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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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휘 

   

 

 

 텅 빈 집

 

                            최 휘

  

 

 

  엄마 아빠 출근하시고

  나도 학교에 가고

  모두 집을 나가면 집은 뭘 할까?

 

  작은 방은 큰 방에게 방을 바꾸자고 소리칠까

  거실은 행운목에게 어서 소파에 앉으라고 손을 끌어당길까

  욕조는 물을 가득 틀어놓고 목욕을 할까

 

  식탁은 아이구 허리야 하며 잠시 쉴지도 몰라

  책상은 휴 턱을 괴고 멍 때릴지도 몰라

 

  내가 나인 것처럼

  집도 집이어서

  집은 집 노릇을 하느라 바쁠지도 몰라

 

  집에 얹혀 살던 사람들이 모두 나가면

  집은 진짜 집이 되는 걸지도 몰라

 

  집이 텅 비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닐지도 몰라

 

  

 

  

 


                       

   안녕하세요, 최휘입니다. 봄이 거실 유리창 밖에서 톡, 톡, 문을 두드리는 것만 같은데요. 이럴 땐 온 집안의 창문을 활짝 열고 마음껏 봄의 기운을 집 안으로 들여놓아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러다 보면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나도 모르게 대청소를 하게 됩니다. 행운목을 이쪽으로 옮기기도 하고 식탁이나 책상을 저쪽으로 배치해보기도 하며 봄맞이 준비를 무아지경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진짜 이 집의 주인인가? 이렇게 쓸고 닦는 내가 아니라 이 집의 진짜 주인은 집이 아닐까? 

   오늘은 ‘집’이라는 낱말에 붙잡히고 말았네요. 무심하게 사용하던 집이라는 낱말이 나를 끌고 멀리까지 가서 끝내 길을 잃게 만들 것만 같습니다. 집 청소를 하다가 갑자기 ‘집’이 단순한 공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죠. 그러니까 내가 집이라는 공간을 청소하며 ‘집’이라는 낱말도 시나브로 청소를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집’이라는 낱말에 창문을 활짝 열어 봄바람을 불러들이고, ‘ㅈ’ 과 ‘ㅣ’와 ‘ㅂ’에 덕지덕지 앉은 때를 걸레로 닦아내고, ‘집’의 자음과 모음을 이쪽에도 놓아보고 저쪽에 놓아보는 거죠. 그러면 “작은 방은 큰 방에게 방을 바꾸자고” 동생처럼 소리를 지를지도 모르죠. “거실은 행운목에게 어서 소파에 앉으라고 손목을 끌어당길” 지도 모르죠. “욕조는 물을 가득 틀어 놓고 목욕을 할”지도 모르고요. 식탁도 “아이구 허리야”하며 허리를 펴고, 책상은 “휴 턱을 괴고 멍때릴지도” 모르죠. 이런 상상은 얼마나 재미있는 사건인지 몰라요. ‘집’이라는 낱말이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으니까요.  

   낱말 청소를 더 해볼까요? ‘집’이라는 명사는 ‘행운목과 손을 잡으며’ 식물성 명사로 변화될 수도 있어요. 상상 속에서의 집은 동화적이고 따뜻한데 생활 속에서의 집은 실용적이고 합리적일 때가 많잖아요. 책상, 식탁, 소파, 침대와 같은 딱딱한 사물들의 이름 속에는 사실 식물성이 가득하니까요. 물푸레나무는 식탁이 되고 호두나무는 침대가 되고 참나무는 책상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니까 낱말들이란 원초적으로 각각 어떤 짝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집과 식탁이 짝이듯 집과 호두나무도 짝이랍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집을 나가면 “집은 집 노릇을 하느라” 사물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더 내밀해지는 거죠. 그렇게 낱말들은 낱말의 품 안에서 싱그럽게 활기를 띠는 거죠. 집처럼 말예요. 그래서 ‘텅 빈 집’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두 집을 나가면 집은 진짜 집이 되니까요.

   오늘 저는 ‘집’이라는 낱말에 사로잡혀 이 낱말 하나를 갈고 닦아 보았습니다. 낱말들은 우리가 그것들을 새롭게 명명하기를 꿈꾸고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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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휘 ​ l 

2012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동시집 『여름 아이』,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난, 여름』이 있음.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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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호(VOL.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