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신재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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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동주
태양을 제외하고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Proxima Centauri)”라는 별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약 4.28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 1광년은 빛의 빠르기로 1년 동안 이동한 거리를 말한다. 1초에 30만 킬로미터를 가는 빛의 속도로 4년, 현재 로켓의 수준으로는 6만 년이 걸리는 먼 거리다.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안드로메다 은하는 그보다 먼 230만 광년 떨어져 있다. 기차를 타고 아무리 빨리 날아가도 3억 2천만 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마저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어 큰곰자리는 초당 1만 5천 킬로미터씩 멀어지고, 20억 광년 떨어져 있는 히드라자리는 초당 6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지구와 멀어진다고 한다.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멀리 있는 저 별을, 지평선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다 보지 못하는 우리가 이처럼 밤마다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일 신기할 따름이다.
이 겨울은 특히 추웠다. 과연 봄이 올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 추워서 동면하는 동물들이나 나무들, 식물들, 애벌레들이 다 얼어 죽지 않을까? 만약 사람만 남고 지구상에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다 얼어버린다면, 혹여 그러한 때에라도 과연 봄은 올까?” 절기야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돌고 돌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겠지만 어처구니없는 내 상상은 완전히 얼어붙은 겨울 왕국을 떠올리고는 했다. 과학적 증명을 떠나 시인도 "명부(冥府) 같은 우물에도 / 이 밤 별은 뜨리니 // (…) // 겨울이 오는 그 길로 / 봄은 다시 올 것이다"(류미야, 「어두워지는 일」)라 했으니, 봄이 제아무리 오기 싫어서 발버둥 친들 순순히 끌려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별을 바라보며 빛의 회복을 간구하던 22살의 청년 윤동주가 그렇게나 맞이하고 싶었던 이 땅의 ‘새로운 길’, 그 봄도 그렇게 돌아오고야 말았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년에 쓰인 시이니, 빼앗겼던 봄이 회복된 지도 어언 80여 년이 흘렀다. 나는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나른한 봄 들판을 떠올렸다. 아직 쌀쌀한 산그늘을 생각했다. 양지바른 볏단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아지랑이 꿈틀거리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을 동주를 생각했다. 마침 바람이 불어오고 그 옆으로 아가씨가 지나간다 해도, 지천에 깔린 민들레 위로 까치가 날아다닌다 해도, 저 냇물 너머로 숲이 보이고 옹기종기 마을이 보인다 해도 나는 이렇게 평온한 시를 쓸 수 있었을까? 그 볏단에 가만히 기대어 앉아 보았다. 왜 우리는 나라를 잃고 만주로 연해주로 떠돌아야 하는가, 왜 우리는 수난과 침탈의 역사를 끊어내지 못하는가, 또 나는 전쟁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숨죽여야 하는가……, 이런 비참하고 억울한 생각들이 먼저 떠올라서 그 풍경을 바라보고는 있지만 눈에 들어오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천천히 보니 냉이며 쑥이며 씀바귀 같은 나물들도 보이고 지고 난 목련도 보이고 멀리 미루나무 새 잎도 보이는 것 같다. 아니 비릿한 흙냄새와 풀 냄새도 올라온다. 멀리 아이들 웃음소리도 들리고 아낙들이 빨래하러 가는 모습도 보이고 남정네들이 순사 몰래 숨어서 화투 치는 모습도 보인다.
그래 그거야! 이 시는 희망이야. 강철 같은 기나긴 겨울이 물러가고 다시 돌아올 봄을 노래하고 있는 거야. 누군가는 이 시를 어두운 분위기로 노래하기도 했고 또 다른 이는 시대 상황을 담아 진지하게 노래하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담담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래했다. 지금도 마음이 울적하거나 괴로울 때면 이 노래를 꺼내어 본다. 나도 모르게 “냉소”와 “비탄”(사무엘 울만, 「청춘」) 에 젖어 있는 애늙은이는 아니었는지 돌아보면서 새롭게 마음을 다잡아보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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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전(年前)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이라고 한참 시끄러웠다. 벌써 몇 해가 흘러가고 사방이 고요하다. 동요로 아이들과 부르려고 작곡한 동주의 시 20여 편을 몇 년째 그냥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다. 그간 이런저런 음반에 발표한 노래도 몇 곡 있지만 아직은 그냥 간직하고 싶다. 세상의 고통과 소란을 오롯이 통과하며 동주의 시를 느껴보고 그 시선 속으로 따라 들어가 고요히 함께하고 싶다. 그가 바라보았던 그 별을 나도 오래, 간절히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그 빛의 공간에서 연둣빛 새순 같은 아이들과 마음껏 노닐게 되는 어느 날 음반으로 엮고 싶다.
내일도 바람은 불고 아가씨가 지나고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겠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그날을 나는 태초의 첫날처럼 새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로운 길처럼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별이 된 당신 또한 바래지 않는 빛으로 새로이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기를…….

신재창 I
작곡가, 가수. 〈국어 교과서 아름다운 시노래 음반1〉, ‘노래로 만나는 시’ 연작인 〈눈 온 아침〉 등 6장의 음반, ‘삶의 시, 삶의 노래’ 연작인 〈김포행 막차〉, 자작곡 음반 〈길〉, 시노래 베스트 음반 〈조곤조곤 시노래〉 등을 발표하였다. 매월 시인 초청 〈수요시콘서트〉 등을 열어오고 있으며, 시인들과 함께하는 시노래 동인 ‘시노래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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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