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효선 | ||
|---|---|---|---|
커피
ㅡ 꿈을 부르는 열매
아주 오랫동안 차를 몰았다고 생각했다. 도착한 곳엔 내 키보다 더 큰 선인장들이 성큼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사막에 온 걸까? 잠시 생각하는 사이 무엇인가 내 앞을 휙 스쳐 지나갔다. 동물이었는지 새였는지 별똥별이었는지 모를 어떤 물체였다. 궁금할 새도 없이 건조하고 메마른 날씨에 어디선가 낮은 음계의 바람이 몰려오고 있었다. 슬픈 목소리였다. 한 남자가 바오밥나무에 기대어 마두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미 낙타는 갓 출산을 했는지 지친 얼굴로 새끼와 떨어진 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새끼는 어미젖을 빨려고 달려들었으나 계속 어미 발길에 차였다. 낙타는 새끼를 출산한 뒤에 상실감이 너무 큰 나머지 새끼를 돌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그때 어미 낙타 곁에서 마두금을 연주하면 어미의 눈에 눈물이 맺히면서 새끼에게 젖을 물린다고 한다. 새끼가 어미젖을 빨면서 메마른 사막엔 활기가 돌았다. 어린 낙타는 혼자 일어서려다 넘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두 다리를 곧추세우고 사막을 바라본다. 여길 살아가야 할 운명적 빛과 마주한다. 아직은 알 수 없는 떨떠름한 표정의 모래바람.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피부를 뚫고 어떤 날씨가 몸속으로 스며드는 걸 느끼면서.
별안간 어린 낙타는 나를 등에 태우더니 휘적휘적 어디론가 걸어갔다. 가도 가도 모래뿐인 사막을 넘어가자 넓은 평야에 붉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이 펼쳐진다. 표지판엔 탄자니아라고 적혀 있다. 나를 그곳에 내려두고는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하늘에 걸린 태양의 심장에 화살이 꽂혀 있다. 대지 위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자국들. 너무 뜨겁거나 너무 고통스럽거나 나무의 옆구리마다 상처로 곪은 흔적들이 보였다. 먼 곳에서 보면 신기루처럼 화사한 풍경. 나는 그 빛에 취해 흙빛으로 내려앉은 그림자를 아무 생각 없이 짓밟고 지나간다. 붉은 열매를 따는 사람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지는 줄도 모르고. 성큼한 손으로 열매를 따서 말리고 볶느라 허공은 연기에 시달렸다. 상큼하다거나 달콤하다기보다 열매를 태우는 지독한 냄새다. 한참 온도에 시달린 열매는 붉은 얼굴을 잃었다. 마치 순식간에 뒤바뀌는 운명처럼. 내 의지가 아닌 生이 수두룩하게 서쪽으로 붉게 번진다. 노동의 대가는 정직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생계의 연속이다. 쓴맛은 언제나 뒤에 오는 것처럼. 탄자니아 피베리 커피를 마시는 오전, 반쯤 찔린 태양에서 흘러내린 즙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면서 강렬하게 심장을 태운다. 꿈이었는지 먼 전생의 나였는지.
커피 한 잔을 내리는 시간은 3분 30초, 300ml 기준이다. 커피는 외부 환경을 많이 타는 기호품이다. 그날의 날씨, 습도, 바람, 내리는 사람의 기분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물줄기와 물의 양도 커피 맛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100℃의 물인지 80℃의 온도인지에 따라서도 커피 맛은 확연히 달라진다. 물맛도 커피 맛을 좌우하는 변수이다. 핸드드립 바리스타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집에서 내려 마시던 커피에 대한 검증을 해보고 싶었다. 카페를 차릴 것도 아니지만 커피는 내가 궁금한 것 중 하나다. 나는 내 관심사와 취향에만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 누군들 안 그렇겠는가마는. 그래서 다리가 짧다. 문어발처럼 여러 관계에 발을 뻗지 못한다. 요즘은 특히 에너지를 많이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냥 최대한 가만히 혼자 있고 싶다.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지는 햇빛이나 마냥 주웠으면 한다. 곁에 붙는 바람과 고른 숨으로 대화하며 멀리 눈 닿는 구름에 마음을 흘려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내가 맨 처음 커피를 마신 날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아니 중학교 때였나 아무튼 성인이 되기 전에 커피라는 유혹에 가담했다. 아이들에겐 금기 식품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도대체 어떤 맛이 어른을 살게 하는 맛일까 하고. 아이들은 몰라도 된다는 어른들의 세계. 미리 알아서 좋을 것 없다는 세계. 금기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최고의 단어다. 어쨌든 내가 처음 마신 커피는 지금과는 다른 맛이다. 여닫이문이 달린 텔레비전 안에 커피와 프리마, 설탕을 넣어 두던 시절이었다. 기억은 자주 시간의 왜곡과 뒤섞여 물풀처럼 계곡의 물살을 훑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은 혀의 감각까지 왜곡한다. 그저 호기심 맛이다. 달고 쓰고 시고 매운 맛이 아닌 감각 기관 바깥에서 느끼는 맛이다. 아마 처음 느껴본 맛이었겠지만 지금의 혀는 현재에 익숙해진 나머지 기억 속 그 시간에 느꼈던 맛을 재현해내지 못한다. 어쨌든 첫 커피는 내 혀를 길들였고 그 후로도 몰래 커피를 훔쳐 마시는 버릇은 계속됐다. 내 혀는 그렇게 커피라는 세계에 매혹 당했다.
어떤 장소에 가려다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하게 된 것은 사람을 놓쳤다는 말이다. 더 이상 이어질 인연이 아니라는 뜻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태풍이 길을 집어삼킬 듯해서, 눈이 허리까지 잠겨서라는 변명을 해봐도 달라질 게 없다. 한번 때를 놓친 사람은 다시 만날 기회가 거의 없거나 없다. 어떻게든 이어질 뻔한 끈을 놓친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끈이 시작되는 곳을 우연이라고 인연이라고 부르는 걸까. 그러나 끈을 놓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물론 그 끈이 우리를 전혀 다른 곳으로 데려다 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살면서 사람 사이에도 온도와 농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끈이 닿지 않는다는 건 농도 조절에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혀는 익숙한 농도를 기억하고 그 농도를 벗어나면 뱉어버리는 것처럼. 사람은 어떤 농도로 서로를 기억하고 길들이는 걸까. 가장 깊고 환한 농도가 사랑에 빠졌을 때는 아닐까. 창백했던 푸른 점을 뚫고 강렬한 빛 하나가 길게 운명의 화살을 쏘아 올리는 것처럼.
아침은 어떤 루틴의 시작이다. 눈 뜨자마자 물을 마시거나 커피를 내리거나. 또 젊은 시절의 루틴과 중년의 아침 루틴은 달라지기도 한다. 죽어도 아침을 못 먹을 것 같았던 루틴도 어느 날 아침을 먹어야만 하루가 시작되는 루틴으로 바뀌기도 한다. 저녁형이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기도 하는 것처럼. 밤에만 쓰던 시를 아침에 일어나 쓰게 되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바뀌었다는 얘기다. 나의 아침은 두 개로 나뉜다. 첫 번째 아침은 단순히 뇌를 깨우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시간이다. 커피 맛을 음미하기보다 뇌를 깨우는 시간이다. 카페인 성분이 몸속으로 침투해서 신체에 기지개를 켜게 한다. 이 시간엔 별다른 뇌를 쓰지 않는다. 인터넷 뉴스를 보거나 소셜 네트워크를 뒤적거리거나 한다. 소득이 없을 때도 있지만 번쩍이는 문장들이 가끔 출몰하기도 한다. 이런 시간이 시가 오는 길이다. 무엇이든 내가 되기 위해서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내가 여기 서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두 번째 아침을 위해 다시 커피를 내리고 커피 향을 음미한다. 주로 에티오피아나 파푸아뉴기니를 마신다. 두 종류의 커피를 블랜딩해서 마시기도 한다.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지면서 깊은 숲에 든 기분이 든다. 온갖 생명체들이 각자의 역할극이 시작된다. 새는 나뭇가지 위를 날아다니며 소리를 내고, 땅속에선 뿌리들의 힘찬 펌프질이 시작된다. 벌레들은 열심히 잎을 갉아 먹고, 나뭇잎은 하루하루 기온을 잰다. 어디든 기어 다니며 자신의 길을 내는 동물들, 킁킁대며 벌레를 잡아먹는 동물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커피 향과 맛이 온몸을 휘감으며 생각이라는 동물을 끄집어낸다. 혀끝에서 야생이 어슬렁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서귀포문학작품상〉〈서귀포칠십리문학상〉 등 수상.
ㅡ
2023년 10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