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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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효선 

    

 

 

 

고수

ㅡ 작고 아름다운 점

 

 

        

 

 

  몇 해 전 여름, 점심을 먹기 위해 베트남 쌀국수를 한다는 한 프랜차이즈 식당에 간 적이 있다. 들어서자마자 지금도 잊히지 않는 어떤 향이 콧속으로 맹렬하게 뛰어들었다. 처음 맡아보는 자극적인 냄새였다. 나는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당연히 쌀국수를 시켰고 난생처음 쌀국수 위에 얹은 파릇한 채소의 맛을 알게 되었다. 톡 쏘는 듯 자극적인 향이 오히려 입맛을 끌어당겼다. 나는 그 채소를 더 달라고 했다. 그 뒤로 나는 그 푸릇한 채소에 꽂혔다. 자꾸만 내 주위를 맴도는 자극적인 향이었다. 과학적으로는 특이한 유전자로 인해 그 채소를 비누나 샴푸 냄새로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오이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과 비슷한 경우라고 한다. 또 누구는 지독하게 비리다고 코를 틀어막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빈대 냄새가 난다고 해서 빈대풀로 불린다고도 한다. 채소에서 빈대 냄새가 난다고 하니 어쩐지 입맛이 뚝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 하필 빈대라니. 어쨌든 빈대는 잊어버리자. 솔직히 내 주변에도 이걸 좋아하거나 먹는 사람은 드물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야 맞다. 딱 한 명만이 즐길 줄 알았다. 그 채소의 이름이 바로 고수다. 고수가 들어간 음식이 먹고 싶을 땐 그 친구를 불러야 했다. 참 이상도 하지. 선택적 낯가림과 예민함으로 똘똘 뭉친 내가 처음 만난 고수에 흠뻑이나 빠지다니. 그것도 아주 깊이,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처럼.

  제주에도 고수와 비슷한 채소가 있다. 고수가 미나리과에 속한다면 양하는 생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비교적 키우기 쉬워서 집 마당이나 주변 남는 공터에 심었다. 이파리가 크고 무성해서 비 올 때면 이파리에 또르르 굴러가는 빗방울을 한참 쳐다보곤 했다. 빗물을 두 손으로 고이 받아먹는 포즈랄까. 양하는 살짝 데쳐서 무쳐 먹거나 장아찌로 먹거나 요리할 때 같이 넣기도 했다. 꽤 자극적인 향이 난다. 먹을거리가 많이 없던 시절엔 거의 김치처럼 밥상에 자주 올라오는 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향이 너무 싫었다. 질긴 껍질을 씹는 것 같은 식감도 별로였다. 요즘엔 건강 식단으로 불리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내 입엔 맞지 않았다. 웬만한 향신료는 다 좋아하는 편이지만 양하는 왠지 나와 인연이 없는 향이라고 할까. 알고는 지내지만 인연이 잘 닿지 않은 사람처럼.

  그런데 참 이상하게 양하를 좋아하는 사람도 고수는 싫어한다는 거였다. 왜 그럴까. 내가 양하를 싫어하는 이유와 같은 걸까. 고수라는 식물 자체가 우리나라가 원산지가 아니라서 입맛에 길들이지 않은 까닭일까. 서로의 입맛 때문에 사소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고수와 양하는 국적을 다투는 오해로 변질되기도 한다. 단지 맛을 떠나 서로의 감각기관에 대한 무관심과 오기로 얼룩져버리기도 한다. 입맛과 인간관계의 상관관계도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남은 대체로 밥을 먹는 자리로 이어지고 식성과 성격을 묘하게 연결지어 친밀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그러고 보면 후각은 꽤 많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이에도 후각은 친밀감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된다. 특히 살 냄새가 그렇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의 냄새를 지닌다. 후각은 뇌의 신경기관과 연결되어 있어 한 사람을 오랫동안 기억에 꽁꽁 묶어두는 역할을 한다. 오래전 한 TV에서는 부부가 출연해서 냄새로 서로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오랫동안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졌으니 금방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별 재미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자주 스킨십을 하거나 후각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가족이라고 서로의 냄새를 아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호기심은 사라지고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살아간다. 인간의 냄새, 어쩌면 그건 친밀한 관계의 밀도를 나타내는 가장 최측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관계나 쇼윈도 부부였다면 금방 들통이 날 수도 있는 순간이었다. 아마 섭외할 때도 그런 점을 고려하고 출연자들에게 미리 얘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자칫 예능 프로그램이 뉴스거리를 제공할지도 모르니까.

  물론 재미를 제공하기 위해 우왕좌왕하거나 갸우뚱거리는 모습, 웃음코드를 위해 짜여진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눈을 가리고 신체를 만지면서 자신의 짝을 찾는 프로그램들이 꽤 있었다. 단순한 것 같지만 우리의 감각기관이 관계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나? 촉감만으로 알아낼 수 있을까? 새삼 감각을 깨운다는 건 고도의 집중과 관심으로 그 사람을 내 기억에 스며들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그래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릴 때면 어디선가 나에게로 아슴아슴한 날아드는 향기가 느껴지는 거라고 믿고 싶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고수의 꽃말은 지혜와 아름다운 점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점’이라는 꽃말에 이끌린다. 고수 꽃이 작아서 생긴 이름이기도 하겠다. 별처럼 작은 점. 베란다 화분에 고수를 심은 적이 있었다. 내버려 두었더니 금세 꽃이 피었다. 작고 청초한 얼굴이었다. 채소에 꽃이 핀다는 건 채소로서의 기능을 다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채소는 꽃이 피기 전 여릴 때 수확을 하니까 꽃을 볼 일이 거의 드물다. 식물의 우월성은 꽃이 필 때지만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채소의 존재감은 꽃이 피기 전까지다. 꽃보다 잎과 줄기로 상품성을 따지기 때문이다. 고수가 가진 ‘아름다운 점’은 연예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복점과 비슷하게 들린다. 2% 부족한 걸 채워주는 힘.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그 작은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것. 우리 삶의 기쁨도 그렇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어느 날 발견한 길모퉁이의 제비꽃이나 이마를 스치는 기분 좋은 바람, 말없이 엄지척을 해주는 사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빌려준다거나 힘내라고 밥 사주는 사람, 넘어졌을 때 손을 잡아주는 사람, 그렇게 내 존재 이유와 가치를 느끼게 해 주는 사람 말이다. 살아있다는 것, 사랑한다는 건 아마 그렇게 보이지 않은 작은 아름다움이 어디선가 우리를 지켜보며 토닥토닥 끌어안기 때문이 아닐까.

  고수는 지금 한창 꽃이 필 때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운 점을 하늘하늘 피워올리고 있다. 어쩌면 희미하게 존재의 기억을 지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존재는 잊힐수록 강해지니까. 그래서일까 꽃에서는 고수의 그 특이한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꽃보다 잎이 강한 향을 품고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뿌리에서 밀어 올린 기억의 힘. 젖 먹던 힘까지 밀어 올려 살고자 했던 의지. “열매는 한여름 빛의 기억이라서 태울수록 커피는 반짝거리고 그 기억을 마셨으니 잠들 수 없지 (…중략…) 빛을 먹고 푸르게 타는 걸 식물이라고”(고명재, 「아름과 다름을 쓰다」중). 이 시를 읽으며 식물의 힘은 ‘빛의 기억’에 스며든 향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수는 어떤 빛의 기억이길래 이토록 혀에 사무치게 지워지지 않는 향일까. 아슴아슴하다 간질간질하다 혀끝까지 저릿해지는 먼 기억의 신화가 펼쳐지기도 하는 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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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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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