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tra Form Output
저자 임채성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사람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게 된다. 나무는 잎에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수증기를 뿜어내는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의 열기를 식힌다. 또한, 나무는 뜨거운 햇볕을 가려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끊임없이 산소를 공급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인간은 폐의 활동으로 나무가 만들어준 산소를 흡수하고 탄산가스를 배출하여 생명을 유지해 나간다. 인간에게 산소가 부족하면 혈액 순환에 장애가 일어나는데, 5분만 산소 공급이 중단돼도 죽음에 이른다. 나무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 터전을 제공하고 생존 환경을 조성해 준다. 집을 짓는 건축 자재뿐만 아니라 땔감으로도 사용되며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체에게 나무는 매우 중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19세기 프랑스 문필가이자 정치가인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은 “문명 앞에 숲이 있고, 문명 뒤에 사막이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곧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숲이 우거졌으나 문명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황폐함만이 남는다는 뜻이다. 숲을 지키지 못하면 문명도 더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경고로도 들린다. 지구 환경학자들은 지구의 산소가 매년 10만분의 1씩 감소하고 있어 지금 추세대로라면 10만 년 후에는 ‘산소 없는 지구’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가 숲을 지키고 가꿔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연 산소공장이라 불리는 숲은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커다란 사회다. 소나무나 느티나무같이 키가 8m 이상 자라는 큰키나무[喬木]와 철쭉, 회양목처럼 줄기가 지면에서 여러 개로 갈라지며 키가 4m를 넘지 않는 작은키나무[灌木]가 조화롭게 얽혀 있다. 소나무와 전나무와 같이 잎이 바늘 모양인 침엽수(針葉樹)가 있고, 참나무나 벚나무처럼 잎이 넓은 활엽수(闊葉樹)도 있다. 또 대나무, 동백나무처럼 항상 푸른 잎을 자랑하는 상록수(常綠樹)가 있는가 하면 자작나무, 단풍나무처럼 가을과 겨울 사이 잎이 떨어지는 낙엽수(落葉樹)도 있다. 그렇게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제 역할에 맞게 살아간다.

  국토의 2/3가 산림인 우리나라는 1,000종이 넘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어디를 가나 나무를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다. 참나무는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단일종으로 한정해 개체 수와 분포 면적을 따지면 소나무가 가장 많다.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인 소나무는 건조하거나 지력이 낮은 곳에서 견디는 힘이 강해 화강암 지대의 고산에서도 잘 자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도 소나무다. 지난 2023년 산림청의 ‘산림에 관한 국민 의식 조사’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응답자의 46.2%가 소나무를 꼽았다. 일반인은 경관적 가치를, 전문가들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선호 이유로 꼽았다고 한다.

  이처럼 국민 정서와도 친숙한 소나무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생활 속에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예로부터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걸어 무병장수를 기원했고, 삶의 마지막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맞이했다. 무덤 옆에는 소나무를 심어 도래솔이라 불렀다. 집을 지을 때도 대들보나 기둥, 서까래로 사용했으며, 선박, 가구나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썼다. 요리나 난방을 위한 땔감으로 이용했으며, 식재료로도 활용했다. 흉년이 들거나 전란기에는 소나무의 속껍질 가루와 멥쌀가루를 버무려 송기떡을 만들어 먹었고, 봄철 송홧가루는 다식을 만드는 재료로 활용했다. 또한, 뿌리 부근에 기생하는 균근(菌根)에 의해 만들어지는 송이버섯은 고급 식재료로 이용되며, 뿌리에 생기는 복령도 귀한 약재로 취급된다. 이처럼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의 차원을 넘어 우리 민족의 탄생과 생활,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소나무의 한자 송(松)을 파자(破字)하면 목공(木公)이 된다. 옛날 진시황제가 소나무 아래에서 소나기를 피한 후 소나무에게 벼슬을 내렸다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전하는데, 여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작위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과도 상통한다. 벼슬까지 받은 고귀한 존재인 소나무는 나무 중에 으뜸인 나무로도 통한다. 소나무를 흔히 ‘솔’이라고 줄여 부르는데, 솔은 으뜸, 높음, 우두머리, 신성, 태양의 뜻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삼한시대의 불가침 성지였던 소도나 솟대도 솔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시사철 푸른 잎과 기상은 한겨울의 눈서리에도 움츠러들거나 흔들리지 않는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부각되었다. 그 때문에 소나무는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는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이 몸이 주거 가셔 무어시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第一峰)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야 이셔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우리나라 최초의 가집인 『청구영언』에도 소나무를 제재로 삼은 작품들이 다수 실려 있는데, 매죽헌 성삼문(1418~1456)의 이 시조는 단연 으뜸이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며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된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이다.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공헌한 집현전 학자였지만 죽음으로써 불의에 항거한 투사이기도 했다. 김종직의 제자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남효온(1454~1492)이 사육신의 행적을 묘사해 지은 전기소설 「육신전(六臣傳)」에는 ‘절의지사(節義志士) 성삼문’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불로 입을 지지고, 팔을 잘라내는 잔학한 고문에도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부르며 왕으로 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성삼문의 절의와 결기가 ‘봉래산 제일봉의 낙락장송’으로 표출되고 있다. 죽어서라도 절의를 지키겠다는 선비의 시퍼런 결기가 느껴진다. 하고 많은 나무 중에 하필 소나무가 되고자 하는 것은 변치 않는 푸르름으로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반영이다. 소나무는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일 정도로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기에 자신의 굳은 의지도 오래도록 변치 않으리라는 다짐이다. 흰 눈이 하늘과 땅을 휘덮어도 봉래산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우뚝 선 낙락장송이고 싶다는 지은이의 마음은 굽히지 않는 의지와 절개의 상징으로서 소나무의 위의(威儀)를 드높이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봉래산은 영월읍 북동쪽에 우뚝 솟아 있는 실재의 산이다. 영월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기 때문에 이곳에 유폐된 단종에 대한 절의로서 봉래산을 등장시킨 것이다. 해발 800m의 봉래산 정상에는 별마로천문대가 있으며, 산 아래로는 어라연을 거쳐 온 동강의 물줄기가 흐르고 강변에는 금강정과 낙화암(落花巖) 비석이 남아 있다. 낙화암은 영월에 유폐됐던 단종이 사육신과 결탁했다는 이유로 사약을 받고 죽은 후 그를 모시던 궁녀와 관비·궁비·무녀 6명과 시종 1명이 동강으로 뛰어내려 순절한 곳이다. 성삼문은 죽은 지 200년만인 숙종 때에 이르러 ‘충문(忠文)’이라는 시호를 받고 역적의 오명을 벗었다.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조선어학회를 창립했던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 시인이었던 최현배 선생의 외솔이라는 호가 성삼문의 이 시조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에서도 엿보이듯 소나무는 불굴의 선비정신을 대변한다 하겠다. 

  

솔 아래 바위에 앉아 그를 우러른다

큰 바위 두어덩이 버선처럼 덮여 있고

구불텅 한 굽이 휘고 또 한 굽이 틀고 있다.

 

구불텅 두어 굽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해일까 달일까 아니면 바람일까

걸거침 하나 없는데 솔은 왜 돌아갈까.

 

내 모를 까닭이사 없지야 않겠지만

달빛에 짓눌리고 햇살에 눈 감다보면

헛디뎌 그도 한 번씩 휘청거린 것 아닐까. 

- 문무학, 「구불텅 소나무」 전문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줄기가 곧고 굵으며 옹이가 적은 나무, 이른바 잘생긴 나무는 목재로서의 효용가치 때문에 일찍 잘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줄기가 굽어 목재로서의 쓸모가 적은 것은 그대로 남게 된다는 뜻으로,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도리어 제구실을 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처럼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대표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경주 남산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신라의 서울답게 왕릉이 많은데, 왕릉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경주 남산 삼릉 주변의 소나무 숲은 아름드리 도래솔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얽히며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소나무들은 검붉은 껍질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패여 신라 시대부터 이어온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소나무는 거의 없고, 구불구불하거나 옆으로 눕기도 하고 서로 X자로 엉켜 있는 모습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린 소나무는 쇠막대기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기도 하다. 안개에 싸인 아침 숲속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붉은 비늘로 몸을 단장하고 예술적으로 굽이치는 줄기는 승천하는 용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때로 소나무를 적룡(赤龍)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모습 덕분에 삼릉 솔숲은 사진작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나무들끼리 미적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 어우러지면서 공간을 채우고 또 비운 솔숲, 그 미묘한 기색을 담기 위함일 것이다.

  문무학 시인도 이처럼 ‘구부러진 소나무’에 눈길을 주고 있다. 그것은 “큰 바위 두어덩이 버선처럼 덮여 있”는 척박한 환경에도 억척스레 뿌리를 내린 “구불텅 두어 굽이 돌아”간 ‘못생긴’ 소나무다. 여기서 ‘구불텅’이라는 시어가 빛난다. ‘굽은’ 것도 아니고, ‘구불구불한’ 것도 아닌 ‘구불텅’이라니. 사전적인 의미로 ‘구불텅’은 ‘구불텅하다’의 어근이다. ‘구불텅하다’는 것은 ‘느슨하게 구부러져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배배 꼬이거나 비틀어진 것과 굽은 것의 사이쯤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는 그만큼의 세파를 겪었다는 은유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비바람과 눈서리를 맞으며 견뎌온 인고의 시간이 ‘구불텅’이라는 시어에 휘감겨 있는 것이다. 어쩌면 시인은 오랜 세월 고향을 지켜온 아버지나 집안 어른의 모습에서 선산을 지키는 등 굽은 소나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발을 헛디뎌 “한 번씩 휘청거린” 전력도 있을 것이다. 물리적 대상의 정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얻은 깊은 사유를 미학적 체험으로 승화시키는 관조자로서의 시인 또한 세속적인 이해 관심에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를 닮아 있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버린 지 오래인 듯

 

뼛속까지 곧게 섰는 서슬 푸른 직립들

 

하늘의 깊이를 잴 뿐 곁을 두지 않는다

 

꽃다발 같은 것은 너럭바위나 받는 것

 

눈꽃 그 가벼움의 무거움을 안 뒤부터

 

설봉의 흰 이마들과 오직 깊게 마주설 뿐

 

조락 이후 충천하는 개골의 결기 같은

 

팔을 다 잘라낸 후 건져 올린 골법 같은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

- 정수자, 「금강송」 전문

    

  소나무는 신생대부터 지구상에 출현하기 시작했고, 아열대에서 아한대까지 폭넓게 분포하며 지구상에서 오랜 기간 육상 생태계의 주요 수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에서 자라기 시작한 것도 약 6,000년 전부터라고 하니 단군 시대에도 우리 숲에는 소나무가 밀생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소나무의 종류도 전 세계에 100여 종이 넘는다. 그중 금강송(金剛松)은 ‘우리 소나무’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껍데기가 붉어 적송(赤松), 내륙에서 자라 육송(陸松), 잎이 부드럽고 줄기가 늘씬해서 미인송(美人松), 속이 누르스름한 창자와 닮아 황장목(黃腸木), 집산지의 이름을 따서 춘양목(春陽木) 등으로 불리는 금강송은 균열이 적으며 아름다워서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다. 금강산에서 이름이 유래했듯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도 강릉·삼척, 경북 울진·봉화·영덕 등에 자생하고 있다. 경북 울진 금강송면 소광리는 1,000만 그루 이상의 소나무가 자생하는 국내 최대의 금강송 군락지로 유명하다. 최고급 목재로 여긴 만큼 조선 시대부터 국가가 직접 관리했으며, 궁궐이나 관청 등을 짓거나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만 벌목이 허용됐다.

  줄기가 곧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쭉쭉 뻗은 금강송은 굽히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개와 위엄을 상징한다. 정수자 시인의 「금강송」은 이러한 우리 민족에 대한 헌사이자 연서이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겉치장은 버리고, “뼛속까지 곧게 선” ‘직립’의 나무들. 오롯이 하늘만 바라볼 뿐 아래는 신경 쓰지 않는 고결함과 ‘너럭바위’에 피는 꽃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꽃’을 화관처럼 이고 ‘설봉’과 마주하는 당당함, 낙엽들이 진 후 더욱 돋보이는 겨울 금강산의 결기와도 같은 의연함은 우리 역사에 대한 알레고리이자 이 땅에 뿌리박은 민족의 삶에 대한 메타포다. 소나무가 소나무에 그치지 않고 배달겨레의 자화상으로 승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마지막 수 종장의 “붉은 저! 금강 직필들! 허공이 움찔 솟는다”에서는 천 년을 이어온 시조 문학에 천착하는 시인의 의지까지 읽을 수 있게 한다.

  애국가 2절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는 구절은 외세의 침략과 환란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강인한 민족성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소나무는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대변자로서 온 국민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연재-임채성.png

임채성  l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메께라』,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ㅡ

2024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