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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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惀),
ㅡ 모두가 옳고 아무도 옳지 않다
어떤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아예 자기 쪽으로 끌어들여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빠져나올 수 없게 리듬을 만들고 운율을 반복한다. 그런 밤은 계속되었다. 잠시 리듬이 끊긴 사이 날이 어슴푸레 밝았다. 빗소리였는지 죽은 사람의 허밍이었는지 꿈은 부지불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욱신거리는 육체와 뻣뻣해지는 관절에서 시작되는 아침, 태양은 짧은 임무를 마치고 재빨리 돌아선다. 몸을 일으키면 낡은 침대도 함께 삐걱거린다. 수명(壽命)이라는 말 속의 ‘수’는 분명 목숨을 뜻하는 말이겠지만 어쩐지 수명(水命)으로 읽히기도 한다. 물길이 끊어져 생명이 다한다는 말처럼. 내 몸에 수분은 이제 몇 퍼센트쯤 남아 있을까. 점점 물길이 약해지고 부유물이 쌓인다고 느끼는 건 기우일까.
불혹을 넘기면서 관계는 점점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 그러니까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어야 했다. 이 말의 진짜 속내는 빈둥거리지 말고 뭐라도 해야 인생이 바뀐다는 말이지만. 불혹을 넘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불행이 뒤따르지 않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웅덩이가 늪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과 그 다름이 폐부 깊숙한 곳까지 침범하는 건 다른 일이었다. 다름은 성향의 차이지 인성과 도덕의 차이는 아니니까. 어쨌든 그런 상황들이 쌓이면서 결국엔 그 진창으로 끌고 들어간 사람이 나라는 걸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 관계는 후회의 덫으로 남아 자꾸 발목을 접질린다. 인간도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어 물길을 따라 어떤 관계의 물꼬를 틔우고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물길을 가로막는 돌멩이와 흙더미, 낙엽들, 때로 커다란 바위나 쓰레기들은 곳곳에 잠복해 있다. 자신의 몸집보다 큰 것들을 뚫고 나가야 강이든 바다든 닿을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불협화음은 물길을 막고 물꼬를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한다고 해도 순도 100%의 물은 없는 것처럼. 이물질을 견디지 못하는 물은 금방 흙탕물이 되고 진창이 되어 폐수로 변한다. 폐수는 그 자체로 증발할 때까지 쓸모가 없어진다. 관계는 툭 끊어진다.
한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했다. 그 말은 모든 물은 로마로 흘러들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힘이 물에 있었다. 물은 문명을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다. 문명의 탄생과 더불어 물을 다스리는 힘이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 삶의 속도는 인공 물길을 따라 빠르게 변했고 삶의 규모는 포화 상태가 되었다. 다리가 생기고 증기 기관차가 움직이고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행복의 속도는 문명에 반비례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라 간, 사회 간, 개인 간의 차이는 극명해진다. 여전히 물 부족 국가들이 존재하고 물이 풍부해도 환경오염으로 인해 물은 점점 더 빠르게 오염에 노출되고 있다. 이제 물길은 자신도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모른다. 물의 생각까지 읽어버리는 인간이 그 길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은 이제 가야 할 길을 잃었다. 생명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걸까. 새삼 생명의 용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처음 집에 수도가 들어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 전에는 마을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빨래나 다른 잡다한 것들은 마을 주변에 용천수가 흐르는 곳에 가서 해결했다. 어둑해질 무렵이면 아이들은 옷을 벗고 목욕을 하기도 했다. 80년대만 해도 비가 오면 마을에 물길이 흘러내리는 개울이나 하천이 많았다. 마을 사랑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소문의 진원지이면서 때론 파장하는 시장처럼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쌓인 오해의 부유물들은 장대비가 쏟아지고 나면 흔적도 없이 지워졌다. 그때부터였다. 내가 물을 좋아하게 된 건.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난한 생각들이 씻겨 나갔다. 햇빛은 자주 물속을 드나들며 목을 축이곤 했다. 일렁이는 햇빛을 주무르며 빨래를 했다. 찰랑찰랑 물 넘기는 소리가 귀까지 씻겨줬다. 한여름 차가운 물에 손을 넣으면 물은 금세 손을 길들인다. 물의 결이 손 사이로 빠져나가며 만들어내는 촉감은 어떤 옷감보다 부드럽다. 물에서 빠져나와야 하지만 물은 좀처럼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겨우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와 빨랫줄에 빨래를 탁탁 널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다. 빨래와 바람이 함께 허공을 거니는 자유로움, 시간은 여기서 멈춰도 좋았다. 그 청결함, 그 자유로움, 그 가벼움이 모든 생각을 멈추게 했다. 집에 수도가 설치되었지만 빨래는 한동안 용천수가 콸콸 쏟아지는 속칭 ‘구명물’이라 부르는 곳에 가서 했다.
시간은 사람들을 점점 편안함에 길들였다. 용천수까지 걸어가는 수고로움을 피했고 집 안에서 대부분의 일을 해결했다. 그러는 사이 물길은 점점 말랐다. 왜 그토록 콸콸 흐르던 물이 갑자기 말라버린 걸까. 물도 사람 손을 타는 것일까.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금방 폐허가 되어 녹슬어 가는 것처럼. 말라버린 물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분명 물은 보이지 않지만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다. 제주에는 곶자왈이 많다. 곶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하는 ‘자왈’과 나무숲을 이르는 ‘곶’이 합쳐진 말이다. 이곳에는 주로 용암류로 뒤덮여 있으며 그 틈에서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룬 형태다. 나무가 자란다는 것은 그 아래 물길이 흐르고 있다는 말이다. 뿌리가 한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시간이 필수다. 이동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여기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의지다. 우리도 그렇게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겠지. 뿌리는 자신이 어디까지 뻗어갈지 모른 채 살아간다.
1860년대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처음 땅을 팠을 때 아주 먼 지역까지 뻗어 나간 뿌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아카시아 나무다. 긴 세월 그 뿌리를 내리기 위해 흙과 바위를 움직여 종족을 유지한 아카시아 나무다. 하지만 문명이라는 이름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문명과 생명의 관계에 운명이 끼어든다. 문명이 생사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억압과 착취의 결과물이었다. 물은 생명을 쥐고 있다. 물 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우리가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을까 하고 기웃거리는 것 역시 물의 유무를 살피는 일이다. 그러니 물은 지독하다. 그 단단한 바위도 물이 없으면 갈라지고 부서진다. 물은 고이면 썩어서 오염된다. 콜레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원인도 오염된 물에 있었다. 인간의 도덕성이 무너지면 물의 도덕성도 무너진다. 인간을 덮치는 악재의 원인은 물길을 막는 인간에게 있다는 말이다.
눈 뜨면 제일 먼저 베란다에서 밤새 자란 식물을 본다. 혼자 물을 마시는 게 미안해서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화분마다 뿌려준다. 흙은 금방 물을 빨아들이고 잎은 생기가 돈다. 올해는 나무들이 너무 빨리 자라 좀 무섭다. 무엇이 이 식물들의 경쟁을 부추기는 걸까. 욕망은 살아남기 위한 모든 생명체의 조건인가.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인간이 시작되었다면 물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인류를 만든 것도 지구를 돌리는 힘도 물이다. 어쩌면 태양과 달마저 물의 부속품인지 모른다. 액체와 고체와 기체 상태로 변화하며 인간의 무지에 혹은 욕망에 맞서기도 한다. 때론 부드럽게 때론 거칠게 인간을 길들인다. 모든 귀가 잠들어 있을 때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 그것은 어떤 계시처럼 지구의 귀로 흘러가게 한다. 살아남기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미지를 가진다. 그 이미지에서 나르시시즘을 느끼다 결국엔 파멸에 이른다. 그 파멸을 경고하는 이야기 역시 물에서 시작된다.
백수광부와 그의 처 이야기 ‘공무도하가’의 끝에는 절망이 있다. 절망이 공후를 타고 흐른다. 물은 인간의 절망과 맞닿아 있다. 절망의 최전방으로 물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깊숙한 곳까지 걸어가는 것보다 차를 타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고통이 덜할까.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대부분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한 생을 사는 일이 이렇게도 버거운 일인지.
영화 <부력>에서 주인공 열네 살 차크라 역시 캄보디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공부는커녕 집안일에 시달리다 인생이 끝날 것 같아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일자리를 얻으려면 중개인에게 돈을 내야 하는데 줄 돈이 없어 불법 어선에서 강제로 고기 잡는 일을 하게 된다. 그곳은 지독한 노동 착취의 현장이었고, 결국 버티지 못한 사람들의 끝은 죽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 환경에서 자신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 차크라는 어리다고 무시하는 동료를 죽이고 선장까지 죽인 뒤 돈을 훔쳐 배에서 탈출한다. 부력은 무게와의 상관성에서 비중이 물보다 작은 물체일 경우 물위로 떠오르게 하는 힘이다. 소년을 배 밖으로 탈출하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어른들의 욕망을 답습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혹은 벗어나려고 몸부림친 결과물일까. 여전히 가난은 계속되고 아이들은 노동 착취의 현장으로 끌려간다. 물은 부력에 의해 떠오르게도 하지만 가라앉기도 한다. 그 힘의 경계에 욕망이 있다. 물은 조용히 그 욕망의 머리채를 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천천히 분해해서 삼켜버린다. 아무도 모르게.
떠내려간다.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내린 날이었다. 돼지가 떠내려가고 염소가 떠내려가고 가전 도구들이 떠내려갔다. 떠내려가는데 ‘어. 어’하면서도 잡지 못한다. 물을 퍼낼 수도 없었다. 마당이고 골목이고 다 물바다였다. 어디서 어디로 물을 퍼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가 그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물은 순식간에 증발했다. 땅속으로 스며든 것이다. 여름에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 여름이 몇 번 지나고 세상은 변했다. 이전처럼 동네가 물에 잠기는 일은 없었다. 배수시설을 정비한 것이다. 다 젖지 못하고 눅눅한 기운들이 오히려 여름을 망쳤다. 물도 야생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목이 마르다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는 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 더 이상 몸이 물을 찾지 않게 되면 존재는 희미해진다. 물이 인간을 지배하는 방식이다. 때마침 바람이 분다. 물은 또 우리 곁을 떠날 생각을 한다. 젖고 마르고를 반복하는 동안 문명은 더욱 강하게 살아남아 우리를 위협한다. 아무렇지 않게 물길을 끊어놓고 뿌리째 나무를 뽑는다. 우리는 우리를 망치는 일에 최대한 골몰한다.

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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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