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공시사
 
지난 계절의 공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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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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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송기원 시 / 한보리 곡

 

   

 

   

복사꽃

  

   

 

 

갓난애에게 젖을 물리다 말고 

사립문을 뛰쳐나온 갓 스물 새댁. 

아직도 뚝뚝 젖이 돋는 젖무덤을 

말기에 넣을 새도 없이 

뒤란 복사꽃 그늘로 스며드네. 

차마 첫정을 못잊어 시집까지 찾아온 

떠꺼머리 휘파람이 이제야 그치네. 

ㅡ 송기원, 「복사꽃」 

  

  봄이 되면 내 고향 마을은 무릉도원. 오래전부터 온 마을이 복숭아 농사를 지어 왔다. 방학이면 늘 할머니 댁에서 지냈는데, 여름 그즈음이 복숭아가 나는 철이었다. 복숭아는 벌레먹은 것, 쉬 물러져서 팔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팔지 못하는 그것들을 ‘철’이라 불렀고 저녁을 물리고 나면 북숭아 알 같은 백열등 아래 팔 수 없는 복숭아를 광주리째 마루에 들여놓고 고모들과 먹었다. 복숭아를 먹은 고모에게선 복숭아향이 났다

 

  복사꽃은 살구꽃과 벚꽃의 사이에 핀다. 마을의 논과 밭과 언덕에 복사꽃이 피면 마을은 온통 분홍빛에 휩싸이는데 정말 아름다운 장관은 새벽에 볼 수 있다. 새벽안개가 끼고 여명이 밝아올 무렵이면 복사꽃 분홍의 빛이 안개에 스며들어 분홍빛 안개가 되는데,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해가 뜨면 안개의 분홍빛은 복사꽃 속으로 다시 들어가곤 했다. 나는 안다. 복숭아를 베어 물었을 때 비치던 희고 붉은 분홍의 살빛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복숭아나무가 비탈에서 찬바람에 얼어가고 있던 지난 겨울 동안 송기원 시인의 시를 읽고 노래를 입혔다. 시인의 오래 묵은 슬픔이 건너와서 나를 물들였다. 이젠 할머니가 된 고모들, 복숭아 냄새가 나던 그 여름밤도 슬픔으로 건너왔다.

 

  매화가 한창이니 복사꽃도 곧 피겠다. 복사꽃 지고 나면 잎이 나고 젖꼭지 같은 열매가 달리겠지. 봄볕마냥 부풀어 가겠지. 그 열매 익어 단내 나는 여름이 오면 지난겨울 만들었던 노래들을 불러야겠다. 그 노래들 하마 붉은 복숭아 그늘로 스며들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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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리  l

시인, 작곡가, 가수. 시집 『꽃 한 송이 주지 못했네』가 있음. 자작곡 음반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나팔꽃 동인 음반 〈아무도 슬프지 않도록〉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 참여 음반 〈집 나온 시,길 떠나는 노래〉 〈산〉 〈백창우-시를 노래하다〉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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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호