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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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휘 

 

 

 

 마트료시카

 

                            최 휘

  

 

 

 

 학교 교문 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가요

 교실 문을 열고 터벅터벅 들어가요

 1교시 수학책 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가요

 수학 5단원 분수 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가요

 35쪽 2번 문제 속으로 터벅터벅 들어가요

 

 더 작은 인형 속으로 자꾸자꾸 들어가는 인형처럼

 

 이러다 작아지고 작아진 나를

 핀셋으로 집어 올려야 할지도 몰라요

 

 

  

 

  

 


                

  안녕하세요, 최휘입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아직 더위는 시작도 안 됐는데…….”라고 말했어요. 까맣게 밀려드는 여름의 감각들이 나를 덮쳤어요. 여름을 여러 번 살아보았지만, 여러 번 살아본 경험이 무기가 될 순 있지만, 그 무기가 밍밍하고 무뎌서야 어디에 쓸까요?

   감자를 깎다가 빨간 구두를 신고 장맛비를 맞을 거예요. 구두로 물을 베며 걷다가 거리를 지우고 갈 곳을 지우고 죽은 고양이를 지우고 음악을 지우고 추억할 것들에겐 감자칼을 댈 거예요. 칼이란 말 속엔 급박함이 있기에 알라딘에서 책 한 권을 주문할 거예요.

   이렇게 쓰인 무디고 밍밍한 이 문장 앞에서 서성입니다. 아직 문장은 시작도 안 했는데 글자들만 뜨거워지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문장을 안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여름을 지나 어떤 계절에 다시 한 줄로 태어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쓸 때마다 완전한 글을 쓰고 싶어한다면 얼마나 나쁜 욕망일까요? 작가는 그저 잘 쓰면 되는 거라고 배웠어요. 의미도 없고 배후도 없이 그저 잘 쓰는 것만이 작가들의 의무라면, 잘 쓰기 위해 성실해야 하고 성실해지기 위해 자기만의 패턴을 가져야 한대요. 사르트르는 하루에 20장의 원고를 꼭 썼다고 해요. 작가로서의 어떤 급박함이 작동되었는지 조금 느껴집니다. 저는 요즘 이런 책들을 읽으며 무뎌지는 나를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어요. 조급함을 버리고 성실이라는 무기를 갈고 닦고 싶어요.

   21살에 누군가는 “거짓된 용기는 큰 기회를 기다린다, 진정한 용기는 매일매일 자질구레한 적들을 물리치는 데 있다.”라고 말했대요. 내가 쓴 문장들을 감당하고 싶어요. 그러나 어떻게? 나조차도 설득할 수 없는 문장들 앞에서 좌절하게 될까 봐 나는 쓰면서도 조급해집니다.

   “태양이 가득한 살인”을 저지른 뫼르소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에, 불타는 칼에, 불비가 쏟아지는 갈라진 하늘에, 전 존재가 팽팽하게 긴장했고, 땀과 태양을 흔들어 털었다고 했어요. 이 여름을 액화시키지 않겠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된 것”들이 여름에 내리는 눈송이처럼 벌써, 이미, 다, 전부, 시작된 것처럼 탕, 탕, 몸을 치네요. “더 작은 인형 속으로 자꾸자꾸 들어가는 인형처럼.” 일상의 시간에 속고 싶지 않아요. 이런 자질구레한 적들을 물리치는 하루하루가 되면 좋겠어요. 쓰면 힘들지만 안 쓰면 영원히 힘들 것이라는 진실만이 빨갛습니다. ♣

 

 

 

 

 

ㅡ 그동안 “최휘의 [동시접속]을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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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휘 ​ l 

2012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동시집 『여름 아이』,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난, 여름』이 있음.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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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7월호(VOL.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