ‘나’는 “하여간 롱 스토리”라는 말로 이야기의 내용을 능청스럽게 얼버무릴 뿐이다. 오히려 이 순간이 시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체를 확실히 밝히지 않는 “하여간 롱 스토리”의 이야기를 하루 치의 분량만큼 따라가던 매일 매일에 있다. ‘나’의 책갈피가 “어느새 / 그녀의 책갈피 쪽으로 조금씩 다가가”는 동안, “문장 밑에 그어 두었던 각자의 밑줄들은 / 식탁 위에 쏟아져 밥이 되고 반찬도 되”었으며, “몇 페이지 사이를 마주 보며 다정하기만” 하던 매일도 있었다. 앞선 설명을 수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심재휘의 시가 그리는 화자는 남겨졌다기보다, 주어진 만큼의 자리에서 주어진 만큼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의 미덕이 분투나 역동성에 있지 않듯, 생활의 미덕은 시인의 말마따나 “살아 있고 살아간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에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생활을 “좋아한다”. 빨리 걸어야 하고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도처에 널린 세상에서 ‘생활을 좋아한다’고 적은 시인의 고백이 사뭇 생경하다. 빨리 가는 사람에게는 도착이 주어지지만, 천천히 가는 사람은 확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시가 해야 하는 일. 멀리, 더 멀리를 보며 걷는 생활자로서 시인의 태도가 내심 부러워진다.

 

 

                           

1) 심재휘, 「작가의 말」, 『두부와 달걀과 보이저』, 문학동네, 2025.

 

 

 

 

 

 

 

 

 

 

 

이달의시인_시인론.jpg

최선교  l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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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VOL.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