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최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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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꽃
최휘
버릇은 나팔꽃인가?
매일 피어난다
자꾸 피어난다
혼나도 피어난다, 보라로
반성해도 피어난다, 하양으로
비 온 뒤 나팔꽃처럼, 활짝
뚜뚜
아침마다 나팔을 불어대는 나팔꽃
뚜뚜
내 몸에 뿌리를 내리는 버릇꽃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니다
벌벌 떤다
까닥까닥 흔든다
흔들고 있는 것만이 다리라는 듯
흔들지 않으면 다리가 아니라는 듯
다리를 타고 나팔꽃 기어오른다
안녕하세요, 최휘입니다. 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결심이란 걸 하게 됩니다. 결심을 하면 원초적 생동감에 젖어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결심’이라는 말은 언어의 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뿌리를 뒤흔들며 나를 향해 파고드는 체험이 사라졌습니다. 새해가 되면 일상적 언어가 되어버린 인사말을 계속 만나게 되는데 언어는 생활을 위반할 수 없는 걸까요? 그래서 우리는 딱딱해진 언어를 애써 손바닥으로 녹이며 진짜를 만나기 위해 책상 앞에 다시 앉게 되는 걸까요?
이런 것이 반복되면 버릇이 되고 한번 몸에 달라붙은 버릇은 좀체로 떨어져 나가질 않습니다. 다 큰 어른이 무의식적으로 다리를 벌벌 떨고 있는 걸 보면 저 버릇이 얼마나 오래 저 몸에 붙어살았을까 하며 상상에 잠기곤 합니다. “다리 좀 떨지 마” 라는 말도 버릇처럼 하다 보니 저에게도 그 몸을 보며 상상하는 버릇이 생긴 거지요. 오래된 것은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고, 뿌리를 내리면 기어이 삐죽삐죽 땅을 뚫고 나오게 되고, 일단 삐죽 나왔다면 해를 향해 뻗어가는 식물처럼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될 거예요. 난 그 버릇에게 꽃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버릇꽃! “벌벌 떨고” “까닥까닥 흔들”며 꽃이 핍니다. “흔들고 있는 것만이” 꽃이라는 듯, “흔들리지 않으면” 꽃이 아니라는 듯. 버릇과 꽃이라는 단어는 멀지만 한자리에 묶음으로써 버릇꽃을 체험해 보면 어떨까요?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버릇을 몸의 기억과 정서로, 살아 있는 그대로 느껴 봅니다. 고치고 싶은 나쁜 버릇에게 꽃을 붙여준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구요?
버릇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할 수 없는 저 이상한 몸짓을, 버릇이라는 이름으로 한정하는 순간 버릇이라는 실체는 더 감쪽같이 숨어버리는 게 이상하지요. 몸에 붙어살다가 언제 왜 나타나는 건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마치 몸속에 오래 머물며 숙성되었다가 언제인지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시의 언어와 비슷한 구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격렬하게 뒤틀리고 구겨지는 몸부림 같은 버릇은 “다리 좀 떨지 마” 하는 순간 깃털처럼 화들짝 날아가 버립니다. 몸에 붙여놓으려는 힘과 날아가려는 힘의 충돌도 없이 사라지고 말지요. 시 한 문장을 받아 모을 때 잠시 딴생각이 스치기만 해도 화르륵 날아가 버리는 경험과 참 유사합니다. 좋은 버릇 나쁜 버릇 모두 몸속에 사는 생명체라는 생각으로 “버릇꽃”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니, 어느 날 저도 ‘버릇꽃’이라는 시 한 편을 화르륵 얻게 되었습니다. ♣

최 휘 l
2012년 《시로여는세상》 등단. 동시집 『여름 아이』,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난, 여름』이 있음.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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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호(VOL.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