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김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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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ㅡ 무거운 주머니는 날아오를 수 없다
바깥 기온은 20도가 넘어가는데 집안에서는 여전히 차가운 냉기가 만져진다. 서늘한 기운을 피해 밖으로 나왔다. 벚꽃은 만개해서 벌써 지기를 기다리는 패잔병처럼 쓸쓸한 빛이 감돈다. 여기저기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봄. 그러나 꽃은 저 혼자 피거나 비상하지 않는다. 주변을 맴도는 벌이나 나비가 있어야 꽃도 자신의 얼굴을 내놓을 수 있다. 나는 꽃보다 먼저 나비의 시선을 쫓았다. 나비의 날개가 마치 꽃잎이 부활해서 날아다니는 것 같아서.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비나 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벚꽃잎만이 나비로 가장해 내 눈을 속이고 있었다. 작년부터 이상기온으로 벌이 사라지고 있다는데 나비도? 하는 걱정이 들었다. 올해도 벌들이 미처 활동하기도 전에 일찍 꽃이 피었다고 한다.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거나 하는 이상 기온으로 생태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자연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생물들이 사라진다면 우리 삶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연에서조차 강한 것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세계로 몰아넣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 영원히 강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것이란 없음을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생겨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라고. 무(無)에서 유(有)가 생겨났다는 말인데 여전히 우리는 처음 이 세계가 어떻게 열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온갖 신화와 설화가 그것들을 대신하지만 태초라는 믿음은 완벽하지 않다. 과학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지구는 완전히 황폐한 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고 자랐는지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다. 생명이 처음 탄생할 때를 생각하면 태초는 영원히 신비로움에 묻혀 있어야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생명 탄생 이래로 지구는 수많은 변화를 거듭했다.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들이 계속 창조되고 있다. 하지만 지구가 영원히 유(有)일 수 있을까 하는 믿음에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어쩌면 지구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을 때 또다시 태초의 무(無)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지도 모르니까.
우연히 어떤 강연에서 “다시 만날 것처럼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말이 쉽지 다시 만날 생각으로 헤어지는 사람은 없다. 극으로 치닫는 관계의 늪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더러운 흙탕물을 몇 번씩 뒤집어써야 한다. 그 관계를 끊어야만 봄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예기치 않게 그런 순간들이 훅 치고 들어올 때가 있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리는 관계라는 정신적인 연결 고리의 망에 의해 살아간다. 관계가 무너지면 그 고리는 끊어진다. 고립은 인간에게 커다란 상처이면서 이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꼭 그렇게 치열하게 치고받는 순간은 온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직장동료든 친구든 그 어떤 관계에서든 한 번쯤 겪어야 이 세계는 지나간다.
그중에서도 가족은 치명적이다. 끝을 낼 수 없다. 남보다 더 못해도 법적으로 맺어놓아서 함부로 끊을 수조차 없다. 우리나라는 특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사는 사람들 같다. 부모에게는 무조건 복종과 헌신해야 한다는 투다. SNS에 올라오는 글을 읽다 보면 효자 효녀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나는 불효자이며 망나니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째서 내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마저 불순한 마음으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라온 환경 탓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 있다고. 사는 게 팍팍하고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데 자식은 무조건 부모를 이해하고 부모가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에 무조건적인 건 없다. 관계는 그만큼의 시간과 마음이 쌓여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치열했던 순간도 망각의 강을 건넌다. 물론 완전한 무(無)는 아니다. 삶을 살아내기 위해 잠시 보류해야 하는 감정들이다. 어쩌면 아름답다는 말은 망각에서 오는 감각이 아닐까. 망각을 위해서는 고통과 슬픔을 마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온갖 서러움이 폭발한 뒤에야 치솟았던 감정을 가슴 한편에 묻을 수 있다. 얼마나 오래 우리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 절벽 끝에 매달리게 하는지. 삶은 절벽과 마주했을 때 버텨내는 방법을 배운다. 마음이 지옥일 때 그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지옥 같은 마음을 망각의 강 속에 던져 넣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이라는 강의 이름을 속명으로 지은 나비의 이름은 뱀눈나비다. 볼품없었던 누에고치의 시간을 잊지 않는다면 나비 역시 과거에 발목이 묶일지도 모른다. 오직 날아오르기 위한, 꽃과 생물들의 삶의 지속을 위해 과거는 망각의 강 깊은 곳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려는 번뇌를 계속 끌어당겨야 한다. 날개가 가벼워져야 꽃가루를 나를 수 있으니까. 존재는 존재 그 자체의 무게를 내려놓을 때 가장 아름답게 날아다니는 게 아닐까.
아프리카 잠비아에는 나비숲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이곳에 사는 모파인 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모파인 나뭇잎이 나비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코끼리가 가장 좋아하는 잎이라고 한다. 콩과 식물인 만큼 잎이 많아서 식성 좋은 코끼리의 주식으로도 그만이다. 모파인 나무 입장에서는 척박한 환경에서 식량을 제공하는 생존 수단으로 존재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어느 정도는 버려야 생존을 유지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나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었다. 쓸모가 없다면 버려질 테니까. 무언가를 해야만 살아남는 존재. 내 존재의 양과 부피는 쓸모로 인해 채워졌다. 쓸모가 다하지 않으려고 나는 매일 매일 나의 쓸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나는 내 손으로 비린내를 만질 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것들은 외면의 아름다운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나비는 그 아름다운 날개를 얻기 위해 볼품없는 날들을 견뎌야 한다.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누에고치에서 일찍 깨어나게 하려고 더운 입김을 불어 넣었다가는 그대로 죽어버린다.
언젠가 잘못 든 숲에서 노랑나비 떼를 본 적이 있었다. 너무 황홀해서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가려 했지만 어딘지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이쯤인데 싶어서 들어가면 나비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꿈이었나. 그 순간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나에게 예상하지 못한 행운들이 날아들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봄이면 노랑나비를 쫓는 이유가. 하지만 알고 있다. 행운은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니라고. 노랑나비는 나에게 어떤 전언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날개를 가질 때까지 자신을 비우고 기다려야 한다고. 그럴 때 희망은 아주 먼 곳에서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오고 있다고. ‘세상에 영원히 강하고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김효선 l
2004년 《리토피아》 등단. 시집 『서른다섯 개의 삐걱거림』(문화체육관광부우수도서), 『오늘의 연애 내일의 날씨』 『어느 악기의 고백』(2020년 아르코문학나눔도서), 합동시집 『시골시인-J』가 있음. 〈시와경계문학상〉 〈서귀포문학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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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