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tra Form Output
저자 신재창 

 

 

 

 

꿈과 길 (3)

 

 

 

 

머물고 싶은 삶을 찾아서 나는 방랑의 길을 떠나가지만 떠도는 것은 아니라네

(…) 길은 멀어도 가기는 가야지 여기서 이대로 머물 수는 없네

가노라면 아름다운 노래가 있는 내가 쉴 곳이 있겠지 (한돌, “쓸쓸한 사람” 중)

 


  여의도 외진 구석에 조그만 작업실 겸 카페를 냈다. 마음껏 노래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생긴 것이다.

 월드컵 이후 방황했다. 일 년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삶의 터전까지 옮겨가며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결과는 참혹했고 팀원들은 아무런 보상도 없이 뿔뿔이 흩어졌다. 음반을 내줄 수 있다는 이야기에 한 녹음실에서 몇 달 생활하기도 했지만 청소와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나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선후배 하나 없는 타지에서 밤에 라이브 업소에서 노래하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심하게 울적한 날들을 보내다 지인의 소개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예배 때 울려 퍼지는 찬송가가 그렇게 구구절절이 와 닿을 수 없었다. 예배 때마다 감동을 받았고 찬송 소리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세상은 얘기해주지 못하지만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 살며 영적 교감을 누리고 살도록 만들어진 영적인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마치 공중에 새가 새장 속에 갇힌 것과 같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나무가 뿌리가 뽑힌 채 말라가는 것, 엄마 품에 있어야 할 아기가 엄마를 만나지 못하고 울부짖는 것과 같았다. 뿌리가 말라가는 나무에게 세상 금은보화로 치장해준들 무슨 소용이고 엄마를 잃은 아기에게 비단옷을 입혀준들 무슨 소용이랴. 다시 땅속에 심어주면 스스로 회복되고 푸른 잎도 열매도 맺게 되는 이치로 복음이 그렇게 다가왔다.

  그 후로 가위눌림과 악몽이 사라졌다. 서서히 나의 내면은 치유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찬양 팀으로 활동하면서 자존감도, 노래해야 할 이유도 회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오 년을 보내는 동안 가스펠 음반에도 참여하고 모 대학에서 주관한 복음성가 창작 경연대회에서 작곡상도 받았으며 결혼도 하고 첫째도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해 생계와 음악을 병행하기 위해 작업실 겸 카페를 낸 것이다.

  서른을 넘긴 나이에, 남들보다 특별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니 긴 호흡으로 멀리 내다보며 가야 할 길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매일같이 연습하고 곡을 썼다. 가사와 함께 멜로디가 떠오를 때도 있었지만 퍼뜩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땐 시집을 들춰보기도 했다. 대체로 멜로디는 자주 떠오르지만 그 멜로디에 딱 맞는 가사를 입힌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몇 소절 떠오르는 가사로 흥얼흥얼 멜로디를 만들어 녹음해두고는 앞뒤를 잇는 가사를 고민하다가 쌓아둔 노래가 수백 곡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가사가 깊이 와 닿는 노래를 좋아한다. 찬송, 가곡, 대중가요를 막론하고 멜로디가 좋은 것은 기본이고 가사의 문체가 미학적이면서 통찰이 있는 노래들 말이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내 평생에 가는 길” 등의 찬송가의 사(詞)는 백미 중 백미로 꼽는다. 또 “내 마음의 강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보리밭, 가고파, 동심초” 등의 가곡과 “서울로 가는 길, 아름다운 사람, 친구”(김민기), “쓸쓸한 사람, 여울목, 조율”(한돌), “바람의 노래, 고독한 러너”(조용필), “밤눈, 푸르른 날”(송창식), “향수, 이별노래”(이동원), “북한강에서, 봉숭아”(정태춘), “처음 그리고 그 다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김목경), “이층에서 본 거리”(이두헌), “맹인 부부 가수, 귀뚜라미”(안치환), “회귀, 잊혀지는 것”(김광석), “다행이다”(이적), “그중에 그대를 만나”(이선희) 등도 말하자면 그런 곡들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봄날은 간다, 애수의 소야곡, 비 내리는 고모령, 단장의 미아리고개, 돌아가는 삼각지” 등도 가사가 좋아서 정말 좋아하는 노래들이다. 이런 노래를 열거하자면 밤을 새도 모자라겠다.

  가수가 하고 싶어 노래를 찾아 들은 것이 아니고 노래가 좋아서 찾아 듣다 가수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으니, 어쩌면 난 영원한 음악 애호가인지도 모른다. 존 바에즈, 밥 딜런, 나나 무스쿠리, 로이 오비슨,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제니스 이안, 에릭 크립튼, 존 덴버, 비틀즈, 마크 노플러, 트래이시 채프먼, 톰 맥레이, 데미안 라이스, 에이모스 리, 프리실라 안……. 좋아했던 팝 가수들의 노래도 뇌리를 스친다. 카페를 하면서 틈틈이 청계천이며 황학동 중고시장을 돌며 모은 LP판이 천장이 넘었다. 다 들어보지도 못한 노래들도 많았다. 돈만 생기면 음반을 사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즐거움이었다. 내가 부르지는 않더라도 좋은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렇게 수많은 가수들이 인간의 사랑과 이별, 아픔과 꿈을 노래한 곡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나는 왜 또 작곡을 하고 가사를 고민하고 있는가. 혹자는 “바흐와 비틀즈에서 음악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나올 노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말은 “이제껏 밥을 먹었으니 이제 앞으로는 밥을 안 먹어도 된다”라는 논리와 같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만나고 배설하는 감정이 얼마나 많고 다양한가. 그런 삶의 순간들을 포획해서 말로 읊는 것이 시이고, 부르는 것이 노래이고, 그리는 것이 미술이니 이러한 행위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이 이어질 터이다. 나는 또 내게 주어진 삶 속에서 만나고 부대끼고 살아가며 느끼는 것들을 노래하고 써야 한다. 그렇게 쓴 12곡을 모아 2010년 겨울 첫 음반을 냈다. 시를 작곡한 노래들도 몇 있었지만 부족하더라도 내 글과 내 곡으로 첫 음반을 채우고 싶어 넣지 않았다. (계속)

 

 

 

   천년부페웨딩홀

 

   오성일

 

 

  고향마을 형님이 아들 장가보낸다기에 아내와 작은아들 데리고 인천 주안 〈천년부페웨딩홀〉엘 갔습니다 대일관광 전세버스 타고 시골 노인네들 다 올라왔습니다 우리 아들의 할머니도 그 차 타고 왔습니다 〈웨딩홀〉엔 가족과 신랑신부 친구 몇몇 뿐, 으레 노인네들의 자리는 지하식당 〈천년부페〉입니다 어디나 다 비슷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일찌감치 좋은 자리 골라 가방으로 맡아 놓고 자식 손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국수를, 아내는 생선을, 아들녀석은 육회를 먹으며 여기 음식 좋다고 한 마디씩 칭찬을 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오기 전 이것저것 배불리 먹었노라고 손주 젓가락질을 올려보고 내려보곤 하다가 슬며시 일어나더니 한참 뒤 떡과 약식을 수북이 담아왔습니다 이미 배들이 빵빵해진 뒤인데 저 많은 걸 집어온 뜻은 안 봐도 뻔합니다 그걸 꼬물꼬물 비닐봉지에 담아서 슬그머니 아내 쪽으로 밀어줍니다 큰손주 갖다 주란 말입니다 어머니는 소리를 낮춰 어여어여 재촉을 하고, 아내는 주삣주삣 가방을 열고, 나는 힐끔힐끔 주위를 살피는 찰라, 접시 치우는 젊은 놈이 저벅저벅 걸어와서는 손님, 그 음식 내놓으세요, 하고 긴 말도 없이 아내 손에서 검은 봉지를 채가버렸습니다 우리 셋은 벌개진 얼굴로 하나마나한 딴 얘깃거리를 찾고, 사람들은 우리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고, 그 사이 음식 가지러 갔던 아이만 낌새를 못 채고 또 먹습니다 <천년부페>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합니다 천 년 전 이맘때 고려 현종 6년 을묘년 정월, 삭풍 치는 북쪽의 어느 마을에서도 혼인잔치는 있었겠지요 거란이라던가 오랑캐에 아비를 잃은 어린 색시가 신랑 맞는 날이었겠지요 그날 그 잔치에서도 손주 먹이자고 떡 싸가는 늙은 여자 있었겠지요 그 떡 먹고 자란 손주가 얻은 여자가 또 제 손주 거두자고 팔관회를 기다리는 계절이 있었겠지요 그 손주의 여자들, 또 그 손주의 여자들, 이 땅의 그 늙은 여자들이 인천 주안 〈천년부페〉에서 망신당한 여자와 시어머니의 시할머니들이었겠군요 또 천 년 뒤 서기 삼천십오년 을해년의 어느 정월에도 손주 먹일 떡을 주섬주섬 싸 담고 있을 어느 여자들의 여자들이겠군요

 

 

 

 

 

 

 

 

 

 

 

 


 

연재-신재창.jpg

신재창 I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

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