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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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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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화개〉, 한보리 시 / 한보리 곡

   

 

 

   

음악은 몸이 없으니

 

  

수류화개 

  

  

물 흐르고 

꽃이 피고 

새가 울어 꽃 지는 사이 달이 뜨고 

달이 떠 오는 동안 

그대 생각에 새소리도 지워지고 

아득하여라 

 

나 잠시 까무룩 

이 세상 밖에 있었나 보다 

 

 

*

 

 

   

   

 

  음악은 몸이 없어. 저녁 숲을 흘러나오는 안개 같지.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은 것 보이지도 만져 지지도 않아. 한때 우리가 사랑한 것이 그저 희미한 기억이거나 봄 아지랑이와도 같이 불투명한 것처럼 노래는 몸이 없어. 단지 시간 위에 씌어진 향기 같은 것이지.

  그래 음악은 시간 위에 쓴 시야. 시간의 칸 속을 헐렁하게 혹은 조밀하게 채우고 앞칸이 뒤칸을 끌고 가는 무개 열차처럼 선로를 빠르거나 느리게 걸어가는 시인. 그러나 허깨비마냥 몸이 없는.

 

  대나무는 마디를 가지고 있지. 대나무를 쪼개면 거기 하얀 속 켜를 가진 칸이 있어 나는 손가락으로 거기 칸에 담겨 있는 공기를 흔들어 보기도 해. 공기는 언제부터 거기에 담겨 있었을까? 대나무를 쪼개면 오래 묵은 노래가 흘러나올 것만 같아.

 

  사람들은 종종 악보가 음악의 몸이라고 오해하곤 하지. 악보는 음악이 아냐. 음악을 하기 위한 기호에 불과하지. 하지만 이상도 하지. 손으로 그린 악보는 표정을 가지고 있어. 잃었던 노래도 처음 그렸던 악보를 보면 “난 이런 노래야”하며 처음 모습을 드러내곤 하니까. 손으로 그린 악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노래가 되진 않지만 머릿속으론 노래가 울려. 초록색으로 때론 분홍빛으로.

 

  걷거나 운전을 할 때 속도에 취하듯 음악도 속도에 취하곤 해. 일정한 속도를 갖는다는 말은 칸을 갖는다는 말과 비슷하지.

  칸은 답답하고 지루하기도 하지. 아주 가끔은 벽을 부수고 틀에서 벗어나 아주 느리게 혹은 숨이 턱에 닿도록 빠른 걸음으로 들길을 걷고 싶기도 해. 새봄 버드나무 가지가 초록의 주렴을 강물에 드리우고 있는 강변에 이르면 비로소 종점에 이른 것처럼 앉아 쉬기도 하고.

 

  어쩌면 음악이 몸을 가지지 못한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라. 몸을 가지면 자유를 잃게 될 테니까. 나는 음악이 속도를 잃어버리길 바라. 숙명처럼 지워진 비좁은 칸도 지우고 거기 오두마니 누워서 한숨 자고 나왔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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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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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