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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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수호 

 

 

 

 

 

나로부터 태어난 바람을 묻다

ㅡ 티베트의 장체 가는 길

 

        

 

   

   

  눈앞에 포탈라궁이 우뚝하다. 한눈에 그 웅장함이 드러나는 포탈라궁은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을 통해 좀 익숙해져 있다. 멀리서부터 오체투지로 찾아오는 순례자의 숭엄한 모습이 보인다. 손바닥에 딱딱한 판자를 대고 무릎에도 고무를 댄 그들의 초췌한 모습에 지극함이 묻어 있다. 금빛 마니차를 돌리며 들어오는 티베트인들의 모습 또한 진지하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릴 때마다 그 속에 든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같은 의미라니, 글자를 모르는 그들에게 이런 믿음은 긍정적인 자기 격려다.

  포탈라궁은 고도 3,700m나 되는 위치에 있다. 높이가 13층이며 1,000칸이 넘는 방이 있다. 1959년 중국이 침략하여 14대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기 전까지 그의 거주지 였으므로, 화려한 보석 치장의 내부에는 곳곳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명의 길을 떠도는 14대 달라이 라마의 빈 좌석은 유난히 쓸쓸하다. 내부 공간은 좁고 어두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려 산소가 희박해진다.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에서 지침과 어지럼증으로 바뀌는 이유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라싸시는 단정하고 깨끗한 도시이다. 황량한 산과는 대조적으로 푸른 나무가 울창하고 건물들이 계획도시처럼 단정하게 늘어서 있다.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달라이 라마가 망원경으로 사람들을 구경하던 옥상은 특별한 감회가 느껴진다.

  포탈라궁이 있는 라싸에서 야리장부강을 따라가다가 다리를 건너게 되면 왼쪽 길은 공항으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 길이 캄바라산을 오르는 비포장길이다. 나의 흥분은 그 오른쪽 커브에 있다. 그런데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 심호흡을 해야 한다. 고산병의 위협으로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당부도 있었지만, 어떤 고조된 감정을 숨기며 입을 다물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던 황량한 산을 오른다. 아슬한 외길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따라오고, 차창 밖은 천길 낭떠러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이지만 나지막한 키의 고산 지역 꽃들은 종류와 형태가 다양하다. 보랏빛 꽃 무더기를 스칠 때는 후지와라 신야의 『티베트 방랑』에서의 그 신비한 보랏빛 꽃이 아닐까 몰입했다. 이런 연결은 어쩌면 의미가 배제된 나의 사소한 순간들이 내 미래의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꽃을 보았다.

꽃의 색깔은…… 전부터 몰두해 왔던…… 그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갈색이 도는 보랏빛의 희미한 반점…… 을 드러내고 있었다. 거기에 드러난 작고 희미한 보랏빛 낚시 방울 모양을 한 것은 예전에 이 불모의 모래 자갈 지대를 달리는 버스의 승객이었을 때부터 나의 염두를 떠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뭔가 먼 과거, 나라고 하는 하나의 생명이 형성될 무렵에 이미 나의 육체의 텅 빈 틈새에 주입되어, 저항하기 어려운 어떤 의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죽음이 찾아와 어떤 사람의 심신을 재촉할 찰나에, 그의 의식이 자신의 과거의 한 점에 집중되는 일이 있듯이…… 나는, 나의 ‘거리(街)’에서 홀연 영겁에 떨어져, 이 어두운 조간산(潮干山) 기슭에서 그 희미한 보랏빛 낚시 방울 모양의 꽃을 보면서, 아직 세계의 형상이 구축되기 전, 의미가 배제된, 어떤 엷은 채색의, 내 과거의 한순간을 보았다.

꽃은 희미하게 흔들렸다.

ㅡ 후지와라 신야의 『티베트방랑』의 「먼 곳의 채색」 중에서

     

  해발 4,794m의 캄바라산 정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해발 4,250미터의 높이에 위치하는 얌드록쵸 호수이다. 그 푸름은 수채화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투명하다. 멀리 히말라야의 만년설도 보인다. 사방 어느 곳을 보아도 경이로움 뿐이다. 버스가 지나온 길을 내려다본다. 하얀 실뱀이 따라온 듯한 좁은 흙길에 먼지를 일으키며 두어 대의 차가 오르고 있다. 그 길은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지그재그 길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영화 속의 길처럼 각을 가진 것이 아니라 곡선의 흐름을 가진 나선형의 길이다. 산은 여전히 돌과 흙뿐이다. 버스가 달려온 길이 아득하여 현기증이 일지만, 주위의 풍광에 취하여 고산병을 잊은 지 오래다. 맞은편 산 중턱에는 하얀 양 떼가 꼬물거린다.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그 양 떼뿐인 황량하고 딱딱한 산이다. 호숫가의 노란 유채밭도 그 환한 원색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찬바람이 들이치는 버스에서 내리면 화려한 안장을 한 야크가 기다린다. 뿔에는 둥근 방울을 달고 꼬리 언저리에는 핑크색 리본을 매었다. 머리에는 붉은 깃털을 달았고 털은 텁수룩하다. 고삐를 끌고 선 현지인 부부가 야크를 타고 사진을 찍으라고 권한다. 새까만 털에 순하게 움직이는 야크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그 부부의 눈빛에 무너진다. 특히 장족 여인의 순한 눈빛은 거절할 수 없는 권유다. 마스크를 눈언저리까지 덮고 있어서 그 편안한 눈매만이 얼굴의 전부지만 그 눈에는 웃는 입도 보이고 불그레한 뺨도 보였다. 비틀거리며 야크의 등에 오르고 그 뭉클하고 딱딱한 등의 야성적인 느낌을 엉거주춤 느끼며 짧은 거리를 한 바퀴 돌았다. 캄바라산 부부의 삶의 방식은 그 눈빛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고산을 넘는 외국 관광객과 대화는 어렵지만 그들은 구릿빛 얼굴과 깊은 미소로 소통한다. 그리고 지폐 한 장을 건네면 그들의 표정은 이내 환해진다.

  산 정상에 어김없이 걸려 있는 룽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원이다. 룽다는 바람(風)이란 뜻의 '룽'과 말(馬)을 의미하는 '다'가 합쳐진 티베트어다. 룽다는 경전이 적혀 있는 깃발로 티베트의 어디서든 쉬이 볼 수 있다. 룽다가 한번 펄럭일 때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기 적힌 경구를 한번 읽는 의미가 된다. 펄럭이는 룽다를 올려다보며 얌드록쵸 호숫가에 잠깐 차를 세우고 맑고 푸른 물빛 속으로 손을 담근다. 산 중턱의 노란 유채 군락은 회색 산을 배경으로 해서 더 환하게 보인다. 그러나 우정남로를 달리기 시작하면 종종 놀라운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므로 서둘러야 한다.

  왼편 옆구리에 얌드록쵸를 끼고 황량한 산이 햇살에 깡깡 말라가는 굽이를 돌아 나오자, 새롭게 확 펼쳐지는 평원에서 어마어마한 야생화 향연이 펼쳐졌다. 축축한 늪을 뒤덮은 나지막한 꽃들은 도무지 본 적도 없고 이름도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꿀풀과 유사한 보랏빛 꽃과 애기똥풀처럼 노란 꽃, 구름국화 모양의 얼굴이 작고 애틋한 꽃까지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것은 쨍쨍한 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뭉실거리며 피어오르는 흰 구름과 갈색 산 그리고 얌드록쵸의 물빛까지 어우러져 각자의 목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듯했다.

  야크 똥이 덕지덕지 발린 담벼락에 서서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일행 중 한 여성 시인의 심한 고산 증세 때문이었다. 메줏덩이 같기도 하고 도토리묵을 양푼이에 앉힌 것 같기도 한 야크 똥은 담장에 따개비처럼 붙어 있거나 담장 위에 겹겹이 포개져 얹혀 있다. 이것은 그네들의 연료이다. 간혹 야크 똥 위에 얹힌 염소 똥은 초코머핀 위에 얹힌 초콜릿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더욱 재밌는 것은 그 똥을 배경으로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댄다는 거다. 악취가 날 법도 한데 햇빛이 워낙 강한 탓인지 전혀 냄새는 없다. 건너편 들판엔 흰 감자와 자주감자가 그 꽃 빛깔을 선명히 구분하며 흐드러졌고 어디를 가나 들판은 보리의 수염으로 물결친다. 동행했던 송재학 시인은 이때쯤 이 시를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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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크 똥에게 '너 잘 씻고 있어' 다독이다가 오래된 평화 때문에 같이 담벼락에 기대고 만다 암드록쵸호수 너머 햇빛을 견디는 골목이었다 야크 똥은 메주처럼 잘 말라가고 있다 콩인지 뭔지 낮달 같은 알갱이가 티베트 문자와 함께 박힌 메줏덩이를 햇빛이 보릿단으로 뾰독뾰독 씻어낸다 반짝거리니까 껍질과 속살 사이 유채밭 경작지가 자꾸 넓어지고 있다 두꺼운 목판본 바람까지 밀봉되었다 집집마다 수천 장 야크 똥이 담장이며 지붕을 덮고 있다 불을 지피기도 전에 온돌처럼 데워졌다 어린 시절 돼지 축사에서 맡았던 더럽고 역겨운 냄새는 오해였던 거야 참으로 에워서 돌아가는 먼 길이구나 냄새여, 메마른 땅에서 수행하는 라마여, 초근목피 드문 곳의 땔감이었으니 나무 타는 냄새와 닮았다

ㅡ 송재학 시인의 「야크 똥」전문

       

  1950년산이라는 툴툴대는 버스에 올라 감격의 고산 만년설을 향해 다가갔다. 제법 물살이 센 계곡물을 만나면서 빙산을 예감했고 그것이 눈이 녹은 물이라는 것을 유추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멀리 희끗한 산봉우리가 흥분의 뉴런을 지그시 밟을 무렵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고 바로 앞에 불쑥 나타난 만년설과 빙산의 실체에 흥분했다. 가이드는 열심히 빙산과 만년설을 구분 설명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텁수룩한 장족인이 은근히 다가와 담배를 얻어 피우며 사진 모델이 되어 주기도 했다. 산은 여전히 물기를 갈구하며 쩍쩍 갈라져 있는데 산봉우리에서 7부 능선쯤까지 내려온 하얀 눈을 경이와 환희의 심정으로 올려다봤다. 구름은 빠르게 머리 위를 지나가고 주변이 점점 어두워졌다. 고산기후답게 마침내 하얀 우박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쉬이 녹지도 않고 돌돌돌 마른 바닥 위에 굴렀다. 기다리던 장족인 버스 기사가 며칠 동안 배운 한 마디를 외친다.

  “갑시다!”

  후덕하고 넉넉해 보이는 장족 기사가 외치는 이 외마디는 친근하고 따스하다. ‘갑시다’는 나도 가고 너도 가는 동료의식을 함유한 말이다. 낯선 이방인이 쓴 우리 말의 묘한 감회였던 것이다. 우박은 비로 바뀌고 차는 점점 더 세어진 빗줄기 속을 헤치며 마침내 차창을 열 수 없을 정도의 소나기로 변한 산등성이를 오르고 있었다.

   

   그 여자 검은 옷 입은 것은
   마음을 감추기 위한 게 아니라네
   장체 가는 길 황무지는 너무 어두워
   그 여자 가슴 속 환한 빛이
   사람들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라네

   그 여자 검은 옷을 입어도
   금강봄맞이랑 용머리는
   날줄 씨줄 사이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그녀의 빛을 받아 꽃핀다네

   장체 가는 길
   마음이 맑은 사람들은 안다네
   그녀의 검은 옷 아래 빛나는
   밝은 마음이 이 황무지를
   편안하게 한다는 사실을

ㅡ 김양헌 평론가의 「장체 가는 길」 전문

    

  작고하신 김양헌 평론가는 여행을 하는 동안 틈만 나면 시를 써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낭독했다. 동행한 작가들에게 바치는 헌시 였다. 그의 따뜻한 시들은 여행에 지친 일행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담았다. 버스 안에서 시가 낭송될 동안 버스는 넓은 평원을 지나 가팔막진 댐의 언저리 길을 꼬불거리며 장체로 향했다. 어지간히 흥분이 가라앉을 즈음 ‘장체’라는 먼지에 휩싸인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멀리 붉은 성(城)으로 둘러쳐진 간체종이 보인다. 목적지가 쿰붐사원이어서 간체종을 지나쳐 흙먼지 날리는 장체의 길을 걸었다. 하늘은 검게 내려앉아 거리의 먼지와 뒤섞인다. 몇몇 남자들은 거리에 앉아 놀음을 하고 아이들은 당구를 치고 있다. 놀음하는 남자들 곁에는 작은 물통이 하나씩 놓여 있고 중절모를 눌러쓰고 동전 내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짐을 실은 마차가 두어 대 지나갔고 인력거가 딸랑거리며 지나다닌다.

  장체에 가면 개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늑대처럼 큼지막한 개들이 모여 능큼능큼 누워 장난을 치며 소리 없는 위협을 가한다. 여자들은 거리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가로수와 가로수를 걸쳐 쳐진 빨랫줄에 빠는 둥 만 둥한 빨래가 몇 개 날린다. 기억이 가물한 어린 시절의 골목길 같기도 한 그 정겨운 장체의 길을 걸어 들어간다. 어리던 때의 한순간을 휘돌아온 바람이 거리의 먼지와 쓰레기들을 몰고 와 바닥에 패대기친다. 아이들은 콘크리트 원통형 맨홀 위를 기어오르고, 담장 아래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아낙은 작은 마니석을 팔고 있다. 그녀는 연거푸 돌에 새겨진 짧은 문구를 읊조린다.

  “오마니밤메훔, 오마니밤메훔”

  사원 안에는 여느 사원과 다름없이 야크 기름의 심지에서 타오르는 느글한 냄새가 풍긴다. 사원을 돌아볼 동안 차츰 나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마침내 나는 사원의 시멘트 바닥에 누워 버렸다. 잔뜩 구름 낀 하늘이 휘청거렸다. 어쩔 수 없이 예정에 없던 인력거를 탔다. 일행들은 서로의 안색을 걱정하며, 지금까지의 투숙호텔 중 가장 허름한 곳으로 들어갔다. 씻지도 않고 곯아 떨어졌는데, 세상에서 가장 깊은 잠을 잤던 밤이다. 아마 그날 밤 들판에는 룽다를 흔드는 바람이 쉼 없이 불었을 것이다. 티베트의 황량한 들판을 달릴 때도, 얌드록쵸 호수 변에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를 바라볼 때도, 그리고 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도, 불경을 대신 읽어주는 티베트의 바람은, 나로부터 태어난 바람을 묻거나[問] 혹은 묻어 버리고[埋] 있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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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l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음. 현재 명지대·단국대 강의, 《세계일보》 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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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