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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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염창권 

 

 

 

 

 

어린이 곁에 서 있는 작가

ㅡ 정완영의 동시조 1

    

   

 

젤 작은,

    

어린이들은 작고 연약한 것들에 동정심을 느낀다. 아니면 연대감이라 해도 좋다.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시조 교재는 대다수가 옛시조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아니더라도 가락이 우선 옛 시조에 닮아 있는 회고조였다. 교과서 수록 작품 중에서 「분이네 살구나무」는 눈에 띄게 이미지가 선명했다. “동네서 / 젤 큰 나무” 밑에 “오막살이” 하나가 있다. 그것들은 동네에서도 제일 크거나 작은 축에 속한다. 말하자면 제일 작은 집이 분이네 집이다. “분이”가 어떤 애인지 알 수 없고 아이들의 놀이나 생활상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ㅡ「분이네 살구나무」 전문

 

이론가나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교사가 선호하는 작품이 다를 수 있다. 미학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교사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는 교과서 집필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교사는 우선적으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지 아니할지는 감으로 대충 알아차릴 수가 있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대궐보다 덩그렇”게 핀 살구나무에 대조된 작은 오막살이집을 머릿속에 그림 그리듯이 환기해야 한다. 그만큼 의미의 간격이 큰 시이다. 교사가 애써 강조할 부분은 “젤 작은 집”에서 “젤 큰 나무”를 거쳐, “대궐보다 덩그렇다.”에 이를 수 있도록 풍족한 상상의 길을 열어주는 일이다.

「분이네 살구나무」는 교과서를 통해 처음 만났다. 우선 삽화가 주는 느낌이 산뜻했고 짧은 시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가는 기분이 좋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습작기를 거치던 교사의 느낌이었고, 반 아이들은 이 짧은 시의 반복되는 구문을 다른 작품과 함께 읽고 암송하기에 바빴다. 아직 시조에 입문하기 전이었던 필자로서는 이게 시조인지 아니면 동시조인지 장르 개념이 없었으므로, 그냥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시이자 좋은 동시였다. 이러한 교사의 태도는 시조를 적극적으로 가르쳐야한다고 생각하는 시조 시인들과는 다른 현실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사실 현 교육 과정(2022)에서는 초등학교 시조 교육에 대한 어떠한 성취 기준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교재로 선정되는 ‘작품의 예’에서 다양성을 고려하여 시조 작품을 추가하고 있을 따름이다. 시조 교육의 내용은 국어 능력이나 문학 능력 개념 밖에 위치한 것으로, 문화적인 차원의 것이다. 즉 국어 문화를 국어 교과의 내용이나 성취 기준으로 주요하게 수용하는 교육 과정이 등장할 때라야, 문화적 이해와 표현 양식으로써 정당하게 시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분이네 살구나무」는 어떤 의미에서 좋은 동시이자 동시조인가? 창작 당시와는 달리, 농경 사회의 틀을 벗어난 지금(2025년)은 이 작품에서 약간은 설화적인 분위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것은 토속적인 시골이 배경이고, 옛이야기에서나 만날 수 있는 “대궐” 이미지 등이 야기하는 설화적 바탕에 의해서이다. 그런 점에서 내포 작가의 목소리, 즉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물론 대다수의 어린이 독자는 내포 작가를 의식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포 작가는 ‘젤 작은’ 어린이(분이)의 집을 동네에서 가장 크고 환한 집으로 확장시킨다. 즉 상상적 공간에서 “분이네 집”이 “동네서” 가장 환하고 큰 집으로 변모되면서 억압된 주체의 한계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초·중장의 대조적인 구문을 개념 없이 외워댔지만, ‘젤 크다(좋다)’와 같은 어린이적 판단의 기준에 합치되면서 시적 장면을 떠올리는 학습 활동에는 저항감 없이 다가왔다. 이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교실 풍경이다.

   

어린이 곁에,

    

몸이 큰 어른이 나란히 서 있다. 이들이 눈높이를 맞추려면 어른이 먼저 엉거주춤한 자세로 무릎을 구부려야 한다. 동시 창작에서, 내포 작가를 지울 수 있다면 어린이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현장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시조 문학에서 내포 작가의 목소리가 선명한 작품은 대개 교술적 태도에 빠져 있다. 이와 유사하게 교훈성이 두드러진 동시에서도 내포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린이 화자를 내세우더라도 그 곁에 어른이 서 있는데, 이 경우에는 그리 달갑지 않다. 즉물시 창작을 시도했던 어느 시인처럼, 내포 작가를 지운 동시 창작을 시도해 봄직하다고 본다.

젤 크고 좋고, 맛있고 선한 것은 우선 주체인 어린이 편이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우리 엄마’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젤 좋고 환하고 예쁘기만 하다. 꼭 그래야만 한다. 「꽃가지를 흔들 듯이」와 「엄마 목소리」에 “엄마”를 향한 환한 길이 열려 있다.

 

까치가

깍 깍 울어야

아침 햇살이 몰려들고

 

꽃가지를

흔들어야

하늘빛이 살아나듯이

 

엄마가

빨래를 헹궈야

개울물이 환히 열린다.

ㅡ「꽃가지를 흔들 듯이」 전문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이 더 환하냐

징검다리 건너오는 시냇물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목소리가 환하다.

 

혼자 핀 살구나무 꽃그늘이 더 환하냐

눈 감도고 찾아드는 골목길이 더 환하냐

아니다 엄마 목소리 그 목소리 더 환하다.

ㅡ「엄마 목소리」 전문

 

성장기의 어린이들은 수시로 경쟁관계에 처하게 된다. 누가 힘이 세며, 빠르며, 공부를 잘하는가는 성장기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어른들의 눈에서 비켜날 수 없다. 어른들이 견지하는 암묵적인 눈높이는 어린이 성장을 재단하는 평가 기준이 된다. 칭찬이 어린이에게 자립적 주체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주지만, 현실에서는 우월적 존재로 두드러져 칭찬을 받기는 쉽지 않다. 경쟁이 심할수록 칭찬에는 인색해진다. 평가기준이 높은 부모 밑에서 주눅이 든 자녀들이 생기는 까닭이다.

봄날, 까치가 울고 꽃가지가 흔들리면서 봄 하늘이 밝아오듯이, 엄마가 개울에서 빨래를 할 때라야 비로소 개울물이 풀리고 봄을 맞이하게 된다. 「꽃가지를 흔들 듯이」에서는 봄 아침에서 하늘로, 개울물로 공간 이동을 하면서 봄 느낌이 확산되는데, 엄마의 손으로 헹궈내는 빨래를 통해 봄 햇살이 넓고 고르게 펼쳐진다. 「엄마 목소리」는 어린이 생활 공간이자 놀이 공간인 보리밭, 징검다리, 꽃그늘에서 만나는 봄바람, 시냇물, 살구꽃이 있고 또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이 있다.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에서 듣는 “엄마 목소리”는 꽃 핀 봄날보다 더욱 환하기만 하다. 어린이 화자의 애착 정서는 “엄마”라는 의미역에 내포된 상태이다. 이 어린이도 성장기를 거치면서 관심을 점차 사회적으로 확장시켜 나가게 되는데, 풍족한 유년기는 긍정적인 자아 형성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분이네 살구나무」, 「꽃가지를 흔들 듯이」는 이미지를 은유나 상징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시대에 이들을 교과서에 수록하면, 교사는 옛이야기 들려주듯이 설화적인 세계로 안내해야 한다. 어린이 경험 세계에서 멀어졌다는 뜻이다. 반면에 「엄마 목소리」가 저학년 동시로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구문과 음보의 반복에 따른 점층적인 말놀이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하는,

 

어린이들은 주변의 사물들, 친구, 이웃, 하다못해 숙제까지도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다. 외적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유희 충동은 원초적인 성장의 동력이다. 말놀이 학습은 유아기에서 저학년기까지 주요한 교육 내용이 되는데, 이를 통해 언어와 문학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빚는 송편 우리 누나 눈썹 닮고

우리 누나 빚는 송편 우리 엄마 버선 닮고

젤 크고 잘생긴 송편은 우리 아빠 귀 닮았다.

ㅡ「송편 빚는 밤」 전문

 

「송편 빚는 밤」은 2학년 교과서(2009)에 수록되었다. 이 작품은 “인물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으며 학생의 “경험”에도 부합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동시조라는 갈래 개념에 따라 선정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빚는 송편의 모양은 “누나 눈썹”, “엄마 버선”, “아빠 귀”와 같이 다양한 연상 작용을 할 수 있기에 율격적 실현과 더불어 비유적 의미를 파생시킨다. 따라서 교재화하기에 무리가 없지만, 학생의 경험이 송편을 빚어본 적이 없이 어쩌다 한번 ‘사다준’ 것을 먹었다고 하면 교재로서의 효용도가 떨어진다. 이후에 개편된 교과서(2015)에는 수록되지 않았다.

필자가 동시조집 『사비약 사비약 사비약눈』에서 어렵사리 찾은 작품이 「공일」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는 분이 계실 것이다.

 

엄마는 돈 없다며

학원 가지 마라 하고,

 

아빠는 갈 곳 없다며

내 방 차지하고 눕고,

 

학교도 친구도 없는

일요일은 0일이네.

ㅡ「공일」 전문

 

이 작품의 핵심 의미는 종장의 “일요일은 0일이네.”에 있다. “학교도 친구도 없는” 일요일이다. 이때, 학원에 못가고 “내 방”에서도 밀려난 어린이의 상황은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는 노동자의 하소연과 닮아 있다. 돈 없는 가정에서 갈 곳 없어 “내 방”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아빠의 처지를 보면, 이 가족의 고단한 생활사를 쉽사리 추론할 수 있다.

「공일」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어린이의 푸념을 “0일”로 비유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포 작가의 흔적이 최소화 되어 있다. 담화(discourse)적 특성이나 기법을 문체상의 역할로 본다면, 내용(story) 자체에서 어린이의 경험이나 심정이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마리아 니콜라예바는 어린이 문학에서 이중 말하기를 지적한 바 있다. 즉 어린이 문학의 소통에서 작가는 성인 독자군과 어린이 독자군에게 이중으로 말을 건다는 것이다. 우리의 작가들은, ‘성인 독자군의 검열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적이지 않은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이상으로 정완영 동시조의 특징적인 면을 미학적 특성과 교육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의 작품은 「분이네 살구나무」(4차 교육 과정기)에서 「바다 앞에서」(5차), 「풀잎과 바람」(개정 2007), 「송편 빚는 밤」, 「봄 오는 소리」, 「풀잎과 바람」(개정 2009), 「풀잎과 바람」(개정 2015) 순으로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정완영은 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동시조 작가인데, 저학년의 말놀이와 고학년의 비유적 표현 면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동심의 바탕 위에서 정형의 틀을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의 동시조가 두드러지는 까닭이다.

 

 

 

 

 

 

 

 

 

 

 


 

 

염창권.jpg

염창권 ㅣ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91년 《소년중앙》 문학상(동시),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등, 동시집 『망치를 이해하는 방식』, 평론집 『존재의 기척』 등, 학술서 『어린이문학과 교육』 등이 있음. 〈중앙시조대상〉 〈노산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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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호(VOL.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