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한보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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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봄날이 오면〉, 한보리 시 / 한보리 곡
또 봄날이 오면
언제 다시 또 봄날이 와서
화사한 벚나무 아래 당신과 걷게 된다면
그때 머뭇거리며 못했던 그 말
‘사랑한다’ 말해야지
언제 들어도 닭살이 돋는
그 낡은 속삭임 ‘사랑한다’는 말
그때 부끄러워서 하지 못한 말
‘사랑한다’ 말해야지
그리곤 나는 다시 흰 머리 늙수그레 지금으로 돌아와
짐짓 다 잊은 체 늦은 저녁 술잔을 채우리
언제 다시 그대를 만나서
푸르던 날
너무 푸르러 서툴던 날들을
웃으며 환히 웃으며 이야기하게 될까
*
봄이 또 왔어
매번 보는 봄이지만 봄은 부드럽고 따스해
하지만 이번 봄도 아주 짧고 여름은 금방 닥쳐오고 말거야
지난 추위를 견디지 못한 율마가 노랗게 말라가는 것을 제외하곤
죽은 것처럼 동면에 들었던 베란다 식물들이 파랗게 싹을 틔우며 깨어났어
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는 초록 주렴을 드리우고 바람이 불어 초록바람
귓가에 소곤대는 음악은 봄바람 같아
그러나 놀랍게도
음악은 차갑고 딱딱한 물리나 수학의 영역에 있지
음악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문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몰라
봄날 노랗게 빛을 내는 길 양지바른 벽과 베란다 고양이의 게으른 하품
노래를 만드는 일은 쉽기도 하고 때론 어렵기도 해
시인들이 자신에게 온 시를 받아적었을 뿐이라고 말하듯
노래도 만들어지기보다는 먼 우주를 떠돌던 신비를 받아 적는 일과 비슷했지
젊을 때는 다가오는 모든 노래들을 다 받아 적어내려 애썼어
종이가 없으면 담배 은박지에, 펜이 없으면 나뭇가지로, 새벽에 갑자기 노래가 찾아오면 허겁지겁 벽에 낙서처럼 악보를 그려놓기도 했지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아 흘러갈 것들은 흘러가게 하고 어느 땐 받아적어야 할 것들도 모르는 체 외면하기도 해
내게 오는 모든 소리들을 다 기록해두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건 강박이야!
우리에게 오는 인연도 그런 게 아닐까? 지난 봄에 왔던 율마가 떠나가고 나는 그 빈 화분에
베고니아를 심을 작정이야

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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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