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
반복과 시의 음악성
단시조는 시조의 원형이며 백미라 할 수 있다. 단시조 중에서도 가장 소박하면서도 멋진 시조를 들라면 어떤 작품을 생각할 수 있을까? 비슷하거나 동일한 말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텍스트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반복되는 음절들을 찾아내어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언어의 음악성을 구현하는 텍스트들이 있다. 송시열의 「청산도 절로 절로」나 김상용의 「사랑이 거즛말이」가 생각난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절로 수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
ㅡ 송시열
송시열의 텍스트는 참으로 단순한 몇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산, 수, 청산, 녹수, 산수간, 그리고 몸과 나이다. 그 단어들을 모두 아우르는 부사 ‘절로’가 초 · 중 · 종장을 하나로 연결한다. 그리하여 텍스트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산과 물은 서로 다른 존재이고 청산과 녹수는 더욱 구별되는 주체들이다. ‘나’ 혹은 ‘나의 몸’은 더욱 그러하다. 산, 물, 청산, 녹수는 한결같이 자연의 일부라는 공유항을 지니지만 시적 화자는 그렇지도 못하다. 청산이나 녹수와 같은 자연으로부터 엄격히 분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모두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이 절로절로 이루어져서 절로절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청산과 녹수와의 거리, 혹은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 간의 거리를 넘어서는 자연스러움을 시인은 노래하고 있다. 자연의 이치가 우주 만물에 작동하게 되기를 함께 희구하게 된다. 초장의 “청산도 절로절로 (……) ”에서는 3. 4. 3. 4음절의 반복을 보게 된다. 그러나 중장에 이르면 3. 3. 4. 4음절 구성이라는 변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종장에서는 3. 6. 5. 3음절 구조가 구현되어 있다. 종장에서는 ‘이중에’라는 어휘가 등장하면서 초장과 중장의 요소들을 결집하여 재확인하게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개될 결말의 전언을 준비한다.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라는 마무리 부분에서 시상의 확장, 이완과 수축,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시인이 자신이 부리는 시어들을 적절히 배열하는 기술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 한번, 시의 음악성은 적절한 시어의 선택과 배치에서 오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김상용 시조를 함께 살펴보자.
사랑이 거즛말이 님 날 사랑 거즛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긔 더욱 거즛말이
날갓치 잠 아니오면 어늬 꿈에 뵈오리.
ㅡ 김상용1)
거짓말이, 거짓말이, 거짓말이로 “거짓말이” 구절이 세 번 반복된다. 초장에서는 ‘거짓말’을 수식하기 위하여 “사랑이”와 “님 날 사랑”이란 한정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그 한정어는 3음절에서 4음절로 변하면서 한 음절씩 늘어나는 모양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중장에 이르면 ‘거짓말이’의 앞부분은 한껏 확장된다. “꿈에 와 뵈단 말이 그 더욱 ”구절 전체가 세 번째로 등장하는 “거짓말이”를 수식하는 데에 동원되고 있는 것이다. 총 10음절로 이루어진 구절이 오로지 “거짓말이”를 수식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여러 시조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김상용의 이 작품에서도 초 · 중장과 종장은 사뭇 다른 성격을 지닌다. 초장과 중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초장이 하나의 주제를 제기하는 반면 중장은 그 주제를 연장, 보완, 변주해준다. 그러나 종장에 이르면 매우 다른 성격의 전언이 등장한다. 종장은 전혀 이질적인 속성을 지닌 채 초장과 중장에서 보이던 반복성의 규칙을 일시에 와해해 버린다. 텍스트의 음악성은 초장과 중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는데 두 장은 반복성과 규칙성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텍스트를 읽을 때 독자로 하여금 말의 반복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한다. 사랑은 거짓말이고 님이 날 사랑한다는 것도 거짓말이며 꿈 속에서 본다는 말은 더욱 완전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텍스트의 전언이다. 그렇다면 이 텍스트의 내용이야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처럼 일견 진부해 보이는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독자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일까? 텍스트로 하여금 한 편의 시가 되게 만드는 요소 중에는 다름 아닌 음악성, 즉 말이 주는 리듬감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연하거니와 이 시의 중장에서는 “거짓말이”를 선행하는 구절이 텍스트 전체의 음악성에 기여하고 있다. 그 부분에서 점증하는 음절들은 텍스트로 하여금 상승, 즉 음악의 크레센도(crescendo)를 지향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종장에 이르면 초장과 중장에서 시적 화자가 차근차근 전개해 오던 시상은 마무리가 된다. 종장은 반복되던 요소를 일시에 제거해 버린 채 급격히 방향을 돌린다. 그런 다음 진정으로 시적 화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드러내게 된다. “꿈에 나를 보았다는 그대의 말은 거짓말일 수밖에 없으리라”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그제서야 시적화자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며 상대에게 묻는 것이다. “그대가 참으로 나처럼 잠을 못 이룬다면, 즉 그토록 나를 그리워한다면 어떻게 꿈을 꾸고 그 꿈에 나를 본다는 말이냐”고 묻는다. 조선의 선비조차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는 예외가 없는 것인지 앙탈을 부리듯 하는 사랑의 유희를 텍스트가 보여주고 있다.
영시에서는 영어의 특징을 살려서 음악성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규칙들이 있다. 음보, 각운, 자음 반복등이 그 규칙에 해당한다. 리듬은 주로 음보(meter)라고 부르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음절들을 강세와 약세의 규칙에 따라 배열하여 음보를 형성한다. 그 밖에도 반복되는 음절들이 메아리처럼 들리게 만드는 rhyme(각운), 또는 근접한 단어들에게 동일한 자음을 부여하여 통일성을 획득하는 자음 반복 (alliteration)등의 장치가 있다. 우리 말에는 음절의 강세와 약세의 구별이 없는 까닭에 음보나 각운을 찾는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동일한 음절을 반복하거나 혹은 비슷한 구절을 반복하여 통일성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것으로 시의 음악성을 구현하는 장치를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반복을 통하여 언어의 음악성을 드러내고 있는 현대 시조를 찾아보자. 동일한 구절을 각 장에 반복 배치한 박명숙 시인의 「돌밭」을 살펴보자.
찔레꽃과 탱자꽃이 돌밭 가에 나앉아서
쌉쌀하거나 까슬하거나 우르르 나앉아서
숱 없는 머리채 흔들며 향기들끼리 나앉아서
ㅡ 박명숙, 「돌밭」
시인은 찔레꽃과 탱자꽃이 피어 있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나앉아서”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그 꽃들에게 ‘피어 있다’라는 말 대신에 ‘나앉았다’라는 표현을 부여함으로써 시인은 꽃을 그리는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다. 꽃의 서사를 다시 쓴다. 그리하여 찔레꽃과 탱자꽃의 개화를 낯설게 만든다. 그 꽃들은 왜 나앉아 있는 것일까? 나앉아서 어쩌자는 것일까? 그들이 나앉아서 하릴없이 세월을 흘려보내는 이유를 감지하게 만드는 몇 개의 암시적 어휘가 텍스트에 들어 있다. 숨은 그림 찾기에 능한 독자라면 당장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돌밭, 우르르, 그리고 숱 없는 머리채”가 그것이다. “쌉쌀하거나 까슬하거나”도 도움이 되겠다. 돌밭은 순조롭지도 평탄하지도 않았던 삶의 공간을 그려낸다. ‘우르르’라는 부사는 그처럼 거칠고 척박한 영토를 일구어온 존재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알려준다. 마침내 “숱 없는 머리채”는 그들의 연령을 암시한다. 연령이라는 말이 호랑이에게 남아 있는 이빨의 개수를 이르는 것이듯, 이가 몇 안 남으면 노령이라 부르듯, 숱 없는 머리채는 꽃의 연령을 말해준다. 그 삶이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결국 전언을 요약하자면 ‘나앉아서’만 남기게 될 것이다. 찔레꽃과 탱자꽃이 나앉아서, 우르르 나앉아서 (……) 숱없는 머리채 흔들며 나앉아서.”
“나앉아서”를 반복하면서 박명숙 시인은 곱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생명체들을 향하여 송가를 부르고 있다.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에겐 스스로 주장할 힘이 없는 존재들의 마음을 읽으려는 자세가 언제나 필요하다. 머리숱을 잃어가면서 한 생을 성실히 살아온 존재들도 울음 우는 아이와 같다.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일 줄 모른다면 사랑의 달콤한 속삭임에도 그의 귀는 어두울 것이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거치며 닳아지고 낡아진 존재로 찔레꽃과 탱자꽃이 피어 있다. 아니, 나앉아 (……) 있다. 후렴인 양 “나앉아서”를 따라부르며 박명숙 시인은 오래된 꽃노래를 채록하고 있다.
1) 해동소악부에 소개된 한역본은 다음과 같다. 向儂思愛非眞辭 最是難憑夢見之 若使如儂眠不得 更成何夢見儂時. (청구영언 상, 142면)

박진임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1년 1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