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이병철 | ||
|---|---|---|---|
아무르강의 전설, 타이멘을 만나다
다른 세계로의 여행은 언제나 가슴 벅찬 기대와 흥분, 그리고 두려움을 동시에 일으킨다. 이때 흥분과 두려움은 ‘앎’과 반비례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는 맹점이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과 아는 만큼밖에 못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아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만 그려낸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은 제멋대로 꿈꾸고 제한 없이 상상해버린다. 허무맹랑한 공상일지라도 그쪽이 더 행복하다. 물론 실체와 마주했을 때, 상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추락하는 고통을 감당할 각오는 해야 한다.
또 한 번의 여행을 앞두었을 때, 이번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에 막막했다. 상상은 자꾸 자라나고, 아직 그곳의 공기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살갗에 서늘한 빛이 오소소 돋아났다. 아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다스리는 세계로 내 멱살을 잡아 끌어당기는 그 폭군의 이름뿐이었다.
타이멘(Taimen). 그가 나를 불렀다.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신성한 물고기, 최대 몸길이 2미터, 무게 100킬로그램의 괴어, 물 마시러 온 사슴을 덮쳐 사냥한다는 그 폭군을 상대로 내 세인트크로익스(St. Croix) 3피스 낚싯대는 날카로운 검이 될 수 있을까. 불확실한 회색빛 물고기의 그림자가 밤마다 헤엄쳐 와 내 꿈을 끈적끈적한 불안감으로 적시고 갔다. 넥타이를 맨 절대 권력자를 연상시키는 이름, 나는 엉뚱하게도 호랑이(Tiger)와 공포 영화 ‘오멘(Omen)’을 한꺼번에 떠올리기도 했다. 예벤크족 말로 ‘타이멘의 강’을 뜻하는 ‘잘린다강(Dzalinda River)’은 아무르강의 한 지류인데, 문명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지 가이드가 보내온 안내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뱀, 곰, 호랑이 등 여러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으며, 통신은 단절됨.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사냥총과 위성전화는 가지고 있음.”
2019년 6월 2일 정오, 배낭과 낚시 장비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려 보내고, 웜홀 같은 통로를 통과해 아에로플로트(AeroFlot) 항공기에 올랐다. 인천에서 하바롭스크(Khabarovsk)까지 3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러시아 친구들과 함께 마트에 가 장을 보고 낚시점에도 들렀다. 호텔에 딸린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문명 세계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밤사이엔 백야 현상으로 새벽 서너 시부터 환한 하바롭스크 하늘처럼 내 눈꺼풀도 얇아 깊이 잠들지 못했다. 두 시간 뒤, 앤드류가 문을 두드렸다. “가장 즐거운 시간이야. 낚시를 가자고!” 서늘한 새벽공기가 목덜미를 축축하게 적셨다. 나는 그동안 문명이라는 모태에 붙들린 태아, 이제 탯줄을 끊고 외부 세계와 차단되는 정글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과 불안함이 앞섰다.
승합차를 타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을 달렸다. 600km의 비포장도로, 차창 밖으로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이 펼쳐졌다. 고려인들이 화물열차에 실려 와 버려졌던 땅, 광막한 들판 너머로 지평선이 시간을 끊임없이 데려가고 있었다. 얼어붙은 땅을 맨손으로 파헤쳐 감자 심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고려인 1세대들도 저 지평선에 실려 아득한 먼 곳으로 사라졌겠지. 승합차는 열 시간 만에 아무르강의 한 유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보트를 타고 두 시간 이동하니 마침내 잘린다 정글, 베이스캠프에 입성하자 가이드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태어나 처음 보는 이들이지만 낚시라는 만국공용어 덕분에 금방 친구가 됐다.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생선 튀김을 집어먹고 보드카를 마시는 사이 잠이 쏟아졌다. 정글까지 오는 동안 내가 사는 세계는 완전히 새로워졌다.
정글이라는 낯선 시공간에서 맞이한 첫 번째 아침, 러시아 전통 수프인 ‘보르쉬(Borsch)’를 먹고 홍차를 마셨다. 낚시 준비를 마치고 가이드와 함께 도착한 첫 포인트에서 레녹(Lenok) 한 마리를 잡았다. 아무르강에서 만난 첫 고기, 안도감이 들었다. 이미 반은 해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는 비극적 상상이 오랫동안 머리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이제 타이멘만 한 마리 잡으면……. 기대감이 부풀었다.
하지만 상황은 쉽지 않았다. 유례없는 집중호우로 수위가 상승해 포인트 환경이 변하고, 그나마 도보로 갈 수 있었다던 자리들도 접근이 제한됐다.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정글에 왔던 일본 낚시팀은 여섯 명이서 열흘 동안 열 마리의 타이멘을 잡았다고 했다. 좋은 상황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첫날 큰 입질을 한번 받았지만 당황하는 사이 타이멘의 강철 같은 주둥이에 바늘을 박는 데 실패했다. 괴력에 손이 얼얼한 채 첫날 낚시를 마쳤다. 조금의 희망이 보였지만, 희망은 언제든 절망이 되기 쉬우므로, 그날 밤엔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꿨다.
다음날, 보트로 몇 군데 포인트에 진입해 낚시를 했다. 두 번의 입질을 받았지만 연거푸 훅킹(hooking) 실패, 한국에서의 낚시에 길들여진 몸은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단 한 마리의 타이멘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잠식해 가던 순간, 강력한 입질과 함께 무지막지한 당길심이 온몸에 전해졌다. 타이멘이다! 폭발적으로 드랙을 차고 나가는 질주,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 이리저리 방향을 틀 때마다 로드는 활처럼 휘어지고, 어뢰마냥 묵직하게 떠오르던 검푸른 그림자가 마침내 솟구쳐 올라 바늘털이를 할 때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내 첫 번째 타이멘은 1미터 10센티미터의 아름다운 몸을 지녔다. 나는 주둥이부터 꼬리지느러미까지 부드러운 곡선과 은빛 강철의 단단함을 품에 안아보았다. 부드러움은 내 가슴을 어루만지고, 단단함은 뼛속까지 나를 세차게 때렸다. 녀석의 괴로운 아가미에서 붉은 꽃이 피고 지는 동안 내 심장의 조리개도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뜨거운 피를 온몸으로 뿜어댔다. 아무르강이 금빛으로 물드는 시간, 나를 만나기 위해 이 친구는 스스로 강물이 되어 노을이 되어 무려 4,350km를, 수천만 년을 헤엄쳐 왔다. 녀석을 강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비로소 어느 사찰의 불상처럼 평온해졌다. 남은 열흘의 일정은 여분의 축복, 열 마리의 타이멘과 여러 마리의 아무르 파이크(Amur Pike), 그리고 레녹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르강 정글은 거의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정글을 떠나는 날, 가이드들과 뜨거운 포옹을 했다. 누군가는 정말 눈물을 흘렸고, 눈물 없이 속으로 운 나 같은 사람도 있었다. 다시 먼 길을 달려 하바롭스크에 도착하니 정글은 어느새 한 여름날의 꿈이 되어 있었다. 내가 과연 그 시간을 살았었나? 호텔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자 짐승에서 인간으로 돌아왔다. 도시의 불빛과 소음, 자동차 경적 소리, 레스토랑의 고급 음식과 맥주,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스마트폰이 낯설었다.
짧은 원고에 다 담을 수 없는 긴 모험이 끝나고, 복잡하고 괴로운 세속 도시 서울에 도착하자 한 계절이 바뀐 느낌이었다. 한평생 같았던 정글에서의 2주, 그러나 문명 세계에서 2주는 그저 찰나에 불과하다. 내가 살던 세상은 여전히 분주하고,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몹시 걱정했던 가족들은 내 전화를 심드렁하게 받고, 공백을 염려한 내 일터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갔다. 나에게는 까마득하고 느리게만 흐르던 시간이 이네들에게는 쏜살같이 흐른 것이다. 시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 모험의 세계와 일상의 세계에는 서로 다른 중력이 작용한다. 그래, 나는 낚시를 다녀온 게 아니라 아무르강이라는 영원의 풍경, 저 너머의 한 세상을 살다 왔다. 그 세상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 나는 기꺼이 문명이라는 탯줄을 끊고 다시 한 번 원시의 짐승이 될 것이다. ■
* 타이멘은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의 위기종이다. 허가받은 구역에서 면허를 가진 가이드와 동행해 낚시로 잡는 것은 허용된다. 사진 촬영 후 곧장 방생해야 하며, 타이멘을 죽게 할 경우 처벌받는다. 러시아와 몽골에서도 낚시인들에게 ‘꿈의 물고기’로 여겨진다.

이병철 l
2014년 《시인수첩》 시, 《작가세계》 평론 등단. 시집 『오늘의 냄새』 『사랑이라는 신을 계속 믿을 수 있게』, 평론집 『원룸 속의 시인들』, 산문집 『낚;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사랑의 무늬들』이 있음.
■ 25년 경력의 낚시꾼으로 FTV, FSTV 등 낚시방송에 출연했으며, 월간 《낚시춘추》에 조행기를 연재하고 있다. 낚시 의류업체 잔카, 조구업체 아이마루베이트로부터 후원을 받는 프로스텝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9년 러시아 아무르강 정글에서 ‘지구상 모든 연어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령한 물고기 타이멘을 낚기도 했다.
—
2022년 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