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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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신재창 

 

 

 

꿈과 길 (5)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전3:11)

 

 

 

 

  그렇게 서너 달 전국을 돌며 공연을 했다. 차에 음향 장비와 야외용 발전기까지 싣고 다니며 어디든 노래할 만한 곳엔 자리를 폈다. 태풍이 몰아친다는 예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이 몰려오는 동해 어느 바닷가에서도 그랬다. 사업장도 버리고 일정한 생계 수단이 있지도 않았으나 오직 음악으로만 먹고 살겠다는 다짐은 그렇게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렇게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망하지 않고 사는 걸 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그러는 사이 정규 음반 7장과 베스트 음반 1장을 더 냈고 오래 함께 걸을 수 있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 2013년에 두 번째 음반 ‘노래로 만나는 시’ 1집 〈눈 온 아침〉을 발표하고 난 뒤 시와 시인에 대해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이화여대 정문 앞 어느 조그만 카페에서 시인 초청 콘서트를 매월 열었는데, 그것을 계기로 만나게 된 시인들이었다. 아마 그분들을 못 만났더라면 지금쯤 나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지만 땅의 것이 아닌 먼 하늘의 것을 바라보고 사는 시인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이 되었고 그 감동에 동행하며 지금껏 산다.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그분이 자꾸 나를 이쪽으로 이끄는 듯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변 분위기는 어떻게든 이름을 알려서 유명해져야 ‘나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니 방송국을 제집처럼 드나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당시의 나 역시 그러했다. 공연 없는 날은 방송국이며 힘깨나 쓸 법한 사람들을 찾아다녔고, 지방에 공연을 가면 어떻게든 그 지역 방송국에 들러 음반도 돌리며 들이밀던 때였다. 나의 일을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는 것이 당연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생각되었다. 그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계기가 바로 시인들과 만나 의기투합하여 시노래마을 동인을 함께하면서부터였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시집도 안 팔리는 세상이지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신의 시를 쓰기 위해 의연하게 시인의 자리를 놓치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 믿는다 하면서 속으로는 믿지 않는 적나라한 내 모습을 깨닫게 해주시는 듯했다. 열심 뒤에 숨겨진 초조와 불안과 불신앙이 나로 하여금 뛰어다니도록 만든 것이었고, 내가 음악을 하는 것인지 나를 홍보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모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29:12)라는 다윗의 고백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좋은 곡을 만들고 좋은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나를 갈고 닦는 ‘골방’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꽃이 만개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몰려오는 것이 섭리건만 채 영글지도 않은 꿈만으로 동분서주해봐야 결국 인생의 시간만 헛되이 살 뿐이다. 어리석게도 서른 예닐곱 늦은 나이에 깨달았지만 그래도 인생에 ‘늦은 때’는 없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이 참으로 합당한 듯하다. 휘둘리지 않고 지금까지 꾸준히 걸어왔으니 말이다. 그 뒤로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 음반 다섯 장과,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 중 한 장을 발표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또 함께 동역하며 나의 선생이자 나를 친구 삼아준 시노래마을 시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요즘은 별을 원 없이 본다. 옥탑에 작업실을 얻고 나서 일 년 동안 본 하늘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봤던 하늘보다 더 많다. 서울에서 이런 밤하늘을 보고 살 수 있다니 큰 행운이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다디달다. 매일 봐도 매일 다르고 또 보고 싶은 별과 달과 구름과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나……. 어쩜 이렇게 광대무변하면서도 아름답고 오밀조밀 섬세하게 직조하셨는지 매일 보아도 매일 감동이다. 내가 만드는 노래도 저 자연처럼 듣는 이의 가슴속에 오롯이 스몄으면 한다. 때로 천둥, 번개,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노래도 있겠으나 아침에 해 뜨고 저녁에 달 뜨듯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마음에 안식과 푸근함을 주는 그런 노래 말이다.

 

  만들어 놓은 노래는 많은데 언제 다 발표할지 걱정이다. 그래도 작년과 올해 열심히 준비한 덕에 새 음반이 곧 발매될 예정이라 설렌다. 코로나가 ‘통 크게’ 공연을 싹 쓸고 간 바람에 적막강산에서 무얼 할까 고민하다 통 크게 오십여 곡을 세 장의 음반으로 준비했다. 곡이 많다보니 아직 편곡 작업 중인 노래도 있다. 녹음, 믹싱이 끝난 노래부터 마무리 되는 대로 곧 발매할 예정이고,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음반 세 장을 모두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천양희 시인의 〈모래내 종점〉, 정희성 시인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공광규 시인의 〈낙원동〉 등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던 노래들과 전국 각지의 시인들의 시가 노래가 되어 실린다. 또 내년 하반기에는 ‘노래로 만나는 시’ 제7집도 발매할 예정이다. 음반을 하나 만드는 일이 내게는 비유컨대 여성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 산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살도 꽤 빠졌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함을 다짐 또 다짐해본다.

 

  밤이 차다. 어느 시인의 책상 위 잉크병이 얼어들 것 같기도 하고 어디 먼 데서 흰 당나귀 응앙응앙 우는 소리가 들릴 것도 같은, 깊고 맑은 밤이다. 그들이 바라보던 저 하늘을 나도 바라보고 있고 그들이 헤아리던 그 별을 나도 이 밤 헤아리고 있다는 사실이 서럽도록 아름답게 느껴진다. 곡을 쓰고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그들과 오래 동행하는 길은 늘 새롭고 좋은 음반과 노래로 나의 길을 걷는 것임을 어둠 속에도 지치지 않는 별들처럼 옥탑 하늘 위로 띄워보는 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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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창 I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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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