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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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바야흐로 ‘낙엽’의 계절이다. 김광균 시인이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秋日抒情)」)로 정의했듯 낙엽은 쓸쓸함과 무상함을 드러내는 메타포로 적격이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밑바닥부터 황량함과 쓸쓸함이 차오른다. ‘센티멘털’ 모드가 작동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이다. 어떤 이는 바이올린 선율을 그리워하고, 다른 이는 떠나간 옛 연인을 생각하고, 또 다른 이는 통장 잔고를 걱정한다. 그래서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되고,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도 더 가까이하게 된다.
술과 담배와 시 하면 떠오르는 이가 박인환 시인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목마와 숙녀」)던 바로 그이다. 인생을 통속 잡지의 표지 같다고 노래한 박인환은 ‘조니 워커(Johnnie Walker)’ 위스키와 ‘카멜(Camel)’ 담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인환의 장례식에 온 동료 문인들은 관 속에 ‘조니 워커’와 ‘카멜’을 넣어주었다 한다.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의 죽음도 술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낭만파 시인의 최후로서는 그만한 서사가 따로 없을 것 같다.
조지훈 시인 또한 박인환과 동시대를 살며 ‘두주 불사(斗酒不辭)’를 몸소 보여준 주걸(酒傑)이었다. 그는 밤을 새워 술을 마셔도 자세가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조지훈은 술을 마시는 데도 ‘주도(酒道)’가 있다고 하여 이를 바둑처럼 9급부터 9단까지 18단계로 나누었다. 이른바 「주도 18단계」가 그것이다. 술을 아주 못 마시지는 않으나 안 마시는 사람을 일컫는 9급 ‘부주(不酒)’부터 술로 인해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된 이를 일컫는 ‘폐주(廢酒)’ 혹은 ‘열반주(涅槃酒)’의 9단까지가 그것이다. 그중 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단계는 1단인 ‘애주(愛酒, 술을 취미로 맛보는 이)’부터 2단 ‘기주(嗜酒, 술의 참맛에 반하는 단계)’와 3단 ‘탐주(耽酒, 술의 진경을 터득하는 수준)’까지다. 술 때문에 이 세상을 하직한 박인환 시인이나 당나라의 이백 같은 이는 주도 9단에 해당하겠다.
술과 관련해서는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죽음조차 술을 마시다 동정호에 뜬 달을 잡으러 물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빚어졌다는 일화도 있으니 가히 술과 풍류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그는 180여 수에 이르는 주시(酒詩)를 남겼다. “둘이 서로 술잔을 마주 하니 산에는 꽃이 피네 / 한 잔 한 잔, 또 한 잔[兩人對酌山花開 一盃一盃復一盃]”(「산중대작(山中對酌)」)에 묻어나는 감흥은 가히 시선(詩仙)과 주선(酒仙)의 풍모가 아닐 수 없다. 이백에게 주흥은 곧 시흥이다. 술 한 말을 마시면 시 백 편을 지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백은 「월하독작(月下獨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도 읊었다. “내가 노래하면 달이 서성대고 /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흔들대네[我歌月徘徊 我舞影零亂]”라며 술기운을 빌리면 자연과 인간이 한 몸이 된다고 했다. 또한, “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 하늘에 술별이 없을 것이요[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 땅이 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 땅에 술샘이 없으리[地若不愛酒 地應無酒泉] 하늘과 땅이 한결같이 술을 사랑하니 / 술을 사랑해도 하늘에 부끄러움이 없도다[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라며, “술 석 잔이면 도와 크게 통하고 / 술 한 말이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고 술의 덕을 칭송하기까지 했다.
술에 관한 이백의 시 가운데 으뜸은 역시 「장진주(將進酒)」다. ‘권주가’로 이해되는 ‘장진주’는 일종의 악부시(樂府詩)다. 악부는 민간에서 떠도는 노래를 말하는데, 이런 노랫말 형식으로 시를 쓴 것이 악부시다. “인생에서 뜻을 얻으면 맘껏 즐겨야 하나니 / 황금 술통 빈 채로 달 앞에 놓지 마라[人生得意 須盡歡 莫使金樽空對月] …… 양 삶고 소 잡아 술잔치를 즐겨보세 / 마셨다 하면 적어도 삼백 잔은 마셔야 하네[烹羊宰牛且爲樂 會須一飮三百杯] …… 그대와 함께 마시고 만고의 시름 씻어내리[與爾同鎖 萬古愁]”라는 내용의 주제는 모든 것이 한순간이니 지금 이 순간을 술과 함께 즐기자는 것이다. 대체로 활달하고 호방한 내용이지만 세상사에 대한 허무의 감정도 배어 있다.
이백보다 90년 뒤에 태어난 이하(李賀) 시인도 악부시 형태의 「장진주」를 남겼다. 이하 또한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토록 마셔 한껏 취해보세 / 이 술이 유령의 무덤에는 이르지 못할테니[勸君終日 酩酊醉 酒不到劉伶墳上土]”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장진주’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하가 말한 유령(劉伶)은 진나라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인데 술을 몹시 즐겼다. 외출할 때마다 하인에게 삽을 들려 자신을 따르게 하며 “내가 술에 취해 죽거든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어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시구는 천하의 애주가인 유령마저도 죽고 나면 술을 못 마시는데, 어찌 살아 있을 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하물며 해가 저무는 화창한 봄날, 복사꽃이 붉은 비처럼 흩날리고 있으니[況是靑春 日將暮 桃花亂落 如紅雨]” 말이다. 이하는 일곱 살 때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 앞에서 시를 지어 극찬을 받을 정도로 천재성을 보였으나, 그의 재주를 시기한 자들 때문에 출세의 꿈을 접은 뒤 실의에 빠져 27세로 요절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대뿐만 아니라 고대 우리나라 시인들도 술을 즐기긴 마찬가지였다. 술 없이는 시를 짓지 않았다는 고려의 이규보도 그랬지만 조선의 정철은 이백 못지않은 애주가 시인이었다. 그에게 술은 세상사의 시름을 잊게 하는 묘약이자 시를 짓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명약 이었다. 고산 윤선도, 노계 박인로와 함께 조선의 3대 시인으로 꼽히는 정철은 평시조 76수와 사설시조 1편, 가사 4편, 한시 758수와 산문 427편 등의 작품을 남긴 위대한 시인이자 정치가였다. 그중 술을 제재로 삼은 작품도 수십 편에 달한다.
정철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의견이 분명하고 언행이 직선적이었기 때문에 관용과 아량이 부족해 편협 하다는 비판이 따라붙는다. 그런 성정으로 인해 정적도 많았다. 당파 싸움의 와중에서 정적들이 그를 공격하는 빌미 중의 하나가 그의 술버릇이었다. 한번은 술 때문에 동인 세력에게 공격받는 것을 딱하게 여긴 선조가 정철에게 은으로 된 술잔 하나를 하사했다. “하루에 이 잔으로 딱 석 잔만 마시라”는 임금의 당부를 무시할 수 없었던 정철은 꾀를 내었다. 석 잔을 열 잔처럼 마시기 위해 잔을 두드려 사발처럼 넓게 키웠던 것이다. 후손들은 임금의 하사품을 함부로 변형시킬 수 있었겠느냐며 동인들의 모함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 주장하지만, 국립청주박물관에 가면 정철이 쓰던 술잔이라며 주둥이가 넓게 펴진 은잔 하나가 전시돼 있다.
한잔 먹새그려 또 한잔 먹새그려
곳 것거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새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어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張)에 만인이 울어 예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 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고
하물며 무덤 위에 잔나비 휘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떠리
- 정철, 「장진주사(將進酒辭)」 전문
술을 좋아했던 정철도 이백과 이하의 「장진주」를 닮은 「장진주사」라는 시조를 남겨놓았다. 이백과 이하의 「장진주」가 절구나 율시 같은 정형시가 아닌 악부시의 형태를 취했듯이 정철의 「장진주사」 또한 일반적인 평시조가 아닌 사설시조의 형태를 취했다. 이 작품은 『송강가사(松江歌辭)』 및 『문청공유사(文淸公遺詞)』에 실려 전하며, 『근화악부(槿花樂府)』 등의 가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조선 후기 홍만종이 쓴 『순오지(旬五志)』에는 이 노래가 이백과 이하의 「장진주」를 본받았고 두보의 시에서도 뜻을 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이 모티브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독창성과 개성까지 취하지는 않은 것 같다.
정철의 「장진주사」는 인생이란 허무한 것이니 죽을 때 후회하지 말고 술이나 진탕 먹고 그 허무함을 잊어버리자는 것이 주제이다. 술잔 수를 헤아릴 꽃을 꺾어 놓고 한없이 먹어보자는 것이다. 죽어서 지게 위 거적에 덮여 가거나, 비단 장막을 친 상여에 실려 많은 이들의 울음 속에 가거나, 한번 묻히고 나면 그 누가 찾아와 한잔 먹자 하겠는가? 무덤 위에서 원숭이 휘파람 불 때 뉘우쳐본들 그 무슨 소용이냐는 내용이다. 호탕과 허무 사이를 오가는 그 표현에 있어서도, 초장은 반복법을 사용하고 중장은 대조법과 병치법을 조화시킨 표현 기교가 눈에 띈다. 인생은 허무하다는 무거운 주제를 해학적으로 전환 시킴으로써 골계미까지 획득하고 있다. 또한, 고사 성어나 한문 조어를 피하고 우리말의 일상적 생활어를 시어로 선택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서는 문학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여성적인 우수의 감정을 기반으로 서정성과 낭만성을 교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백과 이하의 「장진주」와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 작품이 『송강가사』에 실려 있다는 점과 가집에 노래 제목이 붙은 채 독립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가사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평시조의 정형에서 일탈하면서도 3장 구성 체계라는 시조의 구조적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사설시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초장(한잔 먹새그려 ∼ 무진무진 먹새그려)의 음보수가 동일하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시조창에서의 초장을 가곡창에서는 두 장으로 나누어 부르게 된 데서 생기는 경향이라고 한다. 또한 중장(이 몸 죽은 후면 ∼ 먹자 할고)이 길어지는 경향도 사설시조의 형식적 특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초·중·종장 모두 평시조의 틀에서 일탈하였으나, 중장에서 특히 길어지는 사설시조의 보편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사설시조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하다 하겠다.
상처 없는 영혼이
세상 어디 있으랴
사람이
그리운 날
아, 미치게
그리운 날
네 생각
더 짙어지라고
혼자서
술 마신다
- 박시교, 「독작(獨酌)」 전문
1인 가구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홀로 술을 마시는 ‘혼술’이나 집에서 술을 마시는 ‘홈술’ 족도 덩달아 늘어났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집에서 혼자 혼술·홈술하는 문화는 이제 보편화의 단계에 이르렀다. 오래전 이백은 「산중대작」을 통해 뜻이 통하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재미와 흥취를 노래했다.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꽃향기에 취해, 술향기에 취해 술 한 잔 나눌 친구가 있는 삶이라면 그 인생은 헛살지 않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반대로 그런 친구가 없는 삶은 얼마나 쓸쓸하고 또 외로울 것인가. 요즘처럼 낙엽이 떨어지고 쌀쌀한 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면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시교 시인의 「독작」은 그런 정서와 분위기를 전해준다.
화자가 지칭하는 “네 생각”의 대상이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이든, 하릴없이 헤어진 옛 연인이든, 유명을 달리하신 부모님이든, 그 누구이든 간에 애끓는 심사를 술로 풀 수밖에 없는 정황이 눈앞에 선연하다. 프랑스 시인 랭보가 「오 계절이여, 오 성(城)이여」에서 노래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를 차용하면서 시작되는 시적 화자의 내밀한 진술은, “슬픔과 아픔은 / 내 젊은 날의 양식 이며 / 절망과 분노는 / 타오르던 내 인생의 휴식처” 라고 했던 랭보의 마음과도 닮아 있다. ‘혼술’과 ‘혼밥’이 흔해진 만큼,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 속의 화자가 설정한 외로움은 주체적이고 자발적이다. “네 생각 / 더 짙어지라고” 라는 표현에는 ‘누군가와 술을 마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미치게 그리운 사람’은 ‘아무나’가 아닌 특정한 ‘너’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적막감과 고독감이 아닌 ‘절절한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시인이 훗날 “내 술의 / 총량이 드디어 바닥났다 // 푸르게 / 나부끼던 / 그리움은 날개 접고 // 갈증을 / 이기지 못한 생각 / 메말라서 / 금이 갔다” (「금주령(禁酒令)」)고 한 것을 보면, 절절한 그리움이 끝내 구원을 얻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움을 접어야 하니 술도 끊어야 했나 보다.
내 삶이 아니라고 울부짖을 힘도 없었다
깡통계좌 뒷문으로 덜컹덜컹 끌려나와
저문 강 모래 둔치에 문패 다시 내걸 때.
화덕에 등을 기댄 가스통이 섬뜩하지만
살을 치는 도마 위로 무딘 손을 다그쳐본다
가리비 속살 너머로 파도소리 설레는 밤.
주소가 불명해도 어디론가 시월은 가고
노숙의 빈 주머니, 땡전 한 푼 받지 못해도
시리게 별을 등지고 돌아가는 길은 포근하다.
- 정경화, 「포장마차」 전문
Life란 단어에 if가 들어가 있는 것은 우리 삶 속에 ‘가능성(possibility)’이라는 문이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가능성이 늘 따뜻한 햇볕 쪽으로만 열려 있지 않다는 데 있다. 불행 또는 불운이라 할 수 있는 그늘 쪽으로의 문도 똑같이 열려 있다. 불황은 가계 여윳돈을 마르게 하고,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며, 영세 자영업자를 몰락시키는 덫으로 작용한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생계 유지가 힘들어진 서민들은 범죄를 이용해 생활을 이어가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이 세상을 하직하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일어서 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도 많다.
정경화 시인의 「포장마차」도 이쯤에서 발화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적 화자는 “깡통 계좌 뒷문으로 덜컹덜컹 끌려 나와 / 저문 강 모래 둔치에 문패 다시 내건” 몰락 서민이다. 언제 비극으로 끝날지 모르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화덕에 등을 기댄 가스통”으로 암시하면서도, “무딘 손을 다그치”며 삶의 의지를 바로 세우고 있다. 그래서 가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별을 등지고 돌아가는 길은 포근”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신산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기제로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마시는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현실 극복의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니까 ‘포장마차’는 술을 파는 공간이자 술을 마시는 다자적(多者的) 공간이다. 이는 술을 매개로 현실을 벗어나고픈 서민들의 희망 충전소이자 고통 분담소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유사 이래 명약과 독약이라는 엇갈리는 평가 속에 있는 술의 효용성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한 단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술은 작용과 부작용의 성질을 함께 지니고 있어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건강은 물론 인생까지 달라질 수 있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현실에 절망한 남편은 “이 사회가 내게 술을 권한다”고 말하지만,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아내는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라고 한탄한다. ‘스스로’ 술을 마시게 만드는 지금의 사회적 상황이 하루빨리 개선되어 너나없이 고배(苦杯)가 아닌 축배(祝杯)를 들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그리하여 “신은 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술을 만들었다”고 했던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를 찬양하며, “주량과 필력은 비례한다”던 대학 시절 선배들의 호기를 곱씹으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一觴一詠)”라고 했던 왕희지의 말을 되새길 수 있는 가을이라면 술잔 속의 달을 벗삼아 혼자 마시는 술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겠다.

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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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