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염창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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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주체 찾기
ㅡ 정완영의 동시조 2
아동 문단의 개념 규정에 따르면, ‘동시조’는 ‘성인 작가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쓴 시조(정형시)’이다. 여기에 어린이 스스로가 쓴 시조를 ‘아동시조’ 또는 ‘어린이시조’라고 명명한다. 이에 비해 최근의 출판 경향에 따르면, 어린이시조 또한 ‘동시조’라는 명칭에 포괄되어 언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서 굳이 창작의 주체와 독자군을 내세우는 까닭은, 어린이 독자군에 대한 고려가 없는 상태에서 작가의 전기적 사항이나 작품 미학적 해석에만 힘쓸 경우, 동시조 갈래의 특징적인 면을 살려낼 수 없으며 창작이나 교육적 추구 등에서도 전망을 내세우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중의 독자군
아동 문학에서의 독자와 관련하여, 마리아 니콜라예바는 이중독자(二重讀者)의 가능성을 설파한 바 있다. 흔히 직면하는 바, 우리가 호명하고 있는 어린이상은 경험적 현실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추상적, 당위적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감이 없지 않다. 이로써 작품 속의 어린이와 현실의 어린이 간에 차이가 발생하고, 또 이러한 차이는 사회 문화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소통이 어려울 정도까지 진행 되기도 한다.
마리아 니콜라예바는 아동 문학에서 단일 수신자(single addressee)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이중적 소통의 통로를 모형화한 바 있다. 아동 문학의 경우, 작품 발표는 항상 성인(편집인, 서적 판매상, 평론가, 사서, 교사, 부모 등)을 통해서 조정되기 때문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러한 공동의 성인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동물에서 내러티브 텍스트의 소통]
아동 문학의 갈래적 특수성은 소통의 경로가 대부분 ①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성인 실제 저자와 아동 독자 간의 차이(difference, gap)에서 아동 문학의 특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저자의 이데올로기가 ②와 같은 소통의 코드를 거치면서 강화되거나 무효화됨으로써, 이들이 수행하는 의지적 노력은 아동 문예 미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역설적 소통 구조가 된다.
이에 대해 페리 노들먼(2006)은 성인과 아동 간에는 정보, 신념, 의미 찾기, 전략들(strategies), 텍스트 텍스트 레퍼토리(repertoire) 등의 다양한 면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인 소통 책임자들은 어린이들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강화, 강조하는 데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페리 노들먼은 ‘이데올로기 속의 어린이들’에서 “어린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예언”이라고까지 말한다. 즉 작가, 평론가 및 연구자, 교육자 등의 마음속에 표상된 어린이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어린이 문학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이의 실제 현실과 연구자 및 교육자들의 현실 인식 간의 차이를 지적하는 말이다.
암묵적인 교육 이데올로기가 아동 문학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때, “실제 성인 작가와 실제 어린이 독자 사이의 불일치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써만 어린이의 실제 경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 채, 정완영 시인의 말을 바탕으로 작가 의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저보다 오래오래 이 세상에서 살아갈 어린 벗들을 생각하며, ㉮ 새로 쓴 동시조들에 ㉯ 예전에 어른들을 위해 썼지만 지금은 어린 벗들과 같이 읽고 싶은 시조들을 보태 묶었습니다.
― 「책머리에」 부분(『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2011, p.5)
정완영의 시조전집 『노래는 아직 남아』(2006) 이후에 나온 시조집 두 권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2007),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2011)이 모두 동시조집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특히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2011)은 시인이 생전에 펴낸 마지막 시조집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초월적 지향점을 확인할 수 있다. 서문인 ‘책머리에’서 ㉮동시조(어린이독자)와 ㉯시조이자 동시조(이중독자로서 성인 독자와 어린이 독자)를 함께 묶는다는 작가의 편찬 의도가 드러나는 바, 순수한 원형적 세계로 귀의하고자 하는 노년기의 지향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목소리의 주체 찾기
지금까지의 시적 형식론 혹은 시조론은, 구조시학에서 발견한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적용한 상태에서 머물러 왔다고 본다. 즉 구조 시학에서 보여준 의미론이나 통사론 수준에서 시 문법(poetry grammar)을 찾고, 정형 양식의 규칙성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어휘나 문장 층위에서 정태적인 텍스트의 의미나 해석 작업에 집중하여 온 것이다.
이에 비해, 1970년대 이후의 발화론에서는 화자와 청자 간의 맥락(context)을 전제하지 않고는 진정한 의미를 확정 지을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언어는 ‘말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말한다는 사실’ 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 행위는 개별적인 발화자와 수신자 외에도 시간, 장소를 전제하는 발화” 라는 범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발화의 의미를 연구하는 화용론(pragmatics)은 ‘언어적 발화가 화자와 청자에게 갖는 의미’를 연구한다. 리치(1980:320-321)는 화용론의 영역에 ‘지시’와 관련하여 ‘화자와 청자’,‘화자의 의도와 청자의 해석’, ‘화맥(맥락)’, ‘언어 사용에 의해 수행된 행위’ 등을 포함시킨다. 즉 메시지(전언)를 둘러싼 나머지 소통의 요소들이 화용적 고려 사항이 되는 것이다.
이때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발화의 상황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몇몇 신호들의 사용이다. 보통의 단어가 대상을 지시하면서 의미를 한정, 정의한다면 이와는 다르게 연동소(shifter. embrayeur)는 언어 안에서 고유한 지시를 갖지 못하고 그것이 메시지 안에 포함되었을 때만 지시체를 얻게 되는 경우로, 그것이 나타난 발화에 관계되어서만 그 의미를 지닌다. 예를 들면, “나는 우리 엄마의 아들이다.”라고 했을 때, ‘나’라는 화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적은 혈연관계에 있는 특정한 남자이다. 그러나 각각의 대화에서 ‘나’, ‘너’, ‘우리’는 매번 다른 사람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언술 운용 안에서 의미를 갖는 인칭 대명사, 화자의 몸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장소의 부사, 언술 운용의 순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 시간의 부사, 의사소통 상황 안에서 의미를 갖는 지시 대명사, 동사의 시제” 등을 비롯하여 양태 화소, 보조 용언 등이 발화 과정에서 맥락을 형성하는 연동소* 기능을 갖는다.
표제작에 나타난 주체의 목소리
어린이 문학에 나타나는 주체의 형식은 순수한 어린이 그 자체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말해지는 주체와 같은 형식으로 갈래에 귀속됨으로써, 관련 맥락성을 내포하게 된다. 이에 따라, 동시 읽기에서 맥락성을 확인하는 것을 비평의 전략이나 코드로 삼을 수 있다.
대체로 표제작은 전체 작품집을 대표하면서, 분위기나 맥락을 형성하는 작품 역할을 한다. 일정 부분 작품집을 통괄하는 연동소의 기능도 갖게 되는 셈이다. 정완영의 동시집 4권의 초간본을 기준으로 간행 순서를 나열하면 아래와 같다. 4권의 동시조집을 종적으로 일관한다는 차원에서 표제작을 중심으로 작품에 담긴 어법과 목소리의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정완영, 『꽃가지를 흔들 듯이』(1979)
정완영, 『엄마 목소리』(1998)
정완영,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2007)
정완영,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2011)
「꽃가지를 흔들 듯이」
1979년에 간행된 『꽃가지를 흔들 듯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동시조집으로, 교과서 수록작 「분이네 살구나무」를 비롯하여 화해로운 동심의 시공간이 펼쳐져 있다. 1960~1980년대의 동시조 문단을 정완영, 박경용 두 사람이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첫 번째 동시조집의 성과는 파급력이 큰 것이었다. 이와 더불어 표제작 「꽃가지를 흔들 듯이」는 네 번째 동시조집에 이르기까지 정완영 동시조의 틀을 일관성 있게 통과하는 기준점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까치가 깍깍 울어야
아침 햇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 「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꽃가지를 흔들 듯이』, 1979)
이 시는 장별로 ‘전제(前提)+완성(完成)’과 같은 의미 대응을 이루면서 3장 6행의 배행을 보인다. 초·중장에서, “까치가 깍깍 울어야”(전제) 아침 햇살이 몰려들듯이(완성), 꽃이 피어나서 어린이들이 꽃가지를 흔들고 놀쯤에야(전제) 겨울빛을 벗고 하늘빛이 살아난다는(완성) 것이다. 종장에서는, 점층적으로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전제) /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완성)”고 하는, 인간과 자연의 혼융, 그리고 자연의 신체화 등을 통한 유기체적 통합은 동심의 공간이 풍족하고 지복(至福)의 공간이어야 한다는 작가의 세계관을 함축한다. 시적 발상의 면에서도, 단순한 활유법 사용의 차원을 넘어서, 주체와 대상을 유기체적으로 결속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즉 자연적 대상을 의인화할 뿐만 아니라, 자연 이라는 전체성을 신체화하는 지점에서 대상들 간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전체성이라는 포괄적인 범주 내에서 어린이적인 생성력이 포섭되는 것이다.
이때 자연이라는 동심의 공간은 엄마의 품과 같은 신체적 속성으로 전이되는데, 이를 통해 자연은 성장기의 어린이들을 양육하는 모성적인 공간이자 당위에 의해 갈등이 제거된 세계로 나타난다. 특히 “까치 소리, 몰려드는 아침 햇살, 흔들리는 꽃가지, 살아나는 하늘빛, 빨래를 헹궈야, 환희 열리는” 등의 공감각적이며 역동적인 이미지는 짧은 시행 내에서도 동심의 공간을 풍족하게 열어 보이는 미학적 장치가 된다.
다음으로 「꽃가지를 흔들 듯이」에 나타난 화자와 청자의 역할에 주목해 보기로 한다. 시적 화자가 위치한 곳은 까치가 울고 꽃이 피고, 개울에서 빨래하는 오래전 시골 풍경이다. 물론 이 시가 발표 되었을 때는 이와 같은 풍경은 시골에서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 시에서 의미의 가중치는 엄마의 빨래터에 있기 때문에, 화자가 위치한 시공간을 ‘개울물이 풀리는 봄날 빨래터 주변’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빨래터 주변에서 일을 하는 성인 남성은 없을 것이므로, 어린이 화자를 불러내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내포 독자로서의 청자 또한 같은 수준에서 설정이 가능해진다. 빨래터에 따라간 어린이 화자의 활동 공간을 상황 연동소로 삼는다면, 어린이 화자의 나이는 유아기이거나 초등 학교 입학 무렵으로 가정할 수 있다. 즉 자아 정체성을 바탕으로 독립적 자아를 추구하기 이전(以前)으로, 가족이나 주변 환경과 통합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엄마의 보호적 영역 내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는 연령대로 추정할 수 있다.
「엄마 목소리」
두 번째 동시조집의 표제작은 「엄마 목소리」이다. 어린이들의 놀이터와 성장의 터전에서 엄마는 가장 중요한 보호자이자 애착의 대상이다. 적어도 유년기에는 엄마의 적극적인 보살핌이 필요하고, 또 양육적 태도에 따라 올바른 성장의 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화소(話素)로 “엄마”가 주요하게 등장하는 경우에는 함축적 화자나 청자의 위치를 ‘유년기’의 어린이로 설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엄마 목소리」에서 “엄마 목소리”를 세상의 봄날보다도 더 환하게 받아들이는 목소리(시에서 발화되는 음성 voice, telling)가 이 시의 주체이자 화자 역할을 한다. 시적 화자가 위치한 시공간은 “보리밭”, “살구나무 꽃그늘”이 있는 전원적인 봄날의 풍경 속이다. 여기서 “환하다”는 “밝음, 희망, 정감, 익숙함” 등의 긍정적인 어감과 친밀성을 전해주는데, 이로써 성장하는 어린이를 품어주는 봄날의 자연 속에서 “엄마 목소리”라는 모성적인 가치가 전경화된다. 두 번째 동시조집 『엄마 목소리』에서도 목소리의 주체가 가족이나 주변 환경과 통합적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측면은 첫 번째 동시조집의 경우와 동일 하다고 볼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강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고도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 「엄마 목소리」 전문(『엄마 목소리』, 1998)
시에 나타나는 시간은 무시간적인 현재형이자 객관화된 시간이다. 현재형으로 분출된 봄날의 환한 풍경은 비교 우위의 모성적 가치를 전면화시키기 위한 배경 장치이다.
여기서 어린이 화자의 논평을 듣는 청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므로 함축적 청자 역할을 하는 내포 독자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 이때 내포 독자는 어린이적 논쟁 지점인 “누가 더”와 같은 비교 우위의 경쟁 관계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고, 시적 화자의 가치 부여에 동조하도록 독려받는다. “~냐”와 같은 질문에 이어진 “~이다”와 같은 구문은, 청자를 향해 열려 있으며 이와 같은 가치판단에 동참할 것을 요구받는다. 성장기의 어린이들이 가질 법한 비교우위의 경쟁적 어법을 취하면서, “엄마 목소리”가 들려오는 봄 공간의 환한 날들을 객관화시키고, 이를 풍족한 현재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가랑비」
세 번째 동시조집 『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의 표제는 「가랑비」의 내용 중에서 조합한 것이다. 동시조가 갖는 율격, 반복적으로 흉내 내는 말(첩어)이 갖는 율동감이 내용과 결속되면서, 음성상징을 만들어내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재구성하여 표제로 삼은 것이다. 먼저 “가랑비가 가랑가랑” 내린다는 것은, “가랑비”가 갖는 어감에서 발견한 “가랑가랑”이라는 음성적 상징을 차용한 것이다.
텃밭에 가랑비가 가랑가랑 내립니다
빗속에 가랑파가 가랑가랑 자랍니다
가랑파 가꾸는 울 엄마 손 가랑가랑 젖습니다.
― 「가랑비」 전문(『가랑비 가랑가랑 가랑파 가랑가랑』, 2007)
이 시에서도 어린이 화자가 위치한 곳은 “텃밭”을 가꾸는 “엄마”의 주변이다. 세 시집을 연속해서 함축적 어린이 화자가 등장하는 바, 이 어린이 화자의 곁에는 엄마의 가사 노동이 있고, 또 주변에 엄마의 목소리가 떠돈다. 엄마의 활동 영역 내에서 함께 성장해 가는 어린이 화자의 모습이다. 「가랑비」에서는 텃밭에 “가랑파”를 가꾸는 “울 엄마 손 가랑가랑 젖”는다고 한다. 또한, “내립니다”, “자랍니다”, “젖습니다”와 같이 ‘합니다’체를 사용하여 공적인 보고의 어투(친밀도가 낮은 격식체)를 취한다. 이는 비에 젖는 엄마의 모습을 관찰하면서도, 여기에 주관적인 가치를 내포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앞선 작품들과 다른 형태를 취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가랑비”에 젖어드는 엄마에 대한 애틋함은 외적인 관찰에 따른 음상징에 함축됨으로써, 시적 화자가 먼저 판단을 내리고 동의를 구했던 앞선 작품들과 차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린이 화자가 거쳐 왔을 성장의 일면을 암시받을 수 있다.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은 앞의 「가랑비」와 같이 대상의 이름에서 발생하는 음상징의 유희성을 살린 작품이다. 각주로 덧붙인 설명에서 보듯, 이따금씩 꽃잎 날리듯, “아이들 이가 빠지듯이” 내리는 눈이 “사비약눈”인데, 여기에 “다섯 살 우리 아기”를 불러들임으로써 어린 동생보다 나이가 많은 화자의 위치가 드러나게 된다. 이는 상황 연동소의 시간적 측면이다. “다섯 살 우리 아기”의 이 빠진 모습을 엄마와 함께 관찰할 정도의 나이가 되었다는 점, 또 자신은 이 빠진 상태가 아니므로 그 모습을 추억 속에나 그려볼 수 있다는 점, 엄마와 함께 아기의 모습을 귀엽게 바라볼 나이가 되었다는 점 등을 연동소로 삼아 시적화자의 성장의 정도를 추정해 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의 성숙한 어린이화자를 상정할 수 있다.
다섯 살 우리 아기 앞니 빠져 내리듯이
하늘에서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립니다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립니다.
* 사비약눈: 펑펑 내리는 함박눈이 아니라 아이들 이가 빠지듯이 한 잎 두 잎 내리는 첫눈.
―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전문(『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 2001)
이 시에서도 「가랑비」에서 보았던 바와 동일하게 ‘합니다’체를 활용하여, “사비약눈”이 내리는 순간을 묘사적으로 서술한다. 즉 극적인 순간의 보고적 전달이다. 이로써 주체의 정서는 장면 속에 함축된 채, “첫눈” 내리는 시간의 긴장감을 실어 청자에게 호출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인 순간은 “하얀 눈발이 쏙쏙 빠져 내”리는 시각적인 이미지에 “사비약 사비약 하며 사비약눈 내”리는 음성 상징이 덧붙여지면서, 이 양자 간의 대응을 통해 들떠 있는 마음의 긴장감이 증폭되는 것이다.
정완영 동시조집에서, 표제작 4편을 종적으로 연결하는 주체의 목소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엄마의 양육적 공간 내에서 활동하면서 정서적으로 통합된 어린이 화자의 모습(「꽃가지를 흔들듯이」,「엄마 목소리」)에서, ② 가족과 엄마를 관찰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화자(「가랑비」,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의 모습으로 성장 국면이 이동한다. 또한, 정완영 동시조 전반에 주요하게 나타나는 목소리는 성장기의 공간에서 자연과 가족을 중심으로 주체의 정서가 통합된 전일(全一)한 세계로 나타난다.
귀납적으로, ‘상황 연동소를 활용한 주체의 목소리 찾기’의 방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화자의 성장의 정도나 연령대는 가족관계나 활동 공간 범주를 통하여 유추할 수 있다.
둘째, 애착 대상이 되는 가족이나 자연물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셋째, 대상과의 거리감(밀접한가, 객관적 관찰 대상인가)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다.
넷째, 청자를 향하는 어법과 대화적 방식을 통하여 유추할 수 있다.
끝으로, 통합적인 면에서 초점화자의 시선을 통해 주체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동시/동시조에서는 어린이 화자를 동원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술상의 제한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어린이 화자가 보여주는 제한적 시점 내에서도 내포적 충족성이 확보되었을 때는 그 미학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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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곁에 의견이 분분한 성인들이 서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육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어린이 독자들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작품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교육뿐만 아니라 창작을 통해서도 확인되어야 할 부분이다. 어린이다운 목소리를 구별해내지도 못하는 곳에서는 창작도 비평도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화용적 관점에서 정완영 동시조의 발화체를 분석하면, 어린이들의 구어적 세계에 은밀하게 성인의 회고적 관점이 결합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린이 화자의 관점과 태도는 유아나 유년기 수준의 제한적인 초점 화자가 아니라, 만명(晩明) 시기의 이지[贄, 卓吾]가 동심설(童心說)에서 말한 “최초 일념의 본심(最初一念之本心)”으로서의 동심(童心)을 가진 전지적이며 신빙성 있는 초점 화자가 된다. 여기까지가 정완영의 동시조가 이룬 성과이자 업적이다. 후대의 작가나 논자들이 넘어야 할 산을 남겨둔 셈이다.
미래의 작가는, 성인작가가 회고하고 안내하는 어린이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 속의 어린이들이 안내하는 생활 세계, 상상 세계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진입해야 할 것으로 본다.
* ‘상황(context) 연동소(shifter. embrayeur)’란 작품 속에서 발화 주체의 위치를 감지하게 해 주는 요소로 발화 과정(맥락)을 부각시키는 문법적, 기능적 요소들이다. 야콥슨, 에밀 뱅브니스트 등에 의해 논의된 바, 발화체와 발화 행위의 구분을 통해 의미론적으로 한 차원 더 진전된 것으로,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분석적 관점을 제공해 준다.(장 루이 카바네스, 조광희 역, 『문학 비평과 인문 과학』, 이화여대출판부, 1995, 112~120쪽 참조.) 이와 관련된 다른 논의를 참조하려면 필자의 다음 글이 유용할 것으로 본다. 염창권, 「이안 동시 연구-맥락에 따른 표현 양상을 중심으로」, 『동화와 번역』 44집.; 염창권, 「정완영 동시조의 화용적 특성과 지도 방안」, 『시조학논총』 55집.

염창권 ㅣ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91년 《소년중앙》 문학상(동시),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등, 동시집 『망치를 이해하는 방식』, 평론집 『존재의 기척』 등, 학술서 『어린이문학과 교육』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노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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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호(VOL.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