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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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현형 

 

 

 

 

남향집

 

 

 

 

  야생 사과처럼 늘 바깥에서 잠드는 기분을 아삭아삭 맛보며 사과 궤짝의 발치에 누워 있었던 시절을 어쩜 그리 감쪽같이 잊고 있었던 것일까. 가장 아름다웠던 집에 살았던 기억에 대한 질문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아주 오래전 어느 계간지에서 시인들의 공간이라는 주제로 여럿이 좌담을 할 때였다. 유년을 포함한 현재까지 살았던 집 중에서 아름다웠던 집에 대한 기억을 소환하다 보니 마음이 슬며시 아려왔다. 아름다운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거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담을 통해 처음으로 아름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자랐다. 유년 시절 기억에 남는 집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무렵의 집이다. 다른 집을 구할 때까지 잠시 과수원에서 살았던 날들이 있었다. 사과 과수원 안의 농막은 단칸이었고 작은 부엌이 그려 넣은 듯 간신히 달려 있었다. 과수원의 사과들을 누가 탐내지 않도록 지켜주고 공짜로 살았던 집은 안에서 잠을 자도 바깥 같았고 사과나무 위에서 잠드는 느낌이었다.

  너무 현실적이면 현실도 몽상이 된다. 사과꽃이 만개해 작고 누추한 우주를 뒤덮는 오월에는 과수원 속의 작은 집이 밖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덕에 과수원이 우리 집인 척하거나 친구들이 볼 수 없도록 얼른 사과나무 꽃밭 속으로 숨어 들어갈 수 있어 좋았다. 가족 모두가 과수원지기 노릇을 하며 살았던 농막에 봄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불면 흰색 분홍색 사과꽃이 마당 가득 떨어져 숨 막히게 예뻤다. 옹색한 방 윗목에는 사과 궤짝들이 늘 놓여 있었고 아랫목에는 엄마가 보살피고 있던 작은 외삼촌이 늘 놓여 있었다. 이십 대 후반이었으나, 일어나 앉을 기력이 없었던 듯했다. 이따금 아픈 소리를 낼 때도 있었으나 간경화라는 병명은 젊은 그를, 아니 가족 모두를 사과 궤짝들과 한 방에서 늘 침묵으로 존재하게 했다.

  그 후 언덕에 있었던 성당 아래 동네로 이사 가게 되었는데, 병렬로 연결된 각 방에 각 가정의 식구들이 칸칸이 담겨 살았던 구조의 집이었다. 부둣가 선술집 여자가 폐병에 걸려 며느리나 새언니가 되는 일이 이따금 발생했다. 여름 저녁엔 열린 문으로 남의 집 숟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식구 중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를 모두가 함께 듣곤 했다. 사랑이 미쳐 날뛰던 시절, 실연의 아픔으로 싸이나를 먹고 죽겠다는 청춘의 사태가 발생하면 온 동네가 함께 사랑의 아픔을 앓던 시절이었다. 성당 종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데리고 어디론가 멀리 데려가 주던 모두의 집, 공동의 집을 떠나 몇 개의 단칸을 더 거쳤다. 여유가 조금 더 생겨 해변에 있는 빌라 형태의 ‘해변주택’으로 이사해 들어가 살 때쯤에는 잠시 살았던 과수원 농막을 완전히 잊었다.

  현실과 몽상에 한 발씩 걸쳐 있는 오랜 습성이랄까 기질이랄까, 이윽고 어른이 되고 결혼 후 첫 집을 장만할 때도 결정의 기준은 아파트 화단의 나무였다. 고층을 좋아하지 않아서 5층을 선호하기도 했으나 가을 화단의 모과나무가 창문으로 가까이 내려다보였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날마다 노란 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새로운 봄에는 모과와 달리 귀엽고 앙증맞은 분홍 모과나무꽃을 볼 생각에 계약했는데 곧 겨울이 왔다. 계획과 달리 다음 해에는 모과나무가 베어지고 대추나무가 심어졌다. 옮겨 다니며 살았던 집과 함께 기억되는 시각적 후각적 기억들은 시기마다 다르나 한결같이 내가 꿈꿨던 집은 볕이 잘 드는 집이라는 것을 오지호의 그림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그늘에도 빛이 있다고 말했던 화가 오지호의 〈남향집〉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따뜻함이 나를 감싸는 듯해 행복했다. 그림 속에서 살고 싶었다. 벽에 부적처럼 걸어두고 매일 보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림 속 초가집은 더할 나위 없는 남향의 집으로 투명하고 밝은 햇살을 듬뿍 받고 있다. 화폭의 정중앙에는 흰 칼라가 달린 빨강 원피스를 입은 단발머리 소녀가 문밖을 빼꼼 내다보고 서 있다. 실제로 화가의 둘째 딸이라는 소녀는 집 안팎을 감돌고 있는 햇볕의 소유주, 남향집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흰 벽과 노란 담에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고목의 그림자마저 청보랏빛으로 밝게 빛나 살짝 얼비치는 지붕 위의 새파란 하늘과 그 기운이 연결된다. 화가가 개인전 도록에서 밝혔듯 초겨울 빛이 따뜻한 어느 날 오후가 딸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영원히 박제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을 본 이후 작은 유토피아처럼 남향집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작가란 정신을 통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다

 

  작가란 정신을 통해 공간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피렌체를 가장 열렬하게 사랑하고 가장 정확하게 그린 화가가 피렌체를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작가는 사하라까지 가보지 않고서도 사막에 대해 정교하게 묘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발자크의 이 문장을 좋아하고 깊이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름다운 집을 열렬하게 꿈꾸나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어릴 적 식구들과 함께 담겨 있던 사과 과수원 속 단칸의 방이, 천주교 밑 시절의 병렬형 건전지 중 하나 같았던 셋방이 아름답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난 적 없으나 가끔 그리운 어른, 건축가 정기용은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에서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시장통 월세 집에 사는 스스로를 축복한다. 삶의 다양하고 경이로운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자신의 집이 호화롭다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건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생의 마지막을 월세 아파트에서 보냈던 그는 건축가의 자존심이 건축에 들어간 막대한 자본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정 건물이 꼭 권위적이어야 하는가, 의문을 품었던 그였기에 오지나 시골, 소도시 아이들을 위한 사랑의 도서관을 프로젝트로 지어줄 수 있었다. 시간이 머무는 집을 구상하고 인간과 건축과 자연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그는 엄청난 양의 노트와 설계 드로잉을 유산으로 남겼다. 치열하게 한길을 걸어갔던 사람의 고뇌와 사유의 흔적이 남은 사람들에게 끝없이 영감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입자의 힘으로 사람의 집이 되는 흙의 원리를 귀하게 여겼던 그는 영상 속에서 무척 아름다워 보였다. 바닷가에 떠다니는 나뭇가지가 설치 미술품처럼 벽에 걸린 그의 집이 이제 내게 그리운 남향집이다. 가구가 거의 없는 거실 소파에 앉아 한 줄기 석양빛을 두 손바닥으로 귀하게 담으며 감탄하고 감동하는 풍경이 오염되지 않은 남향의 지표로 내게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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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아마도 빛은 위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ㅡ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 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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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