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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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진임 

 

 

 

 

흥부 돌아왔다

 

 

 

 

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배 팔아 말[馬]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워라

이후(後)란 배도 말도 말고 밭 갈기만 하리라

 

ㅡ 장만(1566~1629)

 

 

  세상살이에서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재화와 권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를 희망하는 이들은 넘쳐나니 아귀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이다. 장만의 시조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바다에 배를 저어 나가자니 바람과 파도가 덤벼들어 힘겹고 말을 몰아 길을 가자니 꾸불꾸불하고 험한 산길이 펼쳐져 역시 힘들다. 소 몰아 밭을 가는 농사일은 우리 옛시조에서는 흔히 매우 평화로운 것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농사를 직접 지어본 사람들은 말한다. 농사를 지어 풍년을 맞는 것이야말로 복권 당첨 같은 것이라고. 그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기후이고 농사의 결과라고 한다. 때로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때로는 가뭄이 닥치니, 알곡을 가꾸는 일인들 어찌 편안하기만 하겠는가? 농사를 짓는다면 사람들 사이에서 겪는 갈등이야 피해갈 수 있겠다. 그러나 기후는 하늘이 결정하는 것이니 비가 오거나 날이 가물 때 안타깝고 답답해도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농부의 처지인 것이다.

  장만의 시조에서 배와 말의 비유는 문관과 무관의 대립을 표현하느라 사용된 것이라고 하는데 단지 그렇게 한정해야만 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어떤 일이든 쉬운 것이 없고 거친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자면 그 어려움들을 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읽어도 좋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으려니와 그 힘든 바는 남성 주체들에게 한층 더했을 것이다. 가장이 되어 식솔을 부양해야 하니 한 가정에서 아버지 노릇하기는 참으로 어려웠겠다.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고 위험도 감수해야 하거니와 더러는 자존심마저도 접어야 할 때가 한두 번이겠는가?

  삶의 양상이 복잡다단해지고 직업이 더욱 분화된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가장의 어깨는 더 무거워진 듯하다. 그러나 우리 문학의 장에서는 아버지의 삶을 재현하는 작품을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은 것 같다. 모성애는 찬양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부성애를 그린 텍스트는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가장, 그것도 이즈음처럼 부부가 함께 일을 하며 가계를 운영하는 맞벌이 가정이 드물었던 시절의 가장이 겪었을 어려움을 다시 생각해본다. 어깨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는 큰 짐을 진 채 지치도록 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들의 모습을 그려보면 숙연해질 뿐이다. 운초 박재두 시인의 「흥부 돌아왔다」를 읽어보자.

 

 

흩날린 분필 끝에 넋도 섞어 팔고

떨리는 양다리 허리 겹친 날품팔이

흥부 다 풀어진 동자 이 애비가 돌아왔다

 

해종일 기다리다 배가 등짝에 나가 붙은

목이 빠진 멧비둘기 털복숭이 같은 새끼들

산초알 새까만 눈알 널 보러 돌아왔다

 

스무평 시멘트 저자 바닥을 돈 장돌뱅이

지조 헐린 넝마, 밑천도 바닥나고

늘어난 흰 머리 끝에 빗달 하나 걸렸다.

 

ㅡ 박재두, 「흥부 돌아왔다」 전문

 

 

  시적 화자의 직업은 분필이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난다. 분필을 사용하는 직업, 즉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직업임을 짐작할 수 있다. 분필에서 제시된 바는 스무평 시멘트 저자 바닥에서 분명해진다. 스무평 시멘트 바닥은 교실을 지칭할 것이다. 스무평 남짓한 교실에서 아마도 육십명 가까운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분필 가루를 뒤집어쓰면서 시적 화자는 칠판에 무엇인가를 쓰거나 그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하루치의 일을 해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텍스트에서는 교육이라는 일이 그다지 신성하거나 보람찬 일로 그려져 있지 않다. 그 대신 교육자의 일이 저자 바닥에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일과 동일시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저자 바닥이라는 어휘와 더불어, 밑천, 장돌뱅이, 그리고 “넋도 섞어팔고”에서 찾아볼 수 있듯 ‘팔다’라는 어휘를 시인이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딱히 교육자의 자부심과 사명감이 부족해서 그러했겠는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속에 놓인 1980년대의 한국 현실에서 학교라는 기관의 피고용인에 불과한 시인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였기에 그처럼 장사꾼의 은유를 도입했을 것이다. 지식을 나누어주는 교육이라는 일조차 하루치 혹은 한달치의 급여를 벌어들이기 위한 단순 노동이 되어버린 것에 대한 자의식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런 어휘들을 텍스트에 도입하게 했을 것이다.

  날품팔이라는 시어에서는 더욱 슬픈 표정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날삯, 즉 일당을 받고 품팔이를 하는 이는 육체노동자이다. 막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일을 맡는다. 장돌뱅이는 밑천이 있으면 무엇인가를 팔아 밥을 벌어올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런 밑천조차 갖지 못하면 자신의 노동력 밖에는 팔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날품팔이는 필연적으로 가난의 은유가 된다. 시인의 하루치 노동, 날품팔이는 자신을 기다리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를 기다리느라 “목이 빠진 멧비둘기 털복숭이 같은 새끼들” 때문에 시적 화자는 날품팔이도 넋을 파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만이 그 멧비둘기들, 털이 부숭부숭한 어린 것들을 먹여 살릴 수 있고 그 새끼들은 자신을 기다려 “목이 빠진” 줄을 알기 때문에 슬픈 노동을 중단할 수 없는 것이다. 새끼들은 시적 화자의 희망이며 보람이며 존재 이유이다. “산초알 새까만 눈알 널보러 돌아왔다.” 그들의 눈알은 산초알처럼 새까맣게 반짝이고 있으니 고달프다고 어찌 날품팔이를 중단할 수 있겠는가? 양다리가 떨리고 허리가 겹쳐질 때까지 그리고 눈동자가 풀어질 때까지 날품팔이 혹은 장돌뱅이 노릇을 멈출 수가 없다. 지조조차 헐리고 결국에는 흰머리만 한 올 두 올 늘어나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다시 날품팔이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가장이라는 이름,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닌 이가 하는 일이다. 영낙없는 흥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가 고파 방바닥에 드러누운 어린 것들을 보며 허위적 허위적 밥을 얻으러 나섰다가 해 지면 돌아오는, 이 땅의 아버지들은 모두 흥부들이다. “날품팔이”를 “매품팔이”로 잘못 외었다가 통곡한 적이 있다. 흥부는 매품을 팔아 자식을 먹여 살렸다. 가장도 아니고 아버지도 되어본 적이 없는 필자는 어쩌면 영원히 흥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흥부 아버지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자식을 기르느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눈물겹기는 마찬가지이다. 박재두 시인의 「화병」에 등장하듯 어머니들 또한 “멍에 진 짐은 겨워도 부릴 곳이 없”는 존재들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천지 한바닥에 뜬 낙도처럼 서러워라” 구절처럼 외롭고 서러운 존재가 어머니들임을 안다. 「흥부 돌아왔다」를 읽는 시간은 흥부의 딸이 흥부 아버지를 기리는 제의의 시간이다. 그러는 사이 흥부의 딸도 흥부를 닮아간다. 그에게도 “늘어난 흰 머리 끝에 빗달 하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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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임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