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연/시조의 향기
 
시조의 향기
Extra Form Output
저자 김일연 
완결여부 연재중 

   

 

   

 

  세상 빛에 눈이 멀어

                              지성찬

 

  세상 빛이 하도 밝으니

  하늘의 별 뵈지 않네

 

  어릴 적 잘도 뵈던

  하늘의 맑은 별들을

 

  까맣게

  잊고 살았네

  세상 빛에 눈이 멀어

 

   2024년 가을에 펴낸 시조집 『겨울 화석정에 올라』에 실려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1980년에 등단하여 7권의 시조집을 펴내고 지난 5월 타계했다. 민병도 시인은 그의 시조를 “정연하고, 정직하다. 담은 그릇이 정연하고 담긴 생각 또한 반듯하고 깊으며 가치 지향적이다. 그리고 편안하게 읽히고 형식 질서의 적극적인 믿음을 보인다.”고 하였다.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 정진규(1939-2017), 「별」

 

  밤하늘이 깜깜할수록 별들이 더 잘 보인다. 도시의 불빛으로 별이 잘 안 보이는 요즘 잃어버린 무엇을 찾아가듯이 별 보러 사막에 가기도 하고 섬에 가기도 한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밤도 대낮처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어두운 것이다. 어릴 적에는 잘도 뵈던 하늘의 맑은 별들이었다. “별 하나 나 하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며 헤아려보기도 한 그때 나의 별은 하나였다. 나만의 별이 있었다. 지금 우리는 어둠도 대낮처럼 비추는 세상 빛을 그때의 별빛으로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행 따라 연봉 따라 내 별이 아닌 다른 것을 허황되게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밀물이 오면 밀려오고 썰물이 가면 밀려가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흔들리는 속에서 나만의 별은 사라지고 눈을 멀게 하는 자본주의 세상의 빛들만 별인 양 반짝인다.

  19세기 말 월스트리트의 필경사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며 비인간적인 환경, 자본주의 사회의 통념과 충돌했다. 그는 폐허가 된 ‘페트라’에 남은 ‘마지막 기둥’처럼 자본주의의 상징인 월스트리트의 벽을 겨누며 서 있던 인물이었다. 허먼 멜빌(1819-1891)이 『필경사 바틀비』를 발표한 것은 1853년이다. 세기를 뛰어넘은 그의 통찰력이 놀랍기만 하다.

  지성찬 시인의 시조는 무척 쉬우나 품고 있는 뜻은 결코 가볍지 않다. 현대사회를 향한 묵직한 사유가 시인의 염력에 힘입어 솔기가 없는 옷을 입은 것처럼 시조라는 옷을 입고 있다. 의미와 운율 모두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있어 편안하다. 시인은 가셨어도 시인의 시조는 또 하나의 맑은 별이 되어 시조의 앞길을 인도해 주리라 믿는다.

   

  새벽 인력시장

                            정지윤

 

  바위를 만나면 바위에 살아가고

  파도를 만나면 파도에 살아가는

 

  갈라진 문명 같은 섬

  출렁이는

  갈라파고스

 

   새벽 인력시장에서 “갈라진 문명 같은 섬” “갈라파고스”를 본다. 새벽 인력시장을 갈라파고스로 표현한 것, 그리고 이토록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이 시조의 내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단순함이 가진 매력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인력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바위를 만나면 바위에 살아가고” 파도 따라 일렁이는 모자반처럼 “파도를 만나면 파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정작 갈라파고스에는 인간이 없다. “바위를 만나면 바위에 살아가”는 진기한 해양 생물뿐. 땅거북, 가마우지, 붉은 게, 갖은 열대어들……. “파도를 만나면 파도에 살아가는” 기이한 동식물뿐. 바다 이구아나, 펭귄, 알바트로스, 군함조…….

  찰스 다윈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갈라파고스. 온갖 문명의 한가운데 있지만 문명에서 멀리 ‘갈라진’ 여기의 갈라파고스에서 나는 누구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일까. 나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 것일까. 누가 나를 인간으로 설계했을까. 누가 나를 인간으로 설계했지만 존엄성을 주는 것을 잊었단 말인가. 비단 새벽 인력시장이 아니라도 나는 하루하루 삶이라는 인력시장에서 살아간다. 이 기이한 동물들만이 살아가는 갈라파고스에서 나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욕망이 욕망을 불러 내 것 아닌 것을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이루지 못한 것을 괴로워하고 불행에 좌절하면서, 갈망이며 욕망이며 절망이란 그 온갖 짐승들과, 그리움이며 슬픔이며 사랑인 기이한 동식물들과 함께 가장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갈라파고스는 어디쯤이었을까.

     

  늙은 호박

                                 김효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게 묻지 말라

 

  차가운 세상과 부딪치며 얻은 지혜란

 

  안으로 나를 보듬어

 

  익어가는 것일 뿐

 

   ‘호박’ 하면 일본의 유명 설치 미술가 쿠사마 야요이(1929~ )의 조각 〈호박〉이 먼저 떠오른다. 빨간 호박도 있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잘 익은 노란 호박이다. 제주 서귀포의 본태박물관에서 그녀의 호박 작품들을 본 적이 있다. 그녀에게 호박은 어떤 의미이길래 뮤즈로 사랑했으며, 이토록 모든 역량을 그것에 집중한 것일까.

  그녀에 대해서는, “일본 나가노현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자란 쿠사마는 어렸을 때부터 군수 공장에서 낙하산 재봉 일을 하는 등 늘 전쟁 속에서 보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그것을 질병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매질을 했고 쿠사마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거기에 더해 아버지마저 집을 나가면서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그 때문에 그이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10세부터 환각 증세를 겪기 시작한 쿠사마 야요이가 단돈 몇백 달러를 들고 뉴욕으로 건너가 세계적 명성을 얻은 설치 미술가로 자리 잡기까지 그이의 세상살이에는 어떤 용기와 노력이 있었을까. ‘차가운 세상과 부딪치며 얻은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에게 타국의 고통스럽고 외로운 삶을 위로하고 힘을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호박은 평생 그녀를 괴롭혀온 고통에 대한 치유의 에너지였다. 그녀가 호박에 대해 쓴 글에 보면 그녀의 호박 사랑을 알 수 있다.

 

    호박은 애교가 있고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끝없이 사로잡는다.

    ……

    호박은 나에게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준다.

    ……

    호박 때문에 나는 살아내는 것이다.

— 쿠사마 야요이

   

   서양의 할로윈 축제에서 마녀의 호박 가면을 만들고 호박의 속을 파서 등을 만들고 코스튬도 만드는 것을 보면 늙은 호박에는 굉장히 야성적이며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의 호박 역시 잘 읽은 늙은 호박의 모양을 하고 있다. 형태도 무척 안정적이다. 호박은 다른 채소와 달리 바람과 태양에 부대끼면서 익어갈수록 단단해지고 커지며 단맛도 강해지고 영양소도 많아진다. 그녀를 살아내게 하고 마음속의 시적인 평화를 가져다주는 힘은 호박의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안으로 나를 보듬어 익어가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 단단함에서 오는 것 아닐까 싶다. 그녀를 채소로 표현한다면 호박이 마땅하지 않은가.

  

  노을 이미지

                               김진길

 

  다초점 안경 너머 흐릿한 둑방 길로

 

  점자책을 읽듯 가는

  더듬더듬 민달팽이

 

  그 행간 지그재그로

  밑줄 휘익! 아슬하다.

 

  자전거 바큇살에

  매어달린 만추의 場,

 

  온산에 타던 불이 천장으로 번질 즈음

 

  커튼콜 채비하시나,

  아버지의 실루엣.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다초점 안경 너머 흐릿하게 보이는 길이지만 민달팽이 한 마리를 문득 발견한다. 조그만 민달팽이 한 마리를 발견하는 눈은 흐릿한 몸의 눈이 아닌 ‘시인’이 가진 마음의 눈일 것이다. 민달팽이가 다칠까 봐 그 순간 갑자기 지그재그로 아슬하게 핸들을 꺾는다. 때는 노을이 지는 만추. 온산에 타던 단풍의 불이 하늘 천장으로 옮겨붙는 저녁이다.

  첫 수의 민달팽이와 둘째 수의 아버지의 실루엣이 겹친다. 아버지는 필경 민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그 어떤 책임감과 사명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었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가신 아버지는 필경 불타는 노을 같은 열정을 그 마음 깊이 가진 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삶에 한 번 더 커튼콜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이 시조를 든든히 받치고 있는 지주가 되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달팽이의 느림과 약함에서 시작하여 온 산에 불이 타는 폭발적인 노을, 그 클라이맥스 속에 보이는 아버지의 실루엣으로 이어진 이 두 수의 연시조는 그 흐름의 진폭이 크다.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나라도 다시 무대로 나서야 할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둑방 길에 더듬더듬 가는 민달팽이가 있고 그 앞에 멈춰선 내가 있는 만추의 길에 서자. 강물을 따라가는 둑방 길에는 가로수가 붉게 물들어가고 멀리 보이는 산에는 온통 단풍이 타고 하늘에는 노을이 번지고 있다. 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 내가 살아있다. 꺼내서 추억할 아버지의 기억이 살아있는 한 아버지도 내 안에 살아계신다. 인류와 유구한 역사를 함께 살아온 달팽이도 살아있다. 달팽이의 우주와 나의 우주 그리고 아버지의 우주 안에서 함께 하는 이 심미적 경험이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 나를 살게 해 주신, 근원이며 뿌리인 나의 아버지에게 영감을 받자. 거칠고도 섬세한 언어 운용이 시의 맛을 더하는 시조를 읽으며 거친 나의 일상에 풍요로움을 더하도록 하자.

 

  소개한 네 수의 시조는 모두 3행 표기에 변화를 주었다. 행갈이를 하지 않은 곳은 자연스러운 운율에 맞춰, 혹은 고조되는 감정을 끊김이 없이 맞춰 읽고 행갈이를 한 곳에서는 휴지를 두고 읽으면 그 맛이 더욱 살아날 것이며 정성스러운 읽기가 될 것이다.

 

 

 

 

 

 

 

 

 

 

 


 

김일연_포스팅용.png

김일연 ​ l

1980년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빈 들의 집』 『서역 가는 길』 『저 혼자 꽃 필 때에』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꽃벼랑』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 『향긋한』, 시조선집 『먼 사랑』 등, 일역 시조집 『花の崖(꽃벼랑)』, 영역 시조집 『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세상의 모든 딸들)』, 동화집 『하늘 발자국』, 시평집 『시조의 향연』이 있음. 〈한국시조작품상〉 〈고산문학대상〉 〈한국단시조작품상〉 등 수상.

 

 

 

—

2026년 6월호(vol.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