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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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보름달로 상징되는 한가위를 한 달쯤 앞둔 지난 8월 31일 밤, 그달의 두 번째 보름달이면서 크기도 가장 큰 ‘슈퍼 블루문(Super Blue Moon)’이 떠 화제가 됐다. 슈퍼문은 달이 지구에 가장 가까운 지점에 위치할 때 뜨는 보름달을 뜻한다. 이처럼 달의 크기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달이 지구 주위를 타원 궤도로 돌기 때문이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가 가까우면 달이 커 보이고 멀면 작게 보이는 것이다. 슈퍼문은 달이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의 보름달(미니문)보다 14% 정도 크고 밝기는 30% 정도 밝다고 한다. 한편, 블루문은 양력으로 한 달에 두 번째 뜨는 보름달을 뜻한다. 달은 약 29.53일을 주기로 위상이 변하기 때문에 2년 8개월마다 보름달이 한 달에 두 번 뜨게 된다. 이러한 슈퍼문과 블루문이 동시에 뜨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슈퍼 블루문’은 2018년 1월 31일이었고, 다음은 14년 뒤인 2037년 1월 31일에나 있다고 한다.

  슈퍼문이나 블루문은 드물게 나타나지만 일반적인 보름달은 한 달에 한 번 뜬다. 1969년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해 닐 암스트롱이 첫발을 내디디기 전까지 달은 미지의 우주였다. 그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으로서 신화와 상상의 원천이 되었다. 특히 보름달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초월적인 존재였다. 그래서 슈퍼문처럼 대보름달이 뜨면 사람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곤 했다. ‘바라다’라는 뜻의 한자 望(망)은 달맞이하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다. 望은 달[月]을 보고 있는 사람의 모습[壬]에 음을 나타내는 亡(망)을 추가한 형태이다. 壬(임)은 흙[土]과 사람[人]의 합자로 언덕에 올라가서 바라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망(所望)이나 희망(希望)처럼 ‘바라다’라는 뜻과 함께 망월(望月)과 같은 ‘보름달’의 의미까지 갖고 있다. 또한, 보름달은 동화 속에서 선녀와 토끼가 사는 판타지의 세계로, 음양오행의 동양철학에서는 태양의 양(陽)과 대척점에 선 음(陰)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고대 문명권의 수메르,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달은 창조 설화와 관련된 신성한 존재였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보름달을 충만한 음기로 인해 두려움과 불운의 대상으로 여겼다. 보름달이 뜨면 활동력이 왕성해지는 ‘늑대인간’이나 ‘뱀파이어’ 같은 존재들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영어 단어 lunar는 ‘달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인데, 여기서 파생된 lunatic은 ‘미치광이’나 ‘정신 이상자’, ‘미친’이나 ‘정신 나간’과 같은 부정적인 뜻을 갖는다. ‘블루문’이라는 단어도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블루문의 ‘Blue’는 파란색이 아닌 ‘배신’을 뜻하는 고어인 ‘Belew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한 달이 다 가기 전에 다시 달이 뜨는 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기며 ‘배신자의 달’이라 칭한 게 지금과 같은 ‘블루문’ 개념을 낳았다는 것이다. 달을 여성성 혹은 모성의 상징으로 본 것은 동·서양이 비슷하다. 여성의 생리 주기가 달의 영휴(盈虧) 주기와 거의 일치하는 것도 여성과 달을 연관 짓는 데 당위성을 부여했다. 생리를 뜻하는 한자어는 ‘월경(月經)’이고 순우리말로는 ‘달거리’인 것도 그런 이유이다.

  우리 선조들은 달을 친근한 존재로서 사랑하며 생활 속에 달과의 연결고리를 두루 만들었다. 지명에 달과 관련된 이름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의 후백제와 싸우러 금호강을 건너던 중 밤하늘에 달이 반쯤 걸린 것을 보고 지었다는 대구의 반야월(半夜月),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제천의 월악산, 달맞이 명소로 유명한 영암의 월출산, 남도 5대 명산의 하나인 담양 추월산, 달이 머물다 간다는 영동의 월류봉과 괴산 제월대, 두 개의 봉우리 사이로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봉화의 달바위봉, 깊고 둥근 분화구가 달을 닮았다는 제주도의 월랑봉(다랑쉬오름), 반달 모양의 바닷가에 뜬 달의 모습이 아름답다는 애월 등이 그것이다. 섬의 생김새가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는 데에서 유래한 인천의 월미도, 신라의 달밤을 탄생시킨 경주의 반월성(월성)도 빼놓을 수 없다. 월성 아래 통일신라시대 별궁 터인 동궁 안에는 월지(月池)라는 연못도 있다.

  달을 사랑하다 보니 ‘달항아리’라는 걸작 예술품도 탄생시켰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 있는 백자 달항아리는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백자 달항아리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성공적으로 표현되었다는 찬사를 받는다. 지난 3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달항아리 하나가 456만달러(약 59억6천만원)에 낙찰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고한 미술사학자 최순우 선생은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 순진한 아름다움에 정이 간다”라고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고백한 바 있다.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라는 애국가 3절의 노랫말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한 알레고리일 것이다.

  ‘달’ 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당나라의 이백(李白)이다. 우리의 전래동요 속에서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노랫말에도 나올 만큼 달을 사랑했다. 시선(詩仙)이라 불릴 정도로 자유분방하고 호기로운 시풍을 보인 그의 작품 속에는 달이 무수히 뜬다. 이백이 달과 더불어 노는 방법은 10가지로 알려져 있다. 달을 아끼는 애월(愛月), 달을 바라보는 망월(望月), 달밤에 거니는 보월(步月), 달빛을 따라가는 승월(乘月), 달을 바라보며 술을 즐기는 취월(醉月), 달을 손으로 잡는 남월(擥月), 달빛 아래 배를 타는 여월(艅月), 달과 함께 즐기며 노는 완월(玩月), 달과 함께 밤을 보내는 숙월(宿月), 달을 받들어 어루만지듯 즐기는 농월(弄月)이다. 이 말들은 그의 시에 무시로 등장하는데 그중 으뜸이 ‘농월’이라고 했다.

 달은 우리나라 시인들에게도 영감의 대상이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로 시작하는 「정읍사」를 비롯하여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를 읊었던 고려말 이조년의 「다정가」는 이를 잘 말해준다. 달을 소재로 취한 시조는 이조년 이후 수없이 창작되는데 다음의 시조도 그중 하나이다.

  

 

초생(初生)에 비친 달이 낫같이 가늘다가

보름이 돌아오면 거울같이 두렷하다

아마도 인지성쇠(人之盛衰)가 저러한가 하노라 

- 김진태, 『청구가요(靑邱歌謠)』

 

  

 

  달은 ‘차고 기욺’이라는 순환을 반복한다. 초승달에서 상현달로, 상현달에서 보름달로, 보름달에서 하현달로, 하현달에서 그믐달로 모습을 바꾼다. 달의 모습이 수시로 변화하는 것은 달이 지구 둘레를 공전함에 따라 태양 빛을 반사하는 면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 전체가 태양 빛에 노출되는 때를 보름달, 절반만 노출돼 반원을 그릴 때 상·하현달, 달의 상당 부분이 가려져 눈썹 모양이 되면 초승·그믐달, 그리고 달-지구-태양이 일직선에 놓임으로써 지구 그림자에 달이 가려 보이지 않게 될 때를 삭(朔)이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은 그 때문에 재생과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김진태의 작품으로 알려진 위의 시조는 달의 영휴 현상을 사람의 인생에 빗대고 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단순하면서도 익숙한 비유지만 당시로서는 신선했을 것이다. 달을 소재로 차용한 시조는 많아도 달의 모습에서 인생을 퍼올린 시조는 이때까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시조의 작가인 김진태는 생몰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인 숙종~영조 때의 가인으로 알려져 있다. 1713년(숙종39) 이형상이 편찬한 시조집인 『악학습령(樂學拾零)』에는 김진태의 신분이 서리(書吏)로 나와 있다. 서리는 조선 시대 중앙 관아에 소속돼 문서의 기록과 관리를 맡아보던 하급 구실아치를 말한다. 김수장이 엮은 『해동가요』의 권말 부록으로서 77수의 시조를 모아 엮은 가집인 『청구가요』에 그의 시조 26수가 전하고 있다. 작품은 대체로 변화가 심한 세상사나 인심 속에서도 자연과 가까이하며 맑은 마음을 지니고 욕심 없이 살고자 하는 뜻이 주를 이룬다. 그 밖에 늙음에 대한 탄식, 임금에 대한 충심과 절개, 문장과 경륜에 대한 소망 등을 노래하기도 했다.

  우리네 삶의 현장도 김진태의 시조처럼 태어나서 자라고, 또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는 변화의 연속선상에서 생성과 소멸의 지혜를 얻어야 할 것이다. 달의 영휴는 사람의 인지성쇠뿐만 아니라 나라의 흥망성쇠를 은유하기도 한다. 또한, 농사에서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만개하여 열매가 익으면 거두어들이는 이치와도 비슷하다. 보름달은 농산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곡식과 열매의 속이 알알이 들어찬 모습이다. ‘달의 명절’이라 부르는 한가위가 탄생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손주가 잡아 끌며 달을 보러 가잖다

그렇지 네 달은 거기, 내게는 가슴에 있네

그리움 마중하는 오늘 참 오래 보고 싶은

 

생시인가 하였더니 금세 꿈속이고

언제나 제 뒤에서 지켜만 보시더니

아득히 허공 다리 건너 문밖에 와 계신다

 

넉넉히 아주 넉넉히 탑을 쌓던 그 밤이

구름인 듯 별빛인 듯 눈이 부신 객창에서

고와서 서러운 것도 당신 그늘로 젖는다 

- 권혁모 「추석 달」 전문

  

 

  곧 한가위다.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로도 불리는 한가위의 시작은 약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의 제3대 왕인 유리이사금 9년(서기 32년)에 공주 두 명으로 하여금 도읍의 부녀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길쌈을 하게 했다. 한 달 전부터 시작해 음력 8월 15일에 그동안 짠 베의 양으로 승패를 가르고 진 편에서 이긴 편을 대접하며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이때 진 편에서 ‘회소회소’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노래는 「회소곡(會蘇曲)」, 놀이는 ‘가배(加背)’라고 칭했다고 한다. 이 가배라는 말이 우리말로 ‘가운데’를 뜻하는 ‘가위’로 변하여 지금의 한가위가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으로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표현한 말이 ‘가배’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까 ‘한가위’란 ‘8월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이때는 곡식과 과일이 무르익어 1년 중 가장 풍요롭다고 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란 말도 생겨났다. 농경민족에게 있어 결실의 계절과 보름달을 연결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해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서 대단히 중시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가위는 보름달 숭배와도 직결된 우리 고유의 명절이다. 이날은 보름달에게 풍요를 기원하며 달떡을 만들어 먹었다. 중국에서는 보름달을 상징하는 둥근 월병(月餠)을 만들었으나 우리는 송편이라 해서 반달 모양의 떡을 만들었다. 보름달을 숭배하며 소원을 비는 민간신앙을 가졌으면서도 반달 모양을 채택한 것은 반달을 발전과 진보의 상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송편은 신라시대 때부터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 의자왕 20년 6월에 땅속에서 거북이가 나왔는데, 등껍질에 ‘백제는 만월(滿月), 신라는 반월(半月)’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를 본 역술인이 “보름달은 가득 찼으니 곧 기운다는 뜻이요, 반달은 점점 커져 강성해진다는 뜻”이라고 풀이하자, 이에 격분한 의자왕은 역술인을 죽여버렸다고 한다. 거북의 경고를 무시한 의자왕은 결국 백제의 멸망과 운명을 같이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런 고사에서 보듯 신라인들은 장차 커질 운명의 반달을 숭상하며 반달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경주의 도성을 ‘반월성’이라고 부른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가위는 그동안 농사를 잘 짓게 도와준 하늘에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이자 농사의 결실을 가족과 이웃과 함께 나누는 축제의 날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한가윗날 아침 일찍 차례를 지냈다. 햅쌀로 밥을 짓고 떡을 하고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차례상을 차렸다. 차례가 끝나면 온 가족이 모여 음복을 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도 했다. 약 2천년 동안이나 한민족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이러한 풍습은 가족에 대한 정을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어 왔다. 그래서 한가위가 되면 떨어져 사는 가족의 안부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것이다. 권혁모 시인도 한가윗날 저녁에 느끼는 그리움의 정한을 「추석 달」에 투영시켜 표현하고 있다. “그리움 마중하는 오늘 참 오래 보고 싶은” 그 달이 두둥실 “객창에” 떠오를 날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에서, 노 시인의 눈을 젖게 만드는 감회가 가족 상봉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공감의 여운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라 하겠다.

  

 

저 노랗고 둥근 표적에 날아간 화살들은

포물선 그으며 땅으로 떨어지거나

밤하늘 사수자리에

박혀서 빛난다.

 

바람의 촉들이 항상 널 겨누지만

한 명도 명중 못하고 그냥 빗나갔을 뿐

이 가을, 어쩌자고 꿈은

저리 멀리 달아났나.

 

보름달을 숭덩숭덩 잘라 파는 정육점

달빛이 구긴 지붕 다려주는 세탁소

옛 꿈의 노른자위가 툭,

달동네에 떨어진다.

- 박성민 「보름달」 전문

  

 

  박성민 시인의 「보름달」은 닿을 수 없는(혹은 이룰 수 없는) 꿈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다. 삶의 과녁을 향해 무수히 많은 화살을 날리지만 “한 명도 명중 못하고 그냥 빗나갔을 뿐”인 허공에 뜬 신기루인 셈이다. 원대한 이상과 목표를 품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정육점’이나 ‘세탁소’에서 자신의 꿈을 “숭덩숭덩 잘라” 생계를 잇고 있을 것이다. 다가가려 할수록 점점 멀리 달아나는 꿈을 이미지화시킨 보름달은 무지개의 클리셰와도 상통한다. 여기서 시인은 꿈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만 돼도 좋다는 인식을 가진 듯하다. 꿈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이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꿈의 노른자위가 툭, / 달동네에 떨어지”고 나면 그의 존재가치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물리적 거리는 달에 가장 가깝지만, 정서적 거리는 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현실 공간이 ‘달동네’다. 이 작품에서 ‘달동네’는 꿈과 낭만을 잃은 모든 이들의 공간이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인간은 꿈을 꾼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갈망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최소 조건이다. 꿈이 허물어진 곳에 꿈틀거리는 것은 단순한 동물적 본능에 불과할 뿐이다. “툭”이라는 청각적 환기가 자포자기의 시대 상황을 더욱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과학 기술이 달을 샅샅이 해부하는 바람에 동화와 낭만이 사라진 시대에 ‘불가능한 꿈’을 상정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중년들, 삶의 목표와 비전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우리 시대의 네거티브 초상화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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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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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