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tra Form Output
저자 권현형 

    

 

 

 

새벽의 빛

 

 

        

 

   

  유사 가족에 둘러싸인 청소년 시절, 내가 좋아하는 작가나 소설 속 인물이 아버지 노릇을 대신할 수 있다는 진실을 일찍 깨달았다. 날 때부터 혹은 후천적으로 무언가 결핍된 자들, 영혼이 털려버린 자들은 생각보다 낙천적이고 너그럽고 사랑스럽고 그러면서도 뻔뻔하고 고독한 얼굴을 갖고 있다. 내가 만난 나의 가족들은 대체로 진심을 마음 깊이 숨겨놓고 안 보여 주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기도 했다. 보물찾기처럼 사랑을 깊이 숨겨놓은 채 안 들리게 말하거나, 떠난 후에 말한다.

  밀란(milan)행 비행기 안에서 로맹가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새벽의 빛을 만나게 될 줄이야. 11시간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새벽의 약속』을 영화로 보게 된 것은 작은 행운이었다. 좋은 영화나 좋은 음악은 일상의 남루함을 가끔은 위로하고 보상해준다. 두 모자의 빈곤을 가려주듯 영화에서는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주인공은 빅토르 위고가 될 것이라고 다짐한다. 영화 속 어머니 니나 카체프는 러시아의 삼류 배우였으나 아버지 없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프랑스로 건너간 미혼모이자 디아스포라다. “너는 톨스토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아들을 부추기고 격려한다. 결국 로맹은 빅토르 위고도 톨스토이도 아닌 로맹이 되었다. 매사 불꽃처럼 사는 로맹의 어머니에 의하면 여자가 원하는 것은 신이 원하는 것이다.

  로맹의 어머니는 말한다. “내 인생에 오직 단 한 남자만 진심으로 사랑했어. 그런데 그는 날 존중하지 않았어. 그래도 어른이었어. 아이가 아니었다고”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불운을 다해 남자를 사랑할 줄 아는 여자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맹이 히틀러와 싸우는 프랑스군으로 참전하러 나가는 새벽, 프랑스 정교회로 데려가 그녀는 아들의 확약을 얻어낸다. “약속해, 너는 죽지 않겠다고.” 로맹의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신이 원하는 것이었을 터, 이처럼 새벽의 약속들은 간절하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 영원히 지지 않는 빛은 영화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모든 배고픈 갈망 속에 빛은 파동으로 입자로 싱싱하게 살아 있을 것이다. 리비아 병원에 입원해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심장으로 찾아온 어머니를 만난 후 로맹은 마침내 회복해 밤에는 코트를 입고 부츠를 신고 글을 썼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큰 작가가 되었다.

  고공에서 땅에 발을 디딘 며칠 후 조반니 벨리니의 〈피에타〉를 브레라 미술관에서 보게 되었다. 아들의 얼굴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고 못에 구멍이 뚫린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며 자신의 숨을 아들에게 쏟아부으려는 한 여성의 그림을 이동 중 보게 될 줄 몰랐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 서문에 인용된 쥘 미슐레의 글은 오랜 논쟁의 정답 같다. 남성과 여성과 신의 관계는 문제적이다. 그 어려운 관계를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수사적으로 정리한다.

  “남자는 사냥을 하고 투쟁을 한다.” “여자는 계략을 짜고 꿈을 꾼다.” “그녀는 환상의 어머니이자 신들의 어머니이다.” “그녀에겐 또 다른 눈이 있고 욕망과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무한정 비행할 수 있는 날개가 있다.” “신은 남자와 같아서 여성의 품속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또 다른 눈과 무한정 날 수 있는 날개를 지닌 여성은 남자를 품고 신을 품는다. 로맹의 어머니나 피에타의 마리아는 심장에 아들을 품는다. 신은 남자와 같아서, 남자는 신과 같아서, 여성의 품속에서 태어나고 죽는다. 신을 품고 남자를 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은 신이 아니다.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글에 의하면 여성과 신과 남성은 서로 불평등하지 않다. 서로 우월하지 않다. 서로 지배하지 않는다.

 

어둠 속에 빛을 파묻어놓았다가 쓰듯 평생 사랑을 아껴 쓰는 방식으로 사는 데 이골이 나 있는 내 모계 쪽 핏줄들은 가까이에서 새벽빛의 파동처럼 언뜻언뜻 살아 있다

 

  이십 대 후반부터 찾아온 불면증과 이명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는 “이모들의 삶을 생각해봐”, 그렇게 말씀하셨다. “엄마의 삶을 생각해봐.” 그렇게 말할 줄 모르는 어머니는 니나 카체프와 분명 다른 여성이다, 그러나 저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여성들의 서열에서 결코 뒤처질 분은 아니다. 내 모계의 여성들은 팔자가 사납기보다 자기 앞의 생을 충분히 살아낸 독립적인 인간들이다.

60년대 후반 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한 큰이모는 서울로 올라가서 이국적인 말을 배워왔다. 오라이(올라잇)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베레모와 유니폼을 벗고 잠시 진달래 빛 원피스를 입고 고향으로 다니러 온 큰이모는 멋지고 예뻤다. 서울말을 배워온 자랑스런 큰이모는 그녀를 존중하지는 않으나 ‘어른인 남자’들과 사랑에 빠져 적어도 두 번 이상 결혼 생활을 했다. 작은이모는 월경 중에도 겨울 주문진의 신리천 다리 밑에서 얼음물에 명태를 씻어 덕장에 널어 말리는 일을 했다.

  그녀들은 불면증도 이명도 없이 이십 대 전체를 아니 삶 전체를 야전에서 보냈다. 어둠 속에 빛을 파묻어놓았다가 쓰듯 평생 사랑을 아껴 쓰는 방식으로 사는 데 이골이 나 있는 내 모계 쪽 핏줄들은 가까이에서 새벽빛의 파동처럼 언뜻언뜻 살아 있다. ♦

 

 

 

 

 

 

 

 

 

 

 


 

권현형.png

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ㅡ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ㅡ

202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