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박진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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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리워할 것은 그대일세”
혹은 님 리별하는 날의 피눈물
시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런 생각이 생겼으니 스스로 대견하다. 그 발상이란 대가 없이 그저 받은 축복이리라. 한 해 동안 역병이 돌았는데 해가 바뀌어도 달라진 것이 없다. 벗도 만나지 못하니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의 즐거움이 그리울 따름이다. 사람들이 병에 걸리고 죽어간다. 계절은 다시 겨울이다. 그래서 더욱 시를 읽는다. 루이스 글뤽(Louise Glück)의 나지막한 독백이 서글프지만 그래서 더 따뜻하게 느껴진다.
내 몸이여, 이제 우리가 함께 여행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대를 향해 전에 없이 부드러운 마음이 드는구려.
다듬어지지 않고, 낯설기만 한.
마치도 어린 시절의 사랑의 기억처럼.
(……)
내 영혼은 거칠고 험했었네.
그 광포함을 용서해주게.
내 손은 마치도 그렇게 말하는 영혼처럼 그대 위에 조심스레 움직이네.
그대 마음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마침내 분명하게 표현해내려고 애를 쓰면서...
내가 그리워할 것은 이 세상이 아니네
내가 그리워할 것은 바로 그대일세.
*
My body, now that we will not be traveling together much longer
I begin to feel a new tenderness toward you,
very raw and unfamiliar,
like what I remember love when I was young
(……)
My soul has been so fearful, so violent;
forgive its brutality
As though it were that soul, my hand moves
over you cautiously,
not wishing to give offense
but eager, finally, to achieve expression as substance:
it is not the earth I will miss,
it is you I will miss.1)
언제든 튼튼하고 건강할 것처럼 보이던 것, 바로 젊은 날의 몸이리라.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소망들을 우리의 영혼은 몸에게 주문하곤 했으리라. 이제 그 몸은 기운이 쇠하고 영혼은 철이 들어 그의 쇠함을 쓰다듬고 있으니… 언젠가 몸과 영혼이 서로 작별할 날은 올 것이다.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대를 그리워하리라… 그보다 더 슬프지만 고마운 작별의 인사가 있을 수 있을까? 그처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관계를 성찰하는 말들이 슬기롭게 느껴진다.
언어는 봄날의 아지랑이나 뻐꾸기 소리를 그려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묘사의 역할을 맡는 것이다. 묘사의 언어는 마치도 그 풍경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들이는 듯하여 포근하다. 그때의 시어들은 어여쁘다. 하지만 슬기로 가득찬 말들은 오래 독자의 가슴에 머물며 그 말로 인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므로 시어와 독자의 관계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같은 것일까?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는 세 가지 층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생물적인 것, 화학적인 것, 정신적인 것이 그 세 가지라 한다. 시와 독자의 관계도 그 구도에서 멀지 않을 것 같다. 접했을 때 보기에 아름답고 이끌리는 말, 혹은 몸과 마음에 은밀하고 묘하게 스미며 변화를 일으키는 시어,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 묵직히 들어앉은 채 주야로 들여다보아도 질림이 없는 묵상 거리의 텍스트, 그 세 가지 종류로 텍스트와 독자의 관계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생각으로 정병기 시인의 텍스트를 읽는다. 슬기로운 언어의 텍스트라 여기며 읽고 또 읽는다.
다소곳 함께하다 무를 떠난 우는
다른 무 앞에 서서 찬 하늘로 굳어가고
옆구리 허전한 무는 오늘도
맵싸한 향길 품는다
자존심 강한 우는 무 뒤에 서기 싫어
맵싸한 향기 두고 미련없이 떠났다
이제는 다른 무 앞에 서
울지 않는 하늘이다.
*한천(寒天)에서 한(寒)은 울지 않다의 훈(訓)도 갖는다.
ㅡ 정병기, 「무우 무」 전문
무는 누구이고 우는 또 누구일까? 무는 천지간의 모든 것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우 또한 그러할 것이다. 모든 존재이면서 동시에 부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와 우가 만나서 함께할 때 무우가 존재하는데 그 무우라는 시니피앙(signifiant)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그의 시니피에(signifié)는 무에게로 전이된 채 그는 부재한다. 내 컴퓨터의 자판은 한사코 그의 존재를 인지하기를 거부한다. 그런 자판을 누르고 찌르고 한숨 쉬며 달래보고 에둘러 다른 글자를 먼저 넣었다가 다시금 우를 무 뒤에 쑤셔 박아보려고 애를 쓴다. 자판은 즉각 토해내고 만다. 밀어 넣어도 바로 뱉아낸다.
“부재라고, 이젠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말이라니까.”
필자는 고집을 부린다.
“있었다니까, 오래전에, 나는 배웠다니까. 내겐 아직도 무가 아닌 무우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니까.”
함께하는 동안 무도 우에게 불가능한 약속들을 요구했을까? 첫사랑처럼 미숙하고 그처럼 광폭하게 굴었을까? 누가 그들을 갈라 놓았을까? 무와 우, 그 두 음절도 글뤽이 노래한 육체와 영혼처럼 한동안만 시한부로 함께하다가 운명의 날이 오면 스르르 결속을 풀어버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까? 헤어지기 전 무는 우를 가만히 쓰다듬었을까? 다치지 않게 하려고 부드럽고도 눈물 어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을까? 내가 그리워할 것은 그대라고 말해주었을까? 어쩌면 그들은 이별의 말도 나누지 못한 채 엉겹결에 서로를 떠나버렸을까? 무는 우를 잃고 맵싸한 향기로 남았고 우는 무를 떠나 울지 않는다. 울지 않는 겨울 하늘 아래 선 채, 역병의 겨울을 나면서 울지 않기로 결심한다. 한사코 울지 않으려 하니 맵싸해지는 듯도 하다. 한천이라. 올 겨울은 한천의 뜻하는 바가 속속들이 가슴에 스민다. 무가 맵싸해지고 우가 찬 하늘로 굳어간다.
이별하는 것과 그리워하는 것, 우리 고시조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소재이다. 홍서봉은 슬픔을 과장하는 품이 매우 넓다. 고려 정지상의 “대동강수 하시진(大同江水 何時盡)이요 별루년년 첨록파(別淚年年 添綠波)”의 전통을 이으며 압록강 푸른빛과 피눈물을 도입하여 이별의 정회를 그렸다. 그 시절 이별 장면을 그려내기에 적절한 텍스트였으리라. 많은 이들이 이별할 때 읊조리며 거기에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하였으리라.
님 리별하는 날에 피눈물 난지 만지
압록강 나린 물이 푸른빛 전혀 없네
배 우에 백발사공이 처음 본다 하더라
ㅡ 홍서봉2)
멀리 고향을 떠나온 뒤 고향 땅에 두고 온 그리운 이의 안부를 묻는 노래도 무수히 많다. 『남훈태평가』에서는 매화꽃이 그리움을 매개하는 텍스트를 찾아볼 수 있다. “매화가 피었더냐?”고 묻자 ”피기는 피었더라마는 그대를 그려 야위었습디다” 답한다.
군자고향내하니 알니로다 고향사를
오든 날 그챵젼에 한매화 피웟드냐 안 피웟드냐
매화가 퓌기는 피웟드라마는 임자 그려.
매화가 그리운 이의 객관적 상관물로 등장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조선에 왔던 영국인 선교사 게일(Gale)이 그 노래를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그러면서 조선 사람들의 시심을 칭송했다. 이제 2020년, 유구한 시조의 역사, 그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헤어지는 것의 의미를 노래하는 시인들이 등장함을 우리는 본다. 피눈물과 압록강 나린 물을 버리고, 고향의 매화 피는 방식도 버린 채, 묻는다. 무와 우는 왜 함께할 수 없었는지… 무은 왜 맵싸하고 우는 왜 울지 않는지… 지구의 반대편 어딘가에서 쇠약해진 육체를 눈물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이제야 깊어진 영혼이 또한 나직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내가 그리워할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그대일세.”
1) 「갈림길(Crossroads)」, 『마을의 삶(A Village Life)』 수록. 졸역.
2) 생몰연대는 1572~1645.

박진임
2004년 《문학사상》 등단. 연구서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국적』 『Narratives of the Vietnam War by Korean and American Writers』, 평론집 『두겹의 언어』 『세이렌의 항해』 등이 있음. 현재 평택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2021년 1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