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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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여, 날개가 너무 커서 슬픈 알바트로스여!
하우씨(夏禹氏) 제강(濟江)할졔 부주(負舟)하던 저 황룡(黃龍)아
창해(滄海)을 어듸두고 반벽(半壁)의와 걸엿나니
아모리 흥운작우(興雲作雨)한들 언정(蝘蜓)갓치보리라
ㅡ 숙종대왕
조선 시대 숙종 대왕이 지은 시조라고 한다. 「어제(御製)」, 임금이 지었으니 어제라는 제목이 텍스트에 덧붙여진 모양이다. 언정은 도마뱀으로 번역해도 좋을 듯하다. 도마뱀과 비슷하게 생겼고 온몸이 회갈색이며 발가락에 빨판이 달려서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다닌다고 한다. 도마뱀의 형상이란 황룡의 모습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푸른 바다를 휘젓고 다녀야 하는 것이 용의 운명이며 그런 용은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뿌릴 만한 힘을 지닐 때 비로소 용다워질 수 있다. 황룡이라 했으니 필경 용 중에서도 우두머리 격에 해당하는 그런 용을 지칭하는 것이겠다. 황색은 왕족에게만 허여된 복식의 빛깔이라고 들은 것 같다. 그처럼 늠름한 황룡이 이제 푸른 바다를 떠나와 벽에 걸린 채 등장하고 있다. 그것도 온전한 벽이 아니라 반이 유실되고 반만 남은 벽에 걸렸으니 위태롭게 걸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흥운작우가 가능할 것도 같지 않지만 설사 원래 용이 그러했듯 구름을 몰아 비를 일으킬 수 있다 해도 과연 그를 용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이제는 결국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겨우 움직여 다니는 언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신이 속해야 할 시간과 공간이 분명 따로 있으련만, 그 시공간에서 축출당한 존재들은 이 지구상에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해왔다. 속해 있어야 할 곳에 온전히 소속하지 못하고 보호받지 못한 채 타고난 천재성으로 인해 평생 외롭게 살다 가는 이들이 있다. 외로운 영혼과 남달리 예민한 감각, 그리고 미래의 시간대를 앞당겨와 살다 가는 이들이 그들이다. 필생의 몸부림, 그 흔적을 작품에 투사한 채 세상을 하직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예술가들이라고 부른다. 숙종 임금은 시조 형식으로 그런 예외적인 존재들에게 바치는 비가를 부르고 있다. 정치가도 원대한 포부를 품고 선견지명을 지닌 이라면 이미 시인이요 예술가일 터이다. 아마도 숙종은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예술가의 운명을 체감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꿈과 이상이 실현되는 나라다운 나라를 이루어보리라던 청운의 꿈이 거듭 좌절당한 숙종 임금이 황룡과 언정의 형상 속에 자신을 투사하고 있다. 그 노래가 시인의 슬픈 노래로 읽힌다.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또한 그처럼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거대한 상상력과 힘을 지닌 존재를 텍스트에 재현하였다. 보들레르는 너무 큰 날개를 지닌 까닭에 땅에서는 걷기도 힘든 알바트로스(L'Albatros)라는 새를 등장시킨다. 그 알바트로스는 숙종의 세계에서는 언정으로 변해버린 황룡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속해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 있는 까닭에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L'Albatros
Souvent, pour s'amuser, les hommes d'équipage
Prennent des albatros, vastes oiseaux des mers,
Qui suivent, indolents compagnons de voyage,
Le navire glissant sur les gouffres amers.
À peine les ont-ils déposés sur les planches,
Que ces rois de l'azur, maladroits et honteux,
Laissent piteusement leurs grandes ailes blanches
Comme des avirons traîner à côté d'eux.
Ce voyageur ailé, comme il est gauche et veule!
Lui, naguère si beau, qu'il est comique et laid!
L'un agace son bec avec un brûle-gueule,
L'autre mime, en boitant, l'infirme qui volait!
Le Poète est semblable au prince des nuées
Qui hante la tempête et se rit de l'archer;
Exilé sur le sol au milieu des huées,
Ses ailes de géant l'empêchent de marcher.
— Charles Baudelaire
*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지치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를.
바닥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러운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다소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 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ㅡ 김붕구 역
알바트로스는 저 푸른 바다 위, 드넓게 펼쳐진 하늘을 날 때에만 비로소 천년옹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거대한 날개를 지닌, 새 중의 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알바트로스는 위풍당당하여 창공의 왕자라 불리었을 것이다. 폭풍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고 바다와 하늘이 배경이 되는 곳에서만 비로소 자유롭게 비상할 수 있는 새가 알바트로스이다. 그러나 그는 바닥에 닿으면 바로 그 웅장한 날개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조롱 당하는 가련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보들레르는 이 세상의 시인이란 바로 그 알바트로스라고 부른다. 그처럼 구름 위에서는 왕자이지만 지상에서는 유배자가 되는 그 모든 존재를 시인이라는 이름은 대표한다. 이 지구 위의 삶들과는 영원히 조화를 이루지 못할 운명을 지니고 시인은 이 땅에 태어난다. 알바트로스의 모습에 시인의 형상이 어리는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너무 큰 날개를 지녀 걷기조차 힘든 새도 광활한 바다를 잃고 반만 남은 바위에 남겨진 채 언정으로 보이는 황룡도 모두 불운한 시인의 상징으로 보인다. 자신의 시대와 충돌하며 삐걱거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시인의 삶이요 운명임을 두 텍스트는 탄식하고 있다. 시인이란 꿈과 재능을 알아 보아주지 못하는 몽매한 시대에 태어났으니 그토록 힘들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이 아닐까? 미래를 앞당겨 와 살면서 늘 꿈 꾸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초정 김상옥 시인 또한 시대와 불화하는 시인의 운명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초정 시인은 우리 역사 속의 인물, 고산자 김정호의 삶을 그린다. 이 땅의 모양을 그대로 재현하는 지도를 그리는 일, 그 작업 또한 예술가의 일에 속하는 것이겠다. 한 편 시를 빚으면서 세상을 재현하는 일과 그다지 다르지 않겠다. 그래서 초정은 김정호의 삶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을 지닌 자, 즉 시인의 운명을 찾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태어나 미움 받을 수 밖에 없는 자의 고독이 그 텍스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철쭉이 진다. 全身에 철쭉이 진다. 滿山 철쭉이 점점이 어룽진다. 흥건히 떨어져 수북히 꽃잎은 쌓인다.
바람도 햇빛도 오지 않는 이세상 저승, 典獄署 監房안엔, 뒤척여 뒤척여도 굴신조차 할 수 없는 한 분 囚人이 앉아 있다. 萬古에 외로운 囚人이 앉아 있다. 날이 날마다 그 습하고 어두운 그늘에 묻히어, 바랠대로 바래져 흴대로 희어진 그의 살갗 위에 꽃잎이 亂杖으로 어룽진다. 어룽진 꽃잎은 또 어쩌면 그리도 영절스레 山을 그리고 江을 그리던가. 오오 大東輿地圖! 저기 천년묵은 지네처럼 山의 등뼈 갈비뼈를 새겨내던 그의 팔뚝, 그의 부르튼 손 끝이 파르르 떨고 있다.
보아라 저 白頭山 天池, 漢拏山 白鹿潭에도 한결같이 그의 푸른 마음은 떨고 있다. 달빛처럼 드푸른 마음은 떨고 있다. 지금 이 百年 後生의 가녀린 가슴에도 사시나무 떨 듯 그렇게 떨고 있다.
ㅡ 김상옥, 「古山子 金正浩先生頌」
우리 역사 속의 선구자, 고산자 김정호의 모습은 수인의 형상으로 시인의 상상력 속에 등장한다. 감옥에 갇힌 외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습하고 어두운 그늘을 배경으로 그 고독이 강조되고 있고 마구 쏟아지는 매, 즉 난장의 이미지로 인하여 그가 겪어야 하는 부당한 고통이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굴신조차 할 수 없는 고산자의 모습 또한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알바트로스의 형상을 닮아 있다. 반만 남은 벽에 들러붙은 채 창해를 휘젓는 꿈에 젖은 황룡 혹은 언정의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산자를 기리는 초정의 텍스트는 예술가가 무슨 까닭에 그 고독과 야유와 조롱을 견딜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알바트로스로 환생하는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언정이 황룡의 품위를 되찾는 날을 그려서가 아니다. 예술가로 하여금 그 고독을 견디게 하는 힘은 바로 그처럼 그 외로움과 소외감을 공유하게 될 잠재적 독자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리라. 백년 후생의 가녀린 가슴이 떨리고 또 떨리면서 그가 남긴 문화적 유산 앞에 어느 날 통곡할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라, 초정 시인은 철쭉이 지는 봄날의 묘사로 텍스트를 열고 있지 않은가! 만산에 지는 철쭉 꽃잎으로 고산자에게 내려졌던 난장(亂杖)의 이미지를 덮고 있다. 흥건히 떨어져 수북히 쌓이는 꽃잎이란 고산자를 기리는 수천 수만 후세인의 넋을 상징할 터이다. 아둔한 시대가 훼손한 유해 위에 흰 천을 덮어 위로 하듯 꽃잎을 어룽지게 만들면서 초정 시인은 고산자가 겪은 난장의 고통을 그처럼 달래고 있는 것이다. 불교 세계, 마하가섭 존자의 목소리가 고산자의 유언으로도 읽힌다. 그 일을 행하며 마음에 즐거움이 있고 오늘 그가 하는 일이 뒷사람에게 규범이 되고 도움이 된다면 그 또한 즐거움이 된다고 가섭 존자는 말했다고 한다. 율장과 화엄경 41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법정 스님이 법문으로 설한 바 있다. 숙종대왕의 탄식과 보들레르의 슬픈 자화상과 고산자의 한 생애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시인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시인들의 외로운 고군분투는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오래된 텍스트를 읽고 위로받으면서 뒤따라 올 이들을 위한 위로의 텍스트들을 새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외로움과 탄식을 즐거운 유희로 바꾸는 것, 그것 또한 시인의 운명일 것인가?
참고문헌
김천택 편, 홍문표 강중탁 역주, 『청구영언(상)』(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208면.
김상옥, 『삼행시』, 아자방, 1975. 72~4면.
보들레르, 김붕구역, 『악의꽃』, 민음사, 1974.

박진임 |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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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