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임채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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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공동체
‘가정’이라는 울타리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가 주창한 이 말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가장 적확하게 풀어낸 말로도 유명하다. 인간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그 상호 작용을 통해 건강한 사회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따라서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태어나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고, 공동체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소속감을 얻고, 사회생활을 통해 정서적 안정을 취하고, 성취감과 행복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는 가정이다. 가정은 한 인간의 인성의 뿌리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다. 생존에 필요한 의식주가 해결됨으로써 독립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기도 한다.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을 쓴 SF소설의 아버지인 영국 작가 조지 웰스(H. George Wells)는 ‘가정’을 일컬어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것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서로의 가치를 배우고 익히며 성장한다.
가정의 구성원은 가족이다. 가정은 공간적 의미를 강조하지만, 가족은 그 공간을 가치와 의미로 채우는 존재이다. 자녀의 인격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의 말과 행동이다. 자녀는 부모에게서 보고 배우며 평생을 지탱해나갈 생각과 행동, 가치관을 형성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Muhammad)는 “한 사람의 아버지가 백 사람의 선생보다 낫다”고 했으며, 『적과 흑』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스탕달(Stendhal)은 “어머니란 나를 키워준 사람이며, 사회라는 거센 바다로 나아가기에 앞서 모든 풍파를 막아주는 방패와도 같은 존재”라고 했다.
이러한 사랑과 교육의 교류와 전수가 이루어지지 않는 가정은 지속 가능한 행복과 평안이라는 삶의 가치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쁜 일이 있으면 함께 웃고, 슬픈 일이 있을 땐 함께 슬퍼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이자 모두가 지켜내야 하는 공동체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에 나타난 톨스토이(L. Tolstoy)의 통찰은 이를 잘 말해준다. 건강하고 건전한 가정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가족들이 합심해서 슬기롭게 해결해 나간다. 그러므로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가정은 언제나 행복과 평안이라는 유토피아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다.
어버이 날 낳으셔 어질도록 길러내니
이 두 분 아니시면 내 몸 나서 어질쏘냐
아마도 지극한 은덕을 못내 갚아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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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 갈라 난들 두 몸이라 알지 마소
분형(分形) 연기(連氣)하니 이 일러 형제니라
형제야 이 뜻을 알아 자우자공(自友自恭) 하쟈꾸나
- 최락당(『청구영언』珍本, 주해)
최락당(最樂堂)은 조선 선조대왕의 손자인 낭원군 이간(李侃)이다. 그러니까 선조의 열두째 아들인 인흥군의 아들로서 최락당은 그의 호다. 최락당은 왕실 인사 중 가장 많은 시조작품을 남긴 시조 작가로 유명하다. 『청구영언』(진본)에만 20수의 작품이 수록돼 있고, 기타 여러 가집에도 10수의 작품이 더 실려 있어 총 30수의 시조 작품이 전하고 있다. 최락당의 시조는 대체로 산수 자연미와 그 속에서 즐기는 풍류를 담고 있지만, 위의 시조 두 편과 같이 교훈적인 내용의 작품도 다수 전한다. 이 두 작품은 진본 『청구영언』에 차례대로 실려 있어 연시조처럼 보이기도 하고 소재나 주제가 다른 작품들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연시조가 아닌 듯도 하다.
부모의 은덕과 형제간의 우애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송강 정철의 연시조 「훈민가(訓民歌)」를 떠올리게도 한다. 특히 첫 번째 작품은 정철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 두 분 곧 아니시면 이 몸이 살았으랴 / 하늘 같은 은덕을 어디다가 갚사올꼬”와 비교하면 내용과 구성이 무척 닮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락당(1640-1699)이 정철(1536-1593)보다 약 100년 뒤에 태어났으니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정철은 단순히 생명을 주신 것에 대한 은덕을 다루고 있지만, 최락당은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이 높도록 ‘어질게’ 키워주신 은덕을 칭송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철의 시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번째 작품에서도 알 수 있듯 최락당은 정철이 다루지 않은 형제간의 우애까지 시조로 설파하며 정철과의 변별성을 꾀하고 있다. 이 시조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보면, ‘우리 몸이 갈라 태어난들 두 몸이라 알지 마소 / 몸은 나뉘나 정기 이으니 이를 일러 형제니라 / 형제야 이 뜻을 알아 우애 공경 하자꾸나’와 같은 내용이다. 대부분의 가족은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중장에 보이는 ‘연기(連氣)’라는 말은 형제와 자매, 남매를 통틀어 이르는 ‘동기(同氣)’라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몸은 서로 나누어져 따로지만 한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같은 정기를 나누어 가졌기에 형제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받들어 모시자는 이야기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이해와 존중은 필요하다. 부모와 자식, 형과 아우 사이에도 서로에게 감사와 배려의 마음을 갖는다면 가족의 유대와 결속력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는 유교적 믿음이 깔려 있다 하겠다.
아직도 내 사랑의
주거래 은행이다
목마르면 대출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고
갚다가
대출받다가
대출받다가
갚다가….
- 이우걸, 「어머니」 전문
‘어머니’, 혹은 ‘엄마’라는 단어만큼 가슴 뭉클한 말이 또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있다. 현재 진행형이냐, 과거 진행형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생명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진 못한다. 윤리적인 문제로 인해 법률적으로 억제하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생명의 탄생은 모성의 기원이자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어머니의 몸과 정성을 빌리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며 어머니와 맺는 관계의 양상은 각기 다를지라도, 그 어떤 존재보다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 갖는 느낌이 더욱 특별한 것은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어머니는 창작의 영감이 되어 왔다. 너무나 익숙해 때론 고루하고 통속적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해 더이상 매력적이지 않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시인들이 어머니를 노래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아마도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픈 향수 때문은 아닐까. 우리들 유년의 기억 저편 아득한 곳에는 늘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가슴 한편에 아련하게 새겨져 있는 어머니의 미소와 켜켜이 쌓인 세월에 깊게 파인 주름과 그 깊이만큼의 사랑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여든을 넘긴 노모가 환갑을 지난 아들에게 “차 조심해라” “밥은 먹었니?” 등의 걱정을 쏟아내는 것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변할 수 없는 관계 때문이리라.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자식은 자식일 뿐이고,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나이를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우걸 시인이 그려내는 어머니도 그런 우리 어머니들의 자화상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는 영원한 마음의 지주이다. 그래서 힘든 일이 있거나 곤란한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매달리는 구원의 존재가 어머니인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목마르면 대출받고 정신 들면 갚으려 하”는 “내 사랑의 / 주거래 은행”이라고 했다. 떼일 줄 알면서도 아낌없이 내주는 구휼 기관, 사랑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이 아닐 수 없다. 감사함을 모르는 각박한 세태를 조롱하며 “헌신하면 헌신짝”이라는 말이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로 회자되는 요즈음,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되짚어보게 만드는 명편이다.
아버지, 라는 책은 표지가 울퉁불퉁했고
어머니, 라는 책은 갈피가 늘 젖어 있었다
그 밖의 많은 책들은 부록에 지나지 않았다
건성으로 읽었던가 아버지, 라는 책
새삼스레 낯선 곳의 진흙 냄새가 났고
눈길을 서둘러 떠난 발자국도 보였다
면지가 찢긴 줄은 여태껏 몰랐구나
목차마저 희미해진 어머니, 라는 책
거덜난 책등을 따라 소금쩍이 일었다
밑줄 친 곳일수록 목숨의 때는 남아
보풀이 일 만큼은 일다가 잦아지고
허기진 생의 그믐에 실밥이 다 터진 책
- 박기섭, 「책」 전문
박기섭 시인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책’에 비유하며 존재의 근원과 그리움에 대해 탐구한다. 시인이 쓰는 ‘부모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조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씨줄과 날줄로 삼아 두 존재의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닌 다름의 가치를 형상화하며,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왔던 부모의 역할과 헌신에 대한 문학적인 재조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첫 수의 “표지가 울퉁불퉁”한 “아버지, 라는 책”과 “갈피가 늘 젖어 있었”던 “어머니, 라는 책”의 대비는 둘째 수와 셋째 수에 이르러 각각 ‘아버지론’과 ‘어머니론’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과거에 대한 ‘새삼스런’ 회한과, 쉴 틈도 없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친 어머니의 눈물과 속앓이를 반추하며 내뱉는 탄식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수에서는, 삶의 중요한 길목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이 얼룩져 남아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희미해지는 그리움의 휘발성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잔함이 묻어난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부모’를 ‘책’에 비유했을까? 자식에게 있어서 부모는 삶의 진리이자 교본으로서의 존재라는 의미로 읽힌다. 책은 지식과 진리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는 곧 우리 삶의 지향점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생활지침이 된다는 의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모든 가르침이 곧 ‘책’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있어서 책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는 평전의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보편적인 인격 형성의 근원적 존재이자 상징체로서 형상화되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에 이르러 마침내 깨닫게 된 삶의 관조가 새뜻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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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출산율 감소, 핵가족화에 따른 개인주의 확산으로 가정의 모습도 많이 변화되었다. 가족 구성원들 간의 결속력도 예전만 못하게 됨으로써 ‘가족’이라는 공동체보다는 ‘나’라는 개인에 집중하는 현상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평소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가정의 달’ 5월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국제결혼을 통한 다문화가족은 물론, 한 부모, 재혼 및 입양가족 등 가족의 형태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옆에서 살펴주고 살아가는 데 힘을 보태주는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라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임채성 ㅣ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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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