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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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2024년 4월 현재 대한민국의 미디어는 온통 ‘먹자판’이다. 2010년을 전후해 시작된 먹는 방송, 소위 ‘먹방’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그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먹방으로 도배된 TV 예능은 물론이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도 먹는 것과 관련된 콘텐츠가 넘쳐난다. 여기에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방송 등 1인 미디어까지 합세하면서 맛집과 요리 관련 콘텐츠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먹방’을 즐겨 보고 ‘맛집’을 찾아 순례하고, 이를 SNS에 기록하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그것 자체가 삶의 의미인 것 같다. 이러한 먹방 열풍에 대해 사회학자나 문화 평론가들은 1인 가구 증가와 ‘혼밥’ 생활에 따른 외로움, 충분히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대리 만족 욕구에서 비롯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먹는다’는 원초적 행위가 하나의 문화콘텐츠가 돼 소비되는 현상이나 방송을 두고 ‘음식 포르노(Food Porn)’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음식의 비주얼만 극도로 강조해 식욕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일컫는 말인데, 1977년 12월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에 실린 알렉산더 콕번(Alexander Cockburn)의 기사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콕번은 “진정한 위장 포르노(gastro-porn)는 다양하게 완성된 조리법의 색깔 있는 사진을 제공함으로써 흥분과 함께 얻을 수 없는 것들의 감각을 높인다”고 썼다. 한편, 마이클 F. 제이콥슨(Michael F. Jacobson)은 1979년 공익과학센터(Center for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의 뉴스레터에서 ‘음식 포르노’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1984년에는 영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인 로잘린 카워드(Rosalind Coward)가 쓴 『여성의 욕망(Female Desire)』이라는 책에 인용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레스토랑 평가서인 ‘미슐랭(미쉐린) 가이드(Michelin Guide)’가 해마다 세상의 관심사가 되는 이면에는 ‘미식(美食)’이라는 탈을 쓴 ‘식탐’ 욕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도 ‘미식가’를 자처하는 ‘푸드 칼럼니스트’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을 통해 이상 사회 건설을 주장했던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었다. 허균의 아버지는 동인 세력의 영수인 초당 허엽이었다. 강릉의 명물인 초당두부는 허엽의 호 초당에서 나왔다고 하니, 음식에 관해서는 가히 명문가라 할 만하다. 허균은 음식에 관한 책을 여럿 펴냈는데, 그중 1611년에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이 특히 유명하다. 이 책은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 음식 등 134종을 품평해 놓은 것이다. 책의 서문 말미에는 “세상의 부귀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경계하여 지나치게 음식 사치를 말아야 한다. 절약하지 않고 마구 먹으면 그 부귀영화가 항상 있지 못할 것이다.”라며 식탐을 경계하기도 했다.

  이처럼 음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중요한 자리에 올라 있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역시 ‘식’이 으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이를 잘 말해준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분연히 떨쳐 일어난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도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였다. 그런데 생존의 필수 요소인 ‘식’을 제일 먼저 내세우는 ‘식의주’가 아닌 ‘의식주’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일본에서 건너온 번역 술어(術語)인 데다 발음하기도 편해 관행적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일제강점시대의 유산으로 ‘의식주’란 표현이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세 가지 요소 중 우리 사회도 밥을 으뜸으로 여기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 습관만 들여다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의 인사말 중에는 유난히 ‘밥’과 관련된 말들이 많다. “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헤어질 때도 “다음에 식사나 한번 하시죠!”라며 ‘밥 인사’를 한다. 이러한 인사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의 일상으로 흘러들어와 관용구가 되어 버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밥 먹었어요?”라고 건네는 인사는 우리네 고난의 역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전쟁이나 기근, 탐관오리의 착취 등으로 먹기보다 굶기를 더 자주 하던 시절에 서로를 염려하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사였을 것이다. 아침·점심·저녁 하루 세끼를 다 해결하지 못하는 곤궁한 삶이 빚어낸 지나간 시대의 풍경이리라.

  일제 강점기 수탈의 시대를 빠져나왔지만 곧바로 전쟁을 겪으면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던 ‘보릿고개’의 이야기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근대기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우리 민족에게 ‘밥’은 곧 ‘생존’의 수단이자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먹는 행위 자체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했다. ‘먹다’라는 관용구와 속담이 750여 개에 이른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마시는 것이 옳은 표현인 물이나 술도 우리는 ‘먹는다’라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더위를 먹다’, ‘욕을 먹다’, ‘나이를 먹다’, ‘돈을 먹다’ 등 웬만한 명사에 ‘먹다’를 붙이면 대개 하나의 문장이 완성된다. 먹는 게 얼마나 궁했으면 이런 말들이 일반화됐을까. 또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든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든지, “먹을 것 없는 제사에 절만 많다”는 등 배고픔을 비유한 속담들을 곰곰이 씹어보면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먹고 살 만해졌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면서 밥은 이제 생존의 차원이 아니라 ‘맛’의 의미로 대중에게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먹거리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을 생산한 분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하루 한 끼가 아쉬운 사람들이 많이 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부터 휴전선 이북의 북한에 이르기까지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2023년 기준 국내 결식아동도 약 27만 7000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도 있다. 자살률 세계 1위, 출산율 세계 최저라는 우리 사회가 식욕을 채우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밑바닥에 가라앉은 사회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남산(南山) 나린 골에 오곡(五穀)을 가초 심거

먹고 못 나마도 긋지나 아니하면

그 밧긔 녀나믄 부귀(富貴)야 바랄 줄이 이시랴

  

  이 시조는 580수의 작품을 수록한 현존 최고(最古)의 가곡집 『청구영언』의 저자 김천택의 작품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청구영언』(진본)에 실려 전한다. 『청구영언』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김천택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본관은 물론 생몰 연대조차 확실하지 않다. 다만,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이름 나열 순서로 볼 때, 『해동가요』의 저자 김수장보다 몇 살 앞선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김수장이 1690년(숙종16)에 출생한 것을 통해 김천택의 출생년은 1680년대 중후반이라고 보는 것이다. 김천택의 신분은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歌諸氏)’에 숙종 때의 포교(捕校)라고 소개돼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김천택 또한 중인 계층으로서 젊었을 때 잠시 관직에 있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것으로 추측한다. 『청구영언』에서 자신의 시조를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는 항목에 넣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풍류의 삶을 즐기느라 그랬을까, 아니면 미천한 신분 때문에 재산이 많지 않았기 때문일까. 고어를 현대어 표기법으로만 바꾼 이 시조를 요즘의 언어로 풀어써 보면 이렇다. “남산 한 골짝에 오곡을 갖춰 심어 / 먹고 못 남아도 그치지나 아니하면 / 그 밖의 다른 부귀야 바랄 줄이 있으랴” 초장의 “나린 골”은 “내리막 골짜기”의 의미로써 “비탈진 골”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산자락 비탈밭을 일궈 생계를 유지해 나가는 청빈한 삶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문 중의 ‘오곡’은 쌀·보리·조·기장·콩을 말하지만, 넓게는 다양한 곡식을 지칭한다. 조선시대 가객의 삶은, 추측하건대 요즘의 가수들이 ‘행사’에 불려 가는 것과 같았을지도 모른다. 남의 잔치에 가서 흥을 돋워주고 사례를 받는 일 말이다. 일정치 않은 수입은 농사라는 예측 가능한 업(業)에 대한 동경을 불렀을 것이고, 이러한 마음이 위의 시조에 투영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창고에 곡식을 쌓아둘 정도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이어지기만 하면 무슨 걱정이 있겠냐는 마음은 삶에 있어서 ‘밥’이 단순히 한때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의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뜻이고, 그 반대의 경우는 죽음에 닿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경들 광장에서 점심을 먹는다

 

김치와 생선 조림 된장국 식판 들고

 

소풍 온 아이들처럼 나란히 먹는다

 

때를 맞춰 건너편 시위대도 먹는다

 

아내가 정성껏 싸준 계란말이 도시락

 

이어갈 투쟁을 위해 전투적으로 먹는다

 

양쪽을 취재할 기자들도 먹는다

 

퉁퉁 불은 자장면에 젓가락 부러져도

 

만인의 밥은 평등하다는 기사를 쓰기 위해 

ㅡ 이소영, 「밥」 전문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소설가 김훈이 쓴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흔히 일을 ‘밥벌이’라고 한다.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핵심이 밥인 까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밥은 곧 하늘’이라며, ‘밥숟가락에 우주가 얹혀 있다’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이소영 시인도 삶 속에서는 언제나 일보다, 투쟁보다 밥이 먼저라고 말하고 있다.

  ‘먹방’이 먹기 위해 사는 삶을 대표한다면, 이소영 시인의 「밥」은 살기 위해 먹는 삶을 대변한다. 이 작품에는 세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전경들’과 ‘시위대’,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기자들’이다. 전경들은 시위대를 막아야 하는 임무를 띠고 출동했고, 시위대는 자신들의 요구와 주장을 알리고 관철시키려 한다. 대척점에 있는 두 부류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기자들이다.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광장’에 모인 이유와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이들이 견지하는 삶의 기본적인 방식은 같다. 바로 ‘밥’을 먹는 것이다. 이들에게 있어서 ‘밥’은 단순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법’으로 승화된다. 밥이 법이고, 법이 밥이라는 논리는 이럴 때 사용하는 말이겠다.

  이소영 시인은 이러한 ‘밥’과 ‘법’의 질서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시선은 광장에서 벌어진 시위대와 진압경찰, 그것을 취재하는 기자라는 세 부류를 다큐멘터리 기법을 통해 차례로 훑고 지나간다. 거기에는 어떤 주관적인 견해도 개입되지 않고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담담히 보여줄 뿐이다. 각자의 역할이나 사회적 위치는 다르지만 시인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전경들도 먹고, 시위대도 먹고, 기자들도 먹는다. 그들이 먹는 음식은 그들의 역할 만큼이나 제각각이지만 ‘먹는다’는 공통된 본성 행위는 삶을 위한 에너지를 축적한다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뿌리가 이념이나 사상, 세계관이 아닌 본능에 있음을 깨우치는 것이다. 밥이 곧 법이라는 이차원적 진리를 일깨움으로써 이 시대가 처한 밥벌이의 고단함과 숭고함에 대한 헌사로도 읽힌다. “만인의 밥은 평등하다”는 단순 명제를 명쾌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잘 그려내 보임으로써 개인과 계층, 집단 사이의 불화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느낄 수 있다.

     

아프다,

새벽 세 시 반

쌀 씻고 밥을 한다

 

슬프다,

사는 것이

밥 먹는 일이라니

 

기쁘다,

잘 사는 것이

밥 잘 먹는 일이라서

ㅡ 옥영숙, 「한 끼」 전문

     

  적어도 먹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는 사람들도 잘 살기 위해서는 먼저 잘 먹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옥영숙 시인은 이처럼 간과된 인식체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언뜻 보면, 이 작품은 밥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프고, 슬프고, 기쁜 일들이 모두 ‘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행간에 숨은 뜻은 그렇게 일차원적이지 않다. 초장의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쌀 씻고 밥을 하”는 ‘아픈’ 행위는 밥을 짓는 차원을 넘어 밥벌이의 고단함을 은유하는 것이다. 중장은 평생을 밥벌이에 매달려야 하는 삶을 깨닫는 데에서 오는 충격과 처연함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잘 사는 것”으로 귀결되는 과정이라는 종장에 와서는 밥벌이의 숭고함과 준엄함을 느끼게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우리들 누구나의 보편적인 꿈이다. 배부른 돼지는 싫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도 싫은 게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방편으로, 돈을 번다는 행위가 밥벌이가 되면 그 의미는 자못 숭고해진다.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밥을 번다’라고 생각하면 속도와 물질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고단한 삶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돈이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의 이미지라면 밥은 따뜻하고 고마운 이미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그러한 숭고함이 결여될 때 나타나는 고단함 아니겠는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벌어야 한다. 오늘도 가족들의 ‘한 끼’를 책임지기 위해 빌딩 숲으로, 산으로, 들로, 바다로, 하늘로, 땅속으로 향하는 수많은 밥벌이꾼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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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l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메께라』,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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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