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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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전쟁을 낳고
전쟁은 비극을 쌓고
“전쟁은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살아남는지를 결정할 뿐이다.
ㅡ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평화는 절대다수의 염원이자 열망이다. 그래서 권력자든 일반 시민이든 평화를 부르짖는다. 심지어는 전쟁을 일으킨 정치 지도자들도 입으로는 평화를 외쳤다.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 우르바누스2세가 그랬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가 그랬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조지 부시가 그랬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푸틴이 또 그러고 있다. 세상에는 이렇게 평화를 외치는 이들이 대다수인데, 전쟁은 왜 끊임없이 일어날까? 전쟁을 일으키는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평화의 가면 뒤에 숨은 잔인하고 공격적인 동물적 본성에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날은 단 며칠에 불과하다고 역사학자들은 증언한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인간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하는 전쟁의 참화가 벌어지고 있다. 생존과 자위를 위해, 파괴를 위해, 결속을 위해, 종교와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인권의 구제와 구원이라는 각양각색의 허울을 두르고 날마다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호전성과 극단적 이기심에 바탕을 둔 전쟁은, 급속하게 팽창하는 인간의 개체수를 제한하고, 우성 인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약육강식의 환경을 구축하는 진화론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견도 있다.
옛 프로이센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였던 클라우제비츠(Clausewitz, K.)는 『전쟁론』을 통해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했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가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전쟁은 가장 폭력적인 정치 행위이자 가장 극단적인 정치 수단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집단정서가 반영된 ‘원초적 적대감’이며, 둘째는 우연과 도박을 감수할 수 있는 담대함이며, 셋째는 전쟁 목표의 합리성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 셋째 원인만 합리적인 측면이고, 나머지는 비이성의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늙은이들이지만, 싸우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Older men declare war. But it is youth that must fight and die.)”라고 한 미국의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말은 전쟁이 얼마나 비이성과 불합리의 총합인지를 대변한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 호가(一聲 胡笳)는 남의 애를 끊나니
- 이순신, 『청구영언(진본)』 주해
「한산도가」라고 이름 붙여진 충무공 이순신의 이 시조는 한시로 번역되어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수록돼 전하다가 『청구영언』에서 비로소 한글 시조로 기록돼 남겨졌다. 이 작품에는 ‘한산도’라는 최전선에서 전투를 앞둔 한 인간의 내적 고뇌가 깊이 웅크리고 있다. 이순신이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차린 것은 임진왜란(1592~1598)의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 일어난 지 딱 1년 뒤인 선조26년(1593) 7월이었다. 이때 이순신은 전라좌수사의 직책에 있었는데, 왜적이 들끓는 경상도 수역에 자주 지원 출동을 나가게 되자 아예 전장과 가까운 곳에 진지를 구축했다. 여수에서부터 힘들게 노를 저어 가 전투를 치르고, 다시 노를 저어 돌아가야 하는 군사들의 고충을 덜기 위함이었다.
한산도로 수군군영을 옮긴 지 3년째인 1595년 8월 15일 『난중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병사들을 먹이고, 종일 여러 장수들과 같이 취했다. 이날 밤 으스름 달빛이 수루를 비추는데, 잠이 들지 못하고 시를 읊으며 밤을 지새웠다.” 그의 나이 51세 때이다. 당시에는 음력을 사용했으니 음력 8월 15일이면 한가윗날이다. 가족과 떨어져 전장에서 맞는 한가위의 달빛이 어떤 감회를 자아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의 시름은, 앞으로의 전황에 대한 고심과 나라에 대한 걱정, 가족에 대한 염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당시 왜군은 이순신에게 바다를 빼앗기고 견내량 동쪽 해안에서 군수 물자를 수송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남은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육군과 수군이 협공을 해야 한다고 조정에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가락 피리 소리가 취기 어린 사나이의 가슴에 칼질을 해댄 것이리라. 낮에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밤에는 가족과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었을 그의 모습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육지를 둘러싼 방어막인 바다를 지켜야만 나라가 살고, 백성이 살 수 있다는 절박한 이순신의 충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고, 바르고 단정한 용모는 수업 근신하는 선비와 같았으나 내면으로는 담력이 있었다”는 글로 그의 인품과 용모를 전했다. 한편 명나라 장수 진린(陳璘)은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잡은 공이 있다[李舜臣有 經天緯地之才 補天浴日之功]”고 했으며, 명나라 황제(인종)에게 이순신의 공적을 자세히 보고하여 명나라 조정에서 팔사품(八賜品, 도독 인장과 칼 등 8종 15점의 하사품)을 내리게 했다. 국문학자 조윤제는 조선 중기 ‘시조문학 발휘시대’ 대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이순신을 꼽았다. 그의 시조가 보여주는 우국충정과 고독한 심회가 전장에서의 현장감과 함께 비장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우리나라가 외국 세력의 침략을 받은 횟수가 900여 회가 넘는다고 한다. 이웃한 중국과 일본은 물론 멀리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까지 받았다. 따지고 보면, 한국전쟁(6·25전쟁)도 외세 침략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군의 남침이지만, 그 이면에는 국제 정세의 온갖 역학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하정책을 펴며 한반도에서의 지배권 강화를 노리던 소련(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과 중국의 국민당정부가 공산당과의 전쟁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쫓겨간 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려는 미국이 서로 충돌하면서 애꿎은 한반도가 그 대리전을 치렀던 것이다.
올해는 한국전쟁(6·25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지 70주년을 맞는 해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부 세력에 의해 종전(終戰)이 아닌 휴전(休戰) 협정만 맺은 채 휴전선 철책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일촉즉발의 대치 상태에 있다. 휴전이란 전쟁을 잠시 멈추는 것이기 때문에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것처럼 정치적 목적이나 우연한 계기로 인해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종전을 통한 불가침협정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반도는 여전히 전시 상태에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남과 북은 화해와 상생의 몸짓이 아닌 가장 폭력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적대의 말과 행동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힘의 우위를 부르짖는 남·북한 정부 모두가 합리적인 이성보다 원초적인 감성에 치우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군사 전문가들은 남·북한 모두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 정치(先軍政治)’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3년 동안이나 이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은 한반도 전역을 폐허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약 260만 명에 이르는 막대한 인명 피해까지 냈다. 핵무장을 통한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는 오늘의 한반도에서 선군 정치를 내세운 남북의 치킨 게임은 결국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점검이 필요하다 하겠다. 전쟁은 승자나 패자가 함께 피해를 보는 잔혹한 자기학살 게임이자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앙금진 시간을 칼질하는 억새밭에
한 계절 푸르던 꿈이 가쁜 숨을 모으고 있다
떨어진 별들의 자리에 선혈 조금씩 비친다
하마 일흔 번의 꽃씨를 묻어 봐도
답신 없는 이 언덕의 섭섭한 가을빛은
어설픈 사상을 가늠하던 병사의 가슴 그 빛이다
속절없이 노을 한 뙈기 차려놓고 돌아가는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의 옥빛 하늘
상기도 다부원의 가을은 뒤꿈치가 너무 곱다
- 리강룡, 「다부원의 가을빛」 전문
‘다부원’은 조선시대 관원들의 숙소인 ‘소야원’이 있던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일대를 가리킨다. 옛날 역과 터는 사라지고 지금은 ‘다부동전적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적기념관이 세워져 있는 것만 보더라도 이곳이 한국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 중 하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곳 다부리 일대는 미국 제8군 워커 사령관에 의해 최후의 교두보로 설정된 낙동강방어선(일명 워커라인)의 꼭짓점이자 대구를 방어하기 위한 최우선 전략요충지였다. 그로 인해 1950년 8월 피의 강물이 흐른 ‘다부동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약 1만 명의 희생을 감수하며 북한군 3개 사단에 치명상을 입힘으로써 반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피의 격전지였다.
리강룡 시인은 이러한 피의 현장에서 동족상잔의 비통한 과거를 반추하며 현재를 진단하고 있다. 이 작품을 마주하면, 종군작가로서 전쟁의 참상과 폐허를 시로 노래한 조지훈 시인의 「다부원에서」가 먼저 떠오른다. “피아(彼我) 공방의 포화가 /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이라며 전쟁으로 인한 희생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인가를 고발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절실히 깨닫게 하였던 시편이다.
리강룡 시인 또한 시간을 달리해 전쟁의 참혹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격전의 현장을 돌아보며 감회에 젖어 있다. 이것은 단순한 애상의 감정이 아니다. 역사의 비극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비극의 현장에서 전후 70년을 돌아보며 여전히 이데올로기에 의해 적대 관계가 청산되지 못하고 있는 고착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의 토로다. 초목조차도 온전히 제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던 초토화의 현장은 다시 새살이 오르고 초록물로 채색되어 있다. 이러한 재건의 꿈은 곧 동족의 가슴에 총칼을 겨누었던 것에 대한 비판과 남북 화해에 대한 열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계절 푸르던 꿈이 가쁜 숨을 모으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화해의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그러자 “떨어진 별들의 자리에 선혈”이 비치기 시작한다.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는 염려이다. 70년의 세월 동안 “꽃씨를 묻”는 화해의 몸짓에도 ‘답신’이 없는 ‘섭섭한’ 상황은, 여전히 이념과 사상에 의해 서로를 죽고 죽이던 70년 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화자는 ‘선혈’이 비치는 ‘노을’ 너머의 ‘옥빛 하늘’만 우러른다. “아는 듯 모르는 듯 무심한” 하늘은 ‘어설픈 사상’에 기울어지지 않는 숭고한 절대적 존재로서 그렇지 못한 인간, 즉 ‘병사의 가슴’과 대비된다. 이처럼 인간과 자연, 여름과 가을, 과거와 현재, 놀빛과 옥빛, 언덕과 하늘, 앞과 뒤(꿈치)의 대비는 이념과 체제가 대비되는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 대한 다의적 메타포로도 읽을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피의 역사를 딛고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순수자연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염원의 표출이라 하겠다.
인제를 넘어 북쪽 한계령 고개턱에서
보았다. 국경으로 몰리어가는 눈, 눈, 눈
순백의 고요한 화해 그 눈부심을 보았다
바위는 바위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서로의 가슴으로 서로를 묻으며
우리의 동토를 향해 소리 없이 전진했다
용서하라, 끝없이 이어지는 흰 깃발의 행렬
살과 살이 서로 부딪고 뼈와 뼈가 서로 부딪쳐
힘없이 허물어지는 저 국경을 넘어서
달려왔다. 나부꼈다. 그리고 조용히
얼어붙은 우리의 냉기를 어루만졌다
숨겨진 불씨가 일 듯 환한 세상이 열리고
이 땅에 빛나는 모든 것이 한데 어울려
싱싱한 화해의 꽃송이로 춤출 때
우리도 하나가 되어 희디희게 쌓여갔다
- 박권숙, 「초설(初雪)」 전문
리강룡 시인이 격전의 현장에서 화해를 꿈꾸었던 것처럼, 박권숙 시인 또한 남북이 하나 되는 화해의 현장에 서 있다. ‘첫눈’이라는 기상 현상을 “싱싱한 화해의 꽃송이”로 표현하며 못내 감격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으로 쓰인 한자어 ‘초설’은 우리말로 ‘첫눈’이라는 뜻이다. ‘그해 겨울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내리는 눈’을 뜻함이니 이는 또한 상서로운 서설(瑞雪)이기도 하다. 여기서 겨울은 남북 관계가 얼어붙은 현상황을 은유한다. ‘첫눈’은 이러한 얼어붙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상서로운 조짐이자 ‘동토’를 해빙기로 이끌 기대감의 표출이다.
“국경으로 몰리어가는 눈”을 보며 화자는 “순백의 고요한 화해”를 꿈꾼다.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서로의 가슴으로 서로를 묻으며” 오직 하나의 빛깔로 통일되기 때문이다. 용서와 화해를 통해 “숨겨진 불씨가 일 듯 환한 세상이 열리고” “우리도 하나가 되어 희디희게 쌓여가”고 있는 상황은 대통합의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자 상생공영의 내일을 예감케 하는 판타지의 형상화다. 여기서 백의민족을 표상하는 흰색의 이미지는 “이 땅에 빛나는 모든 것”을 “한데 어울려” 춤추게 만듦으로써 동질성 회복과 통일이라는 대의를 환유한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염원하는 시인의 웅혼한 바람이 격정적 목소리에 실려 마디 큰 울림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판타지의 실현이 작품 밖의 현실에서도 구체화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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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