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tra Form Output
저자 신수진 

 2022년 8월 공시사 월평 


  

  

 

 

 

“너를 부지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일”1)이라는 시의 전언에 부쳐

  

● 신수진

 

 

 

 

 

   

 인간은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존재이므로 상호 인정 관계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고 했던 악셀 호네트(1949~)는 푸코의 ‘투쟁’ 이론을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 속에 통합시키는 개념 장치로서 ‘인정투쟁’을 창안한 3세대 프랑크푸르트 학파 철학자다. 어원적으로 인정의 정의를 살펴보자면, 영어로 ‘recognition’은 재인식을 의미하고 독일어로 ‘Anerkennung’은 타자의 자질이나 능력을 긍정적으로 확인하고 승인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필사적으로 구하는 이유에 대해서 호네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은 타인의 인식과 판단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로서 소속과 애정의 욕구가 있다. 그런데 이 공동체로부터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 수치심과 갈등이 유발되고 이는 집단적 저항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존재 정립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확인을 받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정이란 인간에게 있어 근본적인 존재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정을 해석할 때 중요한 세 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인정을 해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인정은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인정이 유효하려면 인정을 해주는 타인이 나를 평가할 만한 자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인정이 필요하지 않거나 인정받기 어려운 일조차 인정받길 바란다는 것이다. 한편 다른 누군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인정을 구하는 쪽보다 인정을 하는 쪽에서 자제심을 발휘해야 한다. 반대로 인정을 받는 사람도 인정하는 사람이 자신의 가치를 판단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야만 인정은 성립한다. 이것이 ‘인정의 상호성’이다.

 상호 인정 관계에 따른 긍정적인 자기 의식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 법, 가치부여이다. 첫째, 타인으로부터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정서적 욕구를 충족받으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자아상인 자신감이 생성된다. 둘째, 옳고 그름의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이성적인 인격체로 법적 권리를 부여받으면서 개인이 사회로부터 타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 주체로 존중받고 있다는 자기 존중감을 얻는다. 셋째, 어떤 가치나 목적을 공유한 사회로부터 자신의 가치나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연대를 경험하며 자신 역시 공동체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지인 자부심을 갖게 된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오랫동안 객관적 현실과 사회적 실천을 매개하는 것을 전제로 정치경제학뿐 아니라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문화비평 등 왜곡되고 은폐된 이데올로기를 극복하는 전방위의 비판 운동을 통해 인간

해방을 위한 철학 담론을 제기해온 바 있다. 각 주체는 상대 또한 타자 속에서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을 경험한다고 한 헤겔, 사회를 끊임없는 투쟁 상태로 정의한 푸코, 인간에게는 상대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수적이라고 본 하버마스처럼 호네트는 이 불일치와 소요 사태 앞에서 나를 정당하게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서는 너의 인정에 의존하고 너의 인정부터 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자신과 타자는 영원히 같을 수 없고 그렇기에 절대로 하나일 수 없는 불가능성 앞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를 부지하는 것만이 자신을 존재케 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는 시가 여기에 있다.

 

    

살구 한 접시 받고서 손이 가기도 전에

외로움이 먼저 목구멍을 타고 넘네

 

얼마만인가 까마득 잊었던 그 빛깔

화들짝 나를 깨우는 그 향기 기억을 현상하는 그 맛

옛 맛 그대로 와서 내게 매달리고 혀를 핥네

나는 왜 살구를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까

 

어릴 적 키우던 강아지

옆집 가마솥에서 끓고 있을 때

온몸에 열꽃이 피고 눈이 까뒤집혀 나는

누군가의 등에 업혀 보건소로 달려갈 때

흐릿한 의식으로 몇 번인가 뒤돌아봤지 나를 따라올지도 몰라

나는 왜 살구를 그 강아지라고 생각했을까

 

나만 보면 맛있게 먹던 밥도 팽개치고

야단을 맞고도 금방 와서 안기고

얼굴을 핥고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지던 살굿빛

강아지, 옛 맛이란 얼마나 외로움의 감정인가

 

그들은 필시 무언가를 좇아 나섰다가

돌아갈 길 잃어 떠돌이가 되었거나

어느 날 길은 지워지고 깊은 강이 가로놓였거나

살던 곳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거나

낯선 것에 둘러싸여 누군가에게 어떤 누군가가 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말해 달라고 내 이름을 말해 달라고

매달리고 파고들다가 그만 자신이 아니라

너를 내가 부지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살구가 내게 파고들고 핥고 매달리네

나를 부지할 듯이

 

모든 것 흘러가 버리고 멈추어 선 나도 같은 족속

한 번도 내것이었던 적이 없었던 시대가 버리고 간 난민

한 번도 나였던 적이 없던 나를 떠나버린 보트피플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네가 되겠다는 그 결의의 시간도 가고

가슴 저리던 그 많은 그리움들은 나를

부지하려고 매달려온 한낮 지푸라기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될 수 없다는 것

나는 네가 될 수도 무엇인가가 될 수도 없다는 것

향기와 빛깔은 분리의 상처에만 스며드는 핏물 같은 것

 

내가 아닌 너를 부지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일

분리의 상처에 핀 빛깔과 향기에 너를 부지하는 일

― 백무산, 「너를 부지하려고」 전문(《현대시》, 2022년 8월호)

     

  

 ‘나’는 이웃이 준 살구 한 접시를 받고 그 “빛깔”과 “향기”와 “맛”에 잊고 있었던 오래전의 기억을 불현듯 현상하게 된다. 어릴 적 키우던 살굿빛 강아지는 밥을 먹다가도, 야단을 맞고도, ‘나’에게 와서 매달리고 늘어지곤 했다. 그러나 소년이 열병을 앓아 보건소에 간 사이 강아지는 옆집 가마솥으로 가고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맞게 된다. 누군가의 등에 업혀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조차 소년은 강아지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은 생각에 자꾸만 뒤를 돌아본다. 이 강아지에 대한 소년의 기억과 감각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화들짝 나를 깨우는” 것으로서 소스라칠만큼 현시적이고 구체적이다.

 살구의 연한 색감과, 보드라운 살결과, 따뜻한 숨소리와, 순한 냄새와, 물기 어린 혀의 감촉 같은 육체성은 손에 잡힐 듯 생생해서 일련의 실제적인 사건들을 순간적으로 소거시켜버리고 마치 지금 여기의 존재로 현현한 것처럼 의식과 감정을 압도한다. 이는 어린 날의 기억 한 가운데에서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채 살아 숨 쉬는 현존이며 숫제 어린 날의 기억 그 자체로 환원되고 마는 감각적 재생이다. 이 충만한 감각은 정서와 하나가 되어 육감적으로 기록되므로 결코 언어화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구라는 물상을 접하자마자 생각이나 추론의 겨를없이 “옛 맛”으로 기억되는 “외로움”의 감정이 온몸으로 육화되어버리는 것이다.

 “살구가 내게 파고들고 핥고 매달리”는 이 동시적이고 직관적인 육체의 최대치 속에서 ‘나’는 그만 아득한 시간을 뛰어넘고 역행한다. 이 직접적이고 역동적인 체감의 순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존재와 부재의 낙차를 관통하고 해지하는 동시에 그때에는 풀지 못했던 이항관계를 또렷이 이해하도록 한다. 막연하고 그리웠던 그 옛날의 실체가 이제는 재현되고 서술되는 거리에 놓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좇았다가 돌아갈 길을 잃은 “떠돌이”, 살던 곳에서 쫓겨난 “난민”, 길이 지워지고 강이 가로놓인 곳의 “보트피플”이 바로 버림받은 강아지 살구였고, 다름 아닌 그런 살구를 잃어버린 ‘나’다. 흘러간 시절로부터, 불화했던 시대로부터, 지키지 못했던 너로부터, 어쩌면 나로부터…….

 “누군가에게 어떤 누군가가 되기 위해” “매달리고 파고들”었던 기억. “그만 자신이 아니라 너를 내가 부지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고 하겠다는 듯이” “파고들고 핥고 매달리”던 기억. 패배조차 빼앗겼던 한 세월과 온전히 앓아보지 못했던 환부를 백무산은 이렇게 아픈 구절로 부상시킨다. 고유한 향기와 빛깔을 가진 무엇, 네가 불러줄 때만 이름이 되는 존재가 되려고, 부단히 가슴 저리던 그 과정은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네가 되겠다는 그 결의의 시간”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낮 지푸라기들”처럼 붙잡아온 그마저도 스러져버리고 “내가 아닌 너를 부지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일”이라는 명제에 가까스로 당도한다.

 나에게서 너에게로의 전이도, 나와 너의 합일도 불가능할 뿐 열심 또 열심으로 내가 너를 부지하는 것만이 우리의 분리와 상처를 이해하고 바로 그 자리에 핀 빛깔과 향기를 조우할 수 있는 아름다운 노력이라는 것을 이 시는 말해준다. 완전히 소유하고 소유받고 싶어하는 것이 사랑이지만 완전히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없다. ‘부지하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게 보존하거나 유지하여 나가다’는 뜻이다. 균열과 부딪힘 사이에서 절뚝이고 삐그덕거리면서도 그 어렵고 힘겨운 과정을 온 마음과 몸을 다해 끝까지 겪어나가기로 작정한 것이 아마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호네트가 말하는 상호적인 사회적 현상인 인정을 다시 상기해보자. 인정은 상대의 ‘감정과 욕구’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인정받을 때, 내 욕구가 타인에게도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전제가 따르는데 먼저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도 그 가치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과, 인정받기 위해서는 인정하는 사람의 가치와 판단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정의 형태에는 저마다의 고유한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는데 의존성과 독립성의 길항 작용은 결국 지극한 사랑에서 발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날아오르고 싶다 하늘 끝까지

뜨거운 불길을 잡고 하늘 끝까지

내가 이마에 불조심 불띠 두르고

산속에 앉아 스크럼을 짜고 있는 동안

하루 이틀 열흘 한 달 그 이상

나는 나의 영역을 넓혀간다

축구장 열 배 백 배 그 이상

연기 피어오르고 헬리콥터 뜨고

불보라 날리고 물벼락 때린다

 

어, 어 보게나 마음속 화엄(華嚴)

화엄(火嚴) 세계 펼쳐놓은 大火 현장

― 정대구, 「산불」 전문(《공정한시인의사회》, 2022년 8월호)

   

  

 인정 이론에 의하면 사회적 규칙이 왜곡되는 ‘인정의 병리’ 현상이 있다. 병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 번째는 인정의 기준이 모호하거나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사회에서 그 능력과 가치를 인정할 때 기준이 공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룰을 신뢰하지 않게 된다. 두 번째는 인정에 대한 욕망이 과도한 현상이다. 다른 이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세 번째는 인정을 부당하게 요구하거나 적용하는 경우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불법을 저질렀을 때 면책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인정의 병리 현상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불공정, 불의, 불평등의 병폐적 문제들을 보여준다.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산불처럼 하늘 끝까지 날아오르고 싶다고 하는 바람을 나타내고 있는 이 시에서 “불보라 날리고 물벼락 때리”는 아비규환의 재난 현장은 어느덧 마음속 화염을 사그라뜨리고 화엄 세계가 펼쳐진 연화장세계로 화한다.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설법한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서 비롯된 말인 화엄(華嚴)은 온갖 꽃으로 장엄하게 장식한다는 뜻이다. 이는 불법이 드넓고 무한하여 모든 중생과 사물을 아우르고 있음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곧 화엄은 온갖 분별과 대립이 극복된 이상향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화엄은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결코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날 수 없으므로 서로 원인이 되는 연관 관계를 갖고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그 자체로서 불성이 발현된 것이라고 긍정하는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이처럼 화엄사상은 하나가 일체이자 일체가 곧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원융하여 끝없는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내가 아닌 너를 부지하는 것이 나를 증명하는 일”(백무산, 「너를 부지하려고」)이라고 하는 이 눈물겨운 시의 음성은 현대 철학의 거장 악셀 호네트의 상호인정 이론이나 저 고고한 불교의 화엄 사상이 주는 오랜 울림과 다르지 않다. “나는 누군가가 될 수 없”고 “네가 될 수도 무엇인가가 될 수도 없”지만 오직 누구도 무엇도 되지 못하는 내가 역시 그러한 너를 어렵게 어렵게 부지하면서 함께 가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사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멀리 더 멀리 갈 나를 그리고 너를 위안해본다.

 

 

 

                                              

1) 백무산, 「너를 부지하려고」의 한 구절

 

 

 

 

 

 

 

 

 

 

 

 


 

신수진.jpg

신수진  I

201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201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안데르센상〉 아동문학 부문 수상. 

 

 

 

ㅡ

2022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