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tra Form Output
저자 염창권 

 

 

 

 

현대시조에서 민속의 수용 양상 1

— 민속의 풍속사적 반영

   

 

 

   

민속(民俗)이란?  

   

민속(民俗)의 시적 수용으로 주목을 받아온 시인에는 백석, 김소월, 서정주, 송수권 등이 있다. 이들은 풍부한 민속을 바탕 삼아 공동체의 기억을 충실히 복원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민요에서 이어지는 민중적 서정을 한국적 시학으로 발현시켰다. 이에 비해, 현대시조에서는 민속에 관한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현대시조론의 대다수가 전통성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에 비해, 민속과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부족한 것은 시조 갈래가 갖는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보겠다.

현대시조의 비평적 주제 확장을 위해서라도 민속에 관한 논의는 필수적이다. 민속과 공유되는 지점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조망해 내는 논리는 창작과 비평을 견인할 수 있으며, 시조갈래론 정립에도 요청되는 사항이다. 그것은 시조 양식이 내포할 수 있는 근대성이나 현대적 계승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속학 관련 저술에서 발견되는 민속 행위 혹은 모티프(motif) 등을 총합하여, 민속 제재 관련 범주화를 시도하면 다음과 같다.

 

   · 민간신앙 – 각종 무속, 굿, 당제, 당산제, 서낭당, 장승, 솟대, 주당맥이, 기제사, 시제 및 여제 등

   · 민속예술 – 서사무가, 민요, 판소리, 민속극, 농악 등

   · 구비문학 – 민간설화(신화, 전설, 민담), 속담, 수수께끼, 민간 어휘 등

   · 세시풍속 – 철에 따른 행사와 민속놀이(씨름, 줄다리기, 연날리기, 달맞이, 달집태우기 등)

   · 생활양식 – 관혼상제, 민간의 의식주 생활, 생활 도구 등

 

이상의 항목들을 살펴보면, 민간 혹은 민중(folk)들의 의식주 생활, 사계의 순환에 따른 축제와 놀이, 질병이나 우환이 생겼거나 생길까 두려워서 치르는 제의 등이 모두 민속에 관련된 행위 항목들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민속(民俗)과 민속문학(民俗文學)은 개념차가 발생하는데, 민속이 생활 양식 전반을 포괄하는 폭넓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 민속적 행위 중에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 민속문학(民俗文學)이다. 흔히 구비문학(口碑文學) 혹은 구전문학(口傳文學)이라 불리는 것의 전반과 민속예술 중에서 전사(轉寫)를 통해 문자화된 것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때의 민속문학은 큰 범주인 민속에 포함되지만 그 자체로서 자족적인 실체이자 독립적인 문학의 한 양식으로 성립된다.

이에 비해 시나 시조 등의 서정 갈래에서 언급하는 ‘민속’은, 시적 수용이나 세계관의 표현으로서의 시 작품에 내재된 민속적 자질을 언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 경우에 민속은 제재로 동원되거나, 주체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요소로 기능한다. 즉 문학에서 민속적 요소나 모티프를 요청했을 때는, 문학이라는 상상적 세계 내에서 진행되는 허구적 사건으로서의 민속에 관한 것이다. 계층적인 수준에서 민속은 민간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민족 전반으로 실행 주체를 확대하면 민속은 삶과 사유 세계에 투사되어 있는 원질(原質) 혹은 원본적인 형태의 요소들과 연결된다. 민속의 확인을 통해 우리 문학이 형성되어가는 잠재태로서 원형이나 리얼리티의 기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민속적 상상력과의 관계를 통해 민족문학의 구조적인 양식을 확인 할 수 있다.

 

 

현대시조에서 민속 수용을 위한 전제  

   

— 시 혹은 시조라는 한계  

 

민속적 사건이나 모티프의 실행 과정은, 준비에서부터 퍼포먼스를 거쳐 정리단계에 이르기까지 심리적 완결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서사 구조와도 대응되는데, 문학적 서사(narrative)가 민속의 실행이나 향유에 연원을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하나의 완결 단위인 민속 모티프를 문학적으로 수용하는 경우에는 소설이나 시가 갖는 형식적 장치와 맞물려야 된다. 소설의 경우에는 하나의 모티프를 에피소드로 인용하거나, 전체 구조(structure)에 투사함으로써 상동성(homology)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서정 갈래(시, 시조, 동시 등)는 주관적인 정서 표출에 치중하는 짧은 형식의 글이기 때문에, 민속의 서사적 완결 단위를 어떻게 온전하게 수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서정 갈래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다음 세 가지 차원에서 민속 행위 혹은 모티프의 수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는 가장 일반적인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민속을 소재적 차원에서 작품의 일부에 삽입하는 것이다. 이때 민속은 예시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 뿐 주제에 통합되지 못하고 관찰, 논평의 대상이 된다.

둘째는 민간의 생활이나 제의적 행위 등에 대한 체험을 토대로, 대상 세계와 신비적 일체감을 추구하는 경우이다. 민속 대상과 시적 주체가 정서적으로 통합되어 작가의 세계관과 민속적 세계가 일치한다.

셋째는 민속 모티프를 하나의 상징이나 비유적 상관물로 활용하는 경우이다. 이때 민속적 모티프는 작가의 세계관이나 심의를 표출하기 위한 은유적 등가물로 변용된다.

이러한 세 가지 기준은 현대시조에서 민속의 수용 정도를 가치평가할 수 있는 준거가 될 수 있다. 첫 번째의 대상에 대한 관찰과 논평은 고시조에서 익히 보아왔던 바이므로, 현대적 계승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민속의 적극적인 수용 양상은 둘째, 셋째의 예에 해당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속 행위의 유장한 그늘 속에 자아가 빠져드는 주체화의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자아의 정향을 대변하기 위한 상징이나 은유적 등가물로 활용할 것인가’는 현대시조의 창작과 비평을 위한 방법적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 계층문화 반영에서 개인적 서정으로  

     

문화 차이를 나타내기 위하여, ‘상층문화/민중문화, 표층문화/기층문화, 기록문화/구전문화’ 등과 같은 이항대립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민속 문화는 기층의 서민층을 칭하는 민간 및 민중을 통해 향유되며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문화이다.

시조 갈래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민속의 적극적인 수용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제약을 받아왔다고 본다.

첫째로는 고려 말에 등장한 단가 형식의 노래를 통해 성리학적 이데올로기가 표출되었고, 이후에 전개된 가곡 및 시조창 계열의 연행 환경 또한 상층문화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민속의 관점에서 보면 시조의 향유 문화는 사대부 혹은 지배층 문화라는 타자성을 지닌다. ‘상층문화/민중문화, 표층문화/기층문화, 기록문화/구전문화’ 등과 같은 이항 대립에서도, 기층인 민간의 생활 풍속이나 서정은 민요나 구전 설화 등을 통해서 향유되었다. 고시조는 노래의 특성상 구전(口傳)의 측면도 지니고 있으나, 상층의 기록문학을 기반으로 한다.

둘째로는 고시조는 노래가 본류였으니 불가피하게 연행의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인 측면이 개입되어 있다. 신웅순(2005)에 의하면, 시조는 정가(正歌)로서 민요 등의 속가(俗歌)에 대응되는 연행 환경을 갖는다.

 

  우리나라 전통 성악은 정가와 속가로 나누어진다. 정가는 가곡, 가사, 시조로, 속가는 민요, 판소리, 잡가 등으로 나누어진다. 정가(正歌)는 ‘바른 노래’라는 뜻으로 사대부나 선비층에서 인격 수양의 수단으로 불렸으며, 속가(俗歌)는 ‘속된 노래’라는 뜻으로 서민층이나, 상민층에서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했다. 가곡은 정가 중에서 대표적인 음악으로 우리 고유의 시조시를 얹어 부르는 가장 오래된 수준 높은 곡이다.

 

이에 따르면, 『교본역대시조전서』에 수록된 가곡류의 주제 분류에서 “자연의 즐거움(36%), 남녀 간의 사랑(14%), 학문과 도덕(11%), 인생의 즐거움과 무상(10%), 임금과 나라의 충절(9%), 기타(의식 노래)” 등(서원섭, 1991)의 순으로 나타나는 바, 노래의 주제도 연행의 분위기를 띄우고 흥취를 높이는 쪽의 비중이 높다. 이에 비견해 볼 때 만횡청류의 연행 환경을 민간의 놀이 형태로 상정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사설시조의 등장을 서민 작자층의 대두로 볼 수도 있으나, 만횡청류의 흥청망청한 놀이 형태는 민간의 놀이 환경과는 거리감이 있다. 즉, 정가(正歌)로서의 고시조는 향유의 방식 면에서도 민요, 잡가 등을 포함한 속가(俗歌)에 대응되는 타자의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시조의 근대적 재형성, 즉 현대시조로의 전환점은 이상의 두 가지 제약을 우선 벗어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근대는 이성적 사고와 과학 발전을 기조로 한 세계가 자연적으로 형성된 전통 세계를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정우택, 2004)”로 정의된다. 개인 혹은 자아의 발견이라는 근대적 각성과 더불어 계층의식이 반영된 노래의 틀을 벗어나 개인 서정을 주로 표출하였고, 점차적으로 시조창의 연주 형식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전통의 율격과 기록의 형식을 가져오면서도 서정 갈래의 속성에 맞게 탈구축하였던 것이다.

현대시조로의 재형성 과정을 조망해 보면, 일차적으로 노래의 형식인 시조창과 거리를 둔 것이 첫 번째로 이루어지면서 읽는 시조시의 형태로 정착되었다. 다음으로는 세계관의 표현 방식이 달라졌는데, 개세(慨世), 연군, 충절, 자연이나 사물 완상 등의 전통적인 소재에서 벗어나 개인적 서정의 표현이 우세하게 되었다. 율격론과 더불어 세계관의 전환 및 확대, 심화는 현대시조의 형성기를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해석소이다.

 

 

민속의 풍속사적 반영    

   

20세기 후반에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이전까지는 민간 생활의 대다수가 농촌 공동체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가람은 「시조는 혁신하자」에서, “우리의 생활상이 예전보다 복잡해지고 새 자극을 많이 받게 됨에 따라 한 수만으로 표현”하기에는 부담을 갖기에 “연작(연시조)을 쓰자”고 제안했다. 실감 실정을 바탕으로 한 생활 세계의 묘사를 위해 연시조와 같은 확장된 표현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던 것이다.

      

— 생활 서정의 묘사와 회고  

    

시조 창작에서 민속의 가장 용이한 수용 방법은 소재적 차용, 즉 대상 세계의 묘사와 회고의 방식이다. 고시조에서 민간의 생활상은 자기화가 아닌 타자화된 대상으로, 관찰이나 논평 또는 훈계의 대상이었을 따름이다. 예를 들면, 남구만의 「동창이 밝았느냐」나 정철의 「이고 진 저 늙은이」와 같은 경우이다.

현대시조는 이 지점에서 내적인 심화를 지향하는 방식으로 고시조로부터 분기된다. 즉, 민간의 생활 세계는 시적 화자의 기본적 생활 토대로 직입된다.

 

   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무배추 밭머리에 바구니 던져두고

   젖먹는 어린 아이 안고 앉은 어미 마음

   늦가을 저문 날에도 바쁜 줄을 모르네

- 이병기, 「저무는 가을」 전문

 

전체적인 풍경은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는 “늦가을 저문 날”이다. 이와 같은 농촌마을의 추수철 풍경 속에 전경화된 것은 “젖먹는 어린 아이 안고 앉은 어미”의 모습이다. 시간적으로 추수를 서둘러야 하는 늦가을이며, 노동의 하루는 해가 짧아 귀가를 서둘러야 하는 “저문 날”이다. 이와 같이 바쁜 시간 속에 분출되는 것이 “어미 마음”이다. 젖먹이는 어미의 마음은 수직으로 분출하며, 시간관념에서 해방되어 있다. 노동과 양육을 들판에서 이루어내는 서민의 생활상에서, “어미”는 시간을 두고 아이를 보살피거나 때에 맞춰 젖을 먹일 수가 없다. 그 애틋한 견딤 속에서 마침내 “아이를 안고 앉은” 집중적인 시간은 수직으로 분출되면서 바쁘다는 일상의 시간관념을 벗어난다. 이와 같은 점묘적인 풍경은 대지적 모성에 감싸인 품 안으로 초점화되면서, 생활 서정의 깊이를 향해 미끄러져 들어간다.

회고의 방식 또한 유년기의 생활상을 불러내어 의미화시키는 주요 통로이다. “멀리 어느 곳서 들려오는 다드미 소리”가 있다. “다드미 소리”는 시적 화자를 유년기로 데려가는 시간의 통로를 열어준다.

 

   멀리 어느 곳서 들려오는 다드미 소리

   그립다 내 옛날 집에 같이 살던 그 외론 할미

   이 밤은 어느 집에서 누구 옷을 다듬는고

- 이은상, 「다드미」 전문

 

다듬이 소리가 들리던 “내 옛날 집”은 “그립다”와 같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자 사라진 유년기의 대유물이다. 옛집에서 “같이 살던 그 외론 할미”는 다듬이질 등의 집안일을 거들며 호구를 했던 사람이다. 시적 화자의 회고된 경험이란, 그 할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 자란 것이다. “이 밤은 어느 집에서 누구 옷을 다듬는고”와 같이 다듬이질 소리는 현재화되지만, “그 외론 할미”와 나의 유년기는 회복될 수 없는 과거의 영역에 속해 있다. 현존의 시간에 들려오는 “다드미 소리”는 과거의 기억을 반향시키며, “그 외론 할미”가 지녔을 존재론적 고독을 나의 외로운 현존에 대응시킨다. 이때 “그 외론 할미”와 나의 외로운 현존을 매개하는 장치가 “다드미 소리”이다.

 

이병기와 이은상은 현대시조 1세대 작가이다. 「저무는 가을」은 묘사된 생활 서정이며, 「다드미」는 타자에 대한 기억이다. 관찰, 논평적인 고시조의 발상에서 벗어나 대상 세계와의 합일을 이루는 동일성의 시학을 보여주고 있으나, 이들의 경험 양상이 주체의 소산이 아닌 타자 경험에 의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의 시적 수용 면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 풍속의 현재화  

 

기본적으로, “민속은 전통 사회의 민중들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말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공동체적 삶을 운영해 온 내용이 민속”이라 한다면, 민속은 서민층의 주체적 관점에서 재구성되는 방식을 통해 문학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 대상과의 거리두기가 아닌 자기화의 방식으로 민속의 내용이 재형성되어야 하며, 회고가 아닌 현재적 시점에서 민속을 되살려낼 수 있어야 한다.

 

   조카를 더부리고

   省墓하고 오는 길에

 

   海望臺 바윗등에

   아야기 이야기ㅎ다가

 

   아버지 얼굴을 아느냐?

   서로 물어 보았다.

- 조운, 「성묘(省墓)」 전문

 

「省墓」는 세시풍속 중에서 묘지를 찾아가 죽은 이를 추모하는 제례이다. 그런데, 추모 대상인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조실부모하여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복할 수 없으니, “성묘”에서 추모의 대상은 모호해지고, “아버지 얼굴을” 모르는 나와 조카는 고아의식이라는 동질적인 감정을 상호 연민의 방식으로 나누게 된다. 일화적인 사건을 단수로 표현한 시조이지만, “성묘”라는 민속적 행위를 자기화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때 주체인 “나”는 민속 행위자이자 시적 화자로서 일치된다.

조운의 「省墓」 이후로 송선영의 「장터 散策」이 나오기까지는 한 세대 정도의 시차가 있을 것이나, 이웃 간의 유대에 바탕을 둔 전통사회의 인간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전통사회의 5일장 풍경은 급속하게 도시화가 시작되던 70년대 말까지는 유효한 것이었다. 「장터 散策」은 소란스러우나 풍성했던 전통 5일장에 대한 풍속사적인 재현을 보여준다.

 

   Ⅰ

   가을 숲속 성냥간 / 까투리 빙빙 돌고, //

   청댓잎 이슬 듣는 / 돌쇠네 풀무 소리 //

   모루채 / 똥 똥 땅땅땅 //

   장은 부산히 눈을 뜬다.

 

   Ⅱ

   열두골 바람들이 / 들메하고 모인다. //

   새물내 물씬 풍기는 / 아침 햇살 출렁인다. //

   산자락 / 사방에 두른 //

   저 화창한 개울 잔치.

 

   Ⅲ

   오면 가면 사투리로 / 묵힌 손금 펴고 접고 //

   어물전(魚物廛) 들락날락 / 눈인사 주고 받고 //

   한잿댁 / 들레는 나들이 / 사흘 분의 환한 날빛.

 

   Ⅳ

   쇠전머리 윷방석은 / 장돌뱅이 덕쇠판 //

   네모 걸로 방여 놓고 / 사발 술로 해갈하면 //

   객주집 / 해바라기가 / 괴발 딛고 굽어보고.

 

   Ⅴ

   파장의 옹기들이 / 총총히 떠난 다음 //

   산바람, 빈 전(廛)마다 / 낙엽을 궁글리고, //

   달구지, / 산 그리메 밟는다. //

   육자배기 메아리…….

- 송선영, 「장터 散策」 전문

 

“장터 散策”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 장보러 나온 사람의 눈에 비친 장터 풍경이다. 5일장이 열리는 시골 장터에는 가지각색의 장꾼들이 저마다 물건을 팔고 있다. 장터에서 벌어지는 일과를 만화경처럼 보여주는 이 시조에는, 장터 풍속에 대한 애정과 낙관적인 전망이 함축되어 있다. “가을 숲속 성냥간”의 새벽에서 출발하여 “魚物廛”, “쇠전머리”, “객주집”, “옹기廛” 등을 차례로 거치면서 “빈 廛”으로 남는 저녁이 되어서야 파장을 맞는다. 그리고 이 장터 판에는 풀무를 돌리는 “돌쇠네”, “한잿댁 들레는 나들이”, “장돌뱅이 덕쇠” 등의 장터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인물상을 등장시켜 생활사의 한 장면을 구체화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생활사의 전개와 서술에 치중함으로써 민속적 사건들을 시적화자를 중심으로 한 개인적 서정에는 통합시키지 못하고 있다. 즉 풍속사적 재현에 중점을 둔 작품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 「省墓」, 「장터 散策」 등은 풍속의 재현을 통한 민속의 현재화를 보여준다. 서정 갈래가 요구하는 개인적 서정으로의 심화, 민속 세계의 자아화 등의 측면에서는 해결점이 남아 있다.

 

*

 

21세기인 지금-여기는 전통의 신분사회가 붕괴된 지 오래됐고, 전통적인 농촌공동체 문화 또한 쇠락해 가는 상태이다. 우리의 대다수는 도시의 서민층에 귀속되었다. 그럼에도 이 글에서 민속을 귀환시키는 까닭은 20세기를 관통하며 축적되었던 현대시조사에서, ‘민속’이라는 비평적 주제가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맞게 조망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창작과 비평의 논리로도 발전되지 못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현대시조의 비평적 주제 확장을 위해서라도 민속에 관한 논의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 하였다. 그것은 시조 양식이 내포할 수 있는 근대성이나 현대적 계승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염창권.jpg

염창권  l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조),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 당선. 시집 『한밤의 우편취급소』 『오후의 시차』 등이 있음. 

 

 

 

—

2025년 8월호(VOL.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