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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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노래하다
소설가 이창래의 『생존자The Surrendered』를 영어로 읽다가 눈물을 쏟은 기억이 있다. 텍스트의 서사 속에 삽입된 한 편의 시, 아일랜드 민요 가사 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헥터 브래넌은 한국 전쟁 고아인 어린이 민이 도끼를 잘못 휘둘러 발가락이 잘리게 되자 그를 들쳐 업고 달려서 산을 넘어간다. 서둘러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기에 쉬지 않고 달리는데 민은 고통을 견디지 못해 신음 소리를 내면서 운다. 헥터에게는 민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럴 때 헥터는 위로의 수단으로 노래를 생각해낸다. 헥터는 어린 시절 잠 못 드는 그를 위해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불러 주던 민요를 떠올리고 그 노래를 불러 준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배경으로 삼는 노래이다. 노래 가사의 공간에서는 에이쓴리(Athenry) 평원이 등장하는데 대기근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궁핍과 상실이 거기 펼쳐진다.
Low lie the fields of Athenry,
Where once we watched the small free birds fly.
Our love was on the wing.
We had dreams and songs to sing.
It’s so lonely round the fields of Athenry.
― Lee, 1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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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에이쓴리 들판이 있네.
자유로운 작은 새가
날아가는 것을 우리 함께 보았지.
우리 사랑도 그 날개에 있었지.
그때 우린 꿈이 있었고 함께 부를 노래가 있었지.
지금 에이쓴리 들판 주변은 너무도 쓸쓸하네.
― 졸역
대기근 이전에 사람들이 지녔던 사랑과 꿈이 그 평원을 날아가는 자유로운 새의 날개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고 그 과거의 기억과 대조를 이루는 현재의 모습이 시의 첫 줄과 마지막 줄에 등장한다. 소설의 한글 번역본 『생존자』에서는 삽입된 시의 번역이 졸역과는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졸역에서는 시적 화자가 평원 위에서 발아래 펼쳐지는 평원을 굽어보고 있다는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첫 줄에 나타내어 강조한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공간적 구도 속에서 시적 화자의 기억 속의 과거가 쓸쓸한 현재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며 생생히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상실의 아픔을 그린 아일랜드 민요는 아일랜드에서 출발하여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어린이 헥터의 밤을 지킨다. 그리고는 다시 태평양을 건너 불쌍한 아이, 민의 고통을 달래준다. 그처럼 문학 텍스트는 지구 곳곳을 여행한다. 영향 혹은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이름으로 문학 이론가들은 그 여행을 명명하곤 한다. 그렇다면 여행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는 다름 아닌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짧고, 선명하며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음악성조차 지니고 있어서 여행을 통해 다음 독자에게 전달되기가 매우 쉽다. 낸시 비커스(Nancy Vickers)가 말했듯 시는 만연성을 그 특징 중의 하나로 지닌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시가 없는 곳은 없다. 시는 도처에 깔려 있다. 광고 문구도 안내 방송도 잘 만들어진 것은 한 편의 시인 까닭이다.
에이쓴리의 평원은 역사적인 트라우마의 전과 후를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과도 같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그 평원이 기억의 공간이듯이 기억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세계 곳곳의 서정시에 담겨 있다. 이별한 님을 기억하는 조선 시대 시조를 보자.
이화우(梨花雨) 흩뿌릴제 울며 잡고 이별(離別)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라
ㅡ 계랑
계랑은 가을 바람 속에 몰려가는 낙엽을 보면서 배꽃 질 때 헤어진 님의 기억을 떠올린다. 낙엽과 배꽃, 가을과 봄은 님의 부재와 존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님의 기억은 비처럼 쏟아지는 배꽃 속의 이별 이미지에 실린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가을 저녁, 쓸쓸한 바람에 불려 다니는 낙엽은 쓸쓸히 홀로 남은 시적 화자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님에 대한 그리움을 강조한다. 아일랜드의 에이쓴리 평원을 날아가던 새의 날개 위에 깃들었던 꿈과 사랑이 사라져 버린 평원, 그 넓은 들의 쓸쓸함이 우리 시조에서는 “추풍 낙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숙희 시인이 기억을 재현하는 방식은 보다 복합적이다. 평원을 날아가는 새나 벚꽃 혹은 낙엽이 지니는 선명하고도 단순화된 기억이 한결 은은하고 섬세한 것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여준다.
1
내가 살던 촌에선 오이를 물외라 했다
그냥 외도 아니고 참외도 아닌 이름
어쩐지 맺힌 데 없어 나지막이 부르고픈
아닌 척 까칠한 척 초록 가시 세웠지만
순한 몸 뚝 자르면 가득 품은 물빛 향을
속 없이 다 내주고서 푸르게 울먹이는
2
여름내 참았을까 외꽃같이 연한 울음
그 울음 꼭꼭 접어 가만히 건네던 날
싸리울 성근 그늘이 말없음표 젖었지
잊어도 좋겠지만 간직해도 좋을 이름
참외처럼 샛노랗게 달지는 않지만
내 유년 먼 시오리길의 물외 같은 그 아이
ㅡ 서숙희, 「물외라는 이름」 전문
서숙희 시인이 기억의 객관적 상관물로 제시하는 것은 여름철의 오이이다. 그러나 그 오이는 오이가 아닌 물외로 재현될 때에만 시적 화자의 기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그런 대상이다. 시인은 ‘물외’라는 사라져 버린 이름을 기억의 상자에서 골라낸다. 물외는 오이라는 표준어에 의해 밀려난 사투리이면서 시간의 흐름 속에 매몰되어 버린 기억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시인은 마치 기억의 고고학자 같다. 고고학자가 유적지에서 조심스럽게 흙더미를 붓으로 쓸어내며 남겨진 것들을 원형 그대로 발굴하고자 애쓰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외라는 이름과 함께 사라져 버린 이름을 하나 하나 불러낸다. 물외가 지녔던 시원하고도 쌉쌀한 맛과 물외처럼 맑았던 우정의 기억을 고스란히 복원한다. 그 기억은 “내가 살던 촌”의 시오리길을 다시 걷게 만든다. 물빛 향, 푸르게 울먹이는, 외꽃같이… 이라는 몇 개의 이미지 속에서 빛깔과 향기가 섞이고 넘나들며, 외꽃과 친구의 얼굴이 또 겹쳐서 나타난다. 물외가 지닌 강렬하지 못한 맛, 그러나 바로 그처럼 “샛노랗게 달지는 않”다는 것이 물외에 대한 기억의 핵심이다. 물외를 통해 기억의 정체를 확인하는 시인의 언어를 보라. “잊어도 좋겠지만 간직해도 좋을 이름” 구절에서 텍스트의 주제가 동두렷이 떠오른다. 그것은 어쩌면 모든 기억의 정체이기도 할 것이다. 잊거나 간직하거나 간에 별 차이가 없는 것, 그러나 바로 그 까닭에 더욱 소중한 것, 그것이 기억이 아닐까.
섬세한 언어로 구성된 서사에서도 기억은 서정시에서만큼이나 생생하고 강렬한 힘으로 되살아난다. 한강의 『흰』은 서사와 서정시의 경계를 지우거나 넘나드는 텍스트로 보아도 좋을 듯하다.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된 그의 문장들은 한 편의 서정시라고 읽어도 무리가 없다. 「수천 개의 은빛 점」을 보자.
그런 밤에는 아무런 이유 없이 그 바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배가 너무 작아서 약간의 파도에도 세차게 흔들렸다. 아홉 살 난 그녀는 겁이 나서 어깨를 웅크렸다. 머리와 가슴을 낮추다못해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했다. 그러던 한순간, 수천의 은빛 점들이 먼 바다에서부터 밀려와 배 아래를 지나갔다. 단박에 그녀는 무서운 것도 잊어버리고, 압도하는 그 반짝임들이 세차게 움직여가는 쪽을 멍하게 바라봤다.
… 멸치떼가 지나갔다야.
배 고물에 무심히 걸터앉아 있던 작은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그을린 얼굴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 헝클어져 있던, 이태 뒤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그가
ㅡ 86면
밤, 바다, 파도에 흔들리던 작은 배, 아홉 살 배기 소녀였기에 유난히 더 무서웠을 밤바다,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힌 섬광 같은 은빛 점들, 그 반짝임, 생명 가진 멸치 떼, 작은 아버지의 존재, 그리고 이년 뒤의 그의 부재, 그 모든 것들이 기억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밤과 반짝임의 대조가 선명하듯 살아있다는 것의 아름다움과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도 강한 대조를 이룬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반짝임 같은 것, 저녁에 지는 별똥별처럼 덧없고 예측 불가능한 것이 생명인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한다. 떼 지어 몰려다니는 생명체의 빛과 불과 이년 뒤에 소멸할 생명, 그리고 그 모두를 감싸고 있는 어둠.
우리 말의 기억을 뜻하는 말이 영어로는 memory인데 프랑스어로는 souvenir라고 배웠다. souvenir는 영어에서는 기념품만을 뜻할 뿐이다. 기념품이 곧 기억이고 기억은 다시 기념품에 담기는 것이라서 그런 것일까? 기억이 매개되지 않으면 들판은 들판일 뿐이고 나무는 나무일 뿐일 터이다. 바닷물을 가르며 헤엄쳐가는 물고기 떼도 그저 한 떼의 물고기 떼에 불과하며 그들은 그들의 갈 길을 찾아가고 우리는 무심히 지켜볼 뿐이다. 그러나 기억이 배어 있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사소한 것일 수 없다. 물외는 잊혀진 이름이 되고 오이만 기억하게 된 현실에서 물외는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낱말이 되었다. 도시화되기 전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이 그 말을 발음하면 떠오른다. 저녁 시간 연기가 오르는 초가 지붕 옆으로 울타리를 타고오르는 넝쿨이 보인다. 그 넝쿨에 매달린 물외를 하나 따서 뚝 자르는, 고모의 모습이 보인다. 물빛 향이 서숙희 시인의 텍스트 전체에 어려 있다. 그 물빛 향으로 기억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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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한 책
1. Lee, Chang-rae, The Surrendered, New York: Riverhead Books, 2010.
2. 한강, 『흰』, 문학동네, 2016.

박진임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1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