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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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수호 

 

 

 

 

사라진 것들의 허밍

ㅡ 뉴질랜드 남섬의 밀퍼드사운드(Milford Sounds) 가는 길

 

        

   

 

  아침의 와카티푸 호수가 전나무 숲 사이로 새파랗게 보인다. 구름은 낮게 산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이곳 구름은 아침이면 마치 먹이를 찾는 이무기처럼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슬그머니 내려온다. 멀리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은 큰 용이 입을 벌리고 느리게 움직이는 형상이다. 꼬리가 산골짜기에 감춰진 그 하얀 용이 어떤 신비의 세계로 아침을 끌고 간다. 

  운전석 맞은편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잠깐 달렸는데 통유리의 확 트인 시야에 호수가 펼쳐진다. 천정도 통유리인 이 거대한 레드 버스는 승객을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버스는 뉴질랜드 남섬의 퀸즈타운 끝 지점에 한 번 더 정차해서 한 무리의 승객을 태웠고, 시가지를 조금 벗어난 와카티푸 호수 변에서 금발의 아가씨 둘을 태웠다. 오른쪽에 와카티푸 호수를 끼고 버스는 오래 꼬불길을 달린다. 긴 몸통의 용 구름은 호수 건너편 산 중턱에도 걸려서 장관을 이룬다.

  와카티푸 호수는 마오리 언어로 ‘비취 호수’라는 뜻이다. 이 호수에는 마타우라는 괴물 설화가 있다. 빙하가 파낸 대형 구덩이에 빙하 녹은 물이 차면서 생긴 호수인데, 거기에 걸맞은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 괴물이 불에 타죽으면서 땅에 거대한 구멍이 생겼고 산에 쌓인 얼음이 녹아 그 구멍으로 흘러내려 호수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괴물 마타우의 발은 킹스턴(와카티푸 호수의 최남단 지명)에, 머리는 글레노키(와카티푸 호수 북서쪽 끝의 지명)로 향했는데, 유일하게 불에 타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심장이었다. 그 심장만 살아남아, 지금도 팔딱거린다고 한다. 그 증거로 이 호수의 수면은 5분에서 30분마다 약 20센티 정도의 수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한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과학적으로는 세이시 현상인데 이 설화로 설명하면 기가 막히게 설득력이 있게 된다.

  괴물 마타우가 누운 형상인 와카티푸 호수의 갓길로, 버스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2차선 도로를 달린다. 이 길에는 '악마의 계단'이라는 3킬로미터 정도의 구간이 있는데, 그 이름처럼 아주 위험한 길이어서 많은 차들이 여기서 호수로 추락했다고 한다. 호수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상상하기에는 호수 빛이 너무도 아름답고 푸르다. 여기에서 12분 정도를 달리면 호수의 남쪽 끝 지점인 킹스턴에 도착하게 되고, 또 거기서 1시간 반 정도 더 달리면 둘레가 약 500킬로미터나 되는 또 하나의 거대한 호수인 테아나우 호수를 만난다. 이 호수는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데 목적지인 밀퍼드사운드로 가는 길이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쩌면 이 여정은 사라진 흔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밀퍼드사운드까지 가는 동안 관심을 두게 되는 것은, 한때 아름다웠던 것들과 유용했던 것들 그리고 이 땅을 누비고 살았던 것들이 사라져버린 흔적이다. 테아나우 호수를 따라 버스가 달리면 몸통이 가늘게 생긴 마누카 나무, 야자수 같은 양배추나무 군락을 지나 너도밤나무 숲을 스치기도 한다. 이 숲에서도 사라진 것들이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하스트수리라는 독수리와 그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던 모아새다. 하스트수리는 무게가 13킬로그램, 날개 길이는 3미터 정도였으며 발톱이 6센티나 된다고 한다. 마치 보들레르의 시에 나오는 앨버트로스가 연상되는 큰 새다. 이 독수리의 먹이였던 모아새는 타조와 비슷한데 몸집이 훨씬 더 컸다고 한다. 키가 4미터가 되는 큰 몸집도 있다고 하는데 하스트수리가 이 모아새를 먹이로 했다고 하니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마오리인들이 모아새를 사냥해 식량으로 쓰다 보니 멸종되었는데, 모아새를 먹이로 했던 하스트수리도 당연히 사라졌다. 이렇게 두 종류의 조류가 사라진 배경을 들으며 숲 사이로 설핏 보이던 에글린턴 강을 스친다.

  버스는 광활하고 웅장한 에글린턴 플랫을 지나 아름다운 이름의 ‘거울 호수’에 이른다. 호수에 데칼코마니처럼 새겨지는 높은 산들은 날씨가 맑아 깔끔하게 반영된다. 거기에다 잘 번진 물감처럼 구름은 한껏 그 풍경을 멋스럽게 이어준다. 호수는 아주 작고 협소하지만, 죽은 나무가 호수 속에 넘어진 채 오래 잠자고 있기도 해서 시간의 깊이까지 만져진다.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는 장면을 저장해둔 호수를 떠나 곧 놉스플랫을 지나는데 이곳은 남위 45도라고 한다. 그러니까 적도에서 남극점까지 딱 절반인 셈이다.

  버스는 지치지 않고 계속 달려 해발 480미터에 있는 건(Gunn) 호수에 이른다. 이 호수의 이름은 처음 이곳을 발견한 양목장주였던 ‘조지 건’(George Gunn)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미 사라진 한 사람의 이름을 호수가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다. 이 호수의 도로 건너 오른쪽에는 퍼거스 호수가 있다. 숲 사이로 호수가 언뜻언뜻 보였다가 버스는 이내 두 호수를 벗어난다. 이 길은 험준한 산맥이 이어져서 끊임없이 볼거리를 준다. 산꼭대기에 하얗게 얹힌 만년설까지 그 느낌은 비현실적이다. 

  험준한 바위산인 크리스티나 산에도 산과 산이 겹치는 골짜기 사이로 하얀 만년설이 보인다. 그러나 만년설도 많이 녹아내려 정상 부분에만 남아있다. 햇살은 아주 강렬하고 2차선 도로는 끝없이 이어진다. 이제 나무들이 이끼를 뒤집어쓰기 시작하고 그런 숲의 모습은 태고의 흔적을 안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모습을 보면 이끼가 나무를 죽게 한다는 오해를 하겠지만 사실 이끼 때문에 나무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어가는 나무에 이끼가 터를 잡고 자란다고 한다. 사라지는 것과 새로 살아지는 것의 묘한 교차다.

  버스는 이제 아주 작고 네모진 터널 앞에 정차하는데, 호머 터널(Homer Tunnel)이다. 이곳은 좁아서 편도 운행만 가능한데, 이곳을 통과하면 밀퍼드사운드가 아주 가까워진다. 밀퍼드사운드는 퀸즈타운에서 300킬로미터의 거리에 있는 곳인데, 밀퍼드사운드 선착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변의 절경에 탄복하게 된다. 흰 눈이 얹힌 삼각형의 바위산과 그 산과 이어지는 절벽의 풍치가 푸른 바다와 참으로 놀라운 영상을 보여준다. 승선 카드를 내고 배에 오르면 선상 앞자리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지고 어느새 선상 의자엔 사람들로 메워진다. 배가 떠나자마자 오른쪽에서 바로 거대한 폭포를 만나기 때문에 승객들은 모두 흥분 상태다. 거세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카메라에 담으려 애쓰지만 좀처럼 그 모습이 사실적으로 담기지 않는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폭포 소리는 사라지는 눈(雪)의 통곡처럼 들리기도 한다.

  만년설이 녹아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물살은 얇게 퍼지면서 천사의 날개처럼 보드랍게 땅으로 떨어지고 물보라가 승객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다. 배가 그곳에 잠깐 머물기 때문에, 크나큰 천사 깃털이 천상에서 펼쳐지는 모습에 감탄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러나 이 폭포수의 물보라를 온몸으로 맞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밀퍼드사운드를 느끼게 된다. 사라지는 것에 이런 아름다운 날개가 있다니……. 폭포의 환상에서 정신이 몽롱해져 있으면 배는 어느덧 선착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밀퍼드사운드.jpg

   

  밀퍼드사운드로 오는 여정 동안 사라진 새들, 사라진 나무, 사라진 만년설, 그리고 사라진 사람들의 흔적을 짚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스쳐 지나다 보니 문득 생기는 질문들. 내가 사라지면 어떤 흔적이 남을까. 나는 왜 왔다가 사라지는 걸까. 나는 또 어디서 온 걸까. 이런 근원적인 질문들이, 차창 유리에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굴러다닌다. 시를 궁글릴 때처럼, 시의 의미를 새겨볼 때처럼……. 세계를 향한 숱한 질문들뿐 아니라, 이 빗방울의 추락까지도 내가 시를 쓰는 이유라고 해도 될까.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

   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

   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

   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


   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


   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

 

   연기들은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
   뿌리들은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
   별들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
   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
   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
   새들은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
   왜 나뭇잎은 푸른색일까.

​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 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 사라질 뿐.

ㅡ 파블로 네루다,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전문

     

  도마뱀이나 소금과 석탄 같은 자연물의 근원이 궁금한 것처럼 우리의 근원도 자못 궁금하다. 이런 모든 질문은 궁극적으로 나를 향한 질문일 것이므로 밀퍼드사운드로 오는 동안 어떤 흔적으로 보았던, ‘사라진 것들’에 대한 생각 또한 나의 사라짐에 대한 질문이었음이 명백해진다. 돌아가는 길에는 버스가 따로 멈추지 않는다는 기사의 안내방송을 들으며 또렷한 정신으로 그 모든 풍경을 다시 복습하려 애쓴다. 그러나 차창 밖의 풍경으로 남은, 사라진 것들의 허밍이 자장가처럼 버스 안을 나른하게 한다. 결국 우리는 숱한 질문을 퍼붓다가 그 질문의 답을 영원히 유보한 채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던가. 이 아름다운 소멸의 흔적들 사이로 버스는 계속 달린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존재의 소멸에 대해 더 골몰하기도 전에 어느덧 나의 ‘흔들 잠’은 더욱 깊은 어떤 곳으로 나를 데려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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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l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음. 현재 명지대·단국대 강의, 《세계일보》 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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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호(VOL.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