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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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4월 10일로 예정된 제22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는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으로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구성원 간 이견과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제도다. 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정한 선거와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른 정치는 좋은 정치인을 뽑는 데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총선은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새로운 일꾼을 골라내야 하는 빅 이벤트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유권자인 국민에게 있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지 말고 이념과 지연·학연을 내려놓고 공명정대한 사상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 그들이 다음 4년 동안 대한민국의 운명을 책임질 우리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옥석을 가리기 위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동안 정치인들의 움직임도 더욱 분주해졌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정치 용어가 있다. 이른바 합종연횡(合從連衡)이다. 이 말은 중국 전국(戰國) 시대 말기 최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이웃한 여섯 약소국들 사이에서 펼쳐진 외교 전략에서 나왔지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과 노선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모습을 보고 언론이 옛일에 빗대 표현하는 것이다.

   BC 4세기 말 강대한 진나라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연(燕)·제(齊)·초(楚)·한(韓)·위(魏)·조(趙)나라의 연대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이때 여러 나라를 돌며 유세를 하던 소진(蘇秦)은 “진나라 밑에서 소의 꼬리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닭의 머리가 되자”며 6국을 지리적 위치에 따라 종적(縱的)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을 제안하였다. 이에 대해 위나라 장의(張儀)는 합종은 일시적 허식에 지나지 않으니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6국을 돌며 연합할 것을 설득하여 진이 6국과 개별적인 횡적 동맹을 맺게 하였다. 이후 서로 연합하지 않은 약소국들은 차례차례 진에 의해 멸망하였고, 진은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했다.

   지금의 선거 정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거대 양당에 맞서기 위한 군소 정당들이 새로 생겨나고, 평소에는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다가 어느 날 손을 잡고 언론 카메라 앞에 선 어색한 동맹을 수없이 봐 오지 않았던가. 지금도 거대 양당의 공천 여파로 이탈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선거 연대를 위한 합종연횡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평소의 소신이든, 선거를 위한 일시적인 전략이든 여당 대 제1야당의 대결은 물론 두 거대 양당에 대항하기 위한 군소 정당들의 합종연횡이 쉴 새 없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과 정치꾼들, 그들을 돕는 모사꾼들의 세 치 혀가 얼마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 봐야겠지만 합종연횡 전략을 잘 구사하는 인물이 선거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은 경제학에만 통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선거에서 보이지 않는 손은 민심이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고 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천도(天道)가 무엇이냐?”고 물으며, 『사기(史記)』 「열전(列傳)」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고 일갈한 바 있다. 공자도 “정치의 으뜸가는 요체는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 누가 이끌지 않아도 민심은 자기 뜻을 항상 이룬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동안의 선거에서 줄곧 봐 왔다. 고대 중국과 현대 한국의 정치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권력과 이권을 위해 뺏고 빼앗기며 권모술수를 부리는 건 여전하다. 인간의 본성은 결국 다르지 않고, 또 변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유토피아 실현에 대한 꿈과 희망은 존재한다. 그것은 핍진한 현실을 되비추는 내면의 거울이다. 정치란, 결국 국민에게 희망과 현실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어지러웠던 시대, 공자도 제자 자공의 물음에 정치를 이렇게 풀었다고 한다. “첫째 국민을 배불리 먹이라. 둘째, 국방을 튼튼히 하라. 셋째, 국민에게 믿음을 주라”고. 그때로부터 2500년이나 지난 지금, 공자가 역설한 정치의 기본 이념은 실행되고 있을까? 실천은 고사하고, 그 뜻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정치인들이 흰소리나 내뱉는 모습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에 나오는 돼지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는 모순과 역설 말이다. 새로운 시대를 위해 국민의 각성이 무척이나 필요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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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조는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의 어머니인 영천이씨 부인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몽주는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학문이 일취월장했다. 이런 정몽주의 비범함을 알고 어머니는 아들에게 학문을 대하는 자세와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일러주었다. 그 어머니의 가르침은 위의 시조 「백로가」에 잘 나타나 있다. 이를 요즘 말로 풀어보면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 성낸 까마귀 흰빛을 시기할세라 / 청강에 일껏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와 같다. 까마귀의 검은빛과 백로의 흰빛 대비를 통해 청렴한 인물과 타락한 인물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검은 무리들과는 거리를 두라는 몸가짐에 대한 충고이다. 이 시조는 정몽주가 이방원이 베푼 연회에 갈 때 어머니가 아들에게 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한 창작시기는 알 길이 없다. 고려 말의 혼탁한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정몽주의 어머니는 아들의 비참한 최후를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몽주는 글과 학문을 아버지에게 배우다가 목은 이색과 인연을 맺게 된다. 정몽주의 아버지가 목은 이색의 아버지 이곡과 친분이 있어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하도록 한 것이었다. 목은은 이 땅에 성리학을 도입한 안향과 백이정, 이제현의 직계로 조선 사림파의 시조 격으로 불린다. 정몽주는 이색의 문하에서 정도전, 권근, 이숭인, 조준, 남은 등 당대 최고의 엘리트들과 만나 교우하였다. 훗날 이들은 여말선초 시대를 이끌어간 사대부의 핵심이 되었다. 특히 정몽주와 정도전은 성리학적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의기투합한 평생의 지기이자 정치적 동반자였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을 좇아 생사를 걸고 싸운 라이벌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두 사람은 사상과 이념을 같이하고 서로의 학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의 뿌리를 도려내기 위한 토지개혁 등에서 두 사람의 지향점은 같았다. 다만, 그 방법론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불구대천의 관계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목은이 사랑했던 두 제자의 운명은 고려와 조선을 대표하는 상징체로 갈렸지만, 포은이 죽은 지 6년 만에 정도전도 이방원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공통점은 이들의 관계를 더욱 운명처럼 만든다.

  영천 이 씨의 시조 작품은 『청구영언』을 비롯해 『해동가요』와 『가곡원류』, 『화원악보』 등에 실려 있으며, 시조집마다 표기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위의 원문은 『청구영언』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한편, 『청구영언』에는 비슷한 제재와 주제의 작품들이 또 있다. “까마귀 검으려 말고 해오라기 흴 줄 어찌 / 검거니 희거니 한편이기도 한지고 / 우리는 물수리 두루미라 검지도 희지도 아니어라”나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 아마도 겉 희고 속 검은 건 너뿐인가 하노라” 등이다. 모두가 까마귀와 백로를 대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가면의 나라에서는

가면을 써야 한다며

 

뜰 앞의 동백꽃이

하얀 너울 쓰고 있다

 

대문을

나서는 나도

철가면을 하나 쓴다

ㅡ 이구학, 「가면의 나라」 전문

   

  ‘합종연횡’을 위한 이합집산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정치인들은 대부분 자신의 얼굴색을 감추기 위해 보호색을 가지고 있거나 때로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이것이 정치적 위선(political hypocrisy)이다. 위선(僞善)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만 착한 척하거나 거짓으로 꾸밈’이다. 한마디로 겉과 속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미국 정치 칼럼니스트인 마이클 거슨(Michael Gerson)은 정치적 위선에 대해 “의식적으로 가면을 사용하여 대중을 속이고 정치적 이익을 얻는 것(The conscious use of a mask to fool the public and gain political benefit)”이라고 정의했다. 앞에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척 남을 공격하면서도 뒤로는 비리와 부조리를 일삼는 ‘내로남불’의 이중성은 정치인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이구학 시인의 「가면의 나라」는 정치인을 포함한 뭇 사람들의 위선을 꼬집는 작품이다. 여기서 가면은 위선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위악(僞惡)을 가장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만의 가면을 쓰고 산다. 거기에는 탐욕이나 계략, 실수나 수치를 감추기 위함이기도 하고, 자신의 약점이나 약함을 숨기려는 의도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가면무도회장이 아닌가. 가면을 쓰지 않고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는 사회, 그런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시인은 냉소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가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들과는 달리 정치인과 사회지도자들에 대한 기준이 같을 수는 없다. 국익과 민생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응당 국민들과 유권자들 앞에서는 가면을 쓰거나 연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과 진심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민생이 표류한다

꽃송이에 닿지 않고

 

공수표 꽃잎들

하르르 휘날리는

 

꽃놀이

여의도에선

짓이겨진 공약만 

ㅡ 김민서, 「여의도 벚꽃」 전문

    

  여당이나 야당은 물론, 물밑에서 권토중래를 꿈꾸는 재야인사들까지 가세한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쟁만 일삼으며 선거 채비에 돌입함으로써 민생과 경제는 뒷전으로 내팽개쳐버렸다. 입으로는 민생과 경제를 앵무새처럼 부르짖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김민서 시인도 「여의도 벚꽃」을 통해 이러한 선거 정국을 꼬집고 있다.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이 있는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이자 화려한 벚꽃길로 유명한 윤중로를 품은 곳이다. ‘여의서로’가 정식 명칭인 윤중로는 국회의사당을 끼고 있다. 벚꽃은 한순간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고 마는 생태적 특성이 있다. 그처럼 찰나에 스러지고 마는 벚꽃잎은 선거 공약과도 같다. 선거철에는 화려한 사탕 발림으로 유권자들을 현혹하다가 선거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는 국회의원들의 공약(公約)은 국민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말만 번지르르한 속 빈 공약(空約)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수표만 남발하는 정치인들의 언술이 올해 봄만큼은 달라지길 기대하지만 그 기대조차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맹자』의 「양혜왕상편(梁惠王上篇)」에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말이 있다. 전쟁터에서 겁에 질려 오십 걸음을 도망한 사람이나 백 걸음을 도망한 사람이나 도망간 것은 마찬가지라는 말이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것은 같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고사성어다. 그리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않고 남의 잘못만 들추는 행태를 빗댄 말이다. 이러한 모든 말들은 상대방의 허물만 들추고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함을 비유한 오래된 금언이다. 선거 정국에 돌입한 요즘의 정치판을 보니 딱 그 꼴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최소한 이판사판식 비방과 폭로가 유권자의 귀를 더럽히는 네거티브의 유세 전략만큼은 이전보다 덜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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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l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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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