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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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의 경계,
초현실을 노래하다
우리는 잠을 자는 동안 꿈을 꾼다. 꿈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체험으로부터 나온다. 그 때문에 기억의 조각으로 구성된 현실의 모조품으로 인식된다. 고대인들은 꿈을 자신들이 믿는 초인간적 세계와 관계있으며, 신과 악령들의 계시라고 믿었다. 꿈을 심리학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때부터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꿈이 초자연적 계시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성(神性)과 유사한 인간의 정신 법칙, 즉 잠자고 있는 사람의 정신 활동으로 정의하였다. 하지만 꿈을 ‘신의 계시’라는 입장과 ‘인간의 정신 활동’이라고 보는 대립적 주장은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꿈을 ‘억압된 욕망의 산물’이라고 본 것은 오스트리아의 의사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였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심리적인 원인에 의해서 결정되며, 그 행동은 의식적 요소보다는 무의식(unconscious)에 의해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하루 종일 저지나 억압에 의해서 축적되어 온 심적 에너지는 밤이 되면 꿈의 원동력이 된다. 꿈속에서는 심리적으로 억압된 것이 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라고 그는 자신의 책 『꿈의 해석(Dream Psychology)』을 통해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이 책을 통해 꿈을 미신이 아닌 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는 인간 무의식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들여다보는 시발점이 됐다.
프로이트가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소개한 지 한 세기가 훨씬 지났지만, 꿈의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학문과 문화에 큰 영향을 준 프로이트의 꿈 연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가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20세기 정신 의학은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무의식과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신경학과 정신 분석의 합성어인 ‘신경 정신 분석’이란 용어도 생겨 났다. 이를 처음 주창한 남아공의 뇌신경 학자 마크 솜즈(Mark Solms)는 도파민과 보상 체계가 꿈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도파민의 양이 적을수록 꿈을 적게 꾸고, 도파민의 양이 늘어나면 꿈꾸는 시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꿈은 무작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으로 활성화되는 보상 체계에 의해 생성되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꿈이야말로 과거와 미래를 통합하는 생존의 도구라는 학설도 등장했다. 강렬한 경험은 시냅스(Synapse, 한 뉴런에서 다른 뉴런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부)의 연결을 강화해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의 꿈을 반복해 꾸게 한다. 생존과 관련된 정보일수록 다양한 형태로 시뮬레이션 되어 예언적인 꿈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꿈은 자신을 위험 상황에서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시뮬레이션 과정이라는 주장이다. 이처럼 꿈에 대한 인류의 갈증은 아직껏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 있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업했던 꿈풀이[解夢]도 ‘사주 명리’나 ‘점성술’처럼 여전히 건재하다.
그런데 우리는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도 꿈을 꾼다. 잠을 자면서 꾸는 꿈은 ‘정신 현상’을 일컫지만, 깨어 있을 때 꾸는 꿈은 ‘이루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기대’ 같은 것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이다. 총체적 인간 욕망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나는 밤에 꿈을 꾸지 않는다. 나는 하루 종일 꿈을 꾼다”고 했던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나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어릴 때부터 꾸어온 것이든, 성장한 후에 새롭게 설계한 꿈이든, 종류와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 그 꿈을 실현한 사람은 실제로 많지 않다. 그래서 꿈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헛된 기대나 생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꿈은 대체로 추상적이지만, 그것을 ‘내가 해야 할 일’로 구체화하면 꿈에 이르기 위한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좌절이나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여기서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꿈은 개인적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꿈을 꿀 수 없는 사회는 곧 희망이 사라진 세상을 의미한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얼마나 불행한 세상인가. 지옥이 존재한다면 그런 세상일 것이다. 꿈이 없다는 것은 희망도 없고, 미래도 없음이다. 그런 이유로 꿈을 잃어버렸거나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 꿈을 되찾아주는 사회, 우리는 그런 사회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꿈에 왓던 님이 깨여 보니 간듸 업내
탐탐(耽耽)이 괴던 사랑 날 바리고 어듸 간고
꿈속이 허사(虛事)ㅣ라만졍 쟈로 뵈게 하여라
『가곡원류(歌曲源流)』에 전하는 박효관의 이 시조는 ‘정신 활동’으로서의 꿈과 ‘현실의 소망’으로서의 꿈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다. 현대 표기법으로만 고친 이 시조를 현대어로 풀이해 보자. “꿈에 왔던 님이 깨어보니 간 데 없네 / 몹시도 사랑하던 날 버리고 어디 갔나 / 꿈속이 허사일망정 자주 뵈게 하여라”이다. 이 작품은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노래이다. 자신을 몹시도 사랑했던(사랑한다고 믿었던) 연인이 지금은 곁에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사무치는 그리움이 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꿈에서 깨어난 후의 헛헛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에서라도 자주 보이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발원은 그리움의 깊이를 충분히 가늠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여기서의 ‘꿈’은 임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는 초현실의 공간이면서 실현 불가능한 현실을 반전시키고 싶은 간절한 발원이기도 하다.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꿈을 대비시킨 대조적 표현이 꿈을 더욱 꿈처럼 느껴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시조의 작자인 박효관은 조선 고종 때의 가객(歌客)으로서 제자 안민영과 함께 856수의 시조 작품을 수집·정리하여 『가곡원류』를 편찬한 인물이다. 그의 생애는 생몰 연대조차 추정만 할 정도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안민영의 개인 가집 『금옥총부(金玉叢部)』 서문과 안민영의 시조를 통해 시와 노래, 술과 거문고, 그리고 바둑으로 일생을 보낸 풍류객이었던 것만 짐작할 수 있다. 박효관은 사직단 뒤쪽 인왕산 아래에 ‘운애산방(雲崖山房)’을 마련해 풍류를 즐기며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박효관이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자, 흥선대원군이 그에게 운애(雲崖)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운애산방’이란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흥선대원군 같은 당대 최고 권력자와 교유하면서 존경과 추앙을 받았지만, 박효관의 시조 창작은 가객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했다. 『가곡원류』에 13수의 시조만 남기고 있을 뿐, 개인 시조집은 없다. 그의 시조는 황진이나 기녀들의 작품처럼 시적 화자가 임과 이별하는 여인으로 설정된 시조들을 다수 남겼는데, ‘꿈’을 노래한 위의 시조도 그런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사에 얽매이지 않는 풍류객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박효관도 말년에 이르러서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꿈같다’고 했을 것만 같다.
창문마다 시계가 기린처럼 길어지고
노래를 잃은 그녀 오늘이 남았나요
당신은 가방을 심고
사과를 땄을 거야
기억의 공간에서 꿈들이 이어지죠
없는 사과가 가방에서 쏟아지는데
세상의 모서리에선
나는 이미지예요
나를 닮은 그녀가 나를 끌고 말해요
실재와 기억은 상상의 차이라고
사과 속 꽃나무들은
언제나 있었다고
당신의 정원에선 다른 내가 있었어요
나무가 호수 속에 코끼리로 태어나는
당신의 시간 속에서
꽃나무가 보였어요
-– 배경희, 「꿈-달리」 전문
프로이트에 의하면, 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같이 사회가 금기시해 온 재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꿈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들은 대체로 뒤틀리고 왜곡되어 나타난다. 도덕적 자아(ego)와 본능적 욕망(id)이 대치하면서 빚어지는 결과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검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문화 예술계에서도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는데, 그 대표적인 문예 사조가 초현실주의다. 초현실주의는 이전의 양식을 거부하고 파괴하는 다다이즘과 이성과 합리를 거부하고 꿈과 무의식을 중요시하는 사조다. 그들은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그대로 그리거나 손이 이끄는 대로 형태를 그려나가는 자동기술법을 애용했다. 그들의 작품은 사실적인 표현과 추상적 표현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특정한 대상을 상식의 맥락에서 떼어내 이질적인 상황에 배치함으로써 기이하고 낯선 장면을 연출하기 때문에 그림 속 이미지는 뒤틀리고 왜곡된다.
배경희 시인의 「꿈-달리」도 “창문마다 시계가 기린처럼 길어지”는 이미지의 왜곡을 보여준다. ‘달리’라는 부제가 붙은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스페인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초현실주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이자 달리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기억의 지속>(1931)이라는 작품 속 이미지들을 다수 차용하고 있다. 이 그림은 시계가 녹아 흘러내리는 상징으로 유명하다. 작품 속 화자는 스스로를 “세상의 모서리에” 있는 “이미지”라고 표현한다. 그 이미지는 “노래를 잃은 그녀”와 ‘닮아’ 있다. 그러면서 “실재와 기억은 상상의 차이”라고 말한다. 상상하는 대로 이미지가 만들어져 보여지듯 우리가 가진 강박과 편집증, 공포와 무의식에 의해 현실과 초현실이 서로 넘나들며 공존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무가 호수 속에 코끼리로 태어나는” “당신의 정원에” 있는 ‘다른 나’는 이드(id)인가, 에고(ego)인가. 그 모호한 정신세계를 시인은 이미지의 부정교합과 왜곡편집을 통해 우리를 초현실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것은 말이었지, 울음이었지
가장 먼저 잃은 것은 웃음이고, 눈물이고
아가야,
천사를 믿니?
네 꿈이 길어졌구나
하늘로 날아갔는지
보름달이 예뻐서
그물처럼 꿈을 엮어 거미집 만들어봐
멍든 몸 눕힐 수 있게
네 깃털로
손짓하렴
-– 김태경, 「드림캐쳐」 전문
한편, 김태경 시인은 어린아이가 평안한 잠에 빠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드림캐쳐」로 풀어내고 있다. 어린아이들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인형을 괴물로 착각하거나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도 같이 볼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그 때문에 어른보다 악몽을 꿀 가능성이 더 높다고 점쳐진다. 이러한 어린아이의 악몽을 쫓기 위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사용한 주술 도구가 드림캐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드림캐처의 원래 이름은 인디언 부족 중의 하나인 오지브와 언어로 ‘거미’를 뜻하는 아사비케시(Asabikeshiinh)라고 한다. 이는 거미 여신 아시비카시(Asibikaashi)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아시비카시는 어린아이들의 수호신인데, 오지브와의 영토가 넓어짐에 따라 모든 아이들을 찾아갈 수 없게 되자, 아이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버들가지와 동물 힘줄로 거미줄 모양을 모방한 주술 도구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어린이의 액막이를 위해 요람이나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고 불행을 쫓는 도구였지만 훗날 악몽을 쫓는 도구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김태경 시인의 “드림캐쳐” 또한 어린 영혼에게 악몽을 물리치고 편안한 꿈의 나라로 인도하려는 소망을 피력한다. 이 작품은 2020년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태어난 지 1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정인이’를 추모하는 글이다. “배우고 싶은 것은 말이었”고 “울음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먼저 잃은 것은 웃음이고, 눈물이”었던 아이. 꿈을 피워 보기도 전에 세상과 하직한 어린 영혼을 위령하는 시인의 마음은 비감에 젖어 있다. 꿈을 꾸지 못하기에 “꿈이 길어”진 아이러니 앞에서 시인은 “그물처럼 꿈을 엮어 거미집 만들어보”라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이 진술은 당연히 “드림캐쳐”를 형상화한 말이지만, 상처받은 육체와 영혼의 안식을 바라는 위령의 마음이기도 하다. 이 시조에 담긴 애초의 마음은 정인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세상의 모든 ‘귀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돌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특정 대상에 대한 한정된 이야기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상황으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무한한 희망과 가능성의 존재이다. 그들이 꿈을 꾼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희망으로 출렁인다는 뜻이고, 그들의 꿈이 실현된다는 것은 우리의 미래가 더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꿈이자 미래인 어린이들이 제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스러져버리는 비극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드림캐쳐”의 통성기도를 온 세상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임채성 l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메께라』,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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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