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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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지상 

 

 

 

오선지 위의 시어들 4

— 정호승 시 「수선화에게」 :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티벳의 한 소녀가 어미의 영정을 쓸어 안으며 울고 있었다. 딱히 빈소라고 부를 것도 없는 허름한 집 마루 위였다. 붉은 가사를 걸친 노승이 조심스레 마루에 걸터앉아 어깨를 들썩이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그것이 인생이랍니다. 어머니는 더 좋은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니 울지 마세요.” 그 말을 들은 소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나 어깨는 더 심하게 흔들렸고 급기야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노승은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으고 차분하게 소녀의 울음을 경청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노승은 조용히 소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소녀의 어깨가 다시 평온해질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을 움직이지 않았다.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들썩이던 그해 가을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빈소를 꾸미고 장례 절차에 대한 상의를 마치고 이제야 슬픔이 몰려올 시간, 시인이 전화를 주셨다. “지상 씨. 울지 마세요. 울면 더 슬퍼져서 또 울게 돼요. 하느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죽음이잖아요.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견뎌봐요. 슬픔에서 빨리 헤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머뭇거리듯 조용히 읊조리는 시인의 전화기 너머 음성에 나는 마른 모래 서걱이는 듯한 쉰 목소리로 “그러겠습니다.”로 답을 드렸다. 그리곤 이내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로 고쳐서 답을 드렸다. 시인과의 짧은 통화 중에도 울먹이는 가슴을 숨기기 위해 들키지 않을 만큼의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었다.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전화를 끊음과 동시에 종료됐다. 빈소를 나와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아 서성거렸다. 장례식장의 뒷산 아래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던 곳. 오후의 햇살이 큰 그림자를 드리웠던 그곳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울지 마세요. 울지 마세요.” 시인의 음성이 생각날 때마다 소리 내어 울며 담배를 물었다. 그때 나는 더없이 슬펐고 충분히 외로웠다. 나의 슬픔 앞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비로소 눈물이 진정되었을 때 시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외로우니까 사람입니다. 외로움은 견디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는 인간의 치명적 질병입니다.”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꼭 그만큼 외로울 것이나 외로움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외로움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고 스스로 답을 내어 본 일이 있었다. 하찮은 나의 대답은 사랑함 때문이었다. 사랑하고 갈망하고 기다리고 그리하여 다시 희망해야만 하는 그 모든 순간 외로움은 태어난다. 외로움의 깊이는 꼭 사랑함의 깊이만큼이다. 사랑하지 않는, 갈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외롭지 않은 사람도 없다. 외로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하는 것이 많다는 것의 반증이다. 모든 사랑에는 죄가 없다. 그러니 외로움을 죄로 여겼다면 면죄를 허용해야 한다. 내 안의 외로움이라는 질병을 대견해하며 노랫가사로 끄적거렸던 이 구절은 아직 선율을 얻지 못했다.

  민망한 말이지만 나이를 얻어가면서 주사(酒邪)가 생겼다. 불콰하게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자꾸 노래를 하고 싶어진다. 마냥 외로워도 좋은 시간. 모든 일들이 술 때문이라고 둘러대기 좋은 때를 맞춰 기타를 잡으면 빼놓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른다. 미처 술과 분위기로 위로하지 못한 외로움의 잔량(殘量)을 노래로 다독거리고 싶은 것이다. 노래를 만들고 25년이 지났다. 숱한 무대를 만났고 불렀지만 최근에는 자제하는 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움에 겨워”하는 부분이 쉽게 넘어가질 않는다. “그대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 부분에서는 스스로 감정을 여며야 한다. 내가 서는 무대에서는 거의 다 시대의 짐을 지고 사는 아픈 사람들을 청중으로 모신다. 외로움에 관한 한 나보다 상질의 질병을 앓고 있는 그들을 노래 몇 자락으로 위로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당연히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울지 마시라” 권고하는 나의 상태는 평온해야 하고 무대와 공간은 정갈하게 집중되어야 하며 음향은 목소리의 떨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런 조건이 다 갖춰진 무대를 만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주사를 부리는 시간만큼은 긴장하지도 예민해지지도 않는다. 화자와 청자가 모두 무장 해제된 그 틈 사이로 들려오는 나의 노래를 사랑한다. 위로하며 또한 위로받는 흔치 않은 시간이다. 주사를 부리며 박수를 받거나, 일부러 주사 부리기를 기다리는 이를 벗으로 둔 것을 호사라고 여긴다. 사실 내가 주사를 부리는 일이 흔치는 않다. 시인의 전언대로 외로움은 견뎌내는 일이고 살아 있다는 증거이므로 나는 이 불치의 질병에 대응할 어떤 방어기제도 마련할 능력이 없다. 그러니 노래를 부르며 어쩌다 한 번은 눈시울을 붉힐 때도 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인은 울지 말라고 하지만 울컥 돋아나는 울음 한 모금 또한 외로움을 사랑함으로 전화(轉化)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시인은 더 잘 아실 듯 하다.

  이 노래는 안치환과 김원중 형 그리고 양희은 선생이 불러 주셨다. 모두 사랑함의 깊이가 남다른 목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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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youtu.be/nGNr8TmLxFE?si=o5i3itKMnMekaBd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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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  l

가수. 작곡가. 1991년 〈통일은 됐어〉 〈내가 그대를 처음 만난 날〉로 작품 활동 시작. 음반 《사람이 사는 마을》 《내 상한 마음의 무지개》 《위로하다 위로받다》 《기억과 상상》 《기억과 상상》 《그리움과 연애하다》 《나의 늙은 애인아》 등, 산문집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 『스파시바 시베리아』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대한민국 도슨트—포천』이 있음. 시노래 운동 모임 〈나팔꽃〉 동인.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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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4월호(VOL.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