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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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재창 

 

 

 

 

시는 어떻게 노래가 되는가 (2)

 

 

 

 

 

    지난달 나태주 시인과 함께 문학 행사를 하고 올라오는 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노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옛날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오기택의 ‘고향 무정’이 생각나서 흥얼거리자 선생님도 나지막히 따라하시는데 구수하니 참 듣기 좋았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이 노래가 5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를 생각했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새들도 집을 찾는 집을 찾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바다에는 배만 떠 있고 어부들 노랫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쉬우면서도 간결한 가사로 피폐해져가는 우리 고향의 풍경과 그로 인한 서운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통 글이든 가사든 잘 쓰려고 고심하다보면 설명이 많아지고 구체적인 사례까지 생각나면서 길어지게 마련인데, 압축해서 응집된 언어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앞서 얘기한 기준으로 노래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도입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 전개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 절정 및 결말

 

     

   한눈에도 알 수 있는 익히 아는 노래지만, 그래도 눈으로 보면 확연하므로 내용을 나누어본다. 가사를 먼저 쓰고 멜로디를 입혔는지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면서 다듬었는지 선후 과정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멜로디와 가사가 참 잘 맞다는 것이다. 입에 걸리는 말이 없는 쉬운 언어로 노래했다는 것과 절정을 향한 멜로디와 가사의 흐름이 억지스럽지 않아 듣기에 편안한 점이 자연스러운 감동을 준다. 슴슴한 듯 평이한 이 노래가 왜 이토록 오래 사랑받는 것일까. 가사도 쉽고 작곡상으로도 특별한 기교나 고난이도 기술이 쓰인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한 달여 동안 그 생각을 한 것 같다.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작곡을 시작한 이래로 내내 화두지만, 지난달 이후 줄곧 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쉽고 평범해서 흔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인데 왜 그럴까. 그러다가 ‘흔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지점에서 멈췄다. 백과사전에 등재된 시의 정의가 “생각이나 사상, 감정 따위를 운율이 있는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는 형태”인데, 그렇다면 저 노래의 가사야말로 이에 부합하는 것이다. 고향 잃은 감정을 저보다 어떻게 더 깊고 간결하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작곡해야 감동을 주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지 누가 묻는다면 글쎄, 쉽게 답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떻게 시를 써야 좋은 시가 되느가 하는 물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글의 형식이나 접근 방법은 안내할 수 있겠지만 그 '내용'의 정답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논시」에서 말하는 ‘뜻’이 그에 해당할 텐데, 그것은 통찰을 통한 깨달음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격렬하면 격렬한 멜로디가, 슬프면 슬픈 멜로디가, 기쁘면 기쁜 멜로디가 떠오를 테니 자기만 아는 순간의 감정을 붙드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몫이다.

  어쨌거나 하루에도 여러 가지 감정들이 지나가고 그 순간을 포착해서 멜로디로 구체화하는 작업은 참 기이하고 신비한 일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작곡은 공중에 가득 차 떠다니는 멜로디를 잠시 빌려오는 것”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우주만물 속에는 이미 음악이 깃들어 있다. 우주와 대자연의 순환 속에, 사계절의 변화 속에, 이 가을의 공기 속에, 오늘 하루의 일과 속에서. 대자연의 순환을 비발디의 사계가 잘 표현했다면 시대와 환경과 사람이 다른 오늘날의 사계는 또 다를 것이다. 십 년 전 유행했던 사랑 노래와 오늘의 사랑 노래는 또 다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새로운 삶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들을 둘러싼 스토리는 늘 새롭게 생산될 것이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십 년 전 노래가 지금도 불린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삶과 밀착된 노래라는 것인데 사실 작곡가들은 이것을 동경한다. 흔하게 , 언제나 불리는 그 노래 말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흔한 것들이다. 공기, 물, 땅, 낮, 밤, 햇빛, 바람, 비, 호흡…… 등 널리고 널려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다. 저 중에 하나라도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나 흔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것이 창조의 원리다. 흔해서 나쁜 것이 아니라 그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쉽게 생각하니 귀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될 뿐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널리 퍼져 있다는 의미이고 숨을 쉬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무언가라는 얘기다. 만약 어떤 노래가 그렇다면 '히트곡 중의 히트곡'이라는 숨은 의미가 있다. 누구나 알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명곡이기 때문에 흔하게 불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또 계속 세대를 이어가며 구전되는 것이다. 외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잊지 않으려 끊임없이 반복하고 학습해야 하는 노래가 흔해질 수 있을까.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 일 때

   당신은 철삿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을 하오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50년 대 전후 전쟁의 아픔과 슬픔을 가장 잘 표현한 노래로 꼽히는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다. 가사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내용이 가슴에 확 와 닿는다. 나는 이 세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울컥 감정이 북받친다. 몇 번 들으니 가사가 다 외워져서 종종 부르는 노래다. 조금 더 거슬러 그 십년 전쯤으로 가면 48년에 발표된 박재홍의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다. 2005년에 KBS《가요무대》방송 20돌을 맞아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를 조사해 발표했을 때, 방송 횟수 전체 1위를 차지했던 노래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 마다 구비 마다

   울었소 소리첬소 이 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가신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에 금봉이야

  

 

  어른들이 즐겨 보던 프로그램이니 그럴 수 있겠다. 그러나 행여 그들은 누군가와 헤어지는 중이었거나 혹은 박달을 기다리는 금봉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왜 아무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가 그토록 사랑을 받았을까. 이 노래는 반야월 작사가가 악극단 지방 순회공연 중 충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길에 농부 내외인 듯한 남녀의 이별 장면을 목격하고 작사했다는 일화가 있고, 거기에 2절은 박달재에 전해오는 박달 선비와 금봉이의 구전 설화를 덧붙인 것이라 한다. 이 노래나 ‘단장의 미아리 고개’, ‘고향 무정’은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의 어른들이 겪었던 시대의 이야기니 지금의 나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나도 이 노래들을 좋아한다. 설사 내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이미 수십 년 동안 불리고 있고 현재도 꾸준히 리메이크 되는 노래들이니 내 기호와 상관없이 명곡이다. 간혹 내가 명곡의 요건 중 가사를 더 중요하게 본다는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가사보다 작곡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발끈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좋은 가사만 있거나 혹은 좋은 멜로디만 있는 곡들을 명곡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반드시 둘 다 좋아야 명곡이라고 일컫는다. 그런 면에서 멜로디가 좋아야 함은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 하는 것이니 성낼 필요가 없다. 누군가 노래를 연애에 비교해서 멜로디는 얼굴과 같아서 첫눈에 반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면 가사는 그 사랑을 지속하게 하는 성격과 같다고 쓴 글을 보면서 공감한 적이 있다. 아무리 첫눈에 반해도 성격이 나쁘거나 안 맞으면 오래 못가는 것처럼 그 둘 다 좋아야 한다. 여하간, 저 세 곡의 멜로디가 좋은 것은 말할 것 없으니 차치하고, 가사를 들여다보면 모두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언어로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로 인해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도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사실 가사가 쉽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저렇게 다듬어진 가사가 나오기까지 작사가는 상당히 고심했을 터이다. 가사든 시든 소설이든 무언가를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 본 사람들은 안다. 마음과 생각이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노심초사해야 하는지를.

 

  전편에서 어떤 시가 노래가 되기 좋은지에 대한 답으로 내용면에서는 노래할 가치가 있는 삶의 면면을 보여주는 시 그리고 구체적이고 간결한 언어로 공감이 되는 내용이 있는 시를 언급했다. 노래의 특징이 시보다 가사의 전개가 훨씬 빠르고 압축적이라는 점도 아울러서 말이다. 이렇게 짚기는 쉬워도 한편으로는 괜히 미안하다. 그런 문장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평생을 시만 써온 시인들도 그런 절창 몇 편 갖기가 쉽지 않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평생 작곡만 한 작곡가들도 명곡 몇 편 남기는 것을 필생의 숙원으로 삼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위스의 문학가이자 철학자인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예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예술이란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드러나고, 어렴풋했던 것이 선명해지며, 복잡했던 것이 단순해지고, 우연이었던 것이 필연이 되는 것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 대한 작용을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단순화한다.”

 

  예술은 보이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인데 거기에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진정한 예술가”라는 단어를 넣음으로써 “아무나”가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하는’이라는 보이지 않는 설정을 넣는 것으로 말이다. 참 어려운 얘기다. 예술이라는 것이 알 것 같다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인 것 같다. 꾸준히 걷는 것 외엔 왕도가 없어 보인다.

  저녁 바람이 제법 쌀쌀하다. 똑같은 가을이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똑같은 노래를 되풀이하는 가수는 되지 않아야겠다 생각해보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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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창  l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모래내 종점〉,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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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