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일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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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결여부 | 연재중 | ||
산그늘 인화
서벌
적막 엉금엉금 등성이 타고 내려
외딴집 뒷방 들창 간신히 두드린다.
여보게 허무 있는가
이러면서
두드린다.
아무런 기척 없어 머뭇머뭇하는 적막
허허 자네까지 뜨고 없기인가
이러며
징검다리께로 가는
허리 구부정한 적막.
산그늘 외딴집에 적막이 내려왔다. 엉금엉금 그늘진 등성이 타고 내린 적막이 산그늘 외딴집 뒷방 들창을 두드리며 허무를 찾는다. “… 여보게 허무 있는가.”
아무런 기척 없어 머뭇머뭇하는 적막
허허 자네까지 뜨고 없기인가
운율을 영접하자. 우주는 물질과 운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용과 반작용이 끌어당기고 밀며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리듬은 우주의 화음이고 생명인 것. 생명이 있는 곳에는 리듬이 있고 리듬이 없으면 생명이 끊긴 것이다. 시에서 물질은 언어. 언어와 언어가 서로 밀고 당기고 스며들며 운동인 리듬을 만든다. 그러나 이 시조에서 보는 운율은 3 4 3 4…의 짜맞춘 율이 아닌 너무 자연스러워서 어눌한 느낌도 드는, ‘적막’이란 말과 ‘허무’란 말에 딱 맞는, 머뭇거리는 듯한 묘한 맛을 주는 운율이다. 허리 구부정한 적막처럼 운율도 허리가 꽤나 구부정하여 이 시를 읽는 맛을 배가한다. 내용과 운율이 짝한 듯 마침맞다. 첫수 종장의 “이러면서”와 둘째 수 종장의 “이러며”가 운율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기나긴 시간의 고통을
잡다한 욕망이 낳은 괴로움들을
완화하는 건 어떤 순간인데
그 순간 속에는 요컨대 시간이 없다
— 정현종, 「행복」 부분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시인의 언표가 있다. 절망이 없이는 희망도 없고 고통 없이는 사랑도 없다. 아니, 절망은 다시 희망이 되고 고통은 다시 사랑이 된다고 쓰는 편이 낫겠다. 허무가 가고 난 다음에 적막이 왔고 마침내 적막도 잊어버리는 무아의 시간, 시간이 없는 그 시간 속에서 시인은 캄캄한 어둠 속에 등불을 밝히고 시의 첫 줄을 쓰리.
젊어 한때 허무에 "헤게모니"(정현종, 「헤게모니」)를 잡혀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어린 마음속에서 적막과 허무는 짝하기 쉽다. 그러나 새벽은 밤의 어둠을 깎고 다듬어 노래로 온다. ‘무엇을 하지 않는’ 허무가 아닌, 니체식으로 말하면 ‘무엇을 하는 허무 — 적막’ 속에서야 한 줄의 시가 시작된다. 나의 삶을 내가 창조하는 힘을 얻는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노년의 외로움이 물씬 묻어나는 시를 쓰면서도 시인은 시간이 사라진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인은 고립될까 소외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막을 사랑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신을 고립이나 소외 속에 가두게 될 것이다.
고요
김현우
새벽길 싸락눈이 내리다 말다 한 날
온종일 방 안 한가득 내리다 말다 하는
고요도 이리 시끄럽게 내리는 걸 알았네
적막과 허무가 어스름 산그늘의 어둠 쪽에 있다면 고요는 새벽의 밝음 쪽에 있다. 고요와 적막은 비슷한 느낌이지만 적막은 고요에 쓸쓸함과 외로움을 더한 느낌을 준다. 고요가 무욕의 잠잠함이라면 허무는 욕망의 느낌을 준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텅 빈 느낌인 것이다. 새벽부터 싸락눈이 내리다 말다 온종일 방안 가득 내리다 말다, 하루가 고요로 채워진다. 너무 고요해 내리는 고요마저도 시끄럽다.
가을이 가면 눈을 기다립니다
침묵이 잉태하다가 내려오는
눈은 신성한 말들을 거느리고 옵니다
— 이태수, 「첫눈을 기다리며」 부분
이태수 시인은 이 시에서 “침묵이 잉태하다가 내려오는 / 눈은 신성한 말들을 거느리고 온”다고 했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때로 오늘날의 모든 소음은 다만 그 태고의 짐승, 즉 침묵의 드넓은 등에 붙은 벌레들의 울음소리에 불과한 것 같다.”
이는 Maria Culm 사원 제단에 새겨진 글 “언어는 성스러운 침묵에 기초한다”로 첫 페이지를 시작하는 막스 피카르트의 책 『침묵의 세계』(최승자 옮김, 까치)에 있는 말들이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시에 고요라는 배경이 없다면 또한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특히 압축과 여백을 생명으로 여기는 시조에서는 고요야말로 시조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어야 하는 ‘거대한 태고의 짐승’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어떤 시조는 여백을 만들기 위하여 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압축과 여백이 시조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시조가 여백을 위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마치 이우환의 그림처럼.
종일 혼자 몰두하고 있는 시인의 귓가에 싸락눈이 내려 쌓이고 고요가 와글거린다. 싸락눈은 와글거리며 내려오는 눈이다. 가득 찬 고요가 와글거릴 때에야 신성한 말이 태어난다. 말이 가진 영혼이 드러난다. 침묵을 갖지 않는 말은 시의 언어가 아니며 고요를 갖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 고요는 생명력의 원천이며 창조의 원천이다.
“시인은 고요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녹원 이상범 시인은 말한다. 고요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이라도 노래할 수 있다고. 고요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그 고요 안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들리는, 무엇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시인은 시끄러운 고요 속에 있다. 고요마저도 시끄러우니 더 이상의 고요가 있겠는가. 싸락눈이 내리며 한껏 이룬 고요와 시인의 감응이 팽팽하다.
싸락눈과 함께 내리는 고요가 이리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 큰 고요의 깊이 안에서 세상의 본모습이 너무 잘 보이고 꺼풀을 벗어버린 내가 너무 잘 보여서인 것일까. 그러나 그 의미 같은 것들을 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시가 있다. 의미는 사회학이나 심리학, 정치학에 주어버리고 고요의 한가운데 행복한 한순간을, 시간이 없는 그 순간, 고요가 주는 절정의 행복을 즐기면 되리라. 그것이 예술이리라. 아아 여기서 참으로 시끄러운 고요를 보겄네.
소나무 첼로
김동관
허리 휘는 소리가 저음으로 들려오는
마당 넓은 정원에 솔잎이 지고 있다
보굿이 툭, 툭 터지는 여운만을 남긴 채
고요한 날에 소나무의 허리 휘는 소리를 들어보셨는가. 솔잎이 지는 소리를 들어보셨는가. 어떻게 하면 거기서 첼로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자연은 음악. 반복되는 자연의 소리는 리듬을 만들고 음악이 된다. 김현우 시인은 싸락눈에서 시끄러운 고요의 소리를 듣고 김동관 시인은 소나무에서 첼로 소리를 듣는다.
소나무는 첼로가 어울린다. 악기에서 여운이 많이 남는 것 중에 깊은 저음의 첼로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의 허리를 휘게 하고 솔잎이 지게 하는 것은 바람일 것이다. 말하자면 바람이 소나무를 첼로 삼아 안고 켜고 있는 것 아닌가. 연주자가 팔과 다리를 벌려 품에 가장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쓸어안고 연주하는 악기가 첼로다. 첼로의 연주가 끝난 뒤의 여운은 소나무의 비늘 같은 거친 껍질 ‘보굿’이 툭, 툭 터지는 소리로 드러내었다. 정말 마음의 귀 기울여 팽창하는 나무줄기의 거친 껍질이 툭, 툭 터지는 소리를 들어보라. 그 소리는 나무의 내면이 열리는 소리이다. 소나무 첼로의 여운으로 적절한 이 여운은 바로 이 시조가 가지고 있는 여운이다. 야단스럽지 않은, 소박하고 평범한, 그저 조용한 몇 마디 안에 이런 여운을 넣었다. 시조의 절제는 이런 것이다. 기품이 있다. 정말 소나무는 완벽한 첼로가 되었다.
장자께서 남곽에 사는 자기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대지가 숨을 내쉬면 그것을 일러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은 일어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단 일어나면 온갖 구멍이 소리를 낸다. 너만 유독 ‘윙윙’ 울리는 바람 소리를 듣지 못했는가. 험하고 높은 산림 속에서 둘레가 아름이 넘는 큰 나무의 구멍은 어떤 것은 톳구멍 같고, 입 같고, 귀 같고, 기둥 받치는 가로지른 나무 같고, 나무 그릇 같고, 절구통 같고, 깊은 웅덩이 같은 것, 얕은 웅덩이 같은 것이 있는데, 거기서 나는 바람 소리는 물 부딪치는 듯한 급격한 소리, 씽씽거리며 화살 나는 것처럼 높은 소리, 꾸짖는 듯 질타하는 소리, ‘헉헉’ 들이마시는 것 같은 소리, 외치는 소리, 볼멘 듯한 소리, 웃는 듯한 소리, 귀여운 소리이다. 그런데 앞의 바람이 웅웅 불어대면 뒤의 바람이 따라서 윙윙 소리를 낸다. 산들바람이 불면 가볍게 화답하고,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면 크게 화답을 하는데 만일 크고 매운 바람이 그치면 곧 모든 구멍들이 텅 비어서 고요해진다. 너만 유독 바람이 지나간 뒤의 나뭇가지들이 흔들흔들거리고 살랑살랑거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가.
하셨으니, 적막을 사랑하는 시인이라면 잡다한 것으로 나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시끄러운 인간의 소리를 피해 어찌 땅의 소리와 하늘의 소리 — 바람이 연주하는 소나무 첼로 소리를 듣지 못하며 싸락눈이 만드는 고요의 소리를 듣지 못하겠는가.

김일연 l
1980년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빈 들의 집』 『서역 가는 길』 『저 혼자 꽃 필 때에』 『달집태우기』 『명창』 『엎드려 별을 보다』 『꽃벼랑』 『아프지 않다 외롭지 않다』 『너와 보낸 봄날』 『깨끗한 절정』 『향긋한』, 시조선집 『먼 사랑』 등, 일역 시조집 『花の崖(꽃벼랑)』, 영역 시조집 『All The Daughters of The Earth(세상의 모든 딸들)』, 동화집 『하늘 발자국』, 시평집 『시조의 향연』이 있음. 〈한국시조작품상〉 〈고산문학대상〉 〈한국단시조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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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호(vol.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