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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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권현형 

    

 

 

 

파 한 다발의 시그널, 계속되는 이야기

 

 

        

 

   

  현 인류가 백 년 동안의 고독 아니 천 년 동안의 고독에 빠진 것처럼 여겨지는 날들이 있었다. “그리워요, 이 꽃을 보니 잔꽃 무늬가 어울리는 선배님이”, 마음이 담긴 문자를 받고 봉쇄된 시간을 견디곤 했다. 누구라도 나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세계에 머물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무늬가 있다면 어쩌면 작고 소중한 잔꽃 무늬일 것이다.

  긴긴 팬데믹 기간,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모든 학교의 교정은 폐쇄되었고 사무실도 공장도 중국집도 봉쇄되었고 이윽고 붕괴되기까지 했다. 중국집 배달 일로 살아가던 서른 살의 젊은 남자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술병이 가득한 원룸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다정한 손글씨 메모와 자신의 병든 육신을 유품의 전부로 남긴 채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의 일처럼 한없이 먹먹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봉쇄되지 않았고 1월과 2월과 3월을 지나 4월에서야 그해의 달력을 받게 되었다.

  달력을 선물로 보내온 사람의 성품처럼 달력에서 은은한 나무 냄새가 났다. 나이테가 선명한 달력대에서 소나무 냄새가 났다. 나무에 묶여 있는 시간들은 1월에서 12월까지가 아니라 어쩌면 하루에서 영원까지일지도 모른다. 한지 위에 먹으로 그린 12개의 판화에서 먹 냄새가 났다. 시간에서는 분명 깊은 먹 냄새가 난다. 놓친 3월이 아까워 뜯어내지 못하고 며칠 두고 보다가 마침내 사월을 펼쳤다. 또록또록 눈이 살아 있는 식물, 먹으로 그린 무채색 꽃의 눈망울을 마주하게 되었다.

  뉴노멀 시대에 무엇이 인간다움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결국 ‘사랑’이라는 낡은 답을 다시 꺼내놓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혐오감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이유가 불분명한 혐오감에 빠진 채 두려움이 공격성으로 바뀌고 대상 없는 대상을 사냥하는 오래된 동물적 습관을 확인하면서 두려움을 거짓으로 넘어간다. 코로나19는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었지만 어두운 신호가 삶의 이곳저곳에서 보인다. 사회적 고립, 전염병에 대한 공포,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한 통계 수치를 통계청은 포커페이스의 얼굴로 내놓고 있다.

  세스 노터봄은 자신의 『계속되는 이야기』에서 “슬픔은 기억에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새겨진다”고 말했다. 슬픔이 얼굴에 새겨지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 “당신은 절대 죽을 수 없는 여자처럼 걷지 않고 누구든지 모든 걸 버리고 사랑할 여자처럼 걷는군” 이어지는 문장에서 괜히 힘을 얻으며 지저분한 접시를 방치하고 있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일상에 경배하고 싶었다. 어째서 하염없이 넋을 놓고 있었던 것일까.

  지독한 그늘에 잠겨 있을 때는 지독한 볕이 그리워진다. 습한 것은 뭐든 말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오래전 가본 진도에는 바다가 숨어 있었다. 동해를 보고 자란 내 눈에는 남해가 이질적이었다. 작은 섬들을 등에 업은 바다는 파 묶음을 싣고 이동하는 트럭처럼 어디론가 이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도에는 푸른 파밭이 유난히 많았다. 가지런히 바다의 이랑에 심어진 경작물 같았다. 흰 머릿수건을 쓴 아낙들은 정수리에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한낮의 햇볕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뜨겁고 맹렬해 보이는 한여름의 파밭에 몇 시간이고 엎드려 있었다.

  이틀 동안 집 밖을 나가지 않다가 산책을 했다. 달력의 4월을 현실로 펼쳤다. 팬데믹의 잿빛 숲속에 진달래가 엷은 분홍으로 피어 있었다. 꽃잎이 얇아 빛이 통과하는 게 다 들여다보였다. 진달래는 야생의 강인한 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리 섬세했구나 싶었다. 진달래 분홍을 보니 열일곱 살 소년이 생각났다. 비가 오는 가운데 공적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긴 행렬 속에 있다가 급성 폐렴 탓인지 사이토카인 폭풍 탓인지 병실을 찾아 헤매다 급작스레 사라진 소년의 최후에 내내 마음 아팠다.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공포의 순간들 속에서도 언뜻언 뜻 맛보는 볕은 달콤해도 되는지 질문하고 싶을 정도로 달콤했다. 키리이(Kyrie)! 카톨릭 신자는 아니나 자비송의 처음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흘러나왔다. 지나간 시간이라도 쉽게 뜯어낼 수 없는 소중함이 나무 달력대에 묶여 있다.

  가본 곳과 가보지 않은 곳, 만난 사람과 만나지 못한 사람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팬데믹 시대의 희생자들을 잊을 수 없다. 유럽의 어떤 소도시는 50퍼센트의 인구를 잃을 지경이라는 세계뉴스에 잠이 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먼 곳을 위해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본 곳과 가보지 않은 곳, 만난 사람과 만나지 않은 사람까지 그 안부가 궁금했던 시간이 있다. 제러미 리프킨의 말처럼 전 세계적 감염으로 배운 건 인간과 동물, 식물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생물권 전체를 멸종 위기에 놓인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인류가 한 가족이라는 것, 함께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것을 학습한 대가는 혹독했다.

  

봉쇄의 시간 동안 그리움은 봉쇄될 수 없었다

사람은 사람을 기다렸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일상, 마스크가 얼굴의 일부가 되기 전의 일상으로 오늘 잠시 돌아와 있다. 봉쇄의 시간 동안 그리움은 봉쇄될 수 없었다. 사람은 사람을 기다렸다. 놀이터의 어둠 속에서 네 시간 동안이나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다가 물고기처럼 등이 휘기도 했다. 세면대에 들러붙어 구부정한 자세로 손을 씻는 타자의 뒷모습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꽃 대신 파를 한 아름 안고 녹색 불빛을 따라 부지런히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노파의 뒷모습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그녀는 ”절대 죽을 수 없는 사람처럼 걷지 않고” 파 한 단까지 사랑하는 사람처럼 걸어가고 있었다. 꽃 대신 파 한 묶음을 가슴 가득 안고 걷는 그녀의 오늘 하루를 물려받아 나의 오늘이 코끝이 매워질 정도로 생생하길, 싱싱한 언어처럼 솟구쳐오르길 묵언으로 기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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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ㅡ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 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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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