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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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수호 

 

 

 

 

 

모로코의 침묵 속으로 날아든 새

ㅡ 북아프리카 최대 로마 유적지 볼루빌리스(Volubilis)

 

        

 

 

   

   키 큰 알로에와 올리브 숲을 지났다. 붉은 열매를 매단 선인장도 스쳐왔다. 굽이굽이 길을 틀어서 버스는 드디어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볼루빌리스다. 모로코 수도인 라바트에서 로마 유적지인 볼루빌리스까지 약 2시간 30분 동안 버스로 이동한 것이다. 우리가 묵을 호텔은 수수한 마을 풍광에 비해 좀 화려하다. 날씨는 매우 더웠고 햇살도 강렬하여 팔이 따끔했다. 대추야자가 조롱조롱 열려 있는 호텔 마당도 뜨끈한 햇살 밭이다.

  호텔 방에 가방을 던져놓고 따가운 햇살에 대비한 완전 무장 차림으로 도착한 곳은 볼루빌리스 유적지다. 5분여 거리를 왔을 뿐인데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황량한 풍경과 만났다. 이곳은 북아프리카 최대의 로마 유적지이다. 기원전 3세기경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흔적이 남은 이곳, 돌의 뼈만 앙상한 뼈의 마을이다. 마치 2000년 전의 사람들이 유령이 되어 떠돌아다니는 듯한 스산한 이곳은 기둥들만 장엄하게 남아 있다. 카페가 있던 바닥의 타일 문양이나, 신전 터, 법원 터의 흔적들이 아스라한 몇 세기를 한순간에 지나오게 만든다.

  이 언덕의 뼈대는 바람을 보내기 위해 삭고 있는 것만 같다. 바람이 원하는 길을 다 내어주고 그 나머지로 뼈를 곧추세우고 있는 이 마을. 이곳에는 죽은 것들의 조각이 즐비하다. 시간은 많은 것을 조각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기에, 멀리 살아있는 삼나무 한 그루만 유일하게 싱싱하다. 사방 널브러져 있는 돌 조각, 기둥 조각, 가옥 조각들……. 저 조각난 것들의 말을 알아들으면 마을이 사라진 유래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볼루빌리스의 새벽은 동물들의 절규로 시작된다. 새, 닭, 양, 소, 칠면조뿐 아니라 생전 처음 들어보는 동물들의 울음이 이 언덕과 저 언덕을 이으며 일제히 들려온다.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가 저 소리로 상상되지 않았을까 싶게 울음소리는 온 들판을 흔든다. 이렇게 많은 울음소리를 들어본 적 있었던가. 동물이란 동물은 모두 깨어나 저렇게 제 생존을 확인하는 일처럼, 나도 내 목소리를 내질러야 하는 걸까? 우리는 왜 저런 울음을 일제히 울어본 적이 없었을까. 천지에 울음만 남은 것 같은 소리에 내 울음소리를 뒤섞고 싶지만, 나는 그 소리의 신비감에 사로잡혀 숨죽이며 들을 뿐이었다.

  호텔 앞은 끝없는 평원이다. 지평선에 삼나무 몇 그루가 하늘과 땅을 구획 짓고 있다. 멀리 몇 개의 불빛 외에 들판은 넓게 비어 있다. 검은 나무 그림자가 서서히 제 흉상부터 드러낼 때 새벽안개는 우듬지 끝부터 시작하여 나무의 전신을 더듬기 시작한다. 이 얼마나 숭고한 체위인가. 동물들의 울창한 울음에 올리브 숲이 숨을 죽이고, 가시 많은 선인장이나 알로에도 아직 제 성질을 드러내지 못한다. 나도 발소리를 죽인다. 땅과 하늘 사이, 동물들의 짖음과 외침 속에서 내 귀는 수용과 저항에 대해 생각한다. 받아들여야 할 것과 외면해야 할 것들, 사랑해야 할 것과 밀어내야 할 것들.

  소리가 눌러서 더 편편해진 언덕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조용하던 올리브잎이 일제히 사스락거린다. 대지는 옅은 안개를 흡입한다. 좁은 도로를 가끔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대자연의 정적을 울컥 흔들어놓고 간다. 어둠 속에서 슬금슬금 대지 위를 기어 다니던 숲이 제자리를 잡아 멈춰 선다. 이 새벽의 소란에 흥분하여 펜을 챙겨 아직 캄캄한 호텔 마당에 내려섰을 때, 그리고 호텔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귀에 들리는 어둠의 소리를 받아적고 있을 때, 저 건너에도 부스럭대는 또 하나의 반란군이 있었으니 ……. 그는 일행인 한 시인이었다.

  사람이 있겠다고 짐작하지 못했던 새벽어둠 속에 그는 어둠보다 더 깜깜한 몸으로 다가왔다. "일어났어요?" 짧은 인사 후 우리는 이내 잠잠해져서 서로가 바라보던 그 방향의 어둠을 다시 더듬는 일에 열중했다. 그도 이 새벽의 소란을 견디지 못한 이방인이다. 시인의 귀에 들려온 볼루빌리스의 소리, 시각이 마비된 세계에서 더욱 민감해진 청각의 대상들에 이끌려 마당으로 불려 나온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소리를 낼 때 시인은 가장 깊은 침묵 속으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제 목소리를 가장 진실하게 내는 새 한 마리가 시인의 상상력 속으로 날아들도록 기다려야 한다.

   

   새가 올 때는

   만약 새가 온다면

   깊이 침묵하면서

   새장 안으로 새가 들어가기를 기다려요

   새가 들어가면

   붓으로 가만히 문을 닫아요

   그러곤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워요

   새의 깃털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그 다음엔 나무를 그려요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서

   새를 위해,

   또한 푸른 잎들과 신선한 바람과

   태양 빛의 작은 알갱이,

   그리고 여름 더위 속 풀숲 벌레들의 소리를 그려요,

   그리고 이제 새가 스스로 노래 부르기를 기다려요

ㅡ 자크 프레베르,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부분

   

  밤새 어떤 광란이 다녀간 듯이 여운처럼 잎만 여리게 파닥이는 나무들이지만, 날이 활짝 새면 나무는 꼼짝없이 서 있을 제 자리를 정해야 한다. 무엇이 밤새 나무들을 꼬드겼는지 알 수 없다. 당나귀를 타고 나무들 사이로 일찍 어딘가를 가는 소녀의 표정은 사뭇 수줍고 따뜻하다. 당나귀를 부리는 솜씨 또한 여간 유하지 않다. 선인장 담벼락을 따라 또 한 마리의 당나귀가 짐을 싣고 간다. 선인장과 알로에와 올리브가 이 마을의 식물 가족사를 쓴다.

  어슬렁거리며 마을을 산책했다. 좁은 골목에 당나귀 분비물이 즐비하지만 지저분하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골목을 조금 올라가다 보니 음악이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허름한 카페가 있다.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다. 참 신기하게도 아침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다. 커피와 우유를 섞은 카푸치노와 머핀을 주문했다. 소란한 카페 앞으로 까만 히잡을 쓴 여인이 채찍을 들고 당나귀를 따라간다. 양과 젖소를 모는 소년도 한 떼를 이끌고 들판으로 나간다. 모두 부산한 아침을 열고 있다.

  이 카페를 즐겁게 하는 건 카페의 늙은 주인의 미소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닦으며 멋쩍게 웃는 표정이 사뭇 정겹다. 작은 모스크가 마을 끝에 보인다.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 빵과 커피로 식사 중이던 청년이 영어로 더듬더듬 친절한 안내를 한다. 그 남자의 눈빛은 투명하다. 공동 우물터에 벌써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 그들은 당나귀를 이용해 물을 실어 나른다. 물이 펑펑 쏟아지는 큰 파이프 아래 빨래를 하는 아낙, 물을 받는 소녀, 담소를 나누는 여인네들이 가득하다. 우물터는 주로 여자들의 공간이다.

좁고 비탈진 골목을 올랐다. 집과 골목의 경계에 선인장 열매가 꽃처럼 매달려 있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녀가 긴 장대로 선인장 열매를 따고 있다. 낯선 이에게 다소 경계하는 눈빛을 주면서 자신의 바구니에 열매를 따 담는 그녀의 손길은 느리고 평화롭다. 모스크를 지나 마을이 끝날 즈음 젊은 부부가 양 떼를 키우며 사는 꿈의 집이 있다. 그 집을 지나면 산이다.

  이 마을의 공격성은 모두 식물에 전이되어 있다. 사람과 동물의 눈빛은 순진하지만, 식물은 모두 뾰족한 가시를 갖고 있다. 선인장, 알로에, 하물며 잡풀들도 커다란 가시로 위협한다. 알로에 사이로 한 떼의 양들이 태연하게 풀을 뜯고 있다. 유독 이방인에게만 가시를 드러내는 식물에 자주 발가락이 찔린다. 그러나 머물러 있는 자들에겐 떠나는 자들이 모두 상처가 되니까 섣불리 정도 주지 않겠다는 경계의 행동으로 이해한다.

  볼루빌리스가 가진 소리. 바람이 유적지의 기둥들을 비껴가는 소리, 동물들이 일제히 아침을 여는 소리, 고막이 찢어질 듯한 음질의 카페 음악, 당나귀를 움직이게 하는 소년의 외마디 목소리……. 이 모든 소리는 한 마리 새를 그리기 위해 이방인을 자처한 내게, 볼루빌리스가 준 엄청난 선물이었다. 그리고 이제 안다. 고요하게 가시만 내민 식물과 소요의 울음으로 다가온 동물은 나에게 끝없이 말을 거는 새들이었음을. 아니 어쩌면 내가 모로코의 침묵 속으로 날아든 소란한 한 마리 새였는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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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호  l 

200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수건은 젖고 댄서는 마른다』가 있음. 현재 명지대·단국대 강의, 《세계일보》 칼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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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