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권현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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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처럼 발을 웅크리고 있는 봉숭아
내면에 리듬을 저절로 가지고 있을 때는 우기에도 집안에 빛이 가득했다. 찰리 푸스(Charlie Puth)의 리버(River)를 들으며 여름비 오는 날 빗방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던 날이 있었다. 진이 열세 살 무렵이었다.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는 봉숭아로 손톱 물들이는 걸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웃자란 봉숭아가 연약한 나무로 보이기도 했다. 좁은 화분에 발레리나처럼 발을 웅크리고 있는 봉숭아와 내가 함께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나와 봉숭아가 춤추는 모습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깔깔거리던 진의 웃음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낯선 사람이었을까 닮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후일담으로 캐묻진 않았다. 빗소리와 봉숭아와 함께 보라색 안경테를 쓰고 있던 소녀와 함께 뼈저리게 행복하던 어느 하루가 있어서 이곳에 나는 살아남았다.
혼자 있는 몰입의 얼굴은 그만의 것이다
이케아에서 조립형 식탁을 사 가지고 집으로 오는 중 운전석 옆자리에서 깜박 졸았다. 깨어나는 순간 “이젠 하느님이 그립지 않아요.” 그런 말을 누가 들어도 괜찮다는 듯 내뱉고 있었다. 하느님도 너무 멀리 있어 섭섭할 때는 달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비로소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는 곳에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달리다가 강물을 들여다보는 사람을 멀리서 보게 되었다. 달릴수록 물체와 거리가 가까워졌으나 실루엣이 아닌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물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얼굴은 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있는 몰입의 얼굴은 그만의 것이다.
계속 생각하고 있는 일을 꿈꾸게 되는 것이라면 꿈은 생각의 낡은 천 조각이다. 꿈에 와불을 보았다. 부처가 산등성이에 누워 있었다. 부처의 손바닥은 무수한 엽맥과 닮아 보였다. 신경증적 편두통에 시달리는 요즘의 일상이 투사된 것일까. 꿈속일지라도 감히 부처의 번뇌를 물속을 들여다보듯 보다니. 무의식 속에서 부처님 하느님을 다 찾게 되는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꿈속의 당신은 누워 있고 저는 다시 춤을 출 계획을 하고 있군요.” 다시 아침을 시작하고 싶다. 생각지도 못한 집착, 바나나와 토스트와 시리얼에 대한 집착이 시작됨을 예감한다. 미지에 대한 사랑이 시작되었음을, 덧없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채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던 나날들, 내 손을 믿을 수 없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씻고 있었다. 고용량의 어둠을 약 대신 챙겨 먹기 시작했다. 추상이 아닌 구상의 세계에서 불안은 대부분 타원형이고 무채색이다. 알코올에 의지해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나 단호히 어둠에 의지해 살았다. 취하지 않았으므로 제정신이 아닌 날들이 지나가고 있다. 바로 어제는 한동안 멈춘 손목시계를 수리하기 위해 시계방에 맡기러 갔었다.
인디언 달력을 보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8월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 노란 꽃잎의 달, 기러기가 깃털을 가는 달,” 그동안 시계 대신 인디언 달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내내 내내 길게 길게 아팠다. 나를 다그치지 말자. 아플 일이 뭐가 있냐고 묻지 말자. 나를 통해 바닥을 보았다고 말하지 말자. 카오스는 신화적 세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머리 구덩이 속에도 있는 거라고 말하지 말자. 그동안 내 영혼이 나를 못 쫓아오고 있었다고는 말해도 되겠다. 인디언들은 짧은 거리든 먼 거리든 뛰어간다고 하는데, 숨이 차지 않더라도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자신의 영혼이 잘 쫓아오는가 보느라고 그런다는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내 영혼이 나를 못 쫓아 오는 일이 생겼다. 나를 기다려주느라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다보았다.
세간의 이야기가 온종일 귓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상한 과육의 짓무른 살점처럼 뜯어낼 수는 없는 절반의 세계, 내가 속한 세계에 대한 끈질긴 애정이 있으므로 ‘아욱’, 우선 깊이 아파할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노벨 문학상을 거절하며 자신이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쓴 글과 말뿐이라고 했거늘,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스승처럼” 언젠가 그런 문장을 만났을 때 왜 마음이 아팠을까? 가끔 머나먼 이국의 문학적 선배 사르트르의 말을 꺼내 보며 위로를 받는다. 문학의 깨끗한 얼굴은 무엇일까 오래 궁리해보게 된다.
어떻게 움직이느냐보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느냐에 관심이 간다는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말에 공감한다. 일생이 춤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마음속 리듬을 잃지 않았던 순간들을 따라 나는 살아남았다. 마당의 별빛을 끄기 아까워 좋아하는 후배 시인들과 밤새 좋아하는 음악 겨루기를 하며 몸을 흔들었던 귀여운(?) 기억이 있다. 편집 회의 겸 엠티를 갔던 영월은 천문대가 있을 정도로 별이 풍성해 별숭어리나 별뭉텅이로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행복은 빛의 총화가 아니라 빛과 어둠의 겹, 주름의 육질을 갖고 있다
깨어 있는 리듬을 어디에 잠시 둬야 할지 몰라, 그러고 보니 이름에 공통으로 이니셜 H가 들어가 있는 우리 셋은 새벽까지 춤을 추었다. 춤이라기보다는 바람이 불지 않아도 조금씩 계속 움직이고 있을 어둠 속 여름 나무를 흉내 내 보았다. 별이 뭉텅이째 빛나는 밤의 유령이 되어 본 특별한 기억, 공복에 찾아온 리듬은 진하고 강하게 내면의 빛처럼 있다. 행복은 빛의 총화가 아니라 빛과 어둠의 겹, 주름의 육질을 갖고 있다는 깨달음과 함께 내 안에 살아 있다. ♦

권현형 l
1995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중독성 슬픔』 『밥이나 먹자, 꽃아』 『포옹의 방식』(2013년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편저 『김영태 시선 초판본』, 공저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ㅡ김수영 50주기 기념시 해설집』등이 있음. 〈미네르바작품상〉 수상.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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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