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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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약한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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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자호란 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볼모로 심양으로 갈 때 따라갔던 장현이 지었다 함.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침략했다. 전 세계가 공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니 우리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병자호란의 끝에 청나라 우두머리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했다는 조선 임금의 모습이며 남한산성에서 선조들이 겪었을 비참함이 생각난다. 김훈 소설가의 『남한산성』은 그 치욕의 역사를 재구성한 소설이다. 조선 사람들은 예를 숭상하고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 소설에는 조선의 그런 선비정신이 야만적인 군대의 물리적 힘 앞에 굴복하는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1999년에 발표된 장순하 시인의 「남한산성」 또한 그러한 역사의 한 장면을 시적 장치를 통해 재구성한 역작이라 할 수 있다.

  서정시는 대개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작은 경험에 집중하곤 한다. 그런 까닭에 널리 암송되고 사랑받을 수 있다. 반면 「남한산성」과 같은 역사성의 서사시는 그렇지 못하다. 시인은 대중의 사랑을 받기 어려운 대상임을 미리 알면서도 기어이 역사를 문자로 기입하고 재기입하는 작업을 한 것이다. 역사의 교훈이 유실되지 않게 만들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잊히지 말아야 할 것이 잊히고, 잊히고 지워져야 할 것이 살아남아 후세의 기억 거리가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민족의 퇴보를 앞당기는 일일 터이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독자로부터 사랑받고 자신의 역작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독자의 사랑이 주는 기쁨과 격려도 필요하겠지만 외면받더라도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자존감도 필요하다. 대중이란 변덕스럽고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며 안목이 부족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취향만 존중하는 것은 시인의 갈 길이 아닐 것이다. 강석경 소설가의 『신성한 봄』의 한 구절, “대중? 오늘은 장미를 바치고 내일은 침을 뱉는?”이 기억난다.

  병자호란에서 경험했던 약자의 비애는 현대에 이르러서도 중단되지 않고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서 해방된 뒤에도 분단의 아픔을 다시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 민족이다. 아마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 한층 안타까운 것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 때문일 것이다. 장순하 시인은 그 슬픔을 그리면서 통일에의 염원을 노래한다.

     

        

   강이며 산맥이며 짚어가던 고 손가락

   이건 무어냐고 제쳐 묻다 잠이 들고

   호젓이 벽을 바라고 몰아쉬는 숨결이여

 

   화랑 젊은 손은 세 나라를 모았거니

   만이 삼천이면 하늘인들 못 돌리랴

   두둥둥 북을 울려라 메아리도 울어라

 

   이제 벽은 무너지고 하늘 다시 열리는 날

   열두줄 가야금의 청아한 목청이랑

   닐니리 새옷 바람에 덩실덩실 춤추리

  ㅡ 장순하 「관도(觀圖)」 2,3,4 수

   

  

  우리는 아직도 북을 울리지 못하고 있다. 덩실덩실 춤추지 못하고 있다. 약한 자의 비애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대단한 애국심을 발휘하며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힘의 논리로 보자면 참으로 어려운 싸움을 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지원을 보내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이라는 유명인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우크라이나 의사에게 양도하여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알리게 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21세기 전쟁에서는 전 지구적 여론의 형성이 큰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 믿어본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 이후 발생한 굵직한 전쟁이라면 1960년대와 70년대의 베트남 전쟁, 그리고 1990년대의 이라크 전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인하여 미국이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게 된 경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신문과 라디오 등을 통해 기사로만 접하던 전쟁을 텔레비전은 이미지와 함께 보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전쟁의 참혹한 장면들을 있는 그대로 미국의 각 가정에 실어 나르게 되자 미국 내의 반전 여론이 들끓게 되었다는 것이 그러한 주장의 근거이다. 이라크 전쟁은 마치도 비데오 게임을 하듯 원격 제어 장치를 통해 폭발물을 투하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휴대폰과 SNS 계정을 통하여 주변의 모든 사건을 실시간으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전 세계인이 우크라이나인들과 마음을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슬픔 속에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프랑스 텔레비전 방송은 전쟁에 나가는 우크라이나 병사가 입대 직전 군복차림으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을 보도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장미꽃 다발을 품에 안은 신부가 비통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 많던 꽃들은 다 어디로 가 버렸을까?”라는 노랫말은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던 시절, 미국인의 가슴을 울렸던 대중가요의 가사이다. 다시 꽃 피는 계절이다. 전쟁은 꽃 피는 계절을 슬픔과 함께 맞게 한다. 전쟁이 이 지상을 꽃 한 송이 없는 황폐한 곳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전쟁 없는 봄을 이제는 맞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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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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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