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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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정치가 타락할 때 시가 정화한다

 

 

 

 

   미국의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은 연설 도중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치가 타락할 때, 시가 정화한다” 그리고 “언어는 중요하다”. 가장 권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바로 시의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영문학자 해롤드 블룸(Harold Bloom)이 시란 참으로 실용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시는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물론 블룸의 그 말은 역설적인 것이다. 시의 용도는 그 철저한 무용성에 있다고 말했던 것이니 쓸모의 있음과 없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드는 자세 자체를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지도자가 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케네디는 탁월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케네디의 시대를 미국의 황금시대라고 불러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대선 정국이라 불리는 요즘, 참으로 간절히 시인의 언어가 그리워진다. 공기가 탁한 곳에 있다가 소나무 숲으로 가면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계속 쏟아지는 뉴스 때문에 숨이 막히는 듯하다. 그때 한 줄의 시가 산소처럼 다가온다. 부정, 뇌물, 비리, 허위, 표절……. 그런 어휘들을 매일 접해야 하는 현실이 힘들다. 정치적 선동의 언어들은 거칠고 과격하다. 자극적인 말이 야기하는 강렬한 심리적 반응과 격앙된 정서가 정치의 장에서는 요긴한 것인가 보다. 주변 사람들도 이구동성이다. 정치란 모름지기 국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듯하여 괴롭다고 한다. 권력이란 한때 잠시 주어지는 것이라 순명하는 태도를 지니라고 선인들이 가르쳐 주지 않았던가? 더욱이나 우리 현대사에는 권력의 덧없음을 직접 증명하는 사건들이 많다.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에서 물러난 이후 편안한 노후를 보낸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향한 열망은 드세기만 해 보인다. 만물은 성한 후엔 쇠하는 일만 남긴다. 빛나던 해도 언젠가는 서편으로 지게 마련이고 물도 흘러 바다로 간다. 최충임의 시조가 그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백일은 서산에 지고 황하는 동해로 든다

   고래영웅(古來英雄)은 북망으로 드단말가

   두어라, 만물성쇠니 한할 줄이 이시랴

   ㅡ 최충임

  

  

  혹자는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 있음을 한탄하고 또 혹자는 권력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자찬하기도 한다. 최충임이 권력의 덧없음을 그렸다면 이황은 권력을 아예 탐하지 않는 자의 모습을 노래했다. 권력의 소용돌이에서 멀리 떨어져서 초야에 묻혀 사는 자, 그 영혼의 자유로움을 더욱 소중히 여긴다.

 

 

   이런들 엇더하며 져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愚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물며 천석고맹(泉石膏盲)을 곳쳐 무삼하리

   ㅡ 이황

 

  

 권력에 대한 열망을 지닌 이라면 최소한 대중 앞에서 사용하는 정치적 설득의 언어라도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용하는 말은 그의 인격과 교양, 교육 수준 등을 바로 드러내게 마련이다. 유사어들 중에서도 어떤 종류의 단어들을 골라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담는가 에 따라 그 발화자의 인품을 가늠해볼 수 있는 것이다. 현실이 거칠고 삶이 고달프더라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만큼은 순해졌으면 좋겠다.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이나 토론에 사용되는 어휘들이 좀 더 품위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정제된 언어로 새로운 비전을 펼치는 지도자들이 오히려 의지박약이나 추진력 부족의 인물로 간주 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온갖 매체에 넘쳐나는 선동의 말들로 인하여 마음이 안정을 찾기가 어려운 때이다. 삼복 여름 아니고 영하 10도의 엄동설한이건만 무덥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간절히 시가 그립다. 마음은 어느새 백수(白水) 시인의 언어가 펼쳐내는 어느 연밭으로 달려가고 있다. 텍스트의 공간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어 기꺼이 독자에게 쉬어 갈 자리를 내어준다.

  

    

   삼복 무더운 날엔 연밭으로 와 보아라

   무더운 세상사보단 훨씬 더 서느로운

   멧방석만큼 한 잎을 훈풍 속에 볼 것이다.

 

   서천 서역국쯤에서 날아온 그 연잎이

   아마 또 그쯤에서 실어 온 그 바람을

   우리네 눈을 씻어라 펼쳐 보일 것이다.

 

   이 세상 젤 큰 잎들에 이 세상 젤 밝은 꽃

   노니는 잉어바람도 기름처럼 매끄럽고

   하늘도 열고 선 못물을 금시 보아 낼 것이다.

    ㅡ 정완영, 「연밭에서」

  

  

  과연 시적 공간에 전개되는 상상 속의 연밭에서는 지친 영혼을 맑게 해줄 만큼 시원한 바람을 마주치게 된다. 연밭에서 자라나는 커다란 연 잎사귀와 밝고 환한 연꽃을 바라보노라면 이 세상 모든 일들이 덧없어 보일 것 같다. 무엇이 그리 사무치도록 타도할 대상일 것이며 무엇이 도저히 용납 못할 것인지 의아해지기도 할 것 같다.

  그처럼 초월적인 것을 꿈꾸기 어렵다면 정치 현실의 언어라도 조금 시적인 것으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현실에서 사용되는 구호 만이라도 조금은 시적이었으면 좋겠다. 프랑스 정치인이 외쳤던 “강한 프랑스(France Forte)” 같은 구호처럼 말이다. France와 Forte에 공통되게 등장하는 F 와 R 자음이 그 구호를 조금은 특별하게 만든다. 동일한 음가를 반복하게 함으로써 짧고도 선명한 전언을 부각 되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하게 바라는 것은 케네디 대통령처럼 문화의 힘을 믿는 국가 지도자가 탄생하는 것이다. 모두가 경제와 실용성만을 이야기할 때 거꾸로 시가 사회를 정화한다고 외치는 이를 보고 싶다. 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희망과 위로의 가치를 이해하는 지도자를 만나고 싶다. 정완영 시인이 “연밭으로 와 보아라”고 이르듯 함께 좀 더 문화적으로 세련된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외치는 정치인을 보고 싶다. 백수 시인이 연밭에서 펼쳐지는 환한 시간을 그려내듯이 함께 노력하여 이루어낼 멋진 국가의 비전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 세상 젤 큰 잎들과 이 세상 젤 밝은 꽃을 보여주면서, 더 나아가 “노니는 잉어”조차 제시하면서 독자로하여금 연밭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경제 위기에 처하여, 그리고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을 마주하면서 척박한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천불 국민소득, 백만불 수출” 구호를 내걸었던 1960년대나 70년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 국민들에게 얼마씩 돈을 주겠다는 공약을 경쟁하듯 내거는 후보들을 보면서 필자는 케네디 대통령의 음성이 다시 그리워진다. “정치가 타락할 때 시가 정화한다!”

 

 

 

                            

   참고한 글

   김천택 편, 홍문표 강중탁 역주, 『청구영언(상)』, 명지대학교 출판부, 1995, 59면·8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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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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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