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현서 | ||
|---|---|---|---|
해바라기
김현서
골목에
해바라기가 서 있어
태어나서 한 번도
거울을 본 적 없는
해바라기
자기는 노란 깃털로 변장한 타조일 거래
자기는 소풍 갈 때 싸 가는 김밥일 거래
아니 자기는
잘 때 켜 두는 예쁜 등불일지 모른대
내가 거울 보여줄까 물으면
해바라기는 그냥 지금이 좋대
ⓒJim Cramer, Pixabay
●●●
집으로 가는 골목에 해바라기가 피어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태어나서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어서 자기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라요. 그래서 자기 맘대로 수많은 상상을 하지요.
자신은 노란 깃털이 달린 타조라고 생각하며 드넓은 들판을 겅중겅중 뛰어다니기도 하고, 소풍 때 먹는 김밥이라고 생각하며 행복감에 젖기도 해요. 또 잠잘 때 켜 두는 예쁜 등불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존재라고도 생각하지요.
거울을 보여주려 해도 해바라기는 지금이 좋다며 거울을 보지 않습니다. 자기 모습을 하나로 규정해 버리고 나면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는 즐거움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나요. 사실 해바라기는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해바라기는 누가 뭐라 하든 타인의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꿈꿉니다. 그래서 골목에 혼자 서 있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외롭지도 않습니다.

김현서 l
1996년 《현대시사상》 시,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시집 『코르셋을 입은 거울』 『나는 커서』, 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 『짜! 짜! 짜!』, 청소년시집 『탐정동아리 사건일지』 『숨겨 둔 말』 등이 있음.
—
2026년 6월호(vol.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