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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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채성 

 

 

 

내 더위는 사시고

임 더위는 파세요

 

 

  

   

 

  올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역대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연일 폭염이 지속되면서 지구온난화라는 환경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전향적으로 생각하면 여름은 원래 무더운 계절이라는 반론도 가능하다. 몇십 년 만의 무더위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예전에 이미 겪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에도 ‘무더위’, ‘한더위’, ‘된더위’, ‘불더위’, ‘강더위’처럼 몹시도 심한 더위를 뜻하는 여러 말들이 생겨난 것이리라.

  1년 중 8월은 가장 더운 달로 인식된다. 절기상 입추를 지나며 맞는 후반부의 기온이 떨어지긴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시작되는 8월 초의 무더위는 여름의 절정이다. 그래서 ‘팔월염천’이라 했다. 염천(炎天)은 구천(九天) 중의 하나로 남쪽 하늘을 이르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여기서는 지옥불 속에 들어있는 듯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염천’의 ‘염’은 ‘불[火]’ 자가 두 개나 겹쳐진 것이니 사실상 ‘더블(2배)’로 뜨겁다는 강조의 의미겠다. 올해 8월 역시 사람들의 그러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디라 할 것 없이 펄펄 끓는 팔열지옥을 맛보게 해주었다. 흔히 ‘폭염(暴炎)’으로 불리는 이러한 불더위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온난화 현상에 따른 기후변화 위기가 심화하면서 전 지구촌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폭염은 UN 등에서 정한 표준화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일정 기준 이상의 고온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기상청은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으로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 특보를 발령해 오다 2020년부터는 기온뿐만 아니라 습도까지 고려한 ‘체감 온도’를 특보 발령 기준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체감 온도가 최고 33도 이상의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 폭염주의보, 35도 이상일 때는 폭염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기상청이 발표한 <2019년 이상 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낮 최고 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이 2000년대에는 평균 10일이던 것이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15.5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 또한 2010년대 들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을 찾아가려고 한다. ‘7말8초’에 북새통을 이루는 바캉스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피서(避暑)’라고 한다. 말 그대로 ‘더위를 피한다’는 뜻이다. 피서란 말은 중국 후한(後漢)시대 역사서 『한서(漢書)』를 저술한 반고(班固)의 ‘부채로 더위를 피한다’는 「선시(扇詩, 부채에 쓴 시)」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에야 부채가 최고의 피서 도구였을지 모르나 선풍기나 에어컨이 대중화된 지금은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하지만 선조들의 몸과 정신의 활동을 통해 피서의 지혜와 자세는 배울 만한 것 같다.

  조선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선각자라 할 수 있는 다산 정약용의 8가지 피서법은 특히 유명하다.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는 「소서팔사(消暑八事, 더위를 없애는 8가지 일)」’라는 시가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송단호시(松壇弧矢, 소나무단에서 활쏘기), 괴음추천(槐陰鞦遷,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허각투호(虛閣投壺, 빈 누각에서의 투호놀이 하기), 청점혁기(淸簟奕棋, 대자리에서 바둑 두기), 서지상하(西池賞荷, 서쪽 연못에 핀 연꽃 감상하기), 동림청선(東林聽蟬,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 듣기), 우일사운(雨日射韻, 비 오는 날 시 쓰기), 월야탁족(月夜濯足, 달밤에 발 씻기)가 그것이다. 이것을 보면 더위를 무조건 피하기보다 자연과 더불어 계절을 즐김으로써 더위를 극복하려 한 다산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한편, 뙤약볕 아래서도 생업에 종사해야 했던 일반 서민들은 양반들과 같은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위가 오는 것 자체를 꺼려했는데, 이러한 마음은 ‘더위팔기’라는 세시풍속으로 이어졌다. ‘매서(賣暑)’라고도 부르는 더위팔기는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지역별로 시기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정월 대보름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행해졌다. 아침 일찍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그가 대답하면 “내 더위 사가라” 하며 더위를 팔았다. 그러면 그해 여름은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름을 불린 사람이 대답 대신 “내 더위 먼저 사가라” 하며 응수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학(謔)이라고 했다. 더위를 어떻게 말로 사고팔 수 있을까 싶겠지만 여름철 더위에 건강을 해칠까 염려하던 마음이 만들어낸 주술적인 풍습이었던 것이다.

  

 

   각시(閣氏)네 더위들 사시오. 일른 더위 느즌 더위 여러 해포 묵은 더위

   오륙월(五六月) 복(伏)더위에 정(情)에 님 만나이셔 달 발근 평상(平床) 우희 츤츤 감겨 누엇다가 무음 일 하였던디 오장(五臟)이 번열(煩熱)하여 구슬땀 들니면서 헐덕이난 그 더위와 동지(冬至)달 긴긴밤의 고은 님 픔의 들어 다스한 아람목과 둑거온 니블 속에 두 몸이 한 몸 되야 그리져리하니 슈죡(手足)이 답답하고 목굼기 타올 적의 웃목에 찬 슉늉을 벌덕벌덕 켜난 더위 각시(閣氏)네 사려거든 소견(所見)대로 사시압소

   쟝사야 네 더위 여럿 듕에 님 만난 두 더위난 뉘 아니 됴화하리 남의게 파디 말고 브대 내게 파라시소

- 신헌조 「각시네 더위들 사시오」

 

 

  고 신영복 선생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무더위 때문에 옆 사람의 존재를 그저 열 덩어리로만 인식하며 서로를 증오하게 되는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 불행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글이다. 이처럼 한여름의 무더위는 신혼부부조차 각방을 쓰게 만든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위의 사설시조는 이러한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세시풍속 ‘더위팔기’를 제재로 삼아 해학적인 성담론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이 시조는 ‘정든 님’과 함께라면 복더위가 대수냐고 부르짖는다. 대화체 형식으로 형상화된 이 작품에서 더위를 사는 존재는 ‘각시네’들이다. ‘각시’는 새색시를 달리 이르는 말로, 한자를 빌려 ‘閣氏’로 적기도 하지만 이는 ‘장삼이사’가 아닌 갓 결혼한 여자를 뜻한다. 장사치가 팔고자 하는 더위는 그냥 더위가 아니다. 한여름(복날)과 한겨울(동짓날)에 남녀의 애정 행위로 발생하는 더위이다. 초장에 나열된 더위들은 중장의 내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에 불과하다. 아울러 이러한 더위에 대해 ‘사려거든 소견대로 사라’고 권유한다. 종장은 호객하는 장사치에 대한 각시네들의 대답으로 이뤄져 있다. 두 더위 중 어느 것이나 다 좋으니 ‘남에게 팔지 말고 부디 내게 팔아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임과 함께라면 지옥불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모름지기 신혼이라면 아무리 더운 열대야에도 꼭 붙어 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만 같다.

  이 시조의 작가인 신헌조(申獻朝, 1752~1807)는 정조·순조 때의 문신이다. 그가 남긴 개인 가집인 『봉래악부(蓬萊樂府)』에는 총 25수의 시조 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중 12수가 사설시조이다. 표기법만 현대식으로 바꾼 위의 사설시조 「각시네 더위들 사시오」는 『봉래악부』에 수록된 20번 작품으로 원전에 없는 제목은 임의로 붙여넣은 것이다. ‘육당본(六堂本)’ 『청구영언』에도 실려 전하지만 몇 군데 표기상의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은 강원도 관찰사 재임 시절(1802~1807)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도 관찰사와 대사간 등의 관직을 역임한 사대부가 자신의 작품을 모아 가집을 편찬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신헌조의 시조에 나타난 작품 경향은 유가적 이념을 다룬 것에서부터 애정 행각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근엄과 위선의 탈을 써야 했던 성리학의 시대에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진솔하고도 해학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가치는 평가할 만하다.

    

 

환삼덩굴과 새콩덩굴이

바야흐로 공생 중

 

들여다보면 용호상박

처절한 접전 중

 

전신주 퍼렇게 맹독 오른

삼복염천 개울가 

- 박명숙 「현장」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태양으로 상징되는 자연의 에너지가 밝음과 뜨거움, 젊음과 건강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능소화와 배롱나무꽃의 붉은 열정과 풀과 나무의 진초록 생명력이 강하게 조응하는 팔월은 그래서 여름의 절정이라 할 만하다. 팔월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조를 짙게 드리우고, 그 숲은 또 새와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푸른 파도처럼 싱싱하게 일렁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한창이다. 더위에 지친 동물들은 물가나 그늘을 찾는 등 신체 활동을 최소화하려 애쓰지만 식물들은 여름 한 철을 에너지 축적과 세력 확장의 최적기로 이용한다.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 한 줌의 햇살이라도 더 받기 위해 키를 늘이며 자신의 영토를 굳건히 하려 한다. 줄기에 힘이 없는 덩굴풀들은 큰키나무나 전봇대 등을 지주 삼아 하늘로 기어오른다. 워낙 느릿하게 진행되는 정중동의 움직임이라 인간의 눈으로는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박명숙 시인은 무심코 지나쳐버리기 쉬운 이러한 자연계의 일상을 생생한 이미지로 포착해내고 있다. 그곳은 치열한 생존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삶의 현장’이다. 환삼덩굴과 새콩덩굴은 들판이나 물가 등 버려진 땅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슬금슬금 바닥을 기어가며 영토를 늘리다 나무나 다른 개체를 만나면 휘감고 조이는 이기적인 식물이다. 이들이 함께 있는 현장은 겉으로는 “공생 중”인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처절한 접전”을 펼치고 있다. 전신주를 퍼렇게 휘감고 오르는 덩굴들의 처절한 쟁투를 시인은 “맹독”이라 표현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리라. 이처럼 처절한 삶의 쟁투가 펼쳐지기에 여름의 열기는 더욱 뜨거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생존 경쟁이 과연 자연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일까? 환삼덩굴과 새콩덩굴을 인간 사회의 구성원들로 대치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의 모습 또한 때로는 공생을 위한 상부상조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자기 것을 지키거나 더 늘리기 위해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속에서 삶을 지속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복염천 개울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서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단단한 은유로 형상화한 삶의 현장성이 생명의 열정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것 같다.

   

 

햇살 몇 개 부러진 오후만큼 기울어진

둥근 꽃밭 확 펼치자

무더웠던 그 여름

울 엄마

꽃송이 지고

내 생이 든 꽃그늘

 

꽃물이 뚝뚝 질까

아까워 들지 못했을,

 

입술연지 훅 퍼지는

꽃밭 빙빙 돌리며

 

접었다 펴보는 사이 간간이 꽃이 피네

- 이태순 「협립양산」

 

 

  최근 들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양산의 가치도 재조명되고 있다. 양산에 의해 태양이 가려지는 지점의 온도는 약 7℃ 정도 내려가고, 체감 온도는 10℃ 정도 내려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양산으로 자외선을 차단하면 피부암 등 피부 질환이나 탈모도 줄어든다. 특히 온열 질환 예방에 매우 효과적이다. 과거 기성세대의 어머니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갖고 싶은 양산이 있었다. 한때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애용하며 ‘영부인 우산’으로 불리던 그것의 자매품 ‘협립양산’이 그것이다. 그런 유명세 덕분에 협립양산은 도시 여인들의 필수품처럼 인식되었다. 화려한 꽃무늬가 프린트된 양산은 농촌 여인들의 감성까지 자극하며 명품 노릇을 톡톡히 했다. 따가운 햇볕과 자외선을 막아주는 생활 도구에서 멋쟁이들의 스타일을 돋보이게 하는 패션 소품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꽃과 원색이라는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는 지금의 눈으로 보면 ‘촌티 나는’ 디자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선풍적인 인기의 한 요소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값싼 외국 제품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추억의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사라진 양산 브랜드처럼 이태순 시인은 추억의 한 페이지에서 지금은 가고 없는 어머니를 반추한다. 여기서 우산 속의 꽃과 어머니는 동격이다. ‘꽃밭’ 같은 ‘협립양산’을 들고 다녔던 어머니는 그 자체로 활짝 핀 꽃이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전성기와 협립양산의 전성기는 그렇게 일치한다. 그 때문인지 시인이 반추하는 추억의 꽃밭에는 여전히 어머니가 살고 있다. 시인에게 “울 엄마”는 이미 지고 없는, 그래서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양산에 그려진 꽃무늬처럼 현재에도 간간이 피어나는 꽃송이로 환생하는 것이다. 어머니가 남기고 간 양산을 매개로 어머니의 삶이 시적 화자에게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여름은 가도 양산은 남듯 협립양산을 통해 반추하는 어머니에 대한 곡진한 핏줄의 정이 애잔함을 더한다.

 

*  *  *

 

  절기상으로는 이제 처서(處暑)다. 처서는 여름 더위가 물러나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이 끝났음을 알리는 입추(立秋)를 지나 맞이하는 처서는 아침저녁 선선한 기운으로 인해 모기의 입이 삐뚤어진다고 한다. 낮 동안에는 당분간 더운 날들이 이어질 테지만 이미 절정을 넘어선 여름의 예봉이 꺾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사회는 순수한 땀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천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놀면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한다’는 어느 교실의 급훈은 이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하지만 더울 때 더운 데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데서 일하는 분들의 수고가 없다면 이 나라의 기반이 다져지고, 이 사회의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을까? 염천에 흘린 땀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뜨거운 수고로움의 징표이기에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가을날」이라는 시에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라고 노래했듯이 파란곡절이 많았던 이 여름을 보내고 나면 우리도 그렇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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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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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