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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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면 봄을 노래하라!
다시 한반도에 봄이 왔다. 남녘 바닷가에서부터 벚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봄은 북으로, 북녘으로 조금씩 옮아간다. 산마다 언덕마다 나뭇가지에 더운 숨을 끼얹어 그동안 차마 터뜨리지 못했던 꽃망울들을 기어이 열게 만든다. 벚꽃 피는 날이면 아직도 설렌다. 올해는 봄이 한 열흘은 앞당겨 찾아온 듯하다. 서울 남산 벚꽃이 지려 할 때 급히 차를 몰아 길을 떠났다. 문경새재 높은 곳에서 벚꽃 바람에 휩싸였다. 고속도로 길가에 호위병처럼 늘어선 벚나무가 바람결에 벚꽃들을 밀어 보내어 눈보라처럼 마구 흩날리게 했다. 그런 순간에는 환대받는 손님처럼 우쭐해져도 좋으리라. 이런 역병의 시대를 조용히 견디며 삶을 유지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그렇게 확인해도 좋으리라.
루이스 글뤽(Louise Glück)이 말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봄 시를 지어야 한다(Every Poet should write a Spring poem).” 글뤽의 말을 그대로 텍스트에 인용하면서 데이브 스미스(Dave Smith)가 「봄 시( The Spring Poem)」를 썼다.
Yes, but we must be sure of verities
such as proper heat and adequate form.
That’s what poets are for, is my theory.
This then is a Spring poem. A car warms
its rusting hulk in a meadow: weeds slog
up its flanks in martial weather. April
or late March is our month. There is a fog
of spunky mildew and sweaty tufts spill
from the damp rump of a back seat. A spring
thrusts one gleaming tip out, a brilliant tooth
uncoiling from Winter’s tension, a ring
of insects along, working out the Truth.
Each year this car, melting around that spring,
hears nails trench from boards and every squeak sing.
ㅡ The Spring Poem」 by Dave Smith(b.1942)
*
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진리를 믿어야 해요,
알맞은 온도, 적절한 형식 같은.
그것이 시인의 역할이죠. 그게 내 논리지요.
그렇다면 이것은 봄의 시라 할 수 있죠. 언덕에서 차 한 대가
녹슨 몸체를 데우고 있어요. 냉엄한 날씨 속에서
풀들은 제 옆구리 살을 밀어 올리죠. 사월이나
늦은 삼월이 우리들의 시간이죠.
힘차게 피어나는 하얀 곰팡이의 안개,
그리고 축축한 뒷 좌석에 남겨진, 땀에 전 머리카락 타래.
봄은 긴장된 겨울의 쇠줄을 풀고 나오는 빛난 이빨 같은
반짝이는 꼭지를 애써 밀어내죠.
한 무리의 벌레들도 데불고.
그렇게 진리를 반복하지요.
해마다 그 봄 무렵에 해동하는 이 차는
나무판에 박아 넣은 못들이 참호를 파내는 소리와
삐걱거리는 모든 것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지요.
ㅡ 졸역.
자동차 뒷 자석의 쇠 스프링이 새순 내는 풀처럼 새 이빨을 드러내는 것, 나무 판자에 망치로 두들겨 박아 넣은 쇠못이 판자를 뚫고 올라 오며 자유를 향해 도약하는 것, 봄이란 그런 것이다. 넘쳐나는 생명력을 어쩌지 못하여 너도나도 안절부절못하는 것인가 보다. 뒷 좌석이 축축히 젖어 곰팡이가 피어나고 땀에 전 머리 타래가 거기 쏟아져 있는 것에서 성적 은유를 찾아볼 수 있다. 봄이 생명의 계절이듯 젊은이의 성적 욕망이 생명을 추동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못도 판자를 뚫고 나오려 하고 쇠 스프링도 이빨을 밀어내는 봄날이다. 그런 날 젊은 생명체들에게 그 봄의 설렘이야 오죽하리오.
『청구영언』에 소개된 효종 대왕의 봄노래를 보자. 봄비 내리는 풍경을 그리면서 봄 시를 지었다. 봄을 맞아 온 세상이 들썩이며 함께 웃고 있는 즐거운 날로 봄날을 그리고 있다.
靑江에 비듯는 소리 무엇이 우습관대
滿山紅綠이 휘드러 웃는고다
두어라 春風이 몇날이라 우을때로 우어라
*
푸른 강에 비내리는 소리 무엇이 우습기에
온산의 꽃과 풀이 흐드러지게 웃는구나
두어라, 봄바람이 몇 날인가 웃을대로 웃어라.
한때는 이 나라의 모든 꽃과 풀과 나무가 봄비에 흠뻑 젖으며 어린아이처럼 웃어 젖혔으리라. 그런 시절 어른은 지혜를 나누어 가르치며 조용히 자연에 스며들기를 꿈꾸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하여 그 만산홍록 속에 섞여들었으리라. 비 그치면 얼음 풀린 강물에서 빨래를 하거나 창포에 머리를 감는 여인들의 모습도 어렸을 법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반도에도 봄은 수백 번 찾아오고 또 떠나갔다. 이제 이 땅에 사는 오늘날의 시인들에게는 봄이 약동하는 생명의 계절일 수만은 없다. 봄의 풍경에서 굴곡 많은 우리 역사를 함께 본다. 오종문 시인이 그리는 봄은 건강한 생명력이 넘쳐나는 봄과는 거리가 멀다.
봄빛 스크럼 짜고 농성 중인 반도의 땅
하늘은 왜 이렇게 지독히도 파란 걸까
이 서울
가미카제식
저 폭격의 섬뜩함
백 년 전 그니 몸의 체온이 기억하는 것
짧은 밤 그 손길에 겁간당한 알몸일까
아직도 불륜 꿈꾸는
저 망령의 꽃잎들
ㅡ 오종문, 「벚꽃, 다시 핀다」 전문
시인은 봄 벚꽃 앞에서 농성과 스크럼, 가미카제 폭격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일본의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과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의 역사가 벚꽃 그림자에 아른거리고 있음을 본다. 성적인 욕망의 은유를 벚꽃에서 찾기도 하지만 그 욕망 또한 우리의 역사적 모순 만큼이나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채 작동하는 것임을 그린다. 21세기 한국 시인이 한반도의 봄을 그리는 방식이다.
이재경 시인은 사과꽃 피는 봄날을 노래하면서 총성으로 얼룩진 이 땅의 4월을 기억한다. 제주의 4·3과 한반도의 4·19로 이 땅의 봄이 역사 속에 기입되어 있는 까닭이다.
올해 핀 사과꽃은 아직 아물지 않은 총상 같소
못 다 열고 저문이들 작은 손 마주 잡고
산 자는 목 메고 마는 흰 밥 한 상 차렸소
바람결에 실려 온 눈물 젖은 숨소리를
품에 안고 다독이는 꽃들 앞에 부끄러워
진 자리 붉은 응어리는 내 어찌 보겠소
ㅡ 이재경, 「사과꽃 핀 자리」 전문
내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3월이 지나면 4월이 올 것이다. 봄의 계절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시인들은 다시 약동하는 생명력을 노래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과 사연들을 기억할 것이다.눈부신 빛깔을 그리고 땅을 적시는 봄비를 그리고 새로이 만들어진 기억들을 더욱 낯선 방식으로 그려낼 것이다. 이 땅의 시인들이 부를 다음 ‘봄노래’들을 기다린다.

박진임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1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