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신재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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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길 (4)
“혹시는 슬퍼도 하리라
혹시는 울기도 하리라
그러나 젊은 새의 꿈은 항상 날음에 있나니“
(김광섭, 「청춘」 중)
97년 겨울 이 길로 들어선 이후로 13년 만에 나온 내 첫 음반의 타이틀은 “길”이다. 음반을 낼 작정으로 몇 달 카페를 직원에게 맡겨놓고 녹음실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생각처럼 녹록치 않았다. 처음 하는 일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을 뿐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일이었다. 녹음실을 빌리는 것도, 연주자 한 사람 부르는 것도, 노래 하나 편곡하는 것도, 녹음한 것을 다시 들어보며 편집하는 일도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다. 녹음실은 프로로 계산을 한다. 한 프로는 세 시간 반이고 비용은 기십 만원이다. 말하자면 자릿세로 십 분에 만원 웃도는 금액을 내야 한다. 자켓 디자인, 인쇄, 프레싱 작업은 차치하고라도 녹음 작업만 대략 세 단계로 나누면, 악기 녹음, 편집 작업, 노래 녹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완성된 음원을 만들어내는 과정인데, 말하자면 멜론이나 소리바다 등의 음원 사이트에서 MP3로 700원에 다운받는 그 음원이 바로 완성된 음원의 결과물이다. 마스터 음원이라고 부르는 10메가 안팎의 그 음원을 얻기 위해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여러 연주자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장면을 우리는 흔히 목격할 수 있기 때문에 녹음도 쉬울 거라 예상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녹음은 지난한 작업이다. 녹음은 라이브처럼 한꺼번에 여러 악기를 녹음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악기별로 차례차례 작업을 한 후 다시 편집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이 되는 박자와 리듬을 잡아주는 드럼을 녹음한 이후에 피아노, 베이스 기타, 어쿠스틱 기타나 일렉트릭 기타 등을 녹음하고, 멜로디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바이올린이나 첼로 혹은 관악기, 하모니카 등은 가장 마지막에 녹음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다.
가령 드럼을 녹음할 때는 각각의 소리를 선명하게 녹음하기 위해서 위치별로 마이크 8개를 가까이 대고 녹음을 한다. 베이스, 스네어, 탐 2개, 하이헷, 심벌에 각 한 대씩, 드럼 위에 높다랗게 오버헤드 마이크 하나, 녹음실 전체의 소리를 받는 룸 마이크 하나까지 여러 개의 마이크로 녹음하고 이후에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소리가 저절로 조화롭게 녹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 채널별로 볼륨 조절을 해주고, 불필요한 소리는 제거해주어야 한다. 녹음실 마이크는 수음력이 뛰어난 마이크여서 미세한 소리까지 다 녹음되기에 8대의 마이크가 동시에 한 녹음에서 각 채널의 필요한 소리만 남기고 불필요한 소리는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베이스 북을 한 마디에 한 번 쳤다고 가정하면 같이 녹음된 심벌, 스네어 등의 소리는 제거해주어야 하고 그런 작업을 스네어에서도 심벌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주어야 한다. 채널별 작업이 끝난 후에는 한꺼번에 8개의 트랙을 동시에 플레이했을 때 조화로운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작업은 다시 계속된다.
녹음실은 방음과 흡음이 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소리의 잔향이 전혀 남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노래를 하면 잔향이 들려서 노래가 좋게 들리는데 그것과 정반대로 완전히 메마른 소리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편집을 마치고 나면 각 채널마다 딜레이라든지 리버브 등의 잔향 효과를 입혀주어야만 자연스러운 소리처럼 들리게 된다. 여러 악기를 녹음하고 그 녹음된 소리를 다시 우리 귀에 자연스럽게 들리게 만드는 과정은 이렇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아무 고민 없이 자연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다는 것는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드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타는 더 어렵다. 백킹, 멜로디 라인, 아르페지오, 스트로크, 효과음 등 기타 트랙만도 보통 대여섯 채널이 넘는다. 많을 때는 스무 채널 가까이 되기도 한다. 귀에는 잘 안 들리지만 피아노도 전체적인 사운드를 감싸주는 스트링이나 패드 등의 트랙부터 전체적인 음악을 끌고 가는 멜로디 연주 트랙까지 보통 서너 트랙이고, 거기에 베이스 기타, 현악기 등 여러 악기들이 들어가면 삼사십 트랙은 기본이다. 물론 때에 따라 한두 가지 악기로 녹음하는 것이 더 돋보이는 곡들도 있지만, 어쨌거나 트랙 수에 관계없이 이 각각의 소리들을 귀에 듣기 좋게 편집하는 과정을 믹싱이라고 부르는데 악기 녹음 이후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면서 또한 그만큼 비용도 들어간다. 한 곡 믹싱 하는데 며칠씩 소요되는 작업이니 어느 한순간도 소홀할 수도 없다. 그렇게 믹싱이 완성된 음원을 Music Recorded, 즉 MR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보컬을 입히기 전의 반주 음악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목소리까지 다 담겨 있는 음원은 AR(All Recorded)이라 부른다. 이렇게 MR이 완성되면 그제야 노래 녹음을 한다.
이전에도 여러 음반에 참여해서 노래를 녹음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전체적으로 음반의 첫 기획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단계를 직접 해보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기약 없는 작업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어느 아침, 생계도 팽개쳐가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었다. 지나온 날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혼자서 울다가 슬며시 웃음이 난 건 환대받지 않는 길을 걸어왔지만 내 나름의 성취감도 있었고 고되지만 재미있는 추억들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아침에 받아 적은 노래가 “길”이다. 음반을 진행하는 중에 쓴 곡이 그렇게 타이틀곡이 되었다.
혼자서 울다가 웃다가 잊어버렸다가
사랑도 했다가 이별도 했다가 후회도 했다가
걸어도 보다가 뛰어도 보다가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고 다시 움직이고 다시 힘을 내고
꿈도 꿔 보다가 공상도 하다가 낄낄낄 웃다가
가수도 됐다가 배우도 됐다가 관객도 됐다가
사막도 지나고 들판도 지나고 강물도 건너고
이런저런 일들과 이런저런 얘기와 이런저런 사람들
인생이란 무대 위를 걸어간다
어디가 길인지 모를 때가 더 많다
쉽고도 어렵고 멀고도 가까운
그 길을 난 오늘도 걷는다
“인생이란 무대 위를 걸어간다. 어디가 길인지 모를 때가 더 많다. 쉽고도 어렵고 멀고도 가까운 그 길을 난 오늘도 걷는다”는 구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걸음으로 진행되는 노래다. 누가 나에게 강요한 적도, 안내한 적도 없이 나를 따라서 온 길이니 누구를 탓할 일도 원망할 일도 없다. 그냥 좀 외로운 날은 쓸쓸하게 기쁜 날은 즐겁게 걸으면 그만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식구들도 집사람도 좋아서 하는 일이니 말리지는 못하고 그냥 두고 보는 처지였다. 뛰어난 재능이나 예술적 감각도, 뒷받침 할 재력이나 인맥도 전혀 없는 지극히 평범한 내게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을 길이었다. 그렇게 첫 음반을 내고 이듬해 겨울 카페도 접었다.
카페를 열던 첫 해 7월부터 12월까지 매출 총 합이 600만원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만든 사업장에 오히려 빚이 늘어만 가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영업이 끝나면 혼자 남아서 인테리어도 바꿔보고 메뉴도 개발해보고 무대 위치를 옮겨보고 공사가 끝날 줄을 몰랐다. 워낙 인적이 없던 곳이라 아는 사람 말고는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지성이면 감천인지 전단지도 돌리고 틈틈이 나가 버스킹도 하면서 홍보하고 찾아오는 이에게 서비스도 듬뿍 주고 신청곡도 노래해주고 하면서 점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음 해 1월부터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고 연말에 결산을 해보니 월 평균 천만 원을 웃돌았다. 그렇게 몇 해, 돈 버는 재미도 느끼며 이렇게 장사나 하고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솔직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 만사형통의 ‘길’이 어디 있으랴. 평생 한 가지만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 것이 인생 아니던가. 내 앞에서 노래 좋다, 감동 받았다며 박수치고 간 사람들이라 해도 그들에게 나는 그저 카페 사장일 뿐 가수는 아니었다. 그 공간에서 내 공연뿐 아니라 여러 가수들의 초청 공연도 숱하게 열었지만 그들에게는 가끔 조용히 술 한 잔 먹고 싶을 때 찾아가면 노래도 해주고 같이 술도 마셔주는 ‘아는 사장님’이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물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진심으로 나의 노래를 좋아해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다. 아마 나에게 카페를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사람’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본령이 아니었기에 결단이 필요했다. 공간이 자리를 잡아 가면서 거기에서 오는 안온함과 느슨함이 나의 발목을 잡을 때 박차고 나와서 음반 작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음반에 몰두하느라 자리를 비운 몇 달 사이 카페는 황폐해졌다. 노래 들으러 왔다가 주인장이 없으니 하나둘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엘피판이며 신청곡을 틀어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알맹이 없이 쭉정이만 남은 카페에 무슨 살가움이 있었으랴. 정작 음반을 손에 쥐고 복귀 했을 때 카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물론 아는 지인들이 모여서 축하해주기는 하였지만 그때 나는 확실히 알았다. 본질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사장님’이라는 달콤한 말 뒤로 더 이상 숨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 오년 만에 카페를 깨끗하게 접고 다시 출발선상에 섰다. 또 다시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는 길을 헤치며 왔으니 앞으로 길이 나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굽이굽이 돌아간다 해도 물은 언제까지나 물 아닌가. 굽이치며 흐르다보면 땅에 스며들기도 하고 기화되어 공중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만나는 온갖 풀이며 나무에게 양분을 덜어주기도 하니 점점 줄어들어야 마땅할 텐데, 하류로 갈수록 점점 더 세력을 확장해서는 기어코 바다에 닿는 것이다.
2012년 가을로 접어들며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음반과 음향 장비를 차에 싣고 무작정 길을 떠났다. 음반을 낸 ‘진짜 가수’로서의 첫 시작임과 동시에 혼자만의 ‘끝없는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계속)

신재창 I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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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