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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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수호 

 

 

 

옷을 벗어놓고 돌아오다

ㅡ 모로코의 서남쪽 사하라

 

        

   

 

    마침내 사하라에 도착했다. 태양은 막바지 힘으로 이글거렸고 모래는 한껏 달구어져 있었다. 뺨이 화끈거렸다. 현재 기온이 53도라고 했다. 그러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면서 나지막한 모래 산으로 태양은 곧 넘어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손님을 맞는 사람들은 공연 준비로 바빴고, 손님인 우리는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는 사막의 풍경을 눈 속으로 밀어 넣느라 바빴다.

  해가 지면서 바람이 점점 거칠어졌다. 바람은 숙소의 텐트를 펄럭거렸고 누런 모래밭을 휘젓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휘몰아칠 때마다 귀 끝까지 따끔거렸다. 저녁 식사인 샌드위치에도 마시던 음료에도 삽시간에 모래알이 버석거렸다. 눈코귀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모래밭 위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흰색 젤라바를 입고 같은 색 터번을 쓴 베르베르인들이 그들의 전통악기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전통 북인 젬베를 신나게 두드리거나, 크라케브를 들고 박자를 맞추며 흥겹게 연주를 이어갔다. 크라케브는 캐스터네츠를 두 개 연결해놓은 듯한 철제 악기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 악기에는 노예와 관련된 사하라 이남 서아프리카의 역사가 배어 있다. 노예들이 자루에 담겨 끌려갈 때 말발굽이 바닥을 치는 소리와 노예를 포로로 묶어두었던 족쇄가 철렁거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노예들이 풀려날 때 벗는 족쇄 소리의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것은 자유를 갈망하는 악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사막 위에서의 광란이 시작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베르베르인들의 연주가 지속될수록 밤은 깊어졌고 주변은 더욱 깜깜해졌다. 뺨을 때리던 모래에 대한 감각은 무뎌졌고 오로지 리듬만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모래밭 위를 뛰어다니며 어떤 춤을 추었는지 어떤 몸짓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눈에 들어온 건 악기를 연주하는 베르베르인의 유난히 하얀 치아, 그네들의 환한 미소만이 계속 나의 괴상한 춤을 부추기고 있었다.

   어느덧 나는 전통 북인 젬베 앞에 앉아 있었고, 아이처럼 떼를 쓰며 엉터리 연주를 하고 있었다. 착한 눈빛의 베르베르인은 순하게 악기를 양보하고 몇 번 박자를 알려 주었다. 리듬을 타는 것은 몸이 알려주는 것이어서 애써 머리를 쓰지 않았다. 내가 서툴게 젬베를 두드릴 때마다 사하라의 하늘에는 별이 하나씩 튀어 올라서 모르는 사이 하늘에는 어느새 빽빽한 별바다가 되어 있었다.

  연주가 멈추고 악기가 정돈되어도 주변은 고요해지지 않았다. 귓가에 바람 소리가 양철지붕 구겨지는 소리를 냈다. 베르베르인의 부족장인 모하메드 알리는 일행 중 유일한 여성인 내가 걱정스러운지 늘 주시했다. 사막은 위험한 곳이라고 멀리 가지 말라는 얘기를 반복했다. 사막 바람은 하룻밤 사이에 지형을 바꿔놓는다는 것도 강조한다. 이쪽 모래 산을 저쪽으로 옮겨놓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의 호기심은 모하메드 알리의 시선 밖으로 벗어나는 것에 몰두했다. 슬금슬금 모랫바닥에 누웠다. 언제 봤는지 모하메드가 다가와 사하라의 별자리를 설명해 주겠다며 친절을 베풀었다. 이네들은 영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 이렇게 세 개의 언어를 쓴다. 그래서 어느 언어든 쉽게 쓰는 편이라 영어도 알아듣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귀에 와닿기 전에 바람 소리가 먼저 귀속을 휘젓고 있어서 대화가 쉽지는 않았다. 모하메드는 열심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가락으로 그들의 별자리를 설명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은 맨 마지막에 가리켰던 가장 빛나는 별 하나였다. “저 별은 당신의 별이오. 오늘부터 저 별의 이름을 에이시언, 아시아인이라고 하겠소.”

   사하라의 모래바람은 여전히 함석 소리를 냈고, 모래 알갱이가 얼굴이며 등짝을 후려치고 갔다. 모래 산 아래 둘둘 말린 붉은 담요가 보이는 데, 베르베르인 누군가가 잠자리에 든 것이다. 아침이면 이 모래 산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져 있기에 위험한 잠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이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모래가 움푹 팬 곳에 드러누웠다. 좀 높은 곳을 베개 삼아 하늘을 바라보니 이 세상은 온통 별 밭이다. 모하메드가 새로 이름 붙여준 에이시언이라는 별은 어디에 있나?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모두가 밝고 총명한 별이다. 이 세상은 오직 별의 세계만 존재하였고 모래바람만이 쉼 없이 나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비람결을 따라 야릇한 목소리들이 흘러왔다. “에이시언, 에이시언!” 그것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가닥의 목소리였고 멀리서 점점 더 가까이 들려왔다. 내가 잠이 든 걸까? 꿈꾸는 걸 거야. 나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돌려보았다. 컴컴한 배경에서 펼쳐진 장면은 뭐라 설명할 수 없게 아주 몽환적이었다. 그러니까 저 멀리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겨울비’가 연상되는 풍경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하얀 젤라바를 입은 베르베르인들이 흩어져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연신 “에이시언, 에이시언!!” 이라고 소리쳤다.

   그들이 다가왔을 때 그들 사이에서 나는 모하메드 알리를 발견했다. 그때야 나는 그들이 내 행방을 파악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이 어두운 사하라에서 길을 잃은 줄 알고 흩어져서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사막에서 더할 수 없는 망나니였고, 통제되지 않는 철부지였다. 모하메드는 다시 한번 이 사막의 두려움에 대해 강조했고 나는 고삐는 없었지만 순순히 이끌려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발갛고 순한 빛을 내는 전구가 누런 매트리스를 뿌옇게 비추고 있었다. 그 빛에 갇혀 나는 세상 편한 자세로 드러누웠다. 모래바람이 텐트를 치고 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눈을 떴다. 발에 무언가 닿은 듯이 선득거렸던 것 같기도 하고, 텐트가 펄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매트리스 옆에 덩치가 큰 젤라바가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헛것인가. 나는 소리를 질러보았다. “당신 누구죠?” 그는 이름 대신 미안하다고 했다. 뒷걸음치면서 텐트 밖으로 나갔고, 걱정마라는 말만 연거푸 했던 것 같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이미 그의 얼굴을 보았고 그가 누군지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캄캄한 사막으로 뛰쳐나가서 일행들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어느 모래 위를 뒹구는지 알 수도 없게 뿌옇고 검은 밤은 깊었고, 모래바람 소리만 함석처럼 우겨지고 있었다.

   잠을 잤는지 그대로 밤을 새웠는지 알 수 없게 아직 어두운 새벽, 우리는 일출을 보기 위해 낙타를 탈 채비를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일정처럼 모하메드는 아무 말 없이 내게 터번을 감아주었다. 절반은 희고 절반은 푸른색인 터번은 꽤 오랫동안 내 얼굴과 머리 사이를 오갔다. 그러는 동안 모하메드는 내 눈빛을 잠깐씩 들여다봤다. 두려움도 있었고 어떤 신비감도 일었다. 모하메드의 어린 사촌이 푸른 젤라바를 입고 나의 낙타를 끌었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서 낙타의 대열을 인솔하는 격이 되었다. 사막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별들도 여태 지난밤의 열정을 다 식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바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하라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사막 저쪽의 들판이 제법 훤히 밝았다. 그래도 사막 이쪽은 아직 어둡다. 하늘에서는 붉은 아침놀 기운이 감돈다. 사막이 그려놓은 크고 작은 곡선의 어떤 한 부분이 노란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아주 어린 손톱처럼 바알간 해가 돋아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노랗고 강렬한 줄무늬가 모래 쪽으로 방사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해는 사막 위로 불쑥 솟아올랐다. 그러면 이내 파란 하늘은 더욱 새파래지고 태양은 금세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가 된다. 사막이 사막다워지는 시간, 내가 탄 낙타는 모래 위에 제법 근사한 그림자를 늘어뜨리며 왔던 길을 돌아선다. 그때 나는 간밤의 바람이 새로 새겨놓은 날렵하고 근사한 사막의 칼날 라인을 보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신비한 선의 조형미는 인간의 손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자연의 힘이다. 나는 그제야 낙타의 숱 많고 긴 속눈썹과 빛나는 털과 느긋한 걸음걸이에 감탄하며 낙타의 등을 여러 번 쓸어주었다. 낙타의 발길에 차이는 모래에 언덕이 물결처럼 조금씩 밀리는 것을 내려다보면서 낙타 몸의 리듬에 내 몸의 율격을 맞추고 있었다.

   사막의 시간은 더딘 듯 보이지만 참 빠르게 흐른다. 사막을 바라보고 서 있던 시간도 모래알로 부서져 사하라의 모래 사이로 스며드는 것 같다. 여기서는 그 어떤 재료도 모래로 변할 거 같으니까. 그래서인지 사막에 들어올 때 소지한 유일한 옷가지였던 주홍빛 줄무늬 남방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크게 챙길 물건이 없는 상태여서 텐트 주변을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가 나는 옷 하나를 두고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옷을 벗어 놓고 돌아왔다

   모래바람이 하루 지형을 바꿔 놓는 곳, 사하라

 

   내 웃옷이 없어진 걸 알았을 때

   나는 베르베르인 모하메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하라 별자리는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느릿느릿 이 별 저 별을 선분으로 연결하며

   사하라 것만 발라냈다

 

   더듬더듬한 영어와 베르베르어를 섞어서

   내게 별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잠시 그의 무릎만 빌렸을 뿐인데

   그는 내가 잠든 텐트 속으로 겁 없이 걸어 들어왔다

 

   그는 눈빛만 깊어진 게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하라 별자리만 한 확신이 섰던 모양이다

 

   그가 내 발을 만지작거렸을 때

   어둠 속 그의 몸에서 끼쳐오는 비릿한 냄새

   그 거슬린 비위가 내 식욕을 돋우던 밤

   그를 그대로 내쫓는 게 아니었다

 

   내 모래잠은 무너졌다

 

   내가 벗어 놓고 온 웃옷

   그 탈피(脫皮)를

   내 몸 한 번도 입지 않은 그가 껴입고 있다

 

   이미 그의 것인 나, 사하라

— 졸시 「탈피하다」 전문

 

 

   모하메드는 자꾸 모래산 위로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따로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고 싶은 듯했다. 약간 불편했던 나는 못 본 척 딴전을 피웠고 그는 결국 내려와서 작별 인사를 했다. 만나서 행복했다는 인사였다. 어색한 장면이었지만, 동행한 사진작가의 사진 속에서는 아주 그럴싸한 이별 장면처럼 클로즈업되었다. 사하라의 신비한 밤은 이렇게 나에게 한 편의 시를 남겼다. 그때 사하라의 동행 작가들이 지금도 그때의 일화로 놀리고 있지만 내게는 그 일이 아득한 하룻밤의 꿈 같다.

   내가 겪은 일이라기보다 하나의 이야기로 잠깐 들어갔다가 나온 꿈, 시(詩)라는 것도 대낮에 꾸는 백일몽이 아니던가. 그때 내가 벗어놓고 온 것이 단지 단순한 나의 옷이 아니며, 그동안 내가 벗고 싶었던 시의 옷처럼 여겨진다. 그러니까 그날의 일은 어떤 새로운 시의 지향점이 생기기를 바랐던 내 마음이 가져온 신비의 체험 같은 것 아닐까. 모든 것은 시가 꾸는 꿈이었으므로. ■

 

 

 

 

ㅡ 그동안 “천수호의 [길이 말하길]”을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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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l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음. 현재 명지대·단국대 강의, 《세계일보》 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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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호(VOL.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